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에 해당되는 글 95건

  1. 2013.06.22 :: 마음, 하늘 그리고 거인
  2. 2013.01.14 :: 쟈베르 vs. 아아론
  3. 2012.04.25 :: 어느 회의주의자의 변절
  4. 2011.11.29 :: 사람들은 왜 월가를 점령했나요?
  5. 2011.10.12 :: 인터넷이 이룬 놀라운 발전을 실세계에 적용하면 안되나?
  6. 2011.10.10 :: 죽은 범생이의 사회
  7. 2011.07.29 :: 인간 2.0 또는 stage real
  8. 2011.07.29 :: 기술 표준에 대한 몇 가지 기본 개념과 쟁점
  9. 2010.08.23 :: 아들의 독후감
  10. 2010.03.03 :: 칠레 지진 -- 재건을 도웁시다
  11. 2009.12.24 :: 꽃이 피게 하라 - '서울버스' 앱 사태를 회고한다
  12. 2009.07.30 :: 퍼온 글: 공돌이가 생각하는 대중이란...
  13. 2009.06.11 :: 유인촌 장관님의 전원일기
  14. 2009.06.10 :: 블로거 시국선언문 (2)
  15. 2009.05.28 :: 내 아이에게 들려주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16. 2009.04.29 :: 면바지와 욕설
  17. 2009.04.21 ::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예의 없는 예의론
  18. 2009.04.01 :: 청와대 행정관이 성접대 받은 것만 문제냐?
  19. 2009.02.18 :: 학업성취도 평과 결과는 나왔는데... 그래서 우짤낀데?
  20. 2009.01.09 :: 미네르바의 구속에 부쳐 -- 사실과 허위
  21. 2008.12.27 :: 정확히 반대로 가는 경제 정책 (2)
  22. 2008.12.17 :: PD 수첩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편
  23. 2008.11.19 :: 문근영 악플 논란 -- 불길한 상상
  24. 2008.11.18 :: 퍼온 글 -- 이준구 교수님의 "슬픈 종부세"
  25. 2008.11.17 :: 한나라당의 천하삼분지계 -- 수도권 규제완화와 포항 떡주기
  26. 2008.11.12 :: 종부세 vs. 소득세 / 대학자율 vs. 3불 정책 -- 명분과 실질을 생각하자 (1)
  27. 2008.10.23 :: 대불공단에 뽑은 전봇대 어디로 갔나 했더니
  28. 2008.10.21 :: 짜증나는 정치권의 쌀 직불금 공방
  29. 2008.10.11 :: 삼성 불법승계 무죄 -- 재판부의 창의력에 고개를 숙인다
  30. 2008.10.10 :: 잃어버린 10년 타령하더니 10년전 IMF 사태로 돌아가는거냐?
세상을 얘기한다 2013.06.22 10:21

현대인의 공허를 틈타 소위 마음 수련을 한다는 곳이 성업을 하고 있다. 중세의 교회나 근대의 합리를 넘어선 자리에 사이비 "착각 도인"들이 득시글거린다. 의외로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다. 하긴 교회나 절에서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면 신도들이 이런 사이비에 현혹되도록 오히려 장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심하다.

교회, 절, 마음수련의 공통점은? 남의 힘에 기대어 조직을 통하여 구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교주의 말에 절대 복종하여 시키는 대로 하면 해방되어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니 조직을 키우고 조직에 복종하며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록 진리에 가까와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미친...

크리슈나무르티가 "진리는 길없는 땅"(truth is a pathless land) 라고 한 것이나 불가에서 "돈오"라고 하는 것 처럼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논리이긴 하지만 가르침들에 따르면) 영적인 진리라는 것은 현실에서의 수행을 통하여 선형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맞는 길인지 누가 누구 보다 더 멀리 갔는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그러니 사범이니 사도니 선사니 제사장이니 하는 뱃지가 다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구름 너머 별에 다다르고자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정 구름을 너머서는 방법은 스스로 커서 거인이 되는 것입니다. 설령 누군가의 어깨에 올라서서 또는 풍선을 붙들고 구름을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차하는 순간 땅으로 떨어져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니까요.

교회에 가지 마십시요. 스님 따라다니지 마십시요. 이런 저런 마음수련 모임에 가지 마십시요. 차라리 집 근처 개울가로 가서 내가 곧 꽃이고 꽃이고 곧 풀이며 풀이 곧 공기이며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우주의 자연스런 "흐름"이라는 것을 느끼십시오. 감성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분들은 세이건, 파인만, 도킨스의 과학책을 읽으십시오. 당신이 평생 알아 왔던 어떤 종교보다 과학이 더 영적으로 충만되어 있음을 알게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과학만능에 빠져 사이언톨로지로 넘어가지는 마십시오. 신비주의적으로건 체계적/과학적으로건 영적인 단계를 선형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사이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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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3.01.14 20:34

#1 자베르 

지난 토요일에는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았다. 오래전 런던에서 뮤지컬로 보았을 때 비록 대사는 극히 일부만 알아들었지만 감동이 적지 않았는데 이번에 영화로 보니 자막 덕분인지 역시나 감동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 눈물을 쏙 뺀 장면은 이것이다.

봉기가 진압된 후 자베르는 혁명군의 시신을 하나 훑어본다. 아마 평생을 쫓아다녔던 장발장을 찾으려했던 것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본 것은 자신을 죽을 위험에 빠뜨렸던 꼬마 가브로쉬의 시신이다. 자베르는 자기 가슴에 달린 훈장을 떼내어 가브로쉬의 가슴에 놓는다.

정태춘은 노래했다.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 [아! 5.18]

오직 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일체의 탈법을 처단하는데 앞장섰던 자베르의 신념에 갈등의 크레바스가 생겨나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빅토르 위고는 지독한 작가다. 어지간한 작가였다면 굳이 자베르를 투신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법이라는 어중간한 타협도 있을 텐데 말이다. 하긴, 인간의 모습을 한 법, 인간의 모습을 한 자유주의, 인간의 모습을 한 자본이란 도무지 어떠한 필력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허깨비라는 것을 위고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일게다.

#2 아아론 

(모르는 분들을 위한 상황 요약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 - 아아론은 젊은 천재 해커로서 자유로운 정보 유통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많은 양의 학술 논문을 공개해버린 일로 고소되어 수조원의 배상금과 최장 50년형의 위협을 받던 중 자살했다.)

그들: 아아론의 행동이 합법인가? 

나: 아니다. 

그들: 그럼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나: 뭘 위해서?

우리는 종종 이 질문을 잊는다. 뭘 위해서? 그래 아아론을 수십년간 감옥에 처넣고 농성하는 쌍용차 노조원들을 토끼 사냥 하듯 토벌하고 굳이 철거가 급하지도 않으면서 남일당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게 뭔데?

우리는 이렇게 법을 잘 지키는 나라라는 걸 보여줄려구?

법 좋아한다. 

수십 수백조 재산을 세금 빼먹고 상속해도 편법이지 불법은 아니라는 그 법? 수 십조의 돈을 강바닥에 퍼 부어도 아무런 제재도 항거도 할 수 없는 그 법? 내부 고발자가 철저히 외면 당하고 차별을 당해도 해고 무효 소송을 이겨도 막상 복직은 안시켜도 그만인 그 법?

도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법들은 지키자는 것이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3 허깨비

그래 원래 그런거다. 제대로 된 법, 사랑을 담은 법 그런 건 없는 거다. 위고가 어슬픈 타협책을 자베르에게 주지 않은 것은 그가 냉혈한이어서가 아니라 냉철한 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법에게 인간의 심장을 바라지 마라. 법대로 해서 정의를 세우리라 헛소리 하지 마라. 그런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오직 권력만이 정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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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2.04.25 11:14
세상은 항상 둘로 나눌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람을 나누는 방법도 가지가지지만 회의주의자와 낙관주의자로 나눠볼 수 있다.

회사에서 회의주의는 금기다. 그런 점에서 나같은 근본적 회의주의자는 회사 직원으로서는 빵점이다. 회사에서 회의에 들어가보면 늘 낙관주의자 넘쳐난다. 안되는게 어딨냐. 끝까지 되도록 만들어라. 그런데 막상 쫄다구끼리 모여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회의주의가 팽배하다.

심지어는 서점가도 한 때는 (지금도?) 낙관주의로 넘쳤다. 예컨대, 씨크릿 류의 주장이 여기에 속한다. 될 것이라는 굳게 믿으면 된단다. 아멘.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 하지만 이 말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예를 들어, "굳게 믿어도 안되는 일이 있다"고 굳게 믿으면 그건 이뤄지나 안 이뤄지나? 이뤄졌다는 것과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가능한가? 죽은 괴델을 살려내야 되는건가?

끝까지 노력해서 달성하는 것은 인생의 목표라던가 뭐 그런 것을 위해서라면 좋은 자세다. 그런 것이라면 나도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고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일에서 낙관주의란 무엇인가? 잘못된 계획을 밀어붙이면 안 될일이 되나? 되긴 되겠지 언젠가. 하지만 차라리 물러서서 계획을 수정해서 다시 시작하거나 또는 안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Plan B를 준비한 것 보다 좋다고 할 수 있나? 하긴 그런 걸 생각하면 낙관주의자가 아니겠지.

그런데 재밌는 것은 회사에서는 직위가 위로 올라갈 수록 낙관주의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최소한 두 가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1. 적자생존. 낙관주의자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좋은 형질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낙관적으로 뚫고 나가기 때문에 더 잘 버틴다.

2. 롤플레이. 원래 아랫사람의 역할은 회의주의 윗사람의 역할은 낙관주의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자기도 근거는 없지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밀어부치기 마련이고 막상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안되었을 때의 부담을 생각해야 되니 최대한 회의주의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겠습니만..."

나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부서원들을 데리고 회의를 하다보면 제일 낙관적인 내가 상사와 얘기할 때는 거의 예외없이 회의주의로 빠진다. 

그런데 높은 분들은 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그러니까 높은 분들의 눈에 들고 싶으면 나도 전자를 "믿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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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1.11.29 10:24
지난 주말 밥상머리에서 수능을 마치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던 딸이 던진 질문이다. 실은 나도 생각 안 해봤다. 으음... 월가의 금융자본가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버니까 그런가? 그냥 샘나서? 남이야 돈을 벌든 말든 웬 난데없는 열폭?

대략 5초간 대답을 못하고 버벅대다가 역시나 마르크스를 끌어들여 설명을 해줬다. 역시 마르크스의 설명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어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딱 떨어진다는 점은 맘에 든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쌀 농사를 지었어. 자기 논에서 나온 쌀 열 가마니는 모두 그 농부의 소유가 되는거지. 그럼 그 쌀은 어디서 온 건가? 그 농부의 노동에서 온 거야. 물론, 따사로운 햇볕이나 달콤한 비나 비옥한 땅 따윈 그냥 공짜로 주어진거라고 보자구. 생태근본주의로 빠지면 설명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자 이번엔 그 논이 농부의 것이 아니라 땅 주인의 것이라고 해보자고. 그럼 쌀의 일부를 소작료로 걷어가지. 그냥 1할을 가져간다고 하자고. 한 가마니는 땅 주인 주고 아홉 가마니는 농부가 갖는거야. 지주가 단지 땅을 빌려준 것만 가지고 일할 씩이나 가져 가는 것이 도덕적이냐 뭐 그런 질문은 하지마. 그게 핵심이 아니니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분배의 비율과는 무관하게 생산된 쌀은 여전히 열 가마니 즉, 그 농부가 생산할 수 있는 총량 그대로라는 점이야.

갑자기 현대 사회로 와 보자고. 다양한 산업에서 다양한 재화를 만들어 내지만 그 본질은 똑같아. 노동자들의 총 생산량을 이렇게 저렇게 나누는거라고. 예를 들어, 직접세니 간접세니 부자감세니 징벌적 세금이니 하는 다양한 세금 정책이나 주식이니 선물이니 파생상품이니 하는 다양한 금융 노름은 이 총 생산과는 무관해. 단지 이 총 생산을 어떻게 사회가 나눠 먹느냐 하는 방법의 다양한 형태일 뿐이야.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경제의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이 뭐지? 금융이야. 금융은 본질적으로 실체를 다루는 것이 아냐. 온라인 송금을 보라구. 수천 수억을 클릭 몇 번으로 간단히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돈이 "실제로" 이동하지는 않기 때문이야. 게다가 머리 좋은 금융인들이...

"응 맞어. 아빠가 대학원을 들어갈 때쯤 머리 좋은 애들은 다 금융공학이란 걸 했어. 돈 놀이를 아주 아주 치밀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건가봐. 아빠도 그 이상은 몰라."

"아빠는 왜 그거 안했어?"

"응 그거? 수학 잘해야돼."

"아 그렇구나." (아 바로 설득이 되었단 말인가 ㅠㅠ)

다시... 금융인들이 여러가지 재밌는 기법을 찾아 냈어. 예를 들어, 내가 1억원의 종잣돈을 갖고 은행을 세웠다고 하자고. 아니면 예금으로 1억이 들어왔다고 해도 되고. 그럼 나는 이 돈을 굴려서 이익을 만들어야 되잖아. 그래서 대출을 해주고 대출 이자와 예금 이자의 차익을 먹는건 알지?

그래서 1억을 대출을 해줬어. 그럼 은행에는 뭐가 있지? 1억원의 예금이 있으니 돈을 내줘야 한다는 의무(즉, 채무)를 기록한 종이 한 장과 1억을 대출 해줬으니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권리(즉, 채권)를 기록한 종이 한 장이 있는거지. 그래서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받아 예금 이자 내 주고 차액을 먹고 살았어.

그런데 아 이게 너무 심심한거야. 그래서 "깡"을 하기 시작한거야. 그러니까 채권을 기록한 종이 즉, 돈을 받을 권리를 딴 사람에게 파는거야. 예를 들어, 좀 싸게 (혹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만큼 깎아주는거지) 9천만원에 팔아. 그럼 다시 은행에 현금 9천만원이 생기니까 9천만원을 대출해줄 수 있고 이걸 계속 뺑뺑이를 돌면 원래 은행이 가진 돈의 수십배를 대출할 수 있게 되는거야.

뭐 이런 것 말고도 선물이라고 해서 미래의 물건을 미리 땡겨 와서 사고 팔기도 하고 별 희한한 것을 다 거래 가능한 금융 상품으로 만들어서 사고 판다고 하더군.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환율의 빈틈을 노려서 전세계를 뱅뱅 돌아다니며 외환 거래를 하기도 하고 별 짓을 다 해. 하루에 이런 식으로 금융 거래를 통해 전세계를 도는 돈이 1년간 생산하는 총 재화보다 많다던가 뭐 어쨌든 엄청 크다더라.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는 모르고 오늘 얘기에서는 몰라도 되니까 일단 넘어가.

여기서 핵심은 금융은 실제로 재료를 집어 넣어서 사람이 노동을 해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의 가상 거래를 통해서 엄청나게 거래량을 늘릴 수 있고 그 결과 전체 산업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되었어. 그런데 각 산업이 비슷한 수익을 낸다고 생각해보자고. 그럼 금융의 비중이 거졌으니 금융쪽으로 수익이 몰려가게 되는거지.

그   런   데

맨 처음에 살펴 보았듯이 재화는 실제 노동을 통해서만 생산이 되고 그 나머지는 다 이걸 분배하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라구. 그러니 금융산업이 늘어나서 골드만삭스니 씨티그룹이니 하는 회사의 CEO가 엄청난 월급을 받아갈 때 그 돈은 실은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기 보다는 총 생산된 재화의 분배 과정에서 자기들 몫을 더 키운 거라고. 즉, 규모가 커지 금융 덕분에 쌀을 스무 가마니 생산하게 되어 골드만삭스가 열가마니 열다섯가마니를 가져 가는게 아니고 열 가마니 중에서 아홉가마를 가져가는거라고. 그럼 농부는 겨우 한 가마니를 가져 가는거야.

그래서 중산층이 몰락한다는 얘기가 나오는거야. 틀림없이 이전 처럼 일하고 있는데 틀림없이 이전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아 졌는데도 중산층이 가져가는 몫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그건 근본적으로 터무니 없이 비대해진 금융산업 때문이라구. 그러니 99%의 사람들이 월가를 점령하고 그 난리를 친거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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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1.10.12 17:06
-- 사랑하고 존경하는 논객 진중권의 평론 절필 선언에 부쳐 --


1. 문제 풀이 이론으로 생각해보는 실세계

곽교육감의 구속을 둘러싸고 진보 논객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패싸움이 도를 넘었다. 무척 언짢게도 이런 식의 분열상은 전혀 낯설지 않다. 문성근이 백만민란을 들고 나왔을 때도 더 거슬러가서는 민노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올 때도 좀 더 가면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그랬다. 아마 더 거슬러 가겠지.

