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12.11.30 13:34

(글쓴이의 주: 오래 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재탕)

오늘 뉴스를 보니 교과서에 실린 진화론 관련 내용의 상당 부분이 삭제된단다. 혹시 십자군의 십자포화에 시달려서 진화론을 과학 교과서가 포기하는 것인가 화들짝 놀라 기사를 살펴보니 이미 학계에서는 폐기된 이론(발생반복설)이나 부적절한 예시로 판명난 것들(말의 진화 계통)이 여전히 교과서에 실려 있어 이들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과학계가 했어야 할 자기 정화를 외부의 힘에 떠밀려 하는 꼴은 부끄러운 일이다. 

십자군은 이러한 변화에 고무되어 진화론을 완전히 교과서에서 빼내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것이란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진화론이 틀렸다거나 하는 식의 주장은 과학에 대한 전적인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과학도 다른 모든 학문과 마찬자기로 진리를

 추구한다. 하지만 과학이 내세우는 이론 그 자체는 진리가 아니다. 어떤 과학자라도 그가 제정신을 가진 과학자라면 어떤 이론을 진리라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과학자는 모든 것을 회의하는데서 출발해서 끊임 없이 회의하는 사람들이다. 과학은 이론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종교와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근거없이 일단 어떤 이론을 믿고 계속 연구를 해 나가는 것(이런 연구의 결과물 중에서 가장 방대한 것은 바티칸의 교황청에 가면 볼 수 있는데 주제는 대략 "언제 포도주는 예수의 피로 바뀌는가?" 또는 "언제 빵이 예수의 살로 바뀌는가?" 등이다)과 모든 이론을 끊임없이 회의하면서 드러난 증거를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가는 과정 중에서 어느 것이 올바르다거나 어느 것이 진리에 먼저 도달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대략 후자가 더 유리한 듯 하며 후자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과학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겠지만 실제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여러 이론이 공존하는 것이 일상적이며 심지어는 우리가 이미 실험적으로 얻은 증거가 일부는 어떤 이론에 또 다른 일부는 다른 이론에 맞을 뿐 모든 증거를 다 만족하는 이론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도 스스로 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세운 이론 조차도 계속 회의하면서 뜯어 고쳐가는 것 그것이 과학이 되는 것이다. (과학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정통 이론이 어떻게 생성되고 교체되어 가는 지에 대하여는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몹시 재미없는 책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니 읽어 보시길.)

그렇다면 완벽하지도 않은 이론을 왜 가르치나? 왜냐하면 그것이 진리로 향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각을 해보자. 아인슈타인 덕분에 우리는 뉴턴의 물리학이 갖고 있던 문제를 많이 해결했다. 하지만, 여전히 물리 교과서는 뉴턴의 역학으로부터 시작한다. 왜냐하면 뉴턴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아인슈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질량, 가속도, 차원 등에 대한 기본 개념도 없는 사람에게 양자 역학에 끈 이론부터 가르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게다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대다수의 역학적 현상은 뉴턴의 물리학으로 충분하다. 심지어는 당신이 우주선을 쏴 올린다고 해도 뉴턴으로 충분하다. 공부하다보면 막히는 문장이 있어도 일단은 넘어가는 것이 좋은 전략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뒤를 읽다보면 앞의 얘기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뒤부터 읽으면? 뒤도 이해가 안되고 앞도 이해가 안된다. 즉, 과학적 방법론에서 진리로 나아가는 과정은 진리를 구성하는 계단을 하나 하나 밟아가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턱 없는 이론 --> 덜 턱 없는 이론 --> 그럴싸한 이론 --> 제법 그럴싸한 이론 --> ... 과 같이 그 자체는 진리가 아니지만 진리에 좀 더 가까운 이론을 따라 옮겨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진화론도 완벽한 진리가 아니고 지적설계론도 완벽한 진리는 아니니 둘 다 교과서에 나란히 실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주장이 말이 안된다는 것은 앞의 설명으로 충분하지만 혹시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굳이 덧붙인다면 이렇다. 십자군의 눈에는 세상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딱 떨어지게 나눠지겠지만 과학의 눈으로 보자면 세상의 이론은 알려진 증거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엉터리 이론으로부터 10%를 설명하는 이론, 50%를 설명하는 이론, 90%를 설명하는 이론이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 교과서에는 뭘 실어야 할 것인가? 당연히 90%를 설명하는 이론을 싣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성분이 조금이라도 없는 음식은 없으니 정크 푸드나 엄마표 한식이나 아무거나 먹자? 난 싫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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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