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2 14:19

/* (저자 주) 1997년말 모든 사람들의 입에 IMF라는 말이 오르던 그 시점에 열받아서 쓴 글 */

글을 시작하며

세상 어딜가도 IMF 얘기 뿐이다. IMF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과연 IMF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우선 신문이나 방송에서 얘기하고 있는 IMF에 대해 알아보자.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현 상황은 다음과 같이 요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정부가 경제분야에 무지하여 몇몇 부도 기업을 잘못 처리하여 국가의 신용도를 떨어뜨리고 그 와중에 외환관리까지 잘못하여 국고에 달러가 소진되는 사태를 맞이하였다. 이에 채무불이행을 피하기 위하여 IMF에 긴급히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IMF는 돈을 대주는 대신 가혹한 경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요청하였다. 다급해진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조정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것은 차기 정부를 맡을 김대중 당선자의 몫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최근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이유와 해결책을 이끌어 내는 데는 부족하다. 즉, 언젠가 터져야할 상처가 1997년 말에 터진 이유를 설명할 뿐 이러한 상처가 왜 계속 깊어가고 있으며 치유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설명하는데는 부족하다. 위의 사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IMF란 그저 우리는 대량의 실업사태와 오랜동안 저소득층의 희생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과연 그런가 ?

우리는 과연 외채를 갚을 수 있는가 ?

IMF가 우리에게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이유는 미국의 납세자들에게서 거두어들인 돈을 한국에 빌어주면서 떼이지 않기 위하여 한국의 경제 자체를 흑자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사실 한국은 해방이후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적이 거의 없다. 3저호황으로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돈을 많이 벌었던 80년대말을 제외하고는 매년 적자의 폭이 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제 시스템도 계속 적자를 보면서 굴러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지탱되어 온 것은 계속 무역량을 늘여가면서 작년에 빚진 것을 올해에 갚기 위하여 더 많이 빚지고 올해 빚진 것을 갚기위하여 내년에는 더욱 많이 빚지는 '아랫돌 빼다가 위에 박는 식'으로 경제를 운용해 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돈'들은 높은 이자를 빼먹기위하여 계속 공급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채무불이행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빚을 궁극적으로는 못갚을 것이 뻔한데 IMF는 어떻게 돈을 대줄 수 있는가 ? IMF의 관계자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첫째로, 원화가 급격히 평가절하됨으로써 한국에 투입된 미국의 금융자본이 회수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위해서 원화를 적정선으로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이해와 일치한다. 둘째로, 원화의 평가절하는 한국이 생산하는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이를 통하여 수출을 증가시킨다면 원금 상환이 가능해 질 것이다.

과연 그럴까 ?

이를 판단하기에 앞서 20세기말의 세계 경제 질서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거대한 분업체계를 살펴보자. 미국을 중심으로한 선진국은 실물의 생산보다는 기호의 생산에 치중하고 후진국은 실물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당장 하루의 일용할 양식이 될 쌀은 태국에서 생산되고 있고 전세계인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동남아나 남미, 동구권에서 생산된다. 반면에 미국에 최대의 부를 가져다 주는 상품들은 영화, 음악, 소프트웨어,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이다. 미국이 생산하고 있는 이들 상품의 특징을 살펴보면 개발비는 높은 편이지만 거의 0에 가까운 생산비를 요하는 상품들이다. 원본과 복제본의 구별이 없어지는 디지털 시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다 준 것이다.

선진국 상품과 후진국 상품의 차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후진국이 생산하는 제품은 사람의 수에 의하여 시장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는 것 들이다. 아무리 쌀 값이 떨어지더라도 전세계 사람들이 밥을 한 끼에 두그릇씩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선진국의 상품은 아직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성장성이 높고 설령 전세계인이 공통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버전이나 개선을 통하여 기존의 상품을 싸그리 갈아치울 수 있도록 시장을 계속 바꾸어 나가고 있다. 즉,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사더라도 계속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나오기 때문에 새롭고 뚱뚱한 소프트웨어를 처리해 줄 새 컴퓨터의 필요성은 필수불가결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기존의 제품이 더 이상 지원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전혀 새로운 제품을 다시 구매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본다면 한국이 외환위기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무역에서 흑자를 이루어 빚을 갚아나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위기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대응은 적절한가 ?

현 위기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대응은 애초 이 글의 처음에서 제시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 즉, 현재의 상황을 참고 버티면 되는 일시적인 위기로 보고 대충 개기고 있는 것이다. 통지표만 부모님께 보이지 않으면 며칠은 버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나쁜 성적이 좋아지지는 않는 것과 같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 재계는 IMF가 제시한 재벌의 해체와 내부거래의 관행을 깨기위한 연결재무제표의 의무화, 주력기업을 제외한 한계기업의 정리, 미국식 회계 시스템의 도입, 외부 감사제의 도입, 과도한 차입경영의 중지, 재무 시스템의 투명성 제고를 통한 재벌 소유주의 재벌 사금고화 방지 등은 애써 외면한 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현란한 이름의 해고 프로그램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나마도 미국식의 해고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실업자들의 생활과 재교육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기금을 세금의 형태로 납부하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무시한채.