거 참 머리에 든게 많아서들 그런지 말도 많고 들어보면 이쪽 얘기도 맞고 저쪽 얘기도 맞다. 그래서 사지선다형 교육을 통해 정답은 하나 뿐이라고 배운 무식한 공돌이는 정신이 사납고 친한 벗들이 서로 다른 진영에 있으니 맘이 아프다.

작년에 크게 유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서 뭘 느꼈는가? 올바르다는거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다. 예컨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고장난 버스를 세우기 위해 육교 난간에 기댄 (척 보기에도 어차피 몇년 내로 성인병으로 죽을 것 같은) 뚱땡이를 밀어 떨어뜨려야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식의 질문 말이다.

문제 풀이 이론을 빌려서 생각해보면, 공간에 온갖 답이 둥둥 떠 있을 때 정답과 오답을 하나의 선(또는 평면)으로 구분할 수 있을 때 선형적으로 구분된다고(linearly separable) 부르는데 이런 건 무척 쉬운 문제에 해당한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도구를 사용해서도 쉽게 풀 수 있다. 그런데 세상사에 그런 문제는 거의 없다. 어딘가 선을 그으면 그 선 안쪽에도 오답은 있고 (즉, 내 논리에도 허점은 반드시 있다 -- 거짓 주장의 오류라고 부르자. 귀무가설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통계학의 2종 오류와 비슷하다) 선 너머에도 정답은 있기 (즉, 상대의 논리가 다 틀린 건 아니다 -- 거짓 무시의 오류라고 부르자. 귀무가설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통계학의 1종 오류와 비슷하다) 마련이다.

거짓 주장의 오류를 줄이기 위하여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는 선을 자꾸 당기다 보면 내 주장의 상당 부분도 선 너머 오답의 영역으로 가게 되어 (속으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부정해야 하는 자기 부정의 사태에 빠지게 된다. 지나친 독선으로 흐르다 종국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단순화 하자면 왕년의 PD파 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거짓 무시의 오류를 줄이기 위하여 선을 자꾸 밀다 보면 (속으로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원칙이 무너져서 "뭐 좋은게 좋은거지" "생각은 틀렸지만 도움이 되는 면이 있으니 껴안고 가자"는 식이 되어 버린다. 결국 피아 구분은 없어지고 "친하면 우리 편 안 친하면 나쁜 편" 또는 "품성이 좋으면 우리 편 포악하면 나쁜 편"으로 구분하는 유아적 세계관에 빠진다. (왕년의 주사파에 대한 내 기억은 딱 이런 사람들이다)

2. 인터넷의 성공에서 뭘 배울 것인가?

2.1 개미 허리와 미인 대회

이때까지 발명된 모든 네트워크 기술을 다 제압하고 인터넷이 당당히 최강의 전지구 네트워크가 된 것에는 아주 분명하고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인터넷 구조에서 가장 결정적인 원리는 "모든 것은 IP를 통해서" ("Everything over IP, and IP over everything")라는 말로 요약된다. 

즉, IP계층 보다 높은 모든 계층은 통신을 위해서 IP 만을 이용하고 IP 계층은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모든 매체를 일관성 있게 지원한다. 따라서, 다양한 응용 프로토콜이 IP 계층 위에서 공존할 수 있고 다양한 매체(광 케이블, 구리 케이블, 위성 통신 등)를 뒤섞어서 쓸 수 있다. 그래서, 위와 아래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한 가운데는 단 하나의 프로토콜만 허용하는 구조 즉, 모래시계 구조가 된다. (서양 사람들 눈에는 모래시계가 좋은 비유인지 몰라도 나는 개미 허리라고 부르는게 입에 더 착착 붙는다.)

모래시계 구조는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이 온갖 응용 서비스가 경쟁하며 생로병사의 생태계를 이어가게 만드는 원리가 된다. 새로운 응용 서비스를 인터넷에 추가할 때 그것이 IP를 사용하는 한 그 어느 누구의 승인도 받을 필요가 없이 바로 동작한다. 물론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되겠지만. 그래서 비슷한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미인대회를 거쳐서 한 두 서비스가 결국 엄청난 신데렐라가 된다. 즉, 거의 완벽한 시장 경쟁을 허용하는 시스템이다.

2.2 꽃이 피게 하라

하지만 이것만으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인터넷의 힘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위의 원리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다양한 응용 서비스일 뿐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이들 서비스가 따로 노는 것 보다 멋지게 결합될 수 있다면 단순히 각각의 서비스를 합친 것 보다 더 멋진 서비스로 변신할 수 있다. 이를 소프트웨어 공학을 하는 사람들은 소프트웨어 지향 구조(SOA, Software Oriented Architecture)라고 부르고 웹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매시업(mashup)이라고 부르고 사업체들은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라고 부른다.

구글 맵을 이용하여 맛집 소개한 블로그 글이 트랙백이 되고 트위터로 전송되고 클릭하면 글과 연결된 지도를 열어볼 수 있는 뭐 그런 것 말이다. 요즘 어지간히 잘 나가는 서비스는 솔직히 서로 너무 나도 쉽게 넘나들 수 있다. 개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자기 서비스를 외부로 개방하여 다양한 서비스가 더 연결될 수 있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힘 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없는 팜빌 또는 팜빌 없는 페이스북을 상상해보라. (관련하여 읽을 만한 제 글 -> 꽃이 피게 하라 - '서울버스' 앱 사태를 회고한다)

2.3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은 전화기가 널리 보급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벨은 아마 기존의 전보보다 좀 더 좋은 통신 수단으로 전화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줌마들이 전화기를 통해 수다를 떨기 시작하자 전화기는 문명화된 세상의 지표가 되었다. 사람 그리고 수다 혹은 펌질이 인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적이다. 날이면 날마다 빨래터에서 교환되는 수다가 아니라면 그 팍팍한 농경 사회를 우리 선조들이 버텨낼 수 있었을까?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획득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을 향해 정보를 전송한다. 획득에 사용한 응용 서비스와 전송에 사용한 응용 서비스가 같을 필요는 없다. "내가 디씨가서 (또는 뽐뿌가서) 본 건데 말야..." 라는 트윗은 다들 익숙하지 않은가? 사회망을 통한 정보의 재전송은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지는데 그 이유는...

사회에서의 신원은 다차원적인 특성이 있다 즉, 개인은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에 걸쳐 있으니 사회적 거리에서는 삼각부등식이 깨지는 것이다.

Social identity, therefore, exhibits a multidimensioned nature - individuals spanning different social contexts - that explains the violation of the triangular inequality in social distance.

Duncan Watts <Six Degrees: The Science of a Connected Age> pp. 151

삼각부등식이 깨지기 때문이다. 삼각부등식이란 한 변이 나머지 두 변의 길이를 합친 것 보다 더 길 수는 없다는 수학의 원리이다. 서울 - 부산의 직선 거리는 서울 - 대전의 직선 거리 더하기 대전 - 부산의 직선 거리보다 더 길 수는 없다는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런 수학과는 달리 사회에서는 나하고 을순이의 사회적 거리가 나하고 갑돌이와 사회적 거리 더하기 갑돌이와 을순이의 사회적 거리보다 더 멀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나하고 을순이는 쌩판 모르는 사람인데 나와 갑돌이도 친구고 갑돌이와 을순이도 친구다. 따라서, 내가 날린 트윗이 쌩판 모르는 사람에게 한두 다리 건너서 전달이 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실제 사회 (우물가, 빨래터, 목욕탕, 공동화장실, 회사 사무실 등) 를 통해 매개되었지만 인터넷 위의 멋진 응용 서비스 덕분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수다를 떨 수 있게 됨으로써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진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3. 그래서 어쩌라구
 
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논쟁보다 더 살벌한 것이 인터넷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사업체들 간의 응용 서비스 전쟁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응용 서비스는 "자기가 옳고 다른 서비스는 틀렸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미인 컨테스트를 펼치며 공존한다. 선택은 소비자가 한다. 논쟁도 마찬가지다. 일차적으로 논쟁은 논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이 사회적 함의를 갖는 것은 그 논쟁을 소비한 사람들의 태도에 달렸다. 상대방을 100% 설득할 수도 없고 모든 소비자를 다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없는데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설득될 때까지 밀어부치는 저돌성은 피곤하다.

실은 더 문제는 논쟁 소비자들이다. 인터넷에서는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자유로이 결합해서 쓸 수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아마존의 킨들앱을 깔아 책을 읽고 팟스캐트 서비스를 받지 않는가? 각 서비스 제공자는 다 잘하는 분야도 있고 못하는 분야도 있다. 그냥 그 순간 가장 맘에 드는 것을 골라서 섞어서 잘 쓰면 된다. 그런 것을 한 제공자가 주는 서비스만 소비하면서 "왜 안드로이드폰에서는 팟캐스트가 안돼?"라는 식의 미련한 불평을 하면 자기만 고달프다. 마찬가지다. 어떤 논객이 어떤 이슈에서는 좋은 얘기를 했지만 딴 이슈에서는 바보가 될 수 있다. 그런 걸 가지고 엉터리 얘기까지 수용할 필요도 좋은 얘기까지 버릴 필요도 없다. 그냥 각 논객들이 가진 좋은 주장을 걸러서 들으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라는 건 물론 아니다. 소비자의 올바른 잣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논쟁이 논객들의 자기만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논쟁은 시중의 갑남 을녀를 통해서 흘러가면서 사람들을 바꾸고 사람들을 결집시킨다. 그러한 변화와 결집은 개개인의 논객이 출발점은 될 수 있어도 끌고 나갈 수는 없다. 월가를 점령하자고 나선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예견했을까? 또는 그 사람들이 정말 정확한 노선을 제시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되었을까? 절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멍청해 보이지만 인류 전체로는 실로 찬란한 문명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다. 사람을 믿어라. 그리고 그저 사람들의 수다가 흐르게 하라. 논쟁은 거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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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1.10.10 14:35
내일 죽는다면 지금 하는 일을 하겠는가?

-- 스티브 잡스

멋진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 계발 서적도 결국 던지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한 마디로 "네 꼴리는 대로 해라"가 이 시대의 좌우명이 되었다.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다 잊어 버리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네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네 방식대로 해나가라는 얘기가 왜 21세기 초반의 좌우명이 된 것일까?

88만원 세대 또는 99% 라고 불리는 좌절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로부터 제2의 마크 주커버그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르기까지 같은 얘기가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0년 우리 사회를 보자. 대학 공부하는 오빠를 위해 허리도 펼 수 없는 먼지 구덩이에서 미싱을 밟던 그 시대 말이다. 우리에겐 뚜렷한 성공 방정식이 있었다. 공부 공부 공부.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집안에 한 사람만 나도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 김남주의 <편지> 

글줄께나 읽으면 면서기라도 할 수 있고 그러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시절. 공부를 좀 더 잘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었던 시절. 돈 없어서 대학갈 형편이 못되어도 상고 나와서 은행 다니며 잘 살 수 있던 시절. 그런 시절에는 공부 잘 하는 자식 하나를 위해 온 가족이 올인하는 것은 가장 적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람의 생명을 이어주는 한끼 식사보다 디저트로 먹는 캬라멜 마키아토가 단지 뽀대나는 매장에서 판다는 이유로 더 비싸고 기능과 재료만 본다면 "나이롱 망태기"에 지나지 않는 가방이 단지 프라다라는 이유로 엄청난 가격에 팔리는 시대 즉,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 아닌가?

우산 가게를 가보면 30년전 우산보다 더 잘 부서지는 허접한 우산 밖에 살 수 없다. 이전보다 기술이 퇴보했을리도 없고 우리의 구매력이 더 좋은 우산을 살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분명한데 좋은 우산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우산을 만드는 회사들이 의도적으로 허접한 우산만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건 범생이의 눈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이상한 세상이다. 아담스미스가 국가 부의 원천을 고민하고 리카아도가 최적의 교역 조건을 연구하고 마르크스가 잉여가치의 원천을 추적하던 시대의 눈으로 보기엔 확실히 뭔가 잘못되어 있다. 바야흐로 세상은 경제적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한 경제학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 얘기는 개 뻥이지만 한 사람의 천재가 만명의 연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건 사실이다. 전통적인 재화의 생산에서 이렇게 극적인 생산성의 차이가 생기긴 어렵지만 (만 배로 많은 젖을 짜는 소 또는 만 배로 많은 알곡이 달리는 벼) 기호의 소비 시장에서는 만배 이상 차이나는 것이 너무 나도 쉽다. (페이스북이나 트위자의 가입자 수는 유사한 비인기 서비스에 비하여 월등히 많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에 의하여 그 수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가치의 차이는 훨씬 더 크다.)

만배 억배의 돈을 버는 천재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남들이 얘기하는 길을 좇아 가서는 절대 될 수 없다. 더 정확히는 그런 일을 안다면 자기가 가지 왜 가르쳐 주겠는가? 대략의 원칙, 대략의 방향성은 얘기할 수 있어도 그 누구도 21세기의 성공 방정식은 모른다.

로또를 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번호를 자기가 지정해도 되고 랜덤으로 뽑아도 된다. (통계학과 졸업자로서 힌트를 주자면 그 둘 사이에는 당선 확률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네가 가고 싶은 길 그 어디로 가도 성공에 이른다고도 이르지 않는다고도 아무도 얘기할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에 꼰대들이 후배에게 들려 줄 얘기가 뭐겠는가? (나도 성공하는 길은 전혀 몰라서 하는 얘긴데 내가 아는 건 그 누구도 정답은 몰라 그러니) 네 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라 (라고 얘기하면 최소한 틀린 방향을 가르쳐 줬다고 욕먹지는 않겠지 그리고 폼도 나잖아)

그런데 이렇게 다들 랜덤으로 찔러 대니 결국 성공에 이른 사람도 랜덤으로 나온다. 마크 주커버그가 천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만큼 뛰어난 천재라고 해서 모두 그런 성공에 이르진 않는다. 더 정확히는 그런 천재들 중 극히 일부만이 우연히 성공에 도달한다.

주커버그 만큼 똘똘한 사람들 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 성공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꼰대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아예 천재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꼰대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몇 년간 안개속을 해매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허비해버린 세월에 한탄과 눈물을 쥐어 짤 때 꼰대들은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나도 솔직히 성공 방정식은 몰라. 그러니 네가 잘 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잘 하려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했잖아. 남들이 시킨 거 했다가 실패했어봐 (나를 욕하고 너도) 더 힘들거잖아. 그냥 해보고 싶은 걸 해봤다는 걸 위안 삼고 눈물 뚝.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 타고르

당신이 1%를 향한 도전을 두려워 않는 이건 99%에 속한 것으로 이미 판명난 이건 상관 없다. 누구도 내일은 모른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말라(는 내 말만 들어라). 세상은 랜덤이다. 너의 실패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네 맘을 좇아가지 않고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죠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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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1.07.29 13:25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치혁명 또는 경제혁명이나 제도혁명 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 구조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강의」중에서

이 구절에 대하여 후배가 던진 질문에 답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우리를 옥죄는 굴레를 벗어나 풍요를 누리고자 끊임없이 투쟁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불을 사용하고 농사를 발명하고 사회제도를 만들고 증기기관을 발명하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그러한 노력을 이끌어내는 주도 집단의 이름은 족장, 왕, 귀족, 영주, 토호, 자본가 등으로 바뀌었지만 이 구도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늘 그 시대를 풍미하는 레짐(정)과 그에 대항하는 레짐(반)은 새로운 레짐(합)을 낳았지만 그 어느 레짐이건 풍요를 최대화 한다는 목표는 달라진 적이 없고 단지 그 풍요가 누구의 풍요인가와 풍요를 강요하는 메커니즘의 정당성이 어디서 (하늘, 신, 다수결 등) 오는가가 바뀌었을 뿐이다. 월러스틴이 지적하듯 심지어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것도 시장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라는 것과 이러한 점에서는 전혀 다를바가 없다.

