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얘기한다 2007.02.04 13:16

장면#1

그게 언제였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대학입시에서 동점자가 나오면 주요한 과목에서 고득점을 하는 순서로 뽑는데 국민윤리가 국어보다 우선 순위가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

장면#2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국민윤리는 확실히 짬뽕 과목이었다. 동서양의 철학부터 반공 교육까지 도무지 한 우산아래 도저히 놓일 수 없는 주제를 한 과목에서 가르친다. 도대체 전공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선생님은 그 어느 주제도 제대로 소화화지 못하신다.

장면#3

국민윤리 교과에서 배운 동서양 철학에 대한 나의 단상. 동양 철학은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개념의 나열이다. 아마 뭔가 심오한게 있는데 한자라는 장벽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서양 철학은 철학자들의 이름과 주된 주장이 나오는데 그 주된 주장이라는 너무 얇팍해서

뭐 저 딴 걸 학문이랍시고 하고 자빠졌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철학이라면 나도 철학자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장면#4

대학 가면 철학 같은 걸 제대로 배우게 될 까?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이를 이론적으로뒷받침해야 한다는 이념의 과잉으로 철학을 차근히 배울 기회가 없었다. 헤겔도 읽기 전에 맑스를 읽고 맑스 초급도 모르고 레닌을 배운다. 프루동, 트로츠키를 대충 귀동냥으로 듣는 동안 학창 시절은 끝나고 사회주의 블럭도 끝을 낸다. 그 뒤의 혼란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의 백가쟁명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마음을 다잡아 보기 위해 송두율을 읽지만 기초부족을 심각하게 느낀다. 그러고도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무릇 서평이란 무엇이더뇨?

나는 서평을 꼼꼼이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평이 책의 내용을 너무 완벽히 담아낸다면 결국 그 책을 읽는 재미를 갉아먹는 스포일러가 될 것이요 만약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책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선입견을 갖게 될 터이니 서평이 무슨 소용이랴 싶다. 하지만 대단한 독서광인 장정일의 서평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특히 그의 어눌한 말투와 내가 늘 고대하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더욱 유혹은 강하다.

장정일이 "도덕교육과 파시즘"이라는 책의 서평을 썼을 때 나는 이미 그 책에 대하여 여러 경로를 통하여 소개를 받은 상태였고 따라서 그가 서평을 썼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절대로 거의 서평은 읽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책을 샀다. 그리고 거의 다 읽어가는 지금 역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정일도 그의 서평에서 아마 이 책을 칭찬했을까? 다음에 확인해 볼 작정이다.

철학에 대하여

철학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철학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필로소피인데 학문이라는 뜻의 소피와 좋아 한다는 필이 결합하여 학문을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것. 또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아냥 거릴 때 "개똥철학"이라고 부른다는 것. 또는 학문 중의 학문이라고 불리는 철학. 뭐 이런 정도가 아닐까? 정작 나는 철학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다.

존재론과 인식론이 철학의 근본적인 주제라는 것은 철학의 기초를 배워서 알게 된 것이라 아니라 주체사상에 대하 소개 글에서 주체 사항이 철학을 근본 문제를 존재론과 인식론을 넘어서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주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리고 아주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뭐 철학에 대하여 별도로 공부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은 좋은 철학의 입문서가 된다. 뭐? 단지 철학에 대한 입문을 위해서 이 책을 봐야 된다고? 그럼 그 많은 철학 개론서들은 다 어쩌라고? 맞다. 철학에 대한 입문서를 위한다면 그런 책들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에 대한 입문을 무척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어 어차피 깊이 진도를 나가려는게 아니라면 쓸만하다. 게다가 철학 입문 뿐만 아니라 도덕 교육에 대한 좋은 얘기도 볼 수 있으니 동가홍상 아닌가? (물론, 철학에 대한 최고의 베스트 셀러인 "철학 에세이"나 송두율의 철학 입문서를 같이 봐 주면 더 좋겠다.)

