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10.08.18 15:50

컴퓨터는 다루려는 대상으로부터 컴퓨터가 다루기 적절한 모델을 뽑아내고 이 모델을 컴퓨터가 이해하는 내부 표현으로 바꿔서 처리한다. 데이터베이스는 손으로 쓰던 장부를 컴퓨터 안으로 옮겨 놓은 것이고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행위는 특정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의 특정 레코드의 특정 필드에 월급에 해당하는 값을 저장하는 행위로 표현된다. 파일, 사용자, 폴더, 프로세스 등 컴퓨터에서 다루는 모든 것은 컴퓨팅의 대상을 적절한 형태로 추상화 하고 모델로 만든 것이다.


컴퓨터가 다루는 대상으로부터 모델을 뽑아내고 다루기 좋은 표현 형태로 바꾸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든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고 구현하기 쉬운 형태를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초기 컴퓨터는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이 다뤘으므로 처리 결과를 그냥 램프의 깜빡임이나 두루마리 종이에 구멍을 뚫는 것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에 비하면 이름으로 파일 즉, 비정형화 된 임의의 데이터 덩어리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비약적인 발전인 셈이다. 컴퓨터가 사람들의 책상으로 옮겨오게 되자 책상 위에 겹겹이 쌓인 책과 공책을 흉내 낸 중첩 창(overlapped window)을 지원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대세가 된 것은 자연스런 발전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실제 세계의 모습을 원래의 모습과는 현저히 다른 형태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실제 사물과 컴퓨터에 의해 표현된 사물의 표상은 명백히 구분되었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컴퓨터가 표현하는 사물을 실제 사물과 비슷하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파일을 나타내는 아이콘을 끌어다 휴지통 아이콘에 집어넣어서 파일을 지우는 것은 이러한 열망이 만들어낸 멋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컴퓨팅에서의 대상과 컴퓨터 내부 모델의 관계와 무척 다른 구성을 갖는 컴퓨팅으로서는 가상 현실과 증강 현실을 들 수 있다. (주의:가상 현실이나 증강 현실도 다루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이 글에서 제시하는 설명이나 정의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최대한 좁은 의미 또는 이 글의 논지에 잘 부합하는 의미로 맘대로 쓰기로 한다.) 가상 현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다룬다. 하지만 그 대상은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더 정확히는 가짜 대상의 상정된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된다. 앞의 월급-데이터베이스의 경우와 비교할 때 진짜-가짜의 관계가 정확히 반대로 된 셈이다. 한편, 증강 현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꼭 가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원래 모습은 아닌) 조작된 형태로 표현한다. 가상 현실의 묘미는 그것이 뻔히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짜 같이 표현되는 것에 있고 증강 현실의 묘미는 진짜 물체의 겉모습 속에 숨은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유비쿼터스 컴퓨팅 또는 보이지 않는 컴퓨팅은 어떤가?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예를 들어보자. 현재 우리 주변에 있는 것 중 가장 완전히 유비쿼터스 기술을 보여주는 것은 아마 ABS 브레이크일 것이다. ABS 기능이 있건 없건 브레이크는 겉모양도 같고 사용하는 방식도 같고 동작도 (거의) 같다. 다만 ABS 기능이 필요한 순간 저절로 나타나서 제 일을 하고서는 사라진다. , 속으로는 원래의 사물보다 훨씬 강력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는 원래의 사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방식으로 사람과 소통한다. 그래서, 사용자는 원래의 사물이 갖고 있는 기능을 쓰듯이 쓰면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적절히 숨겨진 기능이 발현된다. 유비쿼터스 수트를 입고 (사람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을 들면 수트가 알아서 부족한 힘을 보태줄 것이다.


하지만 유비쿼터스 기술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보이지 않음은 그 자체로서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 사용자가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기가 어려워 진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유비쿼터스 수트를 입고 100킬로그램짜리 돌을 들어올린 사람은 정말로 자기가 들어올린 것인지 수트가 들어올린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만약 1톤짜리 돌을 들었다면 오히려 정확히 알 것이다. 실제를 모방하는 기술이 실제에 점점 가까워 질 수록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아지지만 (그란투리스모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선을 넘어서게 되면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와 같은 심각한 심리적 거부감 또는 신체의 여러 감각 사이의 부조화에 의한 부작용(3차원 게임을 처음 즐기는 사람들은 대개 약간의 멀미를 경험한다.)을 느끼게 된다. 물론 기술이 더욱 발단해서 결국에는 이러한 거부감이나 부조화도 뛰어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듯 완전히 조작된 경험의 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만약 어제는 틀림없이 내 힘으로 200킬로그램짜리 돌을 들 수 있었는데 오늘은 들 수 없다면 기분이 어떨까? 여자 친구한테 바람맞고 성질 나서 벽을 쳤는데 건물이 무너진다면 어떨까? 만약 공을 차려는데 얼마나 세게 차게 될 지 예측하기 어렵다면 어떨까? 나는 확실히 보통의 인간인데 내 행동의 결과는 엑스맨처럼 나온다면 기분이 어떨까?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지적하였듯이 모든 생물은 그들이 살아가는 규모에 맞는 형태로 세상을 인지하도록 진화했다. 짚신벌레에게는 물 분자의 브라운 운동이 소금쟁이에게는 표면 장력이 그리고 우리에게는 중력이 운동의 법칙을 지배한다. 혹시 보이지 않는 컴퓨팅이 이러한 인간의 자연스런 인지를 방해하지는 않을까? 또는 어떤 사람은 방해하면서 어떤 사람은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들 사이의 (결과적) 차별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모르겠다. 극도로 인위적으로조작된 환경과 경험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이 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된 목표는 아닌가? 우리는 정말 이 기술을 써야 할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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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