생산성이 인류를 몇 번 씩 먹여 살리고도 남게 된 시점. 현재의 생산 방식으로는 모두가 아주 빠른 시일 이내에 공멸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시점. 즉, 더 이상 풍요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 된 시대에 우리의 삶을 관통해야 할 원동력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이 인류 역사에서 지금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노자 또는 많은 스승의 생각에서 시대의 한계 때문에 오해된 측면을 배제해나가다 보면 (예컨대, *복음교회에서 얘기하는 3박자 구원론을 보라. 하늘을 찌르는 고딕풍 교회나 거대한 불상을 보라.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를 종교라 부르는 사악한 독사들 말이다.) 이러한 일체의 "색"의 세계가 무의미해진 시점에서 우리를 끌고 가는 방향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이상적인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또한 국지적으로 이러한 이상을 지상에 실천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작은 규모의 종교 공동체)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생각이 현실의 중심적인 원리로 도입되고 이것이 인류의 탄생 이래 지속되어온 무척 오랜 레짐을 넘어서는 최초의 진정한 레짐이 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더 늦출 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질문은 결국 이 질문의 답은 인간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공자의 통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제목에 있는 stage real은 영화 "아발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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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1.07.29 13:18

(최근 휴대폰 자판의 표준화를 놓고 벌어진 논의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1. 표준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여러 체계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약속이 필요하다. 이러한 약속은 대부분 사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그 중에넌 약속에 참여하는 체계가 너무 거대해지고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져서 약속을 좀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때 그러한 약속을 표준이라 한다.

2. 실질적 표준과 사실상 표준

실 질적 표준은 국가/국제 표준 기구에서 만들어서 강제하는 표준이고 사실상 표준은 널리 쓰여 따르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표준이다. 예를 들어, 전화 교환 시스템은 국제 표준이며 따라서 전세계 어느 곳에서건 같은 전화 교환기와 전화기로 서로 연결하여 통화할 수 있게 된다. 한편, MS 워드 포맷은 국가/국제 표준은 아니지만 워낙 쓰는 사람이 많아서 다른 워드 프로세서에서도 지원한다.

3. 표준과 기술 발전

표준은 기술 발전을 견인하기도 하고 저해하기도 한다. 개발하기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기술이 있다고 할 때 설령 그걸 개발하더라도 널리 써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국제 표준 기술이라면 그것을 개발하였을 때 써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우리나라 표준 무선 통신 기술은 CDMA다 라고 못 박아버리니 아무리 돈이 많이 들더라도 CDMA 기술은 개발할 수 밖에 없고 너도 나도 개발하니 기술이 풍성해져서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CDMA 정책이 옳았느냐 아니냐는 얘기는 논점을 벗어나므로 생략)

반대로 어떤 기술이 표준 기술이 되어 버리면 그 와 다른 모든 기술은 비 표준 기술이 되거 설령 더 좋은 점이 있더라도 시장에서 사장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른 기술을 갖고 있는 쪽이 연합하여 표준을 선점해버리고 상대를 말려 죽이는 전략을 쓸 수 있다. (VHS에 밀려난 베타 기술이 이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4. 표준의 준수 수준

대 개의 사람들은 표준의 준수가 0/1의 문제 즉, 준수하거나 준수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표준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인터넷 표준을 다루는 IETF의 표준 문서에서는 규정을 표현할 때 MUST, SHOULD, MAY 를 엄격히 구분하여 사용한다. MUST는 꼭 따라야 하는 규정이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표준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SHOULD 는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따르지 않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고 따르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이다. MAY 는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 규정이다. 어떤 표준을 정하거나 검토할 때 이것을 0/1의 관점으로 보지않고 다양한 준수 수준을 고려하여 보면 훨씬 유연하게 표준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5. 사례 분석

자판의 사례를 통하여 표준이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고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지 않은지 살펴보자.

5.1 타자기 또는 컴퓨터 자판의 경우

처 음 타자기가 만들어지던 시대로 되돌아 가보자. 두 집단이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타자기 생산자들은 어떤 자판 배열로 만들어야 잘 팔릴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한편, 타이피스트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어느 회사 자판을 배워두면 앞으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해결책은? 표준 자판 배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타자기 생산자들은 자판 배열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고 더 성능 좋은 타자기만 만들면 되고 타이피스트들은 한번 배운 타이핑 기술을 평생 쓸 수 있으니 맘놓고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세 월이 흘러 기술도 발전하고 타자기(또는 컴퓨터 자판)의 활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지고서야 애초의 자판이 최적의 배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는 물리적으로 축을 밀어서 글자를 찍어야 하던 타자기와 전기적 신호로 눌림을 감지하기만 해도 되는 시대에는 최적의 배열을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시프트 키를 누르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지만 예전의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시프트 키를 누르는 것은 상당한 노동이다.) 그래서 더 좋은 자판 배열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영문 자판의 경우 기존의 쿼티 자판 대신 드보락 자판이 등장한 것이다.)

드보락 자판이 좋다는 건 알지만 기존의 쿼티 자판에 이미 익숙한 사람들은 쉽게 옮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드보락이 보급 되던 시절의 운영체제에서는 드보락 자판을 지원하지 않아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고 (그랬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음) 대다수의 자판에는 이미 쿼티로 글자가 새겨져 있으므로 드보락 자판에 도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던 것이다. (키 캡을 옮겨 꽂을 수 있는 키보드도 있고 요즘 운영체제에서는 기본적으로 드보락 자판을 선택할 수 있지만 여전히 쿼티가 주류로 남았다.)

5.2 휴대폰 자판의 경우

휴 대폰 자판의 경우 한글 자판 표준은 그동안 없었다. (최근에 정했다고 뉴스를 본 듯)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 일 것이다. 우선, 각 휴대폰 제조사가 나름의 자판 배열에 대하여 특허를 갖고 있었으므로 남의 자판 배열이 더 좋다고 해도 가져다 쓸 수 없어서 사실상의 표준도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컴퓨터 자판과는 달리 남의 휴대폰에서 고속으로 문자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차피 나는 내 휴대폰을 거의 항상 쓰므로 거기에 익숙해지면 남들이 자기들 폰에서 어떤 자판을 쓰건 나랑 상관이 없다. (한편, 동네 피씨 방에 갔는데 당신이 모르는 배열의 자판이 놓여 있다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거다.) 따라서, 휴대폰에서의 자판 표준은 애초에 태어날 필요가 없고 약간의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가끔은 남의 폰을 쓰거나 또는 내가 새로운 폰을 샀는데 자판 배열이 다를 수 있으므로) 그리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스마트 폰 시대에 와서는 좀 더 뚜렷해졌다. 즉, 자판 자체를 내려받아서 설치할 수 있으므로 시중에 있는 수많은 다양한 자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자판을 그냥 쓰면 되는 것이지 굳이 표준을 만들고 모두가 그걸 배워야 할 필요는 없어진 셈이다.

게 다가 대다수의 스마트 폰은 터치 뿐만 아니라 끌기(드래그)를 지원하므로 이를 결합하면 아주 다양한 입력 방식이 앞으로 나올 수 있다. (스와이프 자판이나 팜 파일럿 시절부터 살아 남은 그래피티 자판이 그 사례) 또한 앞으로 멀티 모달 입력이 가능해지면 훨씬 더 다양한 글자 입력 기술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어설프게 지금 뭔가를 "국가 표준"으로 만들고 강제한다면 이 모든 가능성을 짓밟게 되는 것이다.(라기 보다는 표준이 있어봤자 어차피 스마트 폰 시절에는 아무도 신경도 안 쓰고 자기 편한 것을 받아서 쓸 것이라는 것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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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0.08.23 12:03
(주: 중2짜리 아들이 방학 숙제로 쓴 글이다. 나도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인데 (부끄부끄) 아들이 대신 읽어서 정리해주니 대견스럽다.)

쎄느 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난 이 책을 읽고 홍세화씨께 푹 빠졌다. 이 책을 읽으며 줄곧 “옳소!”를 외쳤다. 홍세화는 프랑스에서 ‘남민전 사건’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택시운전사를 직업으로 살아가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 많은 글을 썼다. 15살인 내가 이 책을 읽기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점과 배워야 할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권위주의에 찌들어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추천해야하는 사람들이 바로 최고의 권위를 최초로 타파한 집단인 프랑스의 민중이다. 내가 바로 그 대한민국의 국민이여서 그런지 단번에 프랑스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프랑스는 세계 2위 농산물 수출국이다. 특히 와인은 양은 이탈리아에 약간 밀려 2위지만 질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빅토르 위고가 “신(紳)은 물을 만드는 데 그쳤고 인간이 포도주를 만들었다”라고 했을 만큼 프랑스의 언덕 하나하나에는 모두 포도가 여물어가고 양조장이 있다. 음식도 미를 중시한다. 맛보다 보기에 좋아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음식보다도 와인을 중시한다. 와인을 ‘음식에 곁들여 먹는 것’이 라니라 ‘와인을 먹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음식에도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먹고, 너희는 집어넣는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프랑스는 개인주의적 사회이다. “영국은 제국이고, 독일은 민족이며, 프랑스는 개인이다”라고 쥘 미슐레가 말했다. 생활방식에도 많이 표출되는 이 개인주의는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부터 시작해 드골이 ‘프랑스의 영광’을 주장할 때도 “나 드골은......”을 앞세우고 에밀 졸라의 드레퓌스 사건 의 고발문 “나는 고발한다!”에도 드러나 있다. 그렇다. 프랑스 개인주의의 특징은 ‘나’가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모든 5,900만 인구가 나를 앞세운다. 그래서 “프랑스는 5,900만으로 나누어져 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에서는 ‘즈망푸!’ 정신이 발달했다. 이는 프랑스어인데 “상관하지 마!” 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사적인 것을 말하기 싫어하고 관심 갖지도 않는다. 누구네 집이 돈을 벌었다느니, 아들이 어느 대학을 갔다던 지 그것은 프랑스 아줌마들의 주요 수다거리가 아니다.

이제 프랑스의 토론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은 수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철학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철학적인 지식을 많이 요구한다. 우리나라처럼 아이들에게 수학해라 영어해라 하지 않고 아이들의 이성을 성장시키는데 노력한다. 선생님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아이들을 성장시켜나간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 사람들은 토론을 많이 한다. 대통령 선거 전날에도 후보들이 모여서 토론을 한다. 우리나라는 ‘개그콘서트’나 ‘무릎팍 도사’ 따위를 보겠지만 이 토론방송은 프랑스의 최고 인기프로이다. 그런 만큼 토론이 중요하다. 카페에서도 토론이 이루어지는데 직업,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사회에 대해서 토론한다. 이것은 정말 부러운 것이 아닐 수가 없다. 난 우리나라에 이런 모습이 찾아오길 바란다.

나는 정말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원래는 절대 안 그런다). 바로 한글을 사용할 때이다. 크~ 한글은 세계 최고의 글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위대한 글자다. 이 얼마나 대단한가? 세종대왕님은. 하지만 요즘은 다 영어가 대세이다. (주: 한국어와 한글을 혼동하여 쓰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 우리 말글살이의 중요성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크게 이상하지 않아 고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아기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 학원, 과외 등이 생겨난다. 내 생각엔 영어를 잘 못해도 별로 상관이 없다고 본다.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못(안)한다. 대신 불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글은 불어보다 훨씬 쉽다. 근데 왜? 이것은 우리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문화가 열등하다고 생각해서 서양의 것이 좋아 보이는 건 사회의 문제이다. 나라가 그렇게 부추기고 있다. 언제 미(米)국에서 미(美)국으로 바뀌었는가? 사람들은 이제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숭배까지 하고 있다. 말에는 얼이 있다는 말이 있다. 아니 얼이 있다. 우리는 얼을 뺏기고 있는 게 아닐까? 침략 당하는건 아닐까?

프랑스어로 ‘똘레랑스’라는 게 있다. ‘자유, 관용’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하고 또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엔 이미 ‘중용’과 ‘외유내강’이라는 훌륭한 사상이 있다. 이들은 ‘똘레랑스’보다 더 폭넓은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훌륭한 실천적 사상들을 모두 헌신짝 버리듯 버렸다.

우리가 죽어도 프랑스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를 들어보라면(꼭 하라는 건 아니다) 프랑스인의 창조적인 개성이다. ‘집단의 단결력’도 중요한 요소이나 그런 건 다 옛날이야기이다. 이제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한 시대이다. 프랑스의 개인의 능력과 창의력으로 우승을 일궈낸 98년 월드컵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독일도 이런 축구를 도입하여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단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를 우리가 따라하려면 일단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우리가 내세웠던 민족주의는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이는 독일식, 프랑스식의 민족모델도 따라 가지 못하게 막아왔다. 이 저열한 지역주의를 몰아 내야한다. (주: 우리의 지역주의가 민족주의의 패거리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마지막 탈고하는 과정에서 줄이다가 이상하게 되어 버린 듯 ㅋㅋ)

우리는 어찌해야 되는가? 우선 사회를 뜯어 고치는 게 시급하다.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이 꿈꾼 ‘역성혁명’처럼 나라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극우반동주의를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해야한다. (주: 음... 아이가 홍위병으로 자라지 않도록 단속해야겠습니다. ㅠㅠ) 국민을 위한 나라가 되어야지 나라가 국민의 피를 빨아 먹는 비열한 국가가 되어선 안 된다. 가슴 아파하는 재일동포, 북한의 2천만 난민들을 올바를 시선으로 바라보자. 북한과 전쟁을 일으키려는 자들에게는 전선에서 개죽음 당하는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들만의 삶이 있다는 걸 알려 줘야한다. 이것을 상기해야한다 남북을 가르는 한강도 S자로 흐르며 남북이 뒤바뀐다는 것을……. 그것으로서 우리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위대한 대한민국으로의 한걸음을 나아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사회에 할 말이 많지 않은가? 당장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자기 자신부터가 이 세상을 보는 눈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말자. 시선을 바꿔라. 어떤 인간이든 우리의 친구이다. 모두의 벗이다.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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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10.03.03 14:13
옆 자리의 칠레 학생이 꼭 널리 전파해 달라고 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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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7일 강력한 지진이 칠레를 강타하여 건물이 파괴되고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리히터 규모로 진도 8.8을 기록한 이 지진은 1900년 이래 다섯번째로 큰 지진이며 7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수많은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태평양 연안의 여러 나라에 쓰나미를 일으켰던 지난 2004년 동남 아시아의 지진 이후 가장 강력한 지진입니다. 아이티와 같이 최근에 발생한 다른 대참사에 비하면 사상자는 적은 편이지만 국가 기반 시설이 입은 피해는 막대합니다. 그 중 55~65%의 피해는 주거시설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재건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요!!!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다음의 계좌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630-007069-704 외환은행 (예금주: 칠레대사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시거나 다른 방식의 도움을 주실 분은 저희 대사관에 전화를 주시거나 (02-779-2610) 전자메일로(echilekr@unitel.co.kr)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도움과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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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지진, 칠레
세상을 얘기한다 2009.12.24 11:59
조너선 지트렌 교수는 그의 저서 "The Future of the Internet--And How to Stop It"에서 개인용 컴퓨터나 인터넷이 엄청난 정보 기술 혁신을 가져오게된 이유는 생식성(generativity)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생식성이란 그걸 이용해서 뭔가 쉽게 만들어낼 수 있으냐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예를 들어, 워드프로세서와 개인용 컴퓨터를 비교해보자면 거의 비슷한 구성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드프로세서는 글을 쓰는 기능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면에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무엇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열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금도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을 누군가는 만들고 있을테니까. 그런 점에서 워드프로세서는 생식성이 없고 개인용 컴퓨터는 생식성이 있다. 전화망과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전화망을 발전시켜서 새로운 기능을 갖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전화를 이용한 다자통화요금과 인터넷 전화인 스카이프를 이용한 다자통화요금(공짜!)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생식성이 극대화 되는 장면은 정보와 정보가 만났을 때 나타난다. 그 자체로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던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가공하면 엄청난 가치를 낳는다. 그 자체로는 정보를 (거의?) 생산하지 않고 단지 인터넷에 흩어진 정보를 정리하는 역할만 하는 구글이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한다. 기존의 메신저보다 더 허접한 트위터가 갖는 폭발력은 어떤가? 정보와 정보가 만나고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실로 엄청난 힘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구글이나 트위터가 하는 짓을 보면 한 가지(뭐 여러 가지 더 있겠지만 여기서 관심있는 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건 개방성이다. 구글은 자기들 서비스의 많은 부분을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application program interface)형태로 공개함으로써 구글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구글이 제공하는 기능과 정보를 활용하는 응용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좀 오래된 글이긴 하지만 윤석찬님의 블로그에서 구글의 오픈 API 소개를 볼 수 있다.) 트위터는 그냥 API를 공개하는 수준에서 한 술 더 떠서 아예 스스로의 발전 방향 조차 열어두고 있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필요에 의해 사용하던 기능이나(예를 들어, 남의 글을 펌질하는 리트윗 기능) 트위터용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추가한 기능을(예를 들어, 여러 사용자를 목록으로 묶어서 관리하는 기능) 트위터의 내장 기능을 채택하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왜 그렇게 개방성을 중시하는가? 착해서? 이타주의가 넘치는 기업들이라 자기 정보를 퍼주는게 기뻐서 그럴리는 없지 않은가? 원리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정보 세상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옮겨다니는데 별로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MSN메신저 쓰다가 네이트온으로 옮겨간다고 무슨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사람들은 옮겨간다. 불과 몇년전 가장 각광받던 아이러브스쿨을 기억하는가? 인터넷에서의 명성이라는 것은 앤디 워홀의 표현대로 15분짜리 명성일 뿐이다.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인데 사람들이 충분히 많아지면 욕구도 충분히 다양해져서 어느 기업 어느 서비스 하나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트위터의 CEO인 에번 윌리엄스는 "그저. 많은 꽃을 피우자구요. 그럼 누군가 제대로 문제를 풀겠죠"라고 정리한 바 있다. 내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게 하면서 내 틀을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현재 모든 기업의 당면과제다.

