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10.11.04 12:19

컴퓨터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삶을 여러 측면에서 바꾸어 놓았다. 아직도 변화는 진행형이다. 삶의 여러 요소를 씨줄로 그리고 충분히 작고 강력한 컴퓨터를 날줄로 서로 엮어서 세상을 지어내면 그것이 마크 와이저가 주장한 유비쿼터스 컴퓨팅이고[1] 윌리엄 미첼이 얘기하는 융합 공간(fusion space)[2]이다. 이 둘의 시각은 물론 다르다. 와이저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이 일을 처리하지만 컴퓨터를 의식하지는 않아야 함을 중요시한다. 길 한가운데 무거운 바위가 있으면 그냥 사람은 자기 손으로 들어 옮기면 된다. 물론 실제로는 사람의 의도를 알아챈 컴퓨터가 그 돌을 옮기는 것을 몰래 도와주지만 사람이 그걸 굳이 알 필요는 없다. 한편, 미첼은 공간과 컴퓨터와 사람이 융합됨으로써 공간이 즉흥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풍요로운 기회의 공간으로 바뀜에 주목하고 있다.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만남 김에 사업 회의를 할 수도 있고 심심하던 차에 사람들이 마침 플래시 몹을 하고 있다면 참여할 수도 있다. 물론 컴퓨터가 없어도 이런 일은 가능하지만 융합 공간에는 수많은 컴퓨터가 숨어 있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기회를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이를 발견하여 사용자에게 알려주고 도와주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어떤 일을 해내는 방법을 다룬 것인 반면에 융합 공간은 그런 일거리를 발견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 두 비전을 결합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에 잠재되어 있는 즉흥적인 상호작용의 기회를 찾아내고 그 기회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사람, 사물, 서비스를 엮어서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즉흥적 컴퓨팅이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어떻게 즉흥적 컴퓨팅을 실현할까? 실현에 필요한 요소 기술을 살펴보기에 앞서 요소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틀을 살펴보자. 즉흥적 컴퓨팅은 전형적인 응용의 구조(입력-처리-출력)보다는 자발적, 지능적 형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유비쿼터스 컴퓨팅처럼 미리 정해진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서 어느 공간의 사람, 사물, 서비스가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물, 서비스는 각자 나름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인 동작을 하고 있고 이들의 융합에 의하여 응용 프로그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율적, 지능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는 잘 알려진 여러 기법이 있다. 인공지능 분야의 GPS(General problem solver), 제어 공학에서의 제어 루프(control loop) 등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즉흥적 컴퓨팅을 나타내는 틀로 가장 적절해 보이는 것은 OODA 루프(Observe, Orient, Decide, and Act loop 관찰-판단-결심-행동 루프)이다. 이 이론은 미 공군에서 전투 작전용으로 개발된 것이지만[3]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4]하고 있다. OODA 루프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관찰 단계) 수집한 정보로부터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 단계) 상황에 맞춰 가장 적절한 행동을 선택한 뒤 (결심 단계) 결정된 행동을 실행에 옮기는 (행동 단계) 과정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 과정은 서로 되먹임(feedback)을 통해 연결되어있다.

OODA 루프의 각 단계로 나눠서 즉흥적 컴퓨팅의 요소 기술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관찰은 센서 네트워크, 사물 통신(M2M communication) 등으로부터 환경을 감지하는 것과 사회 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 사용자 프로파일(user profile) 등으로부터 사람 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감지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기존의 인공지능에서 다루었던 지식/규칙 기반 추론, 이러한 지식/규칙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온톨로지(ontology) 그리고 컴퓨터에게는 부족하기 쉬운 상식을 보충하기 위한 연구(예를 들어, ConceptNet, 데이터/웹 마이닝 등)가 포함된다. 결심 단계에서는 실행 가능한 여러 과업 중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거나 (과업 고르기 task match) 여러 과업을 결합하여 새로운 과업을 지어내는 (과업 짓기 task composition) 과정을 포함한다. 행동 단계에서는 결정된 행동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예를 들어, 네트워크, 서비스, 자원 등)를 잽싸게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요소 기술 하나 하나가 독립된 연구 분야로서 다양한 연구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 중 두 가지 근본적인 이슈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첫째 이슈는 되먹임의 모호성이다. 모든 지능적인 시스템은 판단 결과가 적절했는지를 되먹임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다. 즉흥적 컴퓨팅에서도 각 단계에서 내린 결정이 적절하였는지를 판단하여 반영하여야 하는데 사용자는 관찰-판단-결심-행동의 모든 단계를 거친 결과로서 제공된 서비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시스템이 제공한 어떤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았을 때 어느 단계부터 틀렸는지를 구분하기가 어렵고 설령 단계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 단계에 포함된 수많은 결정 중 어느 것이 틀려서 문제인지를 사용자가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알려줄 방법도 없고 설령 방법이 있어도 너무 번잡스러워 애초의 즉흥적 컴퓨팅이 달성하려는 비전 중 하나인 보이지 않는 컴퓨팅을 망치게 된다.

둘째 이슈는 과업 추상화의 불일치 문제이다. 예를 들어, 회의를 하기 위해서 탁자를 둥글게 배치하고 프로젝터를 통하여 회의자료를 보여주도록 설정하였을 때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을 싸잡아 회의 준비라고 이해하는 반면에 즉흥적 컴퓨팅 시스템도 과연 이런 낱낱의 행동을 결합해서 하나의 추상화된 행동으로 기억할 것인가? 또는 시스템이 충분히 지능화하여 그런 정도의 추상화를 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사람들이 “2011년 프로젝트 계획 회의라고 기억한다고 하면 과연 시스템도 그런 식의 이해를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해야 다음 번 프로젝트 계획 회의가 열렸을 때 시스템이 알아서 지난 회의와 비슷하게 회의실을 설정하고 필요한 자료를 미리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1] Weiser, M, Gold, R and Brown, J S., The origins of ubiquitous computing research at PARC in the late 1980s. IBM Systems Journal, 1999, Issue 4, Vol. 38, pp. 693-696.

[2] W. J. Mitchell. E-topia. MIT Press Cambridge, MA, 2000.

[3] 이 글의 논지와는 무관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OODA 루프는 한국전(6.25 전쟁)에서 소련 전투기보다 미국 전투기가 더 많은 전투에서 이긴 과정을 분석한 결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John_Boyd_%28military_strategist%29

[4] 예를 들어, 최근 몇 년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연구 주제인 인지 라디오(Cognitive radio) 기술에서도 이 루프를 확장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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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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