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09.07.30 11:27
(퍼온 이의 설명: 거의 이공계 출신인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어느 게시판에서 후배들이 주고 받은 글인데 재밌어서 퍼옵니다. 실명이 거론된 부분을 고치고 일부 눈에 띄는 오타만 수정하였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저와 다른 부분도 있으나 글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굳이 가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뻔히 아는 사람들만 사용하는 게시판이라 정제되지 않고 많은 가정이 생략된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수도 있는) 글이지만 우리가 뻔히 아는 것 뻔히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글로 굳이 표현한다면 어떻게 되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참고로 L 과 J 는 모두 현재 미국에서 취업하여 살고 있습니다. 글 퍼오기를 허락한 J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L 에게는 미리 허락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글의 흐름상 필요해서 임의로 퍼왔습니다. 용서해주리라 믿습니다. 믿음이 나를 구원하려나.)

L 이 게시판에 올린 질문 글

미국에 살면서 한국 얘기에 관심이 많다보니 두 나라에서 벌어지는 답답한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중 하나가, 소위 "민의"라는 개념입니다.

아무리 국민 모두가 MB OUT을 외친다고 해도, 어쨌던 간에 그 사람은 선거에서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고, 거기다가 국회까지 한나라당을 다수로 만든 것도 똑같은 국민들인데, 왜 자기들이 뽑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면서 그렇게 불만이 많은건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러다보니까 정말 사람들이 불만이 많기는 한건가 싶어서요. 혹은 어쩌면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인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조금 다르지만 저한테는 좀 더 와닿는 얘기를 하면, 저는 정말 2004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이길줄 알았습니다. 2000년에 어찌 됐건 부쉬가 대통령이 되서 여기저기 전쟁 시작하고, 미국내에서는 정말 눈에 띄게 civil liberty를 박살내기 시작하는걸 보면서 꼭 지금 한국에서 MB OUT 하는 것만큼 미국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느꼈었거든요. 그런데 2004년에 그런 사람을 또 대통령으로 뽑는 것을 보면서 "아, 어쩌면 내가 보는 세상이 굉장히 협소한 한쪽만을 바라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미국 국민의 과반수는 부쉬를 지지했단 말이지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 제가 어울리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리 비난을 받고 있었더라도 결국 한사람이 한표인 제도에서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은 부쉬였으니까요. 최소한 부쉬한테 2004년에 표를 던진 사람들은 (제 눈에 보이기에) 망가져가는 미국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안했다는 얘기잖아요.

해서 생각해보면, 정말 한국에서는 지금 대통령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다수인 건지가 궁금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왜 촛불시위같은 소위 "장외" 투쟁말고는 벌어지는 일이 없는지. 어차피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정말 자기들이 뽑은 대표에 불만이 있으면 갈아치울 힘도 국민한테 있는거 아닌가요? 아니면 제가 보고 듣는 사람들이나 매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있어서 사실 대다수는 아무 불만없이 MB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보이기에는 지금 정부가 뭔가 크게 잘못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걸까요?

아니면 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석에 새겨져있는 "깨어있는 시민"의 수가 너무 적어서 생기는 일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용어는 약간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한 사람이 한 표"라는 바탕에서 시작하지 "깨어있는 사람만 한표"에서 시작하는게 아니잖아요. "깨어있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떠나서 어쨌던 과반수가 맞다고 하면 맞는거 아닌가요? 그럼 오히려 그 과반수가 하는 생각이 결국 "깨어있는" 생각이 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한번 써봅니다.

J의 덧글

주의사항: 가설이 상당히 길므로 이해(동의)도 안되고 불편한 사람은 본 글을 건너뛰기를 권합니다... 읽는 사람도 귀찮긴 하겠지만 덧붙이자면 여기 나오는 여러 개념(진보, 보수 등)은 한국사회에서 보는 개념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중립적인 개념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보수가 맞는가라는 식의 논의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중립적이지 않은 개념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고쳐보도록 하지요.