인터넷 덕분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하고 못하는 것은 남이 해주는 것을 "엮어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창출되는 가치는 기존 산업의 규모를 뛰어 넘고 있다. 초창기의 웹이 정보의 교환 차원에서 이를 실현했다면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SOA: software oriented architecture)니 매시업이니 또는 그 외 최근에 유행하는 온갖 유행어가 지칭하는 기술은 응용 프로그램 또는 서비스 차원에서도 "남의 힘을 빌어서 가치 만들기"를 해주는 것들이다.

아이폰용 응용 프로그램인 '서울버스'를 놓고 벌어진 최근의 "해프닝"을 보면서 지자체(또는 중앙정부)가 스스로의 역할을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 착각1: 내가 만든 정본데 감히 누가?

지자체들의 해명을 보면 돈을 투자해서 생성한 정보를 협의도 없이 가져다 쓰면 안된단다. 내가 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라 법적으로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에 기대어 생각해볼 때 그 돈이 국민들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라면 그 정보도 국민들에게 되돌려줘야할 정보일 뿐이다. 지자체가 투자했다고 지자체가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2) 착각2: 정부가 나서서 사업을 끌고간다?

지자체들의 해명을 보면 자기들도 이미 응용을 만들어서 보급하고 있거나 보급할거란다. 정부는 산업계가 담당할 영역을 침법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개입하면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발허가권을 쥔 시청이 개발업체까지 겸한다면 누가 개발업체를 따로 운영하고 싶겠는가?) 정부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돈을 쓰는 곳이어야 하며 그래서 우리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세금을 낭비하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만 돈을 벌어오는 것은 독직이다.

(3) 착각3: 내가 알아서 할께?

뭐 좋다. 굳이 있는 정보 활용해서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서 보급하는 것 까지는 그렇다치자. 하지만 독점은 안된다. 지자체가 무슨 엄청난 개발 능력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설령 아무리 대단한 개발력을 갖췄다고한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맞춰 일일이 개발할 수는 없다. 내가 풀고 남은 문제는 남들이 풀게 냅둬야 한다.

화란춘성(花爛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

정부는 그저 꽃이 피게 거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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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9.07.30 11:27
(퍼온 이의 설명: 거의 이공계 출신인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어느 게시판에서 후배들이 주고 받은 글인데 재밌어서 퍼옵니다. 실명이 거론된 부분을 고치고 일부 눈에 띄는 오타만 수정하였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저와 다른 부분도 있으나 글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굳이 가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뻔히 아는 사람들만 사용하는 게시판이라 정제되지 않고 많은 가정이 생략된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수도 있는) 글이지만 우리가 뻔히 아는 것 뻔히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글로 굳이 표현한다면 어떻게 되나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참고로 L 과 J 는 모두 현재 미국에서 취업하여 살고 있습니다. 글 퍼오기를 허락한 J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L 에게는 미리 허락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글의 흐름상 필요해서 임의로 퍼왔습니다. 용서해주리라 믿습니다. 믿음이 나를 구원하려나.)

L 이 게시판에 올린 질문 글

미국에 살면서 한국 얘기에 관심이 많다보니 두 나라에서 벌어지는 답답한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궁금한 것중 하나가, 소위 "민의"라는 개념입니다.

아무리 국민 모두가 MB OUT을 외친다고 해도, 어쨌던 간에 그 사람은 선거에서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고, 거기다가 국회까지 한나라당을 다수로 만든 것도 똑같은 국민들인데, 왜 자기들이 뽑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면서 그렇게 불만이 많은건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러다보니까 정말 사람들이 불만이 많기는 한건가 싶어서요. 혹은 어쩌면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인건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조금 다르지만 저한테는 좀 더 와닿는 얘기를 하면, 저는 정말 2004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이 이길줄 알았습니다. 2000년에 어찌 됐건 부쉬가 대통령이 되서 여기저기 전쟁 시작하고, 미국내에서는 정말 눈에 띄게 civil liberty를 박살내기 시작하는걸 보면서 꼭 지금 한국에서 MB OUT 하는 것만큼 미국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느꼈었거든요. 그런데 2004년에 그런 사람을 또 대통령으로 뽑는 것을 보면서 "아, 어쩌면 내가 보는 세상이 굉장히 협소한 한쪽만을 바라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미국 국민의 과반수는 부쉬를 지지했단 말이지요. 제가 사는 동네에서, 제가 어울리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리 비난을 받고 있었더라도 결국 한사람이 한표인 제도에서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은 부쉬였으니까요. 최소한 부쉬한테 2004년에 표를 던진 사람들은 (제 눈에 보이기에) 망가져가는 미국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안했다는 얘기잖아요.

해서 생각해보면, 정말 한국에서는 지금 대통령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다수인 건지가 궁금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왜 촛불시위같은 소위 "장외" 투쟁말고는 벌어지는 일이 없는지. 어차피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정말 자기들이 뽑은 대표에 불만이 있으면 갈아치울 힘도 국민한테 있는거 아닌가요? 아니면 제가 보고 듣는 사람들이나 매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있어서 사실 대다수는 아무 불만없이 MB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보이기에는 지금 정부가 뭔가 크게 잘못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걸까요?

아니면 혹시 노무현 대통령 비석에 새겨져있는 "깨어있는 시민"의 수가 너무 적어서 생기는 일일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용어는 약간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가 "한 사람이 한 표"라는 바탕에서 시작하지 "깨어있는 사람만 한표"에서 시작하는게 아니잖아요. "깨어있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떠나서 어쨌던 과반수가 맞다고 하면 맞는거 아닌가요? 그럼 오히려 그 과반수가 하는 생각이 결국 "깨어있는" 생각이 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서 한번 써봅니다.

J의 덧글

주의사항: 가설이 상당히 길므로 이해(동의)도 안되고 불편한 사람은 본 글을 건너뛰기를 권합니다... 읽는 사람도 귀찮긴 하겠지만 덧붙이자면 여기 나오는 여러 개념(진보, 보수 등)은 한국사회에서 보는 개념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중립적인 개념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즉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보수가 맞는가라는 식의 논의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중립적이지 않은 개념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고쳐보도록 하지요.

L 이 질문하는 이런 선문답(?)에는 불행히도 짧은 문장은 고사하고 길게라도 제대로 정리해 놓은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고 나 또한 아직은 키워드 수준에서 생각하는 정도지만 생각의 단편이라도 나열하는게 우선 나에게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서 적어본다. (예전엔 스스로 고화질 비디오에 준하는 기억력이라 생각했지만 요즘은 세상에 적응해서 검색엔진형 keyword만 남기는 기억력으로 퇴화하고 소설을 붙이는 능력만 늘어난듯)

공돌이라 이공계열 언어로 밖에 표현못하는 나의 한계를 안고서 이야기해 보자면 지금 단계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중'에 대한 모델링으로 가장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은 '물돼지'이다.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링크 참조... (http://naggama.co.kr/main/item/itemView_860441.html 구글이 찾아주는 중에서 이게 제일 먼저 나와서... 난 제품과 무관함)

대중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유동성이 높으면서도 표면장력 또한 높은 '유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도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대인데 수많은 전자로 이루어진 인간이 또 많이 모인 '대중'이라는 대상을 우리는 특정 시간 위치만을 파악할 수 있는 사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는가? 현재로서는 우리들은 특정사건과 특정 시점의 대중의 '위치'는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으나 '운동량'을 파악하지 못해 앞으로 움직이는 방향, 속도를 예측하는데 거의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집내의 대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외부의 자극 (거시적 관점에선 지속적인 random event)에 따라 전체적인 쏠림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자극에 따른 변형(transition state)이 끝나면 집단의 표면장력에 따라 변형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격도 가진다. (극단적인 자극의 경우 군체가 분리되거나 둘이상이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고...)

즉 개체군이 특정 방향으로 의미있는 이동을 시작했다고 해도 그 관성은 일시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원래 집단 전체에서 차지했던 위치 가까이로 돌아간다. 개체 자체는 브라운 운동같이 끊임없이 집단내 이동을 계속해 변화하고 있겠지만 집단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때는 대부분의 경우 전체 이동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집단의 표면장력 또는 외형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매우 강한 순간 자극(예를 들어 전쟁으로 인한 국가 분리)이나 장기적인 교육의 힘이라고 본다. 소위 현대사회라는 곳에서 새로운 정보의 대부분은 교육기관보다 대중 매체로부터 나오며 지금 한국에서는 이 대중 매체의 패권을 잡기 위해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미디어 관련 법안에 대한 세부적인 관심은 없지만 내 생각엔 법안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미디어 자체가 양측이 서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목표이기에 추진하는 쪽은 '일단 내가 찍은 것은 먹고 봐야 하기 때문에' 대화없는 실력행사를 하고 있고, 반대측은 근본적으로 법안 내용보단 '남이 먹는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게다가 나쁜 넘은 더욱 불가)' 반대하는 입장이 크다고 보는데 반대논리가 완전치 못했고 현 상황에서는 절차상의 문제(반대)를 더 크게 제기하고 있고 (당연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잘못하다가는 '그나물에 그밥' 취급받기 좋은 형태로 가고 있다고 생각함.

위는 주관적 입장에서 본 장황한 가설이고...

원래 L 의 질문으로 돌아가 '다수는 항상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보자면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합리적인 절차에 의한 다수의 결정(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옛날 옛적 교과서에도 다 나온 이야기라 새삼스러울거 하나도 없다) 합리적이지 않게 행동하는 상대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다 논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론은 참 단순한데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겪는 사회는 마치 사람들이 이런거 모르나 싶을 정도로 어지럽다는 게 문제긴 하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개인의 지능, 학습과정과 집단의 지능, 학습과정은 다르며 똑똑한 일부 개인이 사건을 정확히 분석해 미래를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전달과정을 밟지 않는경우 집단의 동의를 얻지 못하며 따라서 집단은 해당 사건을 전혀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겪으면서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리 예측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뻔히 보이는 '닭짓' 하는것을 쭉 지켜보면서 분통터지는 노릇이겠지만 내가 아는 것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닌 것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이런 집단 지능과 경험의 차이가 소위 선진국이 후진국을 상대로 외교, 경제면에서 장사 잘해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래 선진국이 잘나서가 아니라 후진국이 발전하는 단계에서 선진국들이 겪었던 문제의 패턴을 피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를 놓고 봤을때 원래 중간인 사람이 말이 별로 없는 편이 당연한 것이고 양 극단으로 갈수록 개인의 신념과 사회의 현실이 충돌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불만도 많고, 목소리도 크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는 중간의 목소리보다 양 극단의 좌파 우파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 생각보다 양 극단이 많은 것처럼 보여지는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진짜 과반수인지는 (진정한 다수의 뜻인지는) 전체 투표를 하지 않는 이상 쉽게 알 수 없다. 그런데 때로는 진실이 아닐지언정 일반 대중이 가장 쉽게 느껴지게 하는 것(확성기 역할)이 있으니 바로 매스미디어이다.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막론하고 역대 어느 권력이든 언론을 통제하거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은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국가라는 집단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후천적인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본인이 소속 국가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겪을 경우 해당사회에서의 기득권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본인에 가장 맞는 국가로 국적변경이 가능하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게 가장 빨리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구현의 신념 또는 기득권 포기 불가의 이유로 해당 사회에서 본인의 입맛에 맞는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고 그들은 지속적으로 집단에 방향제시를 통한 '자극'을 주어 사회의 변형을 시도한다. 앞의 '물돼지'로 돌아가면 돼지를 잡아당기는 사진과 비슷할듯 하다. (사회내 진보와 보수가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주도하는 현상) 일단 잠시간의 변형이 성공적이었다 할지라도 변형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물돼지에서 물곰으로 외형이 바뀌는 것) 사회의 재교육이 성공적이어야만 새로운 형태에 대해서 구성원 다수의 동의를 얻어 안정화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 사회 재교육은 10년 이상의 장기간의 기간을 필요로 하며 한 세대정도의 시간을 소요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교육은 분명 효과는 있으나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구성원에 가장 효과가 크며, 새 이념에 반대하는 기존 구성원은 '죽어 없어져서' 반대 동력을 상실해가는 경향이 있다. (20대 이후 기존 개체에 대한 교육효과는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육체적 성숙과 정신적 성숙을 동일시하므로 스스로 충분히 똑똑하다고 생각하게 되어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진보든 보수든 사회의 변형을 자기에게 유리한 (이해관계만이 아닌 이상실현의 관점도 포함) 형태로 바꾸어 가기 위해 중간층을 설득, 계몽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쪽이 되었건 중간층을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깨어있는 시민'으로 만들어야만 사회가 그렇게 바뀌어 갈 것이므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편을 늘려가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우리편이 되어주세요'보다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 주세요"가 누가 듣더라도 더 멋있는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투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는데 최근에야 어느정도 정리가 된 듯 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반 시민이 사회를 바꿀 거의 유일한 합법적 장치는 투표뿐이고 - 시위를 통한 의사표현은 직접 정책 변화를 보장해 주고 있지 않다 - 이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행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당화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지난 대선에 귀국을 못해 투표하지 못했고 내 의사에 관계없이 투표하기 어려웠던 제도탓도 있지만 개인의 책임도 있다고 결론내렸다)

찍을 후보자가 없다면 무효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 더 낫다. 왜 그런지는 다음의 예시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사례 1. 투표율 60%. 투표자 60% 지지로 당선 (전체 유권자중 36%)
사례 2. 투표율 90%. 무효표 33%. 유효표중 60% 지지로 당선 (전체 유권자중 36.18%)

당선자 입장에서 보면 1, 2는 전체 득표율도 비슷하고 지지율이 같다고 같은 결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상적이라면 1번에서는 어쨌거나 과반수 지지라고 아전인수식 해석도 가능한 반면 2번에서는 그렇게 해석하기가 껄끄러울 수 밖에 없다. 무효표가 이정도로 나온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무효표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부동층을 대변해 주고 있다.

별거 아닌거 같아 보여도 투표에 의한 대의정치를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조금 확대해보면 투표 여부에 따라 내가 인간 취급을 받는지 안 받는지 차이가 난다. 내가 니들이 뭘하고 먹고 살든 관심이 없는거 까진 좋은데 그 상대방이 니가 뭘하고 먹고 살든지 난 상관없다고 나대는 건 좀 다른 문제이지 않나 싶다. 지금 보고 있지 아니한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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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9.06.11 13:22
자식을 어렵게 키워서 대락 보내놨는데 그렇게 들어간 과를 그냥 없애겠다고 대놓고 부모 앞에서 얘기하는 더 담대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새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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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9.06.10 18:36
블로거 도아님 등이 앞장 서서 블로거 시국선언을 준비 중입니다. 제 나름의 시국 선언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사회 제반 분야에서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음을 심히 우려한다. 특히,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 정책에서의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통제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의사의 자유스런 표현과 소통을 제약함으로써 우리의 민주주의를 군사 독재 시절 또는 그 이전으로 후퇴시키고 있는 중이다.

