세상을 얘기한다 2008.12.27 11:28
우리 엄마는 좋은 음식 드시고 나면 늘 "교동 최부자가 눈 아알로 빈다" 고 하셨다. 우리 나라 부자의 상징이라고 할 경주 최부자가 눈 아래로 보인다 즉 깔보인다는 뜻이니 세상에 아무런 것도 부러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주 최부자를 널리 유명하게 만든 말은 따로 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부자집의 가훈 중 한 줄이란다. 실제 흉년이 들면 곳간을 헐어 사람들을 먹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가훈을 갖게 되었을까? 한번은 큰 흉년이 들자 최부자집에 도둑떼가 들었다. 그 도둑떼는 한자말로는 명화적 우리말로는 불켠당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밤에 불을 밝히고 다니며 도둑질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도둑들은 누구일까? 교통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옛날이고 보면 그 도둑들은 다름아닌 그 동네 인근 사람들 중 더이상 먹을 것이 없어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를 알게된 최부자는 이웃과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얘기다.

오늘 뉴스를 보다가 참으로 맘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수출보험과 보증 규모를 170조 원으로 대폭 늘리고, 수출보증에 문제가 생겨도 고의가 없으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수출 드라이브로 경제를 살리려 하나 봅니다. 어쩌면 우리 원화 가치가 땅에 떨어진 지금은 수출을 할 수 있는 호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가 수출 드라이브로 경제를 일으킨 경험이 있으니 그런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런 것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럴 것입니다. 정말로 수출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무역 수지는 엄청나게 개선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온 나라에 달러가 넘쳐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여러 지표가 얘기해 주듯이 우리나라는 이미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아무런 경제의 기반이 없던 시절에는 가발 만들고 미싱 밟고 타이어 만들어 수출을 늘일 수 있었고 도시로 밀려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경쟁력없이 수출하는 품목의 생산은 이미 중국, 베트남 등지로 옮겨 갔거나 이주 노동자들의 몫이고 기술경쟁력이 있는 분야의 수출은 결국 재벌의 배를 불려줄 뿐 고용의 증대나 노동자 삶의 향상이 아니라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외주화 비정규직화로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수출 늘어나봤자 서민 생활에는 아무런 개선이 없습니다.

정부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자들이 돈이 많아지만 소비를 할거 아니냐. 그래서 재벌을 더 부자 만들고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돈이 돌고 경제가 살아난다. 부자만을 위해 연일 쏟아져 나오는 감세 법안은 그 논리의 연장선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감세 논리는,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고 그 결과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세할 경우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일종의 가설에 불과하다. 이 가설이 현실화할 것인지 여부는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 감세정책이 전면화된 경우는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였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전면적인 감세정책을 단행하였다. 감세 결과 재정수입이 감소했음에도, 재정지출은 오히려 늘어나 재정적자가 확대되었으며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게 되었다. 국채 발행은 이자율을 상승시키고 민간부문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out)를 가져왔다. 감세 결과,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났지만, 투자는 오히려 위축되어 실물경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고 이는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대규모 쌍둥이 적자 구조(경상적자 + 재정적자)가 고착화되어 80년대 후반 미국 경제를 암흑기로 몰아갔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부자들은 돈이 많아지면 돈놀이하지 경제를 돌리는데 쓰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어느 쪽의 경제 자문을 맡은 경제학자도 이제는 감세를 얘기하지 않는다.
"괴짜 사기꾼들"
부시의 경제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2003~2005년)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교과서 초판(국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원론 교과서이기도 하다)에서 감세를 외치는 공급경제학파를 그렇게 불렀다.
요즘 새삼스레 케인스가 인기란다. 한 때는 완전히 찬밥 신세이더니 이제는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이게 위대한 케인스 학파의 이론이란다. 미친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냥 ‘정부가 나서서 돈 푸는 게 케인스 경제학’이라는 단세포 사고방식을 금세 읽을 수 있다. 정부가 혈세를 털고 국채를 잔뜩 져서, 욕심내다 빚더미에 앉은 은행에 무작정 퍼주고서는 되레 대출 좀 많이 해달라고 싹싹 비는 것이 ‘금융정책’이란다. 만년 적자에도 경영 혁신 없이 버티다가 망해버린 자동차 기업을, 그것도 채권·주식 소유자들부터 살려주는 것이 ‘유효수요 정책’이란다.
그런게 아니거든요. 이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딴 데를 풀어야 되거든요. 보자구요. 경기가 나쁘면 돈 구하기가 어렵고 돈놀이 하는 사람들은 신난다. 부자들은 경기가 좋던 나쁘던 먹을거 안먹고 쓸거 안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자주하는 얘기지만 부자들은 근본적으로 과소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써도 그 보다 더 버니까) 그러니까 부자들에게 극심한 불경기는 더 많은 불로소득을 올리면서 잉여 소득으로 싸진 물가를 누리는 호기일 뿐이다. (아마 IMF때 현금을 은행에 넣어둔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감할 거다.)

그렇다면 경기에 따라 소비가 바뀌는 사람들은 누군가? 서민과 중산층이다. (모든 당이 대변해 준다는 바로 그들 바로 우리 말이다.) 이 사람들은 경기 나쁘면 소비를 줄인다. 외식 줄이고 옷 덜사고 병원 덜 가고 막판에는 애들 학원까지 줄인다. 불황은 서민과 중산층의 지출을 옥죄고 이는 그들에게 재화를 팔아 먹고 사는 또 다른 서민과 중산층의 수입의 물꼬를 틀어막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돈을 쓸 수 있게 길을 터주어야 경제는 살아난다.
헨리 포드는 1915년 어느 날 포드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두배로 올려줬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급 5달러’였다. 포드는 “내가 고용한 노동자들도 포드차(모델 T)를 구입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포드주의는 대량생산뿐만 아니라 ‘대량소비’에서도 자본 축적의 원천을 발견한 생산 시스템이었다.
포드가 착해서 월급을 올려줬을까? 택도 없는 소리. 소비자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공급자도 고달프다. 그래서 이 거대한 상생의 경제를 다시 시작하는 길은 서민 중산층이 돈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수출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내수를 살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단 말이다. 바보야.
신고
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