노동자들이 해고를 수긍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도 충분히 허리띠를 졸라매었고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이런 증거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금융실명제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돈이 어디서 새나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어떤 노동자도 자신의 해고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 이런 시스템의 구축은 누구의 책임인가 ? 결국 화살은 정치권으로 돌아온다. 오히려 강화해야할 금융실명제를 후퇴시키면서 정치권이 내걸고 있는 명분은 금융실명제의 후퇴를 통하여 지하자금을 지상으로 꺼내어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지하의 자금이 지상으로 나오기 위하여 발행하는 무기명 장기채권은 지하의 자금을 더욱 깊이 숨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정치 자금이 이런 지하 자금과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노동자들이 졸라맨 허리띠에 의해 확보된 부가가치를 이용하여 정경유착을 키워나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편, IMF에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은 엉뚱하게도 금융감독 기능을 한국은행으로부터 빼앗아 재경원 ( 또는 총리실 ? ) 으로 옮김으로써 독립성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한마디로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결과를 향해 달리고 있다.

IMF를 제대로 이겨내는 길은 무엇인가 ?

어쨌든 외채는 있는 것이고 이를 차근차근히 우리 경제의 재건을 통해 갚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 이 장면에서 조크 한다디.

김영상 정부는 이제까지 그 어떤 정부도 이뤄내지 못한 두가지 충격적인 진보를 이루어내었다. 첫째는 재벌의 해체고 둘째는 군비축소다.

그렇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 80년대 후반 3저호황에 이은 우리 경제의 성장과 과실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공짜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가 흥청망청 즐긴 것은 빚잔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그동안 고도성장이라는 허울로 굴러가는 한국을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 정의'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 금융실명제를 강화하여 돈의 흐름을 유리처럼 투명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지하자금이 방해가 된다면 화폐개혁도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일단,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한 다음 돈이 정상적으로 분배되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제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며 세제개혁의 기본 축은 현재 뒤집혀있는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을 정상적인 방향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시행해야 한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잘 교육된 사람들을 지역내에 유치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전반적인 개혁과 복지 시스템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 참고로, 김영삼 정부는 교육개혁을 주요한 공약으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해 놓은 것이 없다. ) 미국이 현재의 부를 축적하는데는 미국에 유학온 외국인들과 이민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성실하고 능력있는 국민들을 계속 선진국에 뺏기는 상태에서는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근본으로 돌아가자

이상은 우리사회 내부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을 때의 대응책이고 이를 전세계의 지평으로 확대해보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자. 이 모든 사태의 근본에는 과연 무었이 있을까 ? 브레튼우즈 협약이 맺어지고 세계 은행, IMF 등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 이는 생산과 자본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두 단계의 괴리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선진국은 이미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력과 그로부터 창출되는 부 ( 즉, 자본 ) 의 심각한 괴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많은 자본을 축적 ( 세계적 금융자본의 시원적 축적 ? ) 하였고 이들 자본은 WTO 체제를 맞아 - 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 국경을 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덩치를 불려왔다. 금융자본이 그 자체로서 가장 많은 차익을 내는 방법은 투기이며 이의 가장 강력한 수단은 환투기였다. 환투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외환보유고가 작은 나라를 상대로 장난을 치게된다. 환투기 장난은 흡사 실력이 비슷한 사람이 포커를 치는 것과 비슷해서 뒷돈이 많은 놈이 이기게 마련이다. 현재 세계전체로 보아 헤지 펀드의 규모는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일본도 농락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금융자본은 그 누구도 통제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IMF가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방어력은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우리는 이 장면에서 미국의 원주민들이 이룩한 놀라운 통찰력에 기대어 볼 수 있다. 미국 인디언들에게는 '포틀랏치'라는 풍습이 있었다. 각 부족이 특정한 기간을 정하여 자신이 축적한 잉여생산물을 싸그리 불 태우는 것이다. 누가 더 크게 더 오래 태우는가가 그 부족의 위세를 상징하는 것이 된다. 물론, 위세를 통하여 우위를 점한다고 하더라도 축적된 잉여생산물이 없기 때문에 다른 부족을 쉽사리 넘볼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따라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풍습은 축적된 잉여생산물이 다른 부족을 공격할 수 있는 무력으로 전화하며 이는 부족들 모두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라는 역사적인 교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전 지구적 차원에서 금융자본의 포틀랏치를 행할 것인가 ?

매우 위험한 발상이긴 하지만 외채를 갖고 있는 모든 국가가 채무의 탕감을 요청하여 이때까지의 채무를 모두 없애는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얘기하는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물론,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발은 돈 장난을 즐기는 돈 장사 몇명일 뿐이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가난한 민중 전체이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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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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