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07.05.02 12:04

지난 글의 말미에서 썼듯이 자유에 대한 단상은 그만 쓰려고 했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말에 애기들이랑 놀다가 갑자기 하나가 떠 올랐다. 이 글은 자유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한 이전 글의 번외편이다.

자유에 대한 한 공학도의 단상 본편은 여기를 클릭 --> http://newcat.tistory.com/53

내가 어렸을 적에는 티비에서 외화 드라마 (실은 대부분 미국 드라마. 그러고 보니 미드 열풍은 그 때 이미 시작된 건가?) 를 무척 많이 해줬고 인기도 높았다. "월튼네 사람들"과 같은 따뜻한 가족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SF스런 활극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미묘한 감정을 일으킨 미드가 있었으니.... "원더 우먼"이다. 그 미묘한 감정은 뭐 별로 복잡할 것 없이 주인공이 여자고 그것도 무지 예쁜 여자라는 점이다. 예쁜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미드로는 "소머즈"가 있었지만 원더 우먼은 소머즈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1. 노출이 심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넷을 뒤져 여렵잖게 원더 우먼의 사진을 구했다. 과격한 노출아닌가? 가운데 부분만을 가리고 어깨와 허벅지를 과감하게 드러낸 모습이다. 당시로서 이런 정도의 노출은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때나 볼 수 있는 것이지 대개의 탤런트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의 노출은 아니기 때문에 남녀노소 즐기는 드라마에서 이 정도의 노출을 본다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었다.

유교적 전통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뿌리깊던 그 시절에 원더 우먼은 야릇한 환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2. 초과학적 능력을 가졌다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가 과학의 힘을 빌어 탄생한 사이보그인 반면에 원더 우먼은 그냥 특이한 능력을 원래부터 가지고 있다.

사진에도 나오는 저 끈은 그 끈에 묶인 사람이 무조건 진실을 자백을 하도록 하는 능력을 가졌다. 따라서, "적들" 처럼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잔인하게 고문을 한다거나 할 필요가 없다. 즉, 원더우먼은 저 끈 덕분에 "스타일 구기지 않고" 필요한 일을 척척해낼 수 있다. 또한 손목에 찬 팔찌를 이용해서 날아오는 총알은 다 튕겨 낼 수 있다.

스타워즈의 첫 장면에서 그 얘기가 머나먼 우주 저 너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전제를 한 것 처럼 원더 우먼도 다른 세계 (아마조네즈???) 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의 과학적 한계에 구애됨이 없이 능력을 무한정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실은 적을 제압하는 장면은 통괘하다기 보다는 싱겁다는 느낌이 든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특징을 더 들 수 있겠지만 이 글의 테마가 "자유"이니 만큼 자유 얘기를 좀 해보자. 다음은 원더 우먼의 주제가 가사다.

     날으는 날으는 원더우먼 원더우먼
     땅에서 솟아났나 원더우먼
     하늘에서 내려왔나 원더우먼
     번개같이 나타나서 자유세계 빛내주는
     힘센 미녀 원더우먼 정의의 심부름꾼
     아~ 아~ 신비한 원더우먼

여기서 오늘의 주제가 나온다. 원더 우먼이 하고 있는 일은 "자유세계를 빛내주는" 일이다. 왜 원더 우먼은 자유세계를 위해서 적성국가 (실은 쏘련) 의 온갖 음모를 쳐부수게 되었을까?

사실 많은 드라마, 영화, 만화에서 왜 주인공 편은 착한 편이고 주인공이 이기는 것을 시청자가 응원해야 하는 가 하는 설명은 대개 생략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나중에 영화화 되기도 한) 추억의 라디오 드라마 "마루치 아라치"에서도 파란해골 13호가 나쁜 놈이고 이를 물리쳐야 하는 것이 주인공의 운명이지만 내 기억에는 파란해골 13호가 구체적으로 왜 나쁜 놈인지는 설명이 없다. 파란해골 13호의 목소리가 너무 음산하기도 하고 그 부하인 팔라팔라 사령관도의 목소리는 너무 표독스러워 밉기는 하지만 그건 설정일 뿐이고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주인공 마루치와 아라치가 무사히 파란해골 13호를 무찔러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원더 우먼에서는 그녀가 왜 자유세계를 돕는지 이유가 분명하다. (내 기억에 의하면) 미군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우연한 사고로 원더 우먼이 있는 세계로 가게 되고 그곳의 공주였던 원더 우먼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둘은 같이 미국으로 돌아와서 쏘련의 나쁜놈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원더 우먼이 미국을 돕는 것은 미국이 잘나서도 아니고 세계의 수호자여서도 아니고 그냥 자기 남친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실로 솔직한 고백 아닌가?

우리의 국가대표가 딴 나라와 경기를 펼치면 종목과 무관하게 광적으로 응원하는 우리의 모습이 원더 우먼 속에도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뒤집어 놓고 보면 조국이라는 이름을 또는 민족이라는 이름을 비교의 최상급자리에 놓는 순간 모든 이성적인 판단들은 스러져가는 것 아닌가? 우리의 원더 우먼이 지키는 이 세계를 우리는 자유세계라고 부르지만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지적한대로 적성국가도 실은 자유세계였으며 우리가 그 어느쪽을 지켜내야할 그 무엇으로 승격시키는 순간 그 외의 모든 가치를 압살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자유라는 이름의 양날의 검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사족)

주제가를 애들한테 알려줬더니 제맘대로 번역해서 부르는데....

     날으는 날으는 의아한 여자 의아한 여자
     땅에서 솟아났나 의아한 여자
     하늘에서 내려왔나 의아한 여자
     번개같이 나타나서 자유세계 빛내주는
     힘센 미녀 의아한 여자 정의의 심부름꾼
     아~ 아~ 신비한 의아한 여자

그래 맞다. 괜히 남의 세계에 와서 일방적으로 한 나라만 도와주는 여자의 행동이 나는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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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