도덕에 대하여

내가 딴 나라에 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만큼 도덕에 대하여 많이 얘기하는 나라가 있을까? 학교에서도 도덕을 독립된 교과목으로 가르치고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보다도 더 유교적 도덕 전통이 강하고 (아 참... 동성동본 금혼제도는 이제 폐지되었나? 아직인가?) 집안에서는 가정도덕을 밖에서는 교통도덕을 설법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하지만 신문을 펼쳐보라. 아니면 밤늦게 유흥가를 가보라. 그것마저 귀찮으면 아침에 자가용 창문에 가지런히 꽂힌 야릇한 판촉물들을 보라. 우리나라 처럼 도덕이 비참하게 땅에 떨어진 나라가 있을까? (뭐 우리랑 풍습이 다르긴 하지만 성도덕과 성산업에 관한 한 일본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 뒤지지 않는다). 입으로는 모두가 도덕을 외치지만 손발로는 아무도 도덕을 행하지 않는 나라.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일본에 출장을 가본 일이 있는가? 일본 만화나 게임 -- 그것도 야한 것들 -- 에 익숙한 남자들은 일본에 처음 출장갈 때 혹시 길에서 만난 세라복 입은 여학생이 원조 교제라도 하자고 달려 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전혀 불필요한" 걱정을 하기도 한다. 실제 일본에서 만나는 일반인들의 삶은 너무 건조해서 기름칠이라고 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절제된 삶,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 소박한 풍속이 출장간 내 눈이 비친 일본의 모습이다. (물론, 공중전화 부스마다 깔린 테레쿠라 찌라시는 예외로 하자.) 이렇게 절제된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그렇게 황당무계하게 야한 문화가 생산되는가?

(잠시 출장 기간동안에 본)일본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철저하게 욕망이 통제된 사회라는 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통제된다고 제거되지 않는다. 통제된 욕망은 분출구를 찾을 수 밖에 없고 그 분출은 통제의 강도가 강할 수록 변태적이 된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해보라. 과속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차들이 지나치게 느리게 간다. 대개 90킬로 전후. 카메라만 없으면 120, 130은 기본이다. 카메라를 더 촘촘히 설치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카메라가 없는 구간에서는 만회하기 위해서 140, 150으로 달리게 될 것이다. 통제가 강해질 수록 욕망의 분출은 강해진다.

하지만, 욕망이 없는 인간은 한낱 허깨비요 통제가 없는 인간은 망나니에 지나지 않을터. 그렇다면 묘수는 무엇인가? 어떻게 통제와 욕망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문제는 통제의 주체에 있다. 그것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통제일 때 즉 자신의 욕망을 그 지평 너머로 확대함으로써 우리 전체 온 생명의 욕망을 관철시키는 차원으로 사고함으로써 개인의 욕망을 저절로 통제할 수 있도록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조화를 얻게 되는 것이다.

대충 감이 오는가? 이러한 얘기를 진짜 고수의 입을 통하여 제대로 설명을 듣고 싶은가? 그럼 책 사서 봐라. (참고로 이 서평은 책의 내용을 거의 인용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요약도 아니다. 그러니까 책을 통해 내가 얻은 인상을 나의 극히 개인적인 상념의 공간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이 내용이 맘에 안든다고 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말기 바란다. 그건 순전히 나의 잘못일 뿐이니깐 말이다.)

글 읽는 재미에 대하여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글이 있다. 어떤 글을 길고 어떤 글은 짧다. 어떤 글은 몰캉하고 어떤 글을 서걱서걱하다. 어떤 글은 말초적이고 어떤 글은 심연의 깊은 곳에 침투한다.

말초적이고 짧은 호흡의 글이 만연하는 현 시대에 이 책을 읽는 것은 흡사 해외 전지훈련과도 같다. 좀 어색하고 익숙지 않지만 다양한 호흡의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균형된 시각을 위해 좋은 일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정운영의 글 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도정일의 글 처럼 현학적이지 않고 에코의 글 처럼 말을 향연을 펼쳐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최인훈의 <화두> 처럼 시종일관 묵직하면서든 한 문장 한 문장은 오히려 경쾌하게 독자의 무지를 공격한다. 조 프레이저급의 흐름에 알리같은 공격이라고나 할까.

글을 닫으며

그렇다. 이 책 솔직히 재미없을 수 있다. (내가 취향이 특이한 지 몰라도 책이나 영화 추천했다가 욕을 곧잘 먹는다.) 하지만 좋은 책이다. 나의 서평이 의심스러운가? 그럼 장정일의 서평을 찾아서 확인해보라. 틀림없이 장정일 특유의 미사여구로 칭찬을 했을 책이다. (아님 말구.)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신묘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