L 이 질문하는 이런 선문답(?)에는 불행히도 짧은 문장은 고사하고 길게라도 제대로 정리해 놓은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고 나 또한 아직은 키워드 수준에서 생각하는 정도지만 생각의 단편이라도 나열하는게 우선 나에게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서 적어본다. (예전엔 스스로 고화질 비디오에 준하는 기억력이라 생각했지만 요즘은 세상에 적응해서 검색엔진형 keyword만 남기는 기억력으로 퇴화하고 소설을 붙이는 능력만 늘어난듯)

공돌이라 이공계열 언어로 밖에 표현못하는 나의 한계를 안고서 이야기해 보자면 지금 단계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중'에 대한 모델링으로 가장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은 '물돼지'이다.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링크 참조... (http://naggama.co.kr/main/item/itemView_860441.html 구글이 찾아주는 중에서 이게 제일 먼저 나와서... 난 제품과 무관함)

대중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유동성이 높으면서도 표면장력 또한 높은 '유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도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대인데 수많은 전자로 이루어진 인간이 또 많이 모인 '대중'이라는 대상을 우리는 특정 시간 위치만을 파악할 수 있는 사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는가? 현재로서는 우리들은 특정사건과 특정 시점의 대중의 '위치'는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으나 '운동량'을 파악하지 못해 앞으로 움직이는 방향, 속도를 예측하는데 거의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집내의 대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외부의 자극 (거시적 관점에선 지속적인 random event)에 따라 전체적인 쏠림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자극에 따른 변형(transition state)이 끝나면 집단의 표면장력에 따라 변형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격도 가진다. (극단적인 자극의 경우 군체가 분리되거나 둘이상이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고...)

즉 개체군이 특정 방향으로 의미있는 이동을 시작했다고 해도 그 관성은 일시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원래 집단 전체에서 차지했던 위치 가까이로 돌아간다. 개체 자체는 브라운 운동같이 끊임없이 집단내 이동을 계속해 변화하고 있겠지만 집단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때는 대부분의 경우 전체 이동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집단의 표면장력 또는 외형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매우 강한 순간 자극(예를 들어 전쟁으로 인한 국가 분리)이나 장기적인 교육의 힘이라고 본다. 소위 현대사회라는 곳에서 새로운 정보의 대부분은 교육기관보다 대중 매체로부터 나오며 지금 한국에서는 이 대중 매체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미디어 관련 법안에 대한 세부적인 관심은 없지만 내 생각엔 법안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미디어 자체가 양측이 서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목표이기에 추진하는 쪽은 '일단 내가 찍은 것은 먹고 봐야 하기 때문에' 대화없는 실력행사를 하고 있고, 반대측은 근본적으로 법안 내용보단 '남이 먹는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게다가 나쁜 넘은 더욱 불가)' 반대하는 입장이 크다고 보는데 반대논리가 완전치 못했고 현 상황에서는 절차상의 문제(반대)를 더 크게 제기하고 있고 (당연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잘못하다가는 '그나물에 그밥' 취급받기 좋은 형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함.

위는 주관적 입장에서 본 장황한 가설이고...