미네르바 구속 사태, 미디어 관련 법안의 무리한 처리 시도, 사이버 모욕죄 도입 시도 등 새롭고 광범위한 인터넷 통제가 뚜렷이 가시화 하고 있으며 이는 각종 포털의 편집, 게시판의 운영과 관리, 블로거들의 글쓰기, 네티즌들의 전자 메일 작성 등 인터넷의 전 분야에서의 자기 검열로 이어져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남발되고 있는 집회 불허, 광장 폐쇄 조치가 상징하듯 이명박 정부는 소통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해외 기업인 구글/유튜브 사이에서 벌어진 신분확인제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 세상에서의 과도한 공권력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불가능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필요 이상의 공권력 남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6.10 민주화 대투쟁의 빛나는 민주화의 결실을 한 정권의 무능과 오만과 독선으로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상실할 위기 앞에서 한 시민으로 나는 이렇게 요구한다.

1. 정부는 양방향 소통에 나서야 한다. 일방적이고 밀어부치기 식의 정책 결정과 집행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1. 정부는 인터넷과 미디어 관련 법/제도의 개악 시도를 즉각 중단하여야 한다. 잘 정비된 인터넷을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홍보의 통로로 만들고 빅 브라더가 되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2009년 6월 10일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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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9.05.28 13:36
들어가는 말

이제는 아련해져버린 기억을 저 너머를 뒤져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을 추억하고자 한다.

나도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이나 주변의 젊은이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내가 겪었던 소중하고 중요한 기억들이 그저 그렇고 그런 옛날 일로 치부된다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즈음하여 "왜 노무현인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며 내가 기억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내가 경험하는 역사의 지평 속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내 감성 속에 남아 있는 노무현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잊고 싶지는 더 더욱 않기에...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

티비에서 여러 번 언급해서 5공 청문회 스타로 노무현 전대통령이 유명해졌다는 얘기는 5공 청문회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청문회 한 번으로 무명 정치인이 스타가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5공 청문회가 열린 것은 1988년이다. 1987년 6월의 민주화 항쟁의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였다. 그보다 7년여전  전두환 대통령은 국민들이 뽑지 않고 소위 체육관 선거라고 불리는 간접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었다. 물론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국민들이 뽑는 구조이긴 했지만 어쨌든 당시 상황에서는 전국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김영삼이나 김대중을 정치 신인 전두환이 이길 방법은 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체육관 선거를 한번 더 치러서 구데타 공신 2순위인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뽑으려던 참이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현재의 헌법을 개정해서 직선으로 대통령을 뽑자고 했다. 유난히 뜨거웠던 1987년 6월의 항쟁에 굴복한 여당은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르고(이것이 노태우의 6/29 선언)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으로 계속되는 군부독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물론 이 기회는 양김씨(김대중/김영삼)가 서로 상대가 양보하고 자기로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단일화는 실패하고 양김씨를 지지했거나 후보단일화를 요구했던 재야 운동권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분열시키고 -- 그 분열은 아직도 진행형 -- 노태우의 집권 즉 군부독재의 연장으로 이어진다.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1987년의 뜨거운 시민들의 요구는 막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와 수렴 청정의 길로 접어들려던 권력자인 전두환씨의 야심을 저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국회가 직전 권력 (사실은 수렴청정 중인 현 권력) 을 국회로 불러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청문회를 여는 것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시민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장세동(안기부 --지금의 국정원-- 장, 대통령 경호실장), 당시 최고의 부자였던 정주영 이런 사람들이 증인으로 국민의 대표 앞에서 진실을 추궁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길 기대했던 시민들은 이내 큰 실망에 빠진다. 증인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한결같은 증언만 되풀이 하고 진실을 캐내야 할 국회의원들은 아직 권력을 쥐고 있는 증인들의 눈치만 살피는 비굴한 상황이었다. (우리 역사상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비굴한 모습은 그 전에도 없었고 -- 아마 있어도 공개되지 않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 그 이후에도 없었다. -- 민주화의 성과로 이제는 국회의원 끗발이 엄청 쎄졌다. 요즘 국회의원들 보면 지가 잘나서 쎈 줄 알지만 다 국민들이 뒤에 있기 때문이라는 걸 늘 잊고 지내는 듯.)

이런 와중에 단 한 사람 (아마 하느님이 국회를 멸하려 천사를 보냈다면 국회는 불지옥을 경험했을 듯. 단 한사람의 의인 밖에 없었으니까) 의 국회의원이 있어 그나마 국민들의 마음을 드러내었으니 (드러내기만 했지 현실적으로 뭔가 캐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5공화국의 비리와 참상은 노태우씨에 이어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고 두 전 대통령들이 나란히 법정에 서기까지 또 많은 시간을 기다려서야 쬐끔 밝혀지게 된다.) 그가 노무현이다.

개인적으로는 청문회를 보면서 당황스러웠다. "아 저렇게 말해도 되는거구나. 저래도 안 잡아가는구나." 하는 충격이 그 첫번째고 이는 이내 "왜 다른 국회위원들은 저렇게 하지 않는가?" 하는 분노로 이어졌다.

지금에야 아무것도 아닌 촌부들도 블로그를 통해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정말? 요즘 들어 분위기 안 좋지만 그래도 5공에 비하랴) 검사가 감히 대통령에가 막가자고 대들고 국회의원이 장관, 총리 불러 놓고 몰아부치고 하는 것이 별거 아닌 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감히 권력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금기아닌 금기였던 시대였다.

그 금기의 벽을 첨으로 넘어서서 금단의 땅을 열어 젖힌 자. 그가 노무현이다.


3당 합당을 거부하고 지역을 넘어선자 노무현

1990년에 감행된 3당 합당(대개는 3당 야합이라고 부름)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국회는 집권 여당인 민정당이 과반이 못되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호남을 기반으로 한 평화민주당이 두번째 영남을 기반으로 한 통일민주당이 그 다음 그리고 충청 지역에 기반한 신민주 공화당이 뒤를 잇고 있었다. 이러한 수치 뒤에 가려진 또 하나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의 지지 성향이다. 민정당은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전국적인 지지기반을 갖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의 계보를 잇는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보수층 + 충청 지역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두 민주당은 각기 영호남이라는 지역기반의 지지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보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 하자면 영남쪽 연고를 두고 있는 진보층은 통일민주당 지지자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호남측 연고라면 통일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뭐 이런 식이고 상당수는 오락가락 양쪽을 지지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통일민주당에서는 영남쪽 국회의원 선거에 주로  후보를 내고 평화민주당은 호남쪽에 주로 후보를 내는 선거 전략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1987년 6월의 시민 대항쟁은 이후 7,8,9 대투쟁이라고 불리는 전국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각종 노동단체, 재야단체, 시민단체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면서 정치권의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고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과 여러 곳에서 충돌을 빚고 학생들의 분신, 수배 중이던 사람들의 의문사가 줄을 잇던 그런 시절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나라당 공천으로 경기도 지사로 있는 김문수씨도 이때 즈음 유명했던 노동자 조직 사건으로 수배와 투옥을 겪었던 사람이다. 인생유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교조가 태동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전교조 이전 세대로서 선구적인 진보파 선생님 출신 이재오 국회의원을 보면... 인생유전2) 한마디로 전국이 민주화의 열기로 후끈한 시대였다.

국회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한 민정당은 이런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결국 정권을 뺐기게 되고 그들의 원죄 (쿠데타와 광주 학살) 때문에 법정에 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참고로 내란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음 대통령이 김영삼 아니면 김대중 두 사람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상황이었다.

이때 민정당은 승부수를 던진다. 김영삼을 영입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더욱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김종필까지 끌어들인다. 그래서 민정당 + 통일민주당 + 신민주공화당이 하나의 당으로 합쳐져 민주자유당이 된 것이다. (음... 당시 일본의 집권당은 자유민주당. 앞뒤만 바뀐거잖아?) 모르긴 몰라도 김영삼에게는 다음에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유리한 기반을, 군부독재 세력에게는 법정에 끌려나가지 않아도 될 정권유지를, 그리고 김종필에게는 완전 듣보잡으로 정당 문을 닫지 않고 수명을 연장할 기회를 주는 상생(ㅠㅠ)의 정치였던 셈이다.

3당의 합당으로 독재는 영원히 계속될 것 처럼 보였고 민자당에게 입당하는 자에게는 평생의 부귀영화가 그리고 그 반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고달픈 나날이 (국회의원들도 최루탄 맞고 전경에게 질질 끌려 닭장차에 실려가던 시절이다) 이어질 것이 명백한 그런 순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그 민자당이 현재의 한나라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순간에 그 평탄한 길을 가지 않고 과감하게 남은 7인의 국회의원이 있었으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노무현이다. 그에게는 이 결정이 더욱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왜냐하면 이는 그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김영삼을 배신하는 것인데다가 스스로는 아직 입지가 없는 초선 의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는 평화민주당(당명이 바뀌었는지는 기억이 불분명) 소속으로 부산에서 계속 출마해서 구데타의 주역이었던 현직 국회의원에게 연이어 세번이나 패배하는 그 유명한 사건을 일으킨다. 김대중씨의 영향력하에 있는 당의 출신으로 영남에서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금기를 넘어서는 엄청난 용기였고 (나는 대학가기 전까지만 해도 김대중이 간첩이라는 말, 영남 번호판 달린 차는 호남가면 주유소에서 기름을 안 넣어준다는 말, 김치 값이 비싼 이유는 배추가 비싸서이고 배추가 비싼 이유는 호남지역에서 배추를 영남에만 비싸게 팔기 때문이라는 말이 사실인 줄 알고 살았다) 무엇이 노무현을 다른 모든 정치인들고 다른 존재로 만드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다름이 그를 국민의 여망을 등에 입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나오는 말

이제는 사진첩의 낡은 흑백 사진 처럼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던 기억을  되살리며 새삼 이런 말을 되새긴다.

"우리 나라에도 자랑할만한 정치인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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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9.04.29 11:39

2003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유시민 (당시) 국회의원이 국회에 면 바지를 입고 출석했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이 발칵 뒤집혔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야유와 고함을 질렀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복장이 저게 뭐냐”“국>회 권위를 뭘로 아는 거냐”“차라리 우리가 퇴장하자” 등의 호통과 고함을 쏟아냈다.

유 의원은 소란에 아랑곳없이 단상에서 선서식을 기다렸지만, 한나라당 의원 50∼60명>이 줄지어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출처 : 당시 한겨레 신문의 기사

그리고 세월은 흘러흘러 2009년 어느 듯 한나라당은 여당이 되었고 유명환 장관이 (어라... 같은 유씨네...) 국회 상임위에 출석해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유(명환) 장관은 "(천정배는) 여기 왜 왔어? 미친 X"(영상회의록 1시간 29초 53초)라고 발언한 뒤 "이거(국회 보고) 기본적으로 없애버려야 돼"(1시간 32분 30초)라고 내뱉었다.

현 정부 여당 분들은 입이 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2월 26일 한 강연회에 나가 "국회가 깽판"이라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또 야당이 윤 장관 발언을 문제삼고 나서 한동안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도중 국감장을 박차고 나가며 사진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찍지마, XX", "정말 성질이 뻗쳐서~" 등 막말을 쏟아내 기자들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입이 걸레인 분들이 옷은 참으로 멋지게들 차려 입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변자가 면바지를 입는 것과 국민의 대변자에게 욕을 하는 것. 어느 것이 진짜로 무례한 것인가? 첫번째 인용 기사에서 다시 인용한다.

국회 권위를 뭘로 아는거냐?
안타깝게도 유명환 장관, 윤증현 장관, 유인촌 장관에게 국회의 권위를 따져 물은 한나라당 의원은 내가 과문한 탓인지 없는 듯 하다. 이 정도면 이중잣대를 넘어서 정신분열증 상담을 받아야 할 수준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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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9.04.21 15:53
조선일보의 논설을 오랬동안 맡았던 김대중씨의 최근 글을 우연히 읽었습니다.

예의를 논하고 있군요. 예의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엄정한 법집행이 어쩌구 하면서 한 겨울에 세입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 또는 멀쩡한 회사원들이 갑자기 비정규직, 임시직으로 전환되고 밀려나는 그런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무슨 얘기를 했죠? 무한 경쟁, 한자 급수 시험, 일등 주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등등을 칭송하면서 끝없는 경쟁으로 내모는데 앞장섰던 그 신문 아니던가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자기에게는 예의 지켜달라니... 그 예의는 아마두 조선이 명나라 청나라의 신하된 나라로서 조아리던 그런 예의 즉,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에게 조아리는 예의를 의미하는 것일뿐인 듯 하네요.

괜히 읽었다가 열받아서 나가서 찬물 한 그릇 먹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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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9.04.01 12:01
청와대 행정관과 방통위 간부가 방송사 직원으로부터 술을 얻어먹고 2차까지 제공 받았다는 "의혹"이 세간의 화제다.

청와대는 "불미스런 일"이라며 사과를 하였다. 허긴 성매매 방지법 위반이니 불미스러울 뿐만 아니라 범법 행위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경찰은 처음에는 아예 적발 사실을 숨기다가 청와대가 자백하고 나서야 공개하고 이제 와서는 증거자료도 확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방통위 간부야 방송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술을 얻어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물론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정황으로보아 방통위 간부는 오히려 그 방송사 간부와 청와대 직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진짜 방송사를 쥐고 흔드는 것은 방통위가 아니라 청와대라는 것 그리하여 방송과 통신이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한 정권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번 사태의 진짜 "문제"이다.

성매매도 근절되어야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언론과 방송의 중립성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아직도 우리가 이런 뉴스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동안 확보한 언론과 방송의 중립성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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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9.02.18 00:38
/* 이 글은 공공의 이익을 해칠 의도가 없으며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려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재미를 위한 패러디입니다. */

딴 건 몰라도 이번 정부는 그냥 냅다 지르는 것은 선수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일제고사를 치르더니 가감도 없이 그냥 그 결과를 공개해 버렸다. 그 이유를 한번 들어보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되 결과는 3∼5%만 표본으로 추출해 공개할 생각이었다. ... 전수조사를 하기 전에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 표집 평가에서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 가운데 수만 명이 파악조차 안 된 채 대책 없이 다음 학년으로 떠밀려 올라갔던 것 ... 지역별 격차를 제대로 공개해서 고쳐가자는 취지에 따라 지역별 성취도를 밝히기로 했다.
도대체 이 비논리적 흐름은 교육과학부의 작품인가 아니면 급하게 발표 내용을 받아적는 기자의 작품인가. 나의 넓은 아량과 타고난 이해심으로 해석해 보니 원래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다 보고 그 결과 중 일부만 공개하려고 했으나 기초 학력 미달이 너무 많아서 다 공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같다.

이게 설득력이 있나? 그냥 많은 학생들이 기초 학력 미달이더라 그래서 학생들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 이런 저런 식으로 더 교육 지원을 하겠다고 하면 안되는 이유는 뭐지? 왜 꼭 지역별 분포까지 밝혀야 되는 거지?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예산 관계자만 보고 그냥 낙후 지역에 더 지원하면 안되나?

표집 평가의 한계를 지적한 문장은 더 이해가 안된다. 학부 때 몇 과목 들은 것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통계"라는 단어가 학과 이름에 들어 있는 과를 졸업한 사람의 초보적 식견으로 보아도 이런 규모의 모집단을 적절한 표집 평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학생들의 성적이라는 것이 워낙 민감한 것이어서 표집 평가 과정에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응답자가 정확하게 응답하기 힘든 민감한 사안(예컨대, 첫 성 경험에 대한 설문)에 대한 통계 추출을 위한 기법도 이미 통계학자들은 오래전에 준비하고 있다. 모르면 물어서 해결하면 될 일이지 전국의 초딩 중딩 고딩들을 일제고사에 떨게 하고 이게 반대하는 열혈 교사들을 교단에서 밀어낼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더 곤란한 것은 이 결과를 놓고 뭘 어떻게 할 거냐 하는 점이다. 교과부 관계자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자.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많은 학교를 집중 지원해 전체적인 학업 성취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게 교육당국의 생각입니다.
옳커니. 교육 환경이 열악하여 성적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시골이나 도시의 빈민 지역을 도와준다는 얘기로구나. 뭔가 좀 제대로 굴러가려나 했는데. 알고보니... 오해야. 어절씨구. 오해야. 잘도 논다. 오해야... 에헤 에에 오해야~~~
서울시 교육청은 앞으로 학력평가에서 상위 3% 안에 든 학교 교장에게는 승진 혜택과 성과급 등을 주기로 했습니다. 반면 하위 3%의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줄 방침입니다.
학교는 지원하고 교장은 불이익?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뻔하지 않나? 일제 고사를 치는 날 일정 성적 이하의 아이들의 괜히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배탈이 나서 결석을 하게 될거다. 그래서 좋은 성적 나오면 우리 교육이 발전하고 우리 인력이 경쟁력이 생기는 건가? 아니면, 차라리 단축 수업을 하고 애들을 일찍 학원을 보내 뺑뺑이를 돌려서 성적을 올리면 공교육이 살아난다는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이런 정책이 우리의 삶 전반에 미칠 영향이다. 왜 강남 집값이 비싼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원이 강남에 있기 때문이다. 강남 8학군 열풍이 강남의 집값을 결정한다는건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그런데 이제 전국 모든 지역의 성적이 공개되었으니 (그리고 앞으로는 아예 학교 단위로 공개를 하겠다고 하니) 학군의 서열화 학교의 서열화가 그 지역 집 값의 서열화로 이어지고 부동산 광풍을 불러 일으킬 것은 보이지 않는 건가?

