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2 14:15

/* (저자 주) 1997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

늦가을에 내린 비가 마지막 저항을 하는 낙엽들을 땅에 떨구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한결 추워지면서 본격적인 초겨울 날씨로 접어들 것이다. 올해는 엘니뇨 덕분에 덜 추우면서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삼한사온이 깨진 지도 오래 되었지만 이제는 겨울 마저 춥지 않다니 제 이름값을 하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올해는 경제가 전체적으로 매우 심각한 불황기에 빠졌다. 많은 중견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환율이나 증권시장도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수치로 대변하고 있다. 이런 불황은 많은 기업들로 하여금 외연적 성장보다는 내포적 효율에 관심을 두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투자심리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와중에 대선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그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버린 민생현안은 다가올 겨울을 유난히 길고 춥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월드컵 예선에 환호하고 박찬호에 열광하는 것은 스포츠 외에는 볼 것이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황은 인터넷에도 몰아쳐서 작년에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인터넷 관련 산업이 올해에는 일년내내 그 거품이 가라앉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현대정보기술이 기존의 아미넷 사업을 신비로라는 이름으로 일신하면서 재탄생한 것이나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것 그리고 여러 백화점이 인터넷에 쇼핑몰을 개설한 것 등은 인터넷이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터넷 문화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뭔가 허전함을 느낌을 갖게된다. 외래의 사상이나 문물을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퇴계의 시대로 끝나고 그 이후 조선의 이념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천주학부터 체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실학을 거쳐 최근의 인터넷까지는 전후좌우 맥락이 생략된 채 도입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대화의 기능 ( CMC : 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 ) 과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는 기능 ( Virtual Community ) 은 생략된 채 오직 웹 서핑으로만 이해되는 것도 이와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웹 서핑이 위주가 되다보니 '볼 게 없더라' 라는 불만이 생겨나는 것이고, 자연히 볼 것이 많은 해외로 트래픽이 몰리게 되고 이는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막대한 통신료 부담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해외로의 비용지출이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을 적용하려는 토양에 따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를들어, '얼굴이 검은 사람은 대개 간이 나쁘다' 라고 하는 지극히 흔한 상식도 간이 튼튼한 흑인들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고 외국의 소프트웨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도 워드 프로세서 시장만은 내주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문자생활이라는 지극히 난해한 문제와 얽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후 코리아의 대약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식간에 우리시장을 장악할 능력을 갖춘 외국의 컨텐츠 전문업체들을 보면서 우리의 얼이 담긴 우리의 컨텐츠를 만드는 것도 결국 외국업체에 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들이 만들게 될 한국 컨텐츠는 과연 '나비부인'에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

잠시 해외로 눈을 돌려 인터넷과 관련하여 올해에 일어난 사건 중 흥미로운 것을 두개 만 골라 본다면 헤일 봅 혜성과 관련된 종말론적 사이비 종교집단의 홈 페이지 였던 헤븐즈 게이트와 최근에 미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내려진 1일 1백만달러짜리 벌금에 대한 것이다.

참으로 운이 좋았던 천문학자인 헬리 ( 헬리 혜성을 두 번 볼 만큼 오래 살았고 충분히 어렸을 때 처음으로 혜성을 보았던 사람 ) 가 헬리 혜성의 주기성을 밝혀냄으로써 인류는 혜성이 인류에게 던져진 신의 계시가 아니라 그저 하늘에서 벌어지는 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최첨단이 판치는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에서 그런 혜성을 둘러싸고 집단 자살을 불사하는 광신도 집단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희극적인 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미국도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 반독점금지법을 걸어서 벌금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사건의 발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브라우저의 기능을 점점 운영체제와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우즈로 그리고 윈95, 윈98로 이어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에서 인터넷 브라우저 기능을 운영체제와 통합시킨다면 결국 사용자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이것은 한 분야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활용하여 다른 분야에서 불공정 경쟁을 하는 것이므로 법에 위반이 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들어준 회사, 미국의 부와 힘을 상징하는 회사, 그런 회사의 정책을 정부가 감히 제동걸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전후좌우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사회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

차근차근히 전후좌우의 맥락을 살피며 살아가는 것은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인가 ?

역시 역사에는 비약이 없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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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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