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11.10.10 14:35
내일 죽는다면 지금 하는 일을 하겠는가?

-- 스티브 잡스

멋진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 계발 서적도 결국 던지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한 마디로 "네 꼴리는 대로 해라"가 이 시대의 좌우명이 되었다.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다 잊어 버리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네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네 방식대로 해나가라는 얘기가 왜 21세기 초반의 좌우명이 된 것일까?

88만원 세대 또는 99% 라고 불리는 좌절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로부터 제2의 마크 주커버그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르기까지 같은 얘기가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0년 우리 사회를 보자. 대학 공부하는 오빠를 위해 허리도 펼 수 없는 먼지 구덩이에서 미싱을 밟던 그 시대 말이다. 우리에겐 뚜렷한 성공 방정식이 있었다. 공부 공부 공부.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집안에 한 사람만 나도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 김남주의 <편지> 

글줄께나 읽으면 면서기라도 할 수 있고 그러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시절. 공부를 좀 더 잘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었던 시절. 돈 없어서 대학갈 형편이 못되어도 상고 나와서 은행 다니며 잘 살 수 있던 시절. 그런 시절에는 공부 잘 하는 자식 하나를 위해 온 가족이 올인하는 것은 가장 적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람의 생명을 이어주는 한끼 식사보다 디저트로 먹는 캬라멜 마키아토가 단지 뽀대나는 매장에서 판다는 이유로 더 비싸고 기능과 재료만 본다면 "나이롱 망태기"에 지나지 않는 가방이 단지 프라다라는 이유로 엄청난 가격에 팔리는 시대 즉,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 아닌가?

우산 가게를 가보면 30년전 우산보다 더 잘 부서지는 허접한 우산 밖에 살 수 없다. 이전보다 기술이 퇴보했을리도 없고 우리의 구매력이 더 좋은 우산을 살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분명한데 좋은 우산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우산을 만드는 회사들이 의도적으로 허접한 우산만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건 범생이의 눈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이상한 세상이다. 아담스미스가 국가 부의 원천을 고민하고 리카아도가 최적의 교역 조건을 연구하고 마르크스가 잉여가치의 원천을 추적하던 시대의 눈으로 보기엔 확실히 뭔가 잘못되어 있다. 바야흐로 세상은 경제적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한 경제학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 얘기는 개 뻥이지만 한 사람의 천재가 만명의 연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건 사실이다. 전통적인 재화의 생산에서 이렇게 극적인 생산성의 차이가 생기긴 어렵지만 (만 배로 많은 젖을 짜는 소 또는 만 배로 많은 알곡이 달리는 벼) 기호의 소비 시장에서는 만배 이상 차이나는 것이 너무 나도 쉽다. (페이스북이나 트위자의 가입자 수는 유사한 비인기 서비스에 비하여 월등히 많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에 의하여 그 수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가치의 차이는 훨씬 더 크다.)

만배 억배의 돈을 버는 천재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남들이 얘기하는 길을 좇아 가서는 절대 될 수 없다. 더 정확히는 그런 일을 안다면 자기가 가지 왜 가르쳐 주겠는가? 대략의 원칙, 대략의 방향성은 얘기할 수 있어도 그 누구도 21세기의 성공 방정식은 모른다.

로또를 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번호를 자기가 지정해도 되고 랜덤으로 뽑아도 된다. (통계학과 졸업자로서 힌트를 주자면 그 둘 사이에는 당선 확률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네가 가고 싶은 길 그 어디로 가도 성공에 이른다고도 이르지 않는다고도 아무도 얘기할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에 꼰대들이 후배에게 들려 줄 얘기가 뭐겠는가? (나도 성공하는 길은 전혀 몰라서 하는 얘긴데 내가 아는 건 그 누구도 정답은 몰라 그러니) 네 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라 (라고 얘기하면 최소한 틀린 방향을 가르쳐 줬다고 욕먹지는 않겠지 그리고 폼도 나잖아)

그런데 이렇게 다들 랜덤으로 찔러 대니 결국 성공에 이른 사람도 랜덤으로 나온다. 마크 주커버그가 천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만큼 뛰어난 천재라고 해서 모두 그런 성공에 이르진 않는다. 더 정확히는 그런 천재들 중 극히 일부만이 우연히 성공에 도달한다.

주커버그 만큼 똘똘한 사람들 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 성공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꼰대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아예 천재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꼰대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몇 년간 안개속을 해매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허비해버린 세월에 한탄과 눈물을 쥐어 짤 때 꼰대들은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나도 솔직히 성공 방정식은 몰라. 그러니 네가 잘 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잘 하려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했잖아. 남들이 시킨 거 했다가 실패했어봐 (나를 욕하고 너도) 더 힘들거잖아. 그냥 해보고 싶은 걸 해봤다는 걸 위안 삼고 눈물 뚝.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 타고르

당신이 1%를 향한 도전을 두려워 않는 이건 99%에 속한 것으로 이미 판명난 이건 상관 없다. 누구도 내일은 모른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말라(는 내 말만 들어라). 세상은 랜덤이다. 너의 실패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네 맘을 좇아가지 않고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죠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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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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