현재의 일제고사와 이의 공개는 곧바로 (1) 학교간 차별의 공식화 --> (2) 대학 입시에서 평준화 파괴 --> (3) 학군간 차별의 심화 --> (4) 지역간 주택 가격 격차의 심화 --> (5) 지역간 빈부격차의 심화 --> (6) 전국토의 비균형적 발전의 심화로 --> (7) 발전의 차이에 따른 부동산 불로 소득의 증대 --> (8) 부동산 투기 광풍 으로 이어질 것이 보이지 않는가? 바람 불면 통 장수가 돈을 번다는 식의 무리한 비약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현 정부의 정책이 어째 자꾸만 부동산 투지 광풍을 일으켜 경제를 살리자는 (누구의 경제?) 것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심히 걱정된다.

교육 문제는 교육 문제 답게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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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9.01.09 11:25
미네르바가 구속되었다. 죄목은 허위사실 유포. 그가 쓴 여러 글 중에서 지난 연말의 "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이라는 글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글에 대하여는 애초에 미네르바의 글이 아니라는 주장 (맞춤법이 틀린 곳이 많고 말줄임표 등 미네르바가 평소에 쓰지 않던 표현이 있는 점 등) 이 있으나 구속이 된 마당에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정말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해당 글과 그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다음의 희망터글지기님의 글에서 정리되어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미네르바는 금융기관 등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주장을 했는데 정부측은 금지시킨 적은 없고 협조를 구했을 뿐이라고 한다.

뭐가 허위라는 얘기인가?

다른 얘기를 비유해서 생각해보자. 위층 애기들이 밤늦게 쿵쾅거려서 그 집 아주머니께 "저녁에는 애들이 뛰는 것을 금지시켜 주십시요"라고 얘기했다고 하자. 그럼 나는 위층 애기들 뛰는 것을 금지시킨 것인가 그냥 협조를 구했을 뿐인가? 협조를 구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금지시킨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의 미네르바의 글을 보자.

"...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 ..."

정부가 금지시켰다고 하지는 않았다. 만약 정부가 정말로 금지시켰다고 하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

"...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긴급 공문 전송 ..."

왜냐하면 미네르바의 표현은 금지의 주체가 각 금유기관 등이 되는 것이고 후자의 표현은 그 주체가 정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네르바의 표현만 놓고는 "정부가 금지시켰다 주장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고 정부가 협조를 구한 사실은 있으므로 미네르바의 글은 허위주장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금지시켰다고 표현 했어도 그게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희망터글지기님의 해석처럼 낚시 또는 심지어는 패러디일 수도 있다. 그런 것 까지 다 허위사실 유포라고 구속한다면 검찰은 너무 일이 많아 질 것 같다. 혹시 이걸로 일자리 창출을 하려는 건가?

이러한 무리한 구속을 놓고 다음의 아고라CSI님은 치밀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번 건은 두고두고 정부의 실책으로 남을 듯 하다. (혹시 정부의 실책이 아니라 치적이 되면 나도 허위사실 유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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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2.27 11:28
우리 엄마는 좋은 음식 드시고 나면 늘 "교동 최부자가 눈 아알로 빈다" 고 하셨다. 우리 나라 부자의 상징이라고 할 경주 최부자가 눈 아래로 보인다 즉 깔보인다는 뜻이니 세상에 아무런 것도 부러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주 최부자를 널리 유명하게 만든 말은 따로 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최부자집의 가훈 중 한 줄이란다. 실제 흉년이 들면 곳간을 헐어 사람들을 먹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가훈을 갖게 되었을까? 한번은 큰 흉년이 들자 최부자집에 도둑떼가 들었다. 그 도둑떼는 한자말로는 명화적 우리말로는 불켠당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밤에 불을 밝히고 다니며 도둑질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도둑들은 누구일까? 교통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옛날이고 보면 그 도둑들은 다름아닌 그 동네 인근 사람들 중 더이상 먹을 것이 없어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를 알게된 최부자는 이웃과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얘기다.

오늘 뉴스를 보다가 참으로 맘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수출보험과 보증 규모를 170조 원으로 대폭 늘리고, 수출보증에 문제가 생겨도 고의가 없으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수출 드라이브로 경제를 살리려 하나 봅니다. 어쩌면 우리 원화 가치가 땅에 떨어진 지금은 수출을 할 수 있는 호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가 수출 드라이브로 경제를 일으킨 경험이 있으니 그런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런 것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어떤 면에서는 그럴 것입니다. 정말로 수출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무역 수지는 엄청나게 개선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온 나라에 달러가 넘쳐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여러 지표가 얘기해 주듯이 우리나라는 이미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아무런 경제의 기반이 없던 시절에는 가발 만들고 미싱 밟고 타이어 만들어 수출을 늘일 수 있었고 도시로 밀려나온 많은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경쟁력없이 수출하는 품목의 생산은 이미 중국, 베트남 등지로 옮겨 갔거나 이주 노동자들의 몫이고 기술경쟁력이 있는 분야의 수출은 결국 재벌의 배를 불려줄 뿐 고용의 증대나 노동자 삶의 향상이 아니라 경쟁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외주화 비정규직화로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수출 늘어나봤자 서민 생활에는 아무런 개선이 없습니다.

정부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부자들이 돈이 많아지만 소비를 할거 아니냐. 그래서 재벌을 더 부자 만들고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돈이 돌고 경제가 살아난다. 부자만을 위해 연일 쏟아져 나오는 감세 법안은 그 논리의 연장선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감세 논리는, 감세는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고 그 결과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세할 경우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일종의 가설에 불과하다. 이 가설이 현실화할 것인지 여부는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 감세정책이 전면화된 경우는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였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전면적인 감세정책을 단행하였다. 감세 결과 재정수입이 감소했음에도, 재정지출은 오히려 늘어나 재정적자가 확대되었으며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게 되었다. 국채 발행은 이자율을 상승시키고 민간부문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out)를 가져왔다. 감세 결과,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났지만, 투자는 오히려 위축되어 실물경제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고 이는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대규모 쌍둥이 적자 구조(경상적자 + 재정적자)가 고착화되어 80년대 후반 미국 경제를 암흑기로 몰아갔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부자들은 돈이 많아지면 돈놀이하지 경제를 돌리는데 쓰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어느 쪽의 경제 자문을 맡은 경제학자도 이제는 감세를 얘기하지 않는다.
"괴짜 사기꾼들"
부시의 경제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2003~2005년)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자신의 경제학원론 교과서 초판(국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원론 교과서이기도 하다)에서 감세를 외치는 공급경제학파를 그렇게 불렀다.
요즘 새삼스레 케인스가 인기란다. 한 때는 완전히 찬밥 신세이더니 이제는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이게 위대한 케인스 학파의 이론이란다. 미친다.
이들이 말하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냥 ‘정부가 나서서 돈 푸는 게 케인스 경제학’이라는 단세포 사고방식을 금세 읽을 수 있다. 정부가 혈세를 털고 국채를 잔뜩 져서, 욕심내다 빚더미에 앉은 은행에 무작정 퍼주고서는 되레 대출 좀 많이 해달라고 싹싹 비는 것이 ‘금융정책’이란다. 만년 적자에도 경영 혁신 없이 버티다가 망해버린 자동차 기업을, 그것도 채권·주식 소유자들부터 살려주는 것이 ‘유효수요 정책’이란다.
그런게 아니거든요. 이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딴 데를 풀어야 되거든요. 보자구요. 경기가 나쁘면 돈 구하기가 어렵고 돈놀이 하는 사람들은 신난다. 부자들은 경기가 좋던 나쁘던 먹을거 안먹고 쓸거 안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자주하는 얘기지만 부자들은 근본적으로 과소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써도 그 보다 더 버니까) 그러니까 부자들에게 극심한 불경기는 더 많은 불로소득을 올리면서 잉여 소득으로 싸진 물가를 누리는 호기일 뿐이다. (아마 IMF때 현금을 은행에 넣어둔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감할 거다.)

그렇다면 경기에 따라 소비가 바뀌는 사람들은 누군가? 서민과 중산층이다. (모든 당이 대변해 준다는 바로 그들 바로 우리 말이다.) 이 사람들은 경기 나쁘면 소비를 줄인다. 외식 줄이고 옷 덜사고 병원 덜 가고 막판에는 애들 학원까지 줄인다. 불황은 서민과 중산층의 지출을 옥죄고 이는 그들에게 재화를 팔아 먹고 사는 또 다른 서민과 중산층의 수입의 물꼬를 틀어막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돈을 쓸 수 있게 길을 터주어야 경제는 살아난다.
헨리 포드는 1915년 어느 날 포드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두배로 올려줬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급 5달러’였다. 포드는 “내가 고용한 노동자들도 포드차(모델 T)를 구입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포드주의는 대량생산뿐만 아니라 ‘대량소비’에서도 자본 축적의 원천을 발견한 생산 시스템이었다.
포드가 착해서 월급을 올려줬을까? 택도 없는 소리. 소비자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공급자도 고달프다. 그래서 이 거대한 상생의 경제를 다시 시작하는 길은 서민 중산층이 돈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수출을 늘이는 것이 아니라 내수를 살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단 말이다.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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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2.17 22:56
모든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한줄로 줄을 세우는 일제고사. 이 일제고사를 보고 싶지 않은 학생들은 부모님과 상의한 후 시험 대신 수업이나 체험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교사들에게 파면과 해직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황당한 폭거에 대하여 MBC의 PD 수첩에서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으로 다루었다. (프로그램을 보려면 앞의 링크를 클릭. 강만수 장관의 오럴 해저드를 정리한 꼭지는 뽀나스) 혹시 시간이 없어서 못 보시는 분들을 위해 제일 인상적인 3대 장면을 캡쳐했다.

(1)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인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장본인의 말씀 -- 와 화끈하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한지? 그가 학원으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았다죠? 물론 말로는 무이자로 빌렸답니다. 공직자가 이권으로 얽힌 사업자들에게 이자 없이 거액을 빌린 것을 사실의 뇌물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쨌든 일제고사쳐서 전국 몇등인지 다 나오면 애들이 학원 안 가고 배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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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다면 문제를 일으킨 다른 교사들은 어떤 징계를 받았나요? (아무리 심각해도 그냥 몇달 쉬는 정도인데 이번에는 아예 다시는 교직에 설 수 없게 해직/파면을 했으니... 아무리 봐도 형평성을 잃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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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간의 자유권을 얘기하면서 왜 학생들 스스로 시험을 거부할 권리를 주지 않는지 그리고 학생이 거부했는데 왜 교사가 교단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질문하는 이 초등학생에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지요? 누가 그 눈물을 닦아주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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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1.19 10:30
국민여동생 문근영씨가 보여온 선행을 좌빨의 선전에 불과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모략이 인터넷을 어지럽히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에도 그 유치찬란함은 눈 부시다. 하지만 이 논란이 가라앉기는 커녕 일파만파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엉뚱하고 불길한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는 국민들의 입을 틀어 막고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집요하게 기울여 왔다. 사이버 모욕죄로 대변되는 인터넷 재갈 채우기는 인터넷 실명제 그리고 포털에서 불법 정보를 임의 삭제하는 것을 의무화 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일명 사이버 악법 3종 세트로 망라되기에 이르렀다.

그 외에도 국정원의 거의 무한정으로 확장하여 정치사찰까지 가능케 하는 국정원법 개정이라던가 여기에 테러방지법과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등 공포에 기반한 사회 통제를 노골화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터진 문근영씨를 둘러싼 악플 논란은 역설적으로 정부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이버 모욕죄 등을 네티즌들이 지지하는 사태를 빚고 있다. 하지만 악플을 처벌해야 한다고 얘기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 법이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걸 어떻게 보장하지?"

다음 아고라의 논객 '미네르바'의 절필 배후에는 살해 위협을 포함한 각종 압력과 그를 구속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식의 정부, 여당의 공격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하지만 문근영씨에 대해 갖은 악담을 해대는 지만원씨가 정부, 여당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불길한 느낌이 오지 않는가?

법 그 자체로서야 선의의 의도를 담고 있을 수 있으나 그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 법은 독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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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1.18 10:52
(퍼온 사람의 주1: 이 글은 서울대학교 이준구 교수님이 쓰신 글로서 허락을 받고 전재한 것입니다. 홈 페이지에는 PDF 파일 형태로 되어 있어 더욱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텍스트로 변환하였습니다. 변환하는 프로그램의 한계로 일부 띄어 쓰기 틀린 곳이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원문을 보시려면 이준구 교수님의 홈 페이지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퍼온 사람의 주2: 이 글은 종부세의 일부 위헌 판결이 나기 전에 쓰인 글입니다. 이미 판결이 낫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부세의 개편 방안은 정치권의 주요 이슈이고 세금과 민생의 관계를 생각하는 좋은 글이므로 여전히 읽을 가치는 크다고 할 것입니다. 종부세 판결 이후 작성한 이준구 교수님의 최근 글도 교수님의 홈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링크는 이전의 제 블로그 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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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종부세

1. 머리말

2007년도 우리나라 조세수입은 205조원이었고, 그 중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수입은 2조 4천억원이었다. 그 비중이 총 조세수입의 1% 남짓밖에 안되는 이 세금이 지금 우리 사회를 온통 들끓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이 세금을 내는 2%의 납세자가 마치 좌파정책의 순교자 라도 되는 양 사회정의가 온통 무너져 내린 것처럼 야단을 쳐대고 있다. 이보다 몇 배나 더 되는 사람들이 그날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나 보 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를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동안 ‘강부자 정부’라는 말만은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이 정부가 하 는 일을 보면 그런 말을 들어 싸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출 범한 정부라는 점만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포괄적인 감세조치, 그리고 종부세 무력화 시도를 보면서 이제는 이 말을 마음대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정부가 ‘부자들의, 부자들을 위한 정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이 명백하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기 안에 종부세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 정체 모를 불 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4년 반 동안 우리 사회, 경제가 얼마나 크게 뒷걸 음질 치게 될지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선거에 이겼다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 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만한 태도가 또 어떤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게 만들지 모른다. 이 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그들의 임기가 끝나는 날 우리는 역사의 시계가 최소한 20년 이상 뒤로 돌려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큰 흐름에서 볼 때 우리 현대사는 끊임없는 발전과 진보의 역 사였다. 사람 목숨이 파리만도 못한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선진국 못지않게 인권이 보장 된 사회로 바뀌었다. 혹독한 독재정치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남부끄럽지 않은 민주 국가가 되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안하무인격으로 설쳐댈 수 있던 시절도 모두 지나 갔다. 바로 이런 발전이 있었기에 우리 국민은 어려운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보수적 정부가 집권해 왔지만, 진보의 도도한 흐름은 끊임 없이 계속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한 진보적 개혁이 거의 모두 보수적 정부하에서 이 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제도 등의 사회복지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 이 전두환 정부 때였으며, 토지공개념이란 급진적 성격의 개혁안이 나온 것은 노태우 정부 때였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는 굵직한 개혁이 이루어 진 바 있다. 지금 이런 개혁안이 나왔다면 보수진영은 좌파의 책동을 막아야 한다고 난리를 쳐댔을 것임에 틀림없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좌파정책의 표상처럼 되어 있는 평준화교육을 도입한 사람이 바로 보 수진영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평준화의 틀은 그 뒤를 이은 보수적 정부하에서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실정 중 하나로 들먹여지는 대학입시 ‘삼불정책’의 기본골격도 실제로는 보수적 정부하에서 만들 어진 것이다. 진보적 정부가 평준화로 우리 교육을 망쳐 놓았다고 성토하는 것은 보수진영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중요한 점은 진보적 개혁이 우리 현 대사의 대세였으며, 보수적 정부들도 이와 같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와 같은 진보적 개혁의 도도한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는 데 열중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에 일어난 민심의 일시적 보수화를 등에 업고 마치 역사의 시 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양 밀어붙이고 있다. 그 동안 어떤 정부도 지금 처럼 대놓고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바 없다. 정부는 보수진영의 염원을 실천에 옮기려 한다고 말하겠지만, 힘 있고 부유한 사람만을 위한 정책이 진정한 보 수는 아닐 터이다. 만약 이것이 진정한 보수라고 강변한다면 국민의 지지는 한 순간에 물거 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종부세 폐지 시도는 이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역사 거꾸로 돌리기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종부세 폐지의 부정적 효과가 엄청 나게 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현재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역사 거 꾸로 돌리기 프로그램의 그 어느 것보다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통해 종부세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논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밝혀 보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조세, 그리고 그 부담의 공평한 분배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오해 도 바로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 세금 그리고 종부세에 대한 오해와 진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상이었던 꼴베르(J-B. Colbert)는 세금에 관해 다음과 같은 유명 한 말을 남겼다. “조세 징수의 기술은 가장 적은 비명을 지르게 만들면서 가능한 한 많은 깃털을 얻는 방식으로 거위의 깃털을 뜯어내는 것과 같다.” 정부가 세금을 걷는 행위를 멀 쩡한 거위에서 깃털을 뽑아내는 행위에 비유한 것은 세금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나쁜 인식 을 반영하고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세금 내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적의 침 입에 대해 의병으로 맞서 싸울 용의가 있는 사람조차 평시에 세금을 내라 하면 그리 기쁜 마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좋든 싫든 민주국가의 국민이면 누구나 납세의 의무를 기꺼이 져야 마땅한 일이 다. 세금을 걷는 정부가 부당하게 국민의 재산을 강탈해 가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에서 세금과 관련한 첫 번째 오해가 발생한다. 세금은 적게 낼 수록 더 좋은 것이라는 오해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이 모두 세금을 덜 내게 되면 정부가 제 공하는 서비스를 그만큼 줄이던가 아니면 정부의 빚을 늘려야 한다. 또한 내가 세금을 덜 내면 남이 정확하게 그만큼 더 내야만 한다. 세금을 적게 낼수록 더 좋다는 생각은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나온 오해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의 감세정책과 종부세 폐지론은 이런 오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세금을 깎아주 면서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양 생색을 낸다. 그러나 세금을 깎아주면 깎아준 만큼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사람이 되었든 세금 덜 내게 되는 만큼의 대가를 반 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 세금과 관련된 진실이다. 예컨대 종부세를 폐지해 세금을 깎아주 는 경우에는 종부세를 내지 않는 98%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만큼 자명한 진실이다. 정부는 국민이 이런 진실 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어느 때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다.