원래 L 의 질문으로 돌아가 '다수는 항상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보자면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절차에 의한 다수의 결정(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옛날 옛적 교과서에도 다 나온 이야기라 새삼스러울거 하나도 없다) 합리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상대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다 논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론은 참 단순한데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겪는 사회는 마치 사람들이 이런거 모르나 싶을 정도로 어지럽다는 게 문제긴 하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개인의 지능, 학습과정과 집단의 지능, 학습과정은 다르며 똑똑한 일부 개인이 사건을 정확히 분석해 미래를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전달과정을 밟지 않는경우 집단의 동의를 얻지 못하며 따라서 집단은 해당 사건을 전혀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겪으면서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리 예측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뻔히 보이는 '닭짓' 하는것을 쭉 지켜보면서 분통터지는 노릇이겠지만 내가 아는 것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닌 것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이런 집단 지능과 경험의 차이가 소위 선진국이 후진국을 상대로 외교, 경제면에서 장사 잘해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선진국이 잘나서가 아니라 후진국이 발전하는 단계에서 선진국들이 겪었던 문제의 패턴을 피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때 원래 중간인 사람이 말이 별로 없는 편이 당연한 것이고 양 극단으로 갈수록 개인의 신념과 사회의 현실이 충돌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불만도 많고, 목소리도 크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는 중간의 목소리보다 양 극단의 좌파 우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 생각보다 양 극단이 많은 것처럼 보여지는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진짜 과반수인지는 (진정한 다수의 뜻인지는) 전체 투표를 하지 않는 이상 쉽게 알 수 없다. 그런데 때로는 진실이 아닐지언정 일반 대중이 가장 쉽게 느껴지게 하는 것(확성기 역할)이 있으니 바로 매스미디어이다.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막론하고 역대 어느 권력이든 언론을 통제하거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국가라는 집단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후천적인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본인이 소속 국가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겪을 경우 해당사회에서의 기득권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본인에 가장 맞는 국가로 국적변경이 가능하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빨리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구현의 신념 또는 기득권 포기 불가의 이유로 해당 사회에서 본인의 입맛에 맞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집단에 방향제시를 통한 '자극'을 주어 사회의 변형을 시도한다. 앞의 '물돼지'로 돌아가면 돼지를 잡아당기는 사진과 비슷할듯 하다. (사회내 진보와 보수가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주도하는 현상) 일단 잠시간의 변형이 성공적이었다 할지라도 변형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물돼지에서 물곰으로 외형이 바뀌는 것) 사회의 재교육이 성공적이어야만 새로운 형태에 대해서 구성원 다수의 동의를 얻어 안정화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 사회 재교육은 10년 이상의 장기간의 기간을 필요로 하며 한 세대정도의 시간을 소요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교육은 분명 효과는 있으나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구성원에 가장 효과가 크며, 새 이념에 반대하는 기존 구성원은 '죽어 없어져서' 반대 동력을 상실해가는 경향이 있다. (20대 이후 기존 개체에 대한 교육효과는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육체적 성숙과 정신적 성숙을 동일시하므로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되어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진보든 보수든 사회의 변형을 자기에게 유리한 (이해관계만이 아닌 이상실현의 관점도 포함) 형태로 바꾸어 가기 위해 중간층을 설득, 계몽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쪽이 되었건 중간층을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깨어있는 시민'으로 만들어야만 사회가 그렇게 바뀌어 갈 것이므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편을 늘려가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우리편이 되어주세요'보다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 주세요"가 누가 듣더라도 더 멋있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투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는데 최근에야 어느정도 정리가 된 듯 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 시민이 사회를 바꿀 거의 유일한 합법적 장치는 투표뿐이고 - 시위를 통한 의사표현은 직접 정책 변화를 보장해 주고 있지 않다 - 이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당화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지난 대선에 귀국을 못해 투표하지 못했고 내 의사에 관계없이 투표하기 어려웠던 제도탓도 있지만 개인의 책임도 있다고 결론내렸다)

찍을 후보자가 없다면 무효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 더 낫다. 왜 그런지는 다음의 예시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사례 1. 투표율 60%. 투표자 60% 지지로 당선 (전체 유권자중 36%)
사례 2. 투표율 90%. 무효표 33%. 유효표중 60% 지지로 당선 (전체 유권자중 36.18%)

당선자 입장에서 보면 1, 2는 전체 득표율도 비슷하고 지지율이 같다고 같은 결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상적이라면 1번에서는 어쨌거나 과반수 지지라고 아전인수식 해석도 가능한 반면 2번에서는 그렇게 해석하기가 껄끄러울 수 밖에 없다. 무효표가 이정도로 나온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무효표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부동층을 대변해 주고 있다.

별거 아닌거 같아 보여도 투표에 의한 대의정치를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조금 확대해보면 투표 여부에 따라 내가 인간 취급을 받는지 안 받는지 차이가 난다. 내가 니들이 뭘하고 먹고 살든 관심이 없는거 까진 좋은데 그 상대방이 니가 뭘하고 먹고 살든지 난 상관없다고 나대는 건 좀 다른 문제이지 않나 싶다. 지금 보고 있지 아니한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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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