세금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소득에만 부과되어야 하고 재산에 대해서는 부과되지 말아 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재산에 대해 부과되는 조세가 현금흐름(cash flow)의 문제를 일 으킬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재산은 많지만 현금이 없어 세금을 내 기가 어려운 딱한 처지의 사람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재산과세를 부 당한 것으로 몰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현금흐름에 문제가 있다 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재산과세가 소득과세보다 더 바람직한 세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측면 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현금흐름의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창의적으로 대응한 다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조세부담의 공평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재산과세는 소득과세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공평한 과세의 원칙은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납세의무를 지우는 것을 요구 한다. 모두들 잘 알고 있듯, 어떤 사람의 경제적 능력은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 의해서도 결 정된다. 따라서 소득과세를 재산과세로 보완해야 비로소 진정한 경제적 능력에 따른 조세부 담의 분배가 가능해진다. 현재 징수되고 있는 지방세로서의 재산세는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과세의 원칙을 충실하게 구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현행 재산세제하에서 전국 각지에 여 러 채의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중과세를 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생각해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공평한 과세라는 측면에서 종부세 같은 재산과세가 갖는 장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다시 문제가 된 바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고소득층의 탈세가 유달리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소득의 정확한 파악이 힘들다는 사실을 악용하기 때문인데, 종부세 는 이와 같은 소득세의 문제점을 훌륭하게 보완해줄 수 있다. 소득을 감추기는 쉬워도 부동 산을 갖고 있는 것을 감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각종 편법을 동원할 수 있지만 아무 래도 소득의 경우보다는 감추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또한 재산과 관련된 세금은 지방세여야 하기 때문에 국세인 종부세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이다. 많은 나라들이 재산세를 지방세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어야 할 이론적 근거는 단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 단지 편의상 그런 체제를 취하고 있을 뿐이지 그래야 할 당위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지역간의 경제력 격차가 극심한 경우에는 재산과세 중 일부를 국세의 형태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종부세 도입 후 지역간 경제력 격차로 인한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 그 좋은 예다. 재산과세를 국세의 형태로 징수하면 큰일이나 날듯 떠드는 사람 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종부세가 재산에 대한 이중과세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마땅 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 또한 조세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정 부는 필요에 따라 이미 걷고 있는 세금에 가산세(surtax)를 부과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가 산세를 이중과세의 성격을 갖는다고 위법으로 규정할 수 없듯, 일정한 범위 안에서 똑같은 과세대상에 두 번 세금이 부과된다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세이론 어디를 뒤져 봐도 하나의 과세대상에 단 한 번만 과세해야 된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종부세가 부자들에 대한 약탈적 성격을 갖고 있는 주장 역시 명확한 근거를 결여하고 있 기는 마찬가지다. 정의조차 어려운 ‘약탈적’이란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선동적인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보수진영과 정부는 늘 집 한 채만 있는 은퇴자의 딱한 처지를 들먹거리지만, 그 범주에 속하는 사람의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종부세 부과 대상자의 60%가 다주택 보유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비율이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만약 정말로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구제하면 된다. 예 를 들어 주택 역모기지와 비슷한 방법으로 종부세를 부채로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주택을 팔 때 청산하면 현금흐름의 문제는 없어지게 된다.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아예 종부세를 대폭 깎아주는 방법도 있다. 지금 정부가 제 안하고 있는 고령자에 대한 종부세 감면조치가 그런 성격을 갖는 구제책이 될 수 있다. 이 처럼 종부세의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탈적 세금이기 때문에 폐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주장에는 부자들의 세금을 한 푼 이라도 깎아주려는 의도 이외의 다른 합당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소득세조차도 도입 초기에는 약탈적 세금이니 사회주의적 세금이 니 하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소득세가 완전하게 정착된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종전에는 내지 않던 세금을 갑자기 내게 되었을 때의 부담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조세제도를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없는 일이 고 보면, 새 조세의 도입으로 인한 일시적 혼란은 참고 견뎌낼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사 고해야 할 지식인까지 가세해 ‘약탈적 세금’, ‘세금폭탄’ 같은 선동적인 표현으로 종부세를 깎아내리는 데 동참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종부세를 주택관련 규제의 일종으로 오해하는 사 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규제(regulation)라는 것은 정부가 시장기구를 통하>지 않 고 민간부문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종부세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라든가 전매금지 규제와 달리 시장기구 혹은 가격유인을 통해 민간부문의 행위를 일정 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정책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규제가 갖는 일반적 문제점, 즉 시 장의 왜곡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주택관련 규제 완화 얘기가 나올 때 종부세도 함 께 엮어 완화 혹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주택관련 규 제가 완화될수록 종부세가 수행해야 될 역할은 오히려 더욱 커져야만 한다.

종부세는 기본적으로 교정과세(corrective taxation)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교정과세란 민간부문의 행위를 정부가 보기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사용되는 조 세를 말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석유류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던가 환경보호를 위해 오염 물질 배출행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교정과세 역시 민간부문의 자 유로운 선택행위를 교란한다는 문제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선택행위를 바람직 한 방향으로 교정하는 데서 나오는 이득이 교란에서 나오는 손실을 상쇄하고 남는다는 점에 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종부세가 갖는 문제점만 지적하고 교정과세로 서 갖는 순기능을 무시하는 것은 균형 있는 평가가 될 수 없다.

3. 종부세 폐지는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종부세가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뿌리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심정 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선거에 이겼으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좀더 신중하게 접근할 수는 없을까? 종부세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이의가 없다. 이 세상에 문제점 없는 완벽한 세금은 없을 테고, 그렇다면 종부세에도 당연 히 문제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거론하는 종부세 개정안은 단순히 문제점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거의 무력화시키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임기 중에 종부세를 완전 폐지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면 무력화의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종부세가 폐지된다고 할 때 이로 인해 발생할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으로 예상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주택가격 폭등을 막는 안전핀이 제거됨으로 인한 주택시장 불안정성 증대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것이다. 종부세 반대진영에서는 굳이 부정하고 있지만, 종부세의 주택가격 안정효과는 분명하게 발휘되고 있다. 최근의 주택 가격 하락추세가 전반 적인 경기침체와 각종 규제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부세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종부세 효과가 전혀 없었다면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이 소형 아파트의 가격과 거의 같은 비율로 떨어져야 한다. 종부세 과세대상인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이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종부세의 가격안정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종부세의 가격안정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여건이었다. 현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종부세를 흔들어왔기 때문에 과세대상자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자세로 유인에 반응하기를 거부해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종부세가 원래의 계획대 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것이 분명했다면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하락은 훨씬 더 빨리, 그리고 큰 폭으로 이루어졌으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투기적 목적으로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처분에 나섰을 것도 분명하다. 현행 종부세제도하에서 최고세율이 3%인데,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해 이 세율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10억짜리 주 택 하나에 매년 3천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아무리 집값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세금을 내고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너무 급격한 주택가격 폭락 역시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 지다. 그와 같은 거품 붕괴가 우리 경제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그리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주택가격 폭등을 막는 안전장치들을 너무나 빨리, 그리고 너무나 과격 하게 제거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다 할 부양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초조해진 정부가 더욱 과격한 부양정책을 쓸 가능성이 크다. 모든 정책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그 효과가 발 휘된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지금 쓰고 있는 부양정책의 효과가 어느 시 점에서 화산이 분출하듯 한꺼번에 터져 나올 때 우리 주택시장은 또 한 번의 큰 혼란을 피 할 수 없게 된다.

지금 당장 거품을 꺼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거품을 더 키우 지는 말아야 한다. 자신의 임기 동안의 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긴 미래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주택가격 폭등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 까지 뽑아놓으면 우리 경제는 주택시장발 폭풍에 주기적으로 시달리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 이다. 전혀 걱정하는 기색 없이 이런저런 부양정책을 쏟아놓는 정부를 보면 폭약을 갖고 노 는 어린애를 보는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된다.

종부세 폐지가 가져올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부자들에게서 덜어낸 조세부담을 중산층 과 저소득층에 떠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부세 폐지가 중산 층과 저소득층의 부담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은 내일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고 하는 것만큼 이나 분명한 일이다. 정부가 내놓은 종부세 대폭 감면안과 관련되어 이 부담 전가의 문제점 이 지적되자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사람 말이 다르고 저 사람 말이 달라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그 누구의 말도 이 문제에 대한 만족스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층은 종부세 감면으로 인해 줄어든 조세수입을 재산세를 더 걷어 메우겠다고 말했다. 재산세는 주택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내는 세금이니, 그렇다면 2%가 내던 세금을 나머지 98%의 사람에게 나누어서 지게 만드는 셈이다. 재산세로 부족한 조세수입을 메 울 경우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부담이 전가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 이 들끓자 정부의 다른 사람은 종부세 납부자의 재산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메우겠다는 말로 진화를 시도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뿐더러, 그럴 것이라면 왜 종부세를 감면해 주는지 모를 일이다. 종부세 내던 것을 재산세로 이름만 바꿔서 내면 기분이 더 좋아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또 다른 정부의 고위층은 재산세를 더 걷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더 웃기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말에서 국민을 속이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뻔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재산세를 더 걷지 않는다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더 커지지 않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 말이다. 종부세 감면으로 인해 줄어든 조세수입은 어떤 방법으로든 메워져야 한다. 재산세 를 더 걷지 않는다면 소득세든, 부가가치세든 어떤 세금의 형태로든 다 걷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98%의 사람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것은 전혀 다를 바 없다. 한 가지 남은 가능성 은 조세수입이 줄어든 만큼 정부지출을 줄이는 방법인데, 나머지 98%의 사람이 정부지출 감소로 인한 손해를 보게 되니 앞서의 경우와 아무 차이가 없다.

종부세 감면 혹은 폐지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 한 사실이다. 정부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이 명백한 사실을 뒤엎을 수는 없다. 정부로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부유층이 과도한 조세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아니면 부담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전가된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만약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자신이 없다면 종부 세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서슴없이 포기해야 한다.

4. 현 종부세 감면안의 문제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종부세가 약탈적 성격을 가진 세금이라는 데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다. 그러나 종부세를 납부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방향으로 종부세를 보완 해야 한다는 데 100% 동의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종부세를 보완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아니라, 종부세를 무력화함으로써 부자들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나아가 주택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문 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종부세를 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제해 준다는 점에서 볼 때, 과세대상 기준을 공시지가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 다. 그렇게 되면 과세대상자 중 58.8%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대 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여당 내부에서도 현재의 정부안과 관련해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특히 많은 것으로 보도되고 같다. 그러나 내 판단으로는 현재의 정부안 중 가장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과세대상자 수가 대폭 줄어든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의 비율이 비록 2%에 지나지 않지만, 그 중에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 이 소수라도 섞여 있으면 종부세를 반대할 좋은 명분이 생긴다. 정부와 보수진영은 바로 그 전략으로 종부세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대의 명분을 제거하고 종부세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는 과세대상자의 범위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현재의 정부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세율을 대폭 인하한 부분이다. 집 부자에게 집중적인 혜택을 몰아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세율의 대폭 인 하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율은 과세표준이 3억원까지 1%, 14억원까지 1.5%, 94억원까지 2%, 그리고 94 억원 초과시 3%로 되어 있다. 현 감면안에 따르면 6억원까지 0.5%, 27억원까지 0.75%, 그리고 29억원 이상은 1%로 대폭 낮춰지게 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 대폭적 세율 인 하가 종부세 무력화 작업의 핵심 중 핵심인 것이다. 주택을 몇 채씩 갖고 있는 부자의 >입장 에서 보면 앞에서 말한 과세대상 기준 상향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알토란같은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세율 인하 부분 때문이다.

세율 인하는 주택투기 억제와 이를 통한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종부세의 중요한 기능을 무 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 다주택 보유자에게 무거운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이 주택투기 억제의 핵심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솔직히 말해 주택을 다섯 채, 열 채씩 보 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세금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 면 그 많은 주택을 계속 끌어안고 가격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최고 세율 3%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테지만, 1%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일 것 이 분명하다.

현 종부세 감면안에 대한 비판이 과세대상 기준의 상향조정에만 그 초점이 맞춰져 있고 세율의 대폭 인하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간단한 계산만 해 봐도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름 아닌 세율 인하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여당이 여론에 부응한답시고 과세대상 기준은 올리지 않고 세율만 인 하하는 방식으로 감면안의 틀을 다시 짠다면 그것은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이 된다. 세금을 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집 부자들에게만 막대한 이득을 가져 다주는 결과를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헌재의 위헌결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안이지만, 세대별 합산방식을 개인별 과세 방식으로 바꾸는 것 역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누진세율 구조하에서 과세대>상 부동산을 반으로 나누어 부과대상으로 삼는 것은 집 부자들에게 생각 밖으로 큰 이득을 가 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조치 하나로 집 부자의 세금 부담이 거의 절반 수준 으로 떨어질 수 있다. 여당 일부에서 개인별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을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세력이 있는데, 그들의 저의가 어디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법률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위헌결정이 어떤 쪽으로 내려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위헌결정 결과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로서 내가 보는 상식은 이렇다. 종부세의 과세대상이 세 대여야 하느냐 아니면 개인이어야 하느냐의 여부는 부동산을 취득하고 처분할 때의 의사결 정이 누구에 의해서 내려지느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예컨대 부부가 함께 의논해 의 사결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세대별 합산과세가 타당성을 갖는다. 이와 반대로 각 개 인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면 개인별 과세방식이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양성평등이란 관점에서 볼 때 개인별 과세 방식이 옳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주장이 양성평등의 근본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본다. 양성평등이라는 것을 단지 세금 깎는 도구정도로나 사용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양성평 등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 부동산 취득과 처분에 관련된 결정을 배우자와 상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느 쪽이 적절한 과세대상이냐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우리 사회가 상식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말한다면, 현재 제시된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세율을 대폭 인하하겠다는 부분이다. 최고세율을 현행의 1/3수준으로 대폭 낮 추겠다는 것은 종부세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조치는 정부가 늘 부르짖어 오던 딱한 처지의 종부세 납부자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직 집 부자 에게 막대한 혜택을 가져다주는 효과만 낼 뿐이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세대별 합산 방식을 개인별 과세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실질적인 개선효과를 기대 할 수 있는 것은 과세대상 기준의 상향조정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5. 맺음말

종부세 폐지를 부르짖는 사람은 그것이 정치논리의 소산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또한 이 세금에는 부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녹아 있다는 과격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종부세를 도입한 사람의 속마음에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아 가 그것의 도입이 경제논리는 배제된 채 정치논리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인지의 여부도 잘 모른다. 이런 것들을 잘 모르기도 하려니와 알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점에서 종부세가 바람직한지의 여부를 평가할 때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조세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오직 그것이 공평하며 효율적인 조세인지의 여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종부세는 부모를 잘못 만난 탓에 태어난 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안락사의 위협에 직면 해 있다. 내가 보기에 종부세 그 자체에는 바람직한 측면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단지 참여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종부세의 본 질, 즉 이것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어떤 동기에서 도입되었는지 같은 애매하고 지엽말단적인 논의만 판치고 있다. 특히 종부세가 부자들을 괴 롭히려는 동기에서 도입된 세금이라는 이념적인 색칠로 본질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생산적 인 논의가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경제적 효과 그 자체만 놓고 볼 때 종부세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 주택가격 안정이란 측면에서 볼 때 그 어떤 주택관련 규제보다 더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평 가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시장기구에 의해 투기억제 효과를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대적 으로 적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 아 니라 줄곧 폐지 논쟁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종부세의 효과가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발휘되 지 못한 상황이다. 만약 현재의 기본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정착된다면 괄목할 만한 주택 가격 안정효과를 가져올 것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조세부담의 공평한 분배라는 측면에서도 다른 어떤 조세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 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조세제도는 간접세의 비중이 높아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과세가 기본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고작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누진적 소득세 정도인데, 이것 역시 고소득자의 탈세 때문에 기대만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봉급생활자의 유리 지갑’이라는 말이 있듯,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조세부담을 지는 불공평한 기본 구도가 계속 유지되어온 것이다. 최근 들어 고소득자의 탈세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 지만, 아직도 공평한 조세부담의 분배와는 거리가 먼 형편이다.

이와 같은 불공평성을 획기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이 바로 종부세다. 종 부세는 최상위 2%에 집중적인 과세를 함으로써 소득세의 허점을 훌륭하게 메워줄 수 있다. 만약 총 조세수입의 상당 부분을 이런 방식으로 부과한다면 ‘부자 괴롭히기’라는 불평이 당 연히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중이 고작 1%에 지나지 않는 세금을 최상위 2%가 낸다고 해서 특별히 불공평하다고 말해야 할 이유는 없다. 최상위 계층이 고작 이 정도의 조세부담 을 지는 것을 두고 약탈적 세금이니 세금폭탄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 고 생각한다.

공평과세라는 관점에서 종부세가 갖는 최대의 강점은 아무리 세무사를 동원해 보았자 납 세액을 한 푼도 줄일 수 없다는 데 있다. 고소득층이 주로 내는 종합소득세나 상속세는 세무사가 얼마나 재주를 피우느냐에 따라 납세액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 반면에 종부세는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기 전에는 납세액을 줄일 수 없다. 역설적인 점 은 종부세가 갖는 바로 이 장점이 이를 한사코 반대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종부세 부담을 쉽게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면 집 부자들이 그렇게 열렬한 반대투쟁에 나서지 않았을지 모른다.

종부세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의 재정능력 격차를 메워주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현행 재산세제도하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다. 종부세 수입 전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현 체제는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해 주는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정부는 종부세 폐지 후 발생할 문제에 적절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은 말하는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돈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기득권을 선뜻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부세를 궁극적으로 재산세와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경제이론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하등의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목적이 부자들의 조세부담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데 있다면 모를까, 그 이외의 합리적 이유를 하나 라도 생각해 보려 해도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부유층의 조세부담을 중산층과 저소득 층으로 전가시키지 않는 한, 재산세로 통합한다 해도 그들이 지적하고 있는 종부세의 문제 점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산세로 통합하는 것 그 자체는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장점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왜곡된 여론 때문에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는 종부세의 슬 픈 운명이 가엽기만 하다. 나는 지금 당장 정부가 종부세 무력화의 시도를 접어야 한다고 부르짖고 싶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종부세를 폐지하고 나면 우리 조세제도의 효율성과 공 평성에 심각한 후퇴가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나 역시 종부세제도의 보완이 필 요하다는 데는 흔쾌히 동의한다. 그러나 보완한다는 핑계로 이것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려 는 저의가 엿보이기 때문에 걱정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비록 종부세 폐지라는 발판을 딛고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좀더 냉정하고 사려 깊은 자세로 종부세의 앞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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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1.17 10:49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이은 북미간의 직접 대화 가능성으로 통미봉남에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고 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G-20 정상 회의가 구체적인 성과없이 기존의 IMF, 세계은행 체계를 재신임하는 것으로 끝나면서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더 큰 우려가 퍼져나가고 있으니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 규제 완화가 그것이다. 논리는 간단하다. 당장 경제가 어려우니 가장 경쟁력이 있는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서 발전을 이루고 그 성과를 지방에도 나눠주겠다는거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그렇다. 그 놈의 "파이 크기를 먼저 키우자"는 얘기 60~70년대 지겹게 듣지 않았나? 일단 민주화니 인권이니 좀 미뤄두고 농촌이니 쌀농사니 미뤄두고 일단은 성장을 하면 그 성과를 나눠먹자고 하더니. 성과를 나눠먹을 때가 되니 금융위기로 아직은 때가 아니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이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게 뭔가? 경제 발전? 일부 대기업의 배불리기? 아니다. 정치인들의 유일한 목적은 "다음에 또 당선되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 후보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어떻게 유리한 국면을 지금 갖고 있는 권한을 이용해서 확보할 것인가가 유일한 관심사다.

그렇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이 어디인지 보면 그냥 이해가 된다. 한나라당은 수도권과 영남 지역의 압도적인 지지를 업고 대통령과 다수당을 확보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지역을 그냥 버릴 수 있는가? 아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서 보듯이 수도권과 영남에서 어느 정도 득표를 하고 충청권은 좀 많이 확보 그리고 호남에서 거의 싹쓸이를 한다면 한나라당의 재집권은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두 단계 전략이 필요하다.

(1) 기존 표밭 다지기. 수도권에 규제를 완화하고 영남 지역에는 퍼주기 정책을 집중함으로써 기존 표밭을 확실히 다진다. 아직 영남 지역의 퍼주기 정책은 표면화 되고 있지 않지만 내년도 전국 도로 공사비의 40% 정도가 포항에 집중된 점은 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2) 호남 충청 갈라놓기. 어느 정당이건 호남 충청의 지지를 모두 끌어낸다면 역전의 가능성이 잠재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민주당은 호남, 선진당은 충청으로 발을 묶어 놓고 그리고 창조당은 뿌리를 잘라야 한다. 민주당이 호남에 고착되는 현상은 저절로 형성되고 있어 손댈필요도 없고 선진당은 기조에 있어 한나라당과 같으므로 창조당과 손잡고 다니는 것만 잘라주면 된다. 사실 선진당과 창조당이 손을 잡은 것은 원내 교섭단체가 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한 것인데 이것만 풀어주면 된다. 그래서 원내 교섭단체가 될 수 있는 요건을 선진당의 의원수에 맞춰 재조정하려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다.

만약 현재와 같이 민주당이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고 호남 지역당으로 머물러 준다면 한나라당의 천하삼분지계는 완성되는 것이고 이는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한나라당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호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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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1.12 12:01
1부: 종부세와 소득세 논란

종부세를 놓고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합헌, 위헌을 떠나 종부세가 가지는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종부세가 이중과세 또는 징벌적 과세의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 세금은 소득에 부과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한다.

맞는 얘기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라는 말은 옳은 얘기다. 하지만. 그건 소득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에만 그렇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종부세를 내는 사람들을 살펴본 결과를 잠시 인용해보자.
소득 4000만원 이하 가구는 평균 3.4채의 주택을 보유했다.

그러나 일부 샘플을 분석한 결과, 주택 24채를 보유한 A씨는 연간 소득을 달랑 ‘7’원으로 신고했다. 주택 12채를 보유한 B씨는 연간 소득이 1048원, 주택 5채를 신고한 C씨는 연간 소득이 ‘0원’이었다.

또 주택 40채를 보유한 D씨는 연간 소득 147만원, 39채를 보유한 E씨는 85만8000원을 연간 소득으로 신고했다.
우리 집 부자들 경제 교육부터 시켜야 겠다. 집이 40채가 있는데 연 150만원을 벌고 있으면 한달에 10여만원. 전화 요금 전기 요금 내면 쌀 사먹을 돈도 없다. 차라리 집 몇 채를 팔아서 은행 이자 소득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아지면 그 집들을 놀리지 말고 하다 못해 사글세라도 받으면 어떤가?

집이 몇 십채씩 있으면서 소득이 거의 없어서 소득세를 낼 수 없고 종부세를 낼 수 없다는 말을 정말로 믿으라는 건가? 누가 믿는가? 아무도 안 믿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런 이명박 정부의 엉터리 통계가 종부세는 위헌이라는 증거로 헌법재판소에 일방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꼴입니다. 그것도 강만수 장관이 밝힌 대로 재정부의 세제 실장과 담당국장이 주심재판관이든지, 헌법연구관이든지 열심히 접촉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게 뭐하는 코메디냐? 우리 나라에서 월급쟁이를 제외하고는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은 저녁 뉴스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수십년이 지났다. 월 수입이 수십만원도 안된다는 의사, 변호사, '사' 자 달린 사람들 얘기는 지겹다.

고소득 자영업자들 그리고 집부자 땅부자들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한 종부세 대신 소득세가 더 제대로 된 세제라는 주장은 공염불이요 그야말로 비현실적이고 반사회적인 주장일 뿐이다.

2부: 대학 자율과 3불 정책

고려대학교가 특목고를 우대하는 전형을 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이는 명백히 교육과학부의 3불정책에 반하는 것이며 대학교의 전형을 관리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헛점을 드러내고 있다. 고려대의 이기수 총장은 한 술 더떠서 "대입자율화, 그에 응당하는 권리줘야"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렇다. 맞는 얘기다. 언제까지 정부가 대학의 입시에 세세한 부분까지 쥐고 흔들수는 없다. 대학은 그 대학의 특성에 맞는 학생을 뽑는 권리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고려대 또는 그 외 일부 대학에서 시도하였다고 알려진 바와 같이 특목고 우대, 본고사형 문제 출제를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목고 열풍은 특목고를 가기 위한 사교육 열풍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국제중도 결국은 특목고를 가기 위한 포석이며 이는 초등학교부터 심지어는 유치원에서부터 사교육의 광풍 속으로 아이들을 몰아넣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 우리 아이들이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들이 되고 세계적으로 학술을 주도하게 된다면 할 말 없다. 그런가? 과연 열두시 한시까지 아이들을 학원에 몰아 넣고 문제 풀이 훈련을 시킨 결과 그렇게 되었는가? 왜 고등학교때까지 세계 최강의 학업 성취를 보이는 아이들이 입학한 우리의 대학교들은 세계 100위권 주변에서 빌빌거리는가?

대학의 자율이라는 명분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실질 즉, 과도한 사교육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아지지 않는 학술적 성취라는 것을 고려하여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을 받아들여서 취업 준비나 시키는 대학이 무슨 낯으로 자율을 얘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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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0.23 13:52
환율 그래프 속에 옮겨두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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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환율 그래프에 빨간 전봇대가 떴습니다. 대통령이 거시적인 그림은 안보고 전봇대나 뽑으러 다니고 IMF 때와는 달리 괜찮다고 하다가 며칠 안있어 그보다 더 위기라고 하고...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고나 있는지 아는 건지. 시장 시장 내세우더니 막상 세금 퍼다가 망할 기업 살릴 연구나 하고 부자들에게는 세금 팍팍 깎아주면서 서민들에게 혜택 돌아갈 감세 정책은 반대하고... 잘 한다.

(주: 환율 그래프의 전봇대 얘기는 어느 게시판에서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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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0.21 09:44
이봉화 차관의 쌀 직불금 부당 수령으로 시작된 일이 공무원 4만명이 타먹었네 대부분이 부재 지주들이 타갔네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은폐했네 하면서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하긴 우루과이 라운드로부터 시작해서 애시당초 타들어간 농부들의 마음은 WTO가 어쩌고 추곡수매가 어쩌고 쌀 시장 개방이며 의무 수입량이 어쩌고 절대 농지가 어쩌고 하면서 완전히 하얀 잿더미가 되어 더이상 탈 것이 없으니 이번 사태에도 농민들의 소리는 오히려 크게 들리지 않는다.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일에 분통을 터뜨릴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탓이다.

한편, 이 사태를 맞이하여 정치권은 뭘 하고 있나? 오늘 아침 다음의 뉴스 화면을 캡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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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어제 조건부로 직불금 국정 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속셈이 서로 다르다. 여당은 이전 정권이 직불금 제도를 엉터리로 만들고 그래서 엉터리로 운영된 실태를 감사 결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폐했다는 의혹을 캐자는 것이고 야당은 현 정부 고위 공직자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부당 수령을 조사하자는거다.

이 공방을 놓고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아나? 내가 간단히 정리해줄께. -- G R 을 해라.

이 사태는 간단하다. 농지는 기본적으로 농민 외에는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직불금은 쌀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에 대한 보상금이다. 따라서,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허위 경작 증명서를 내고 직불금을 수령한 사람들은 불법 행위를 한 것이고 모두 잡아서 감옥에 쳐 넣으면 된다. 마 침 표 !

그 외 모든 공방은 헛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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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0.11 11:28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씨에게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팔고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저가에 배정함으로써 삼성 그룹의 막대한 자산에 대한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준 사건에 대하여 법원의 2심 판결에서 무죄가 나왔다. 삼성 특검이 항소를 함으로써 대법원에 가서 최종 판결이 나겠지만 현정부의 "비즈니스 후렌드리" 정신과 그동안 법원이 보여온 법 해석의 놀라운 창의력에 비춰볼 때 결과는 뻔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무죄가 된 논리가 법원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스런 법리인지 몰라도 평범한 일반인이 보기에는 참으로 해괴하다.
재판부는 "두 사건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애초 이 목적으로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헐값 발행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MBC 뉴스)
얼른 이해가 안될 것 같아 풀어서 얘기하자면, 헐값에 주식을 판 것이 유죄냐 무죄냐 하는 것은 그 목적(!!! sic !!!)이 다른 주주에게 손해를 입히려는 것이 아니라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라는거다. (언제부터 법이 행위가 아니라 목적을 처벌 대상으로 했던가?)

비유해서 얘기하자면, 지나가는 사람을 마구 패줬는데 돈을 뺏으려고 팬 거면 유죄고 체력 단련 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면 무죄라는거다. 이런 식이라면 세상에 감옥갈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날도 춥고 심심해서 산에 불 졸 질러봤어요 (무죄!!!)
새로 산 칼이 잘드나 안드나 실험하느라 한번 찔러봤어요 (무죄!!!)
하지만,...

이런 법리는 재벌에만 적용되고 "평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우리 재판부는 아들 팬 사람들을 조폭 동원해서 잡아다가 땅에 묻은 한화 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아들이 폭행을 당한 데 대해 아버지로서 부정이 앞선 나머지 사건을 저지르게 됐고"라고 하며 사회 봉사 명령을 내린바 있다. 물론 지난 815 특사로 사면, 복권 즉 그나마 없었던 일로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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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얘기한다 2008.10.10 10:46
아침 나절에 난데없는 스팸성 문자가 날아왔다. 모 상호저축 은행 적금 이자를 7.85%로 올리니 예금하란다. 돈이 어지간히 말랐나보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내려봤자 시중 금융 기관들은 금리를 올리는 현실... 할 말이 없다. 어제 한국은행이 금리도 대폭 인하하고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해서 시장이 좀 안정되는 것 처럼 보이더니 하루도 못가서 뒤집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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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의 뉴스 화면)


취임 초 그 많은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쇠고기 수입까지 해가면서 미국에 잘 보이려고 애썼는데 미국은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쁘다. 연내 FTA 비준을 위해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해야 한다고? 참나 뭐라 할말이 없다. 찾아오라는 검역 주권은 안 찾아오고 어디 10년전 망해먹은 경제 유령을 찾아왔냐... 애고 우리 국민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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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라는 거나 제대로 찾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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