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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3 :: 이명박의 정책은 옳다
세상을 얘기한다 2008.01.03 11:11
이명박 당선자의 정책을 놓고 인터넷이 오랜만에 훈훈해지는 걸 느낀다. 날도 추븐데 좋은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책을 얘기하면서 그 정책 자체의 시시비비를 따지는데 내 결론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세상의 모든 정책은 옳다".

일자리도 만들면 좋은 것이고 경제도 성장하면 좋은 것이고 환경도 깨끗해지면 좋은 것이고 아이들이 공부에 찌들리지 않아도 좋은 것 이고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치료 받는 것도 좋은 것이고 북한과 화해, 협력을 길로 나가서 통일을 이루는 것도 좋은 것이고 다 좋다. 심지어는 판문점에 유엔 본부를 유치하는 정책은 더 좋은 정책이다.

그러면 뭐가 문제냐?

좀 지나간 얘기를 해보자. 황우석 박사가 세간의 떠들썩한 얘기 소재가 되기 몇년 전 부터 과학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한편으로는 생명 윤리라는 장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는 사회적 합의 틀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논의였고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차례 공청회, 토론회가 열리고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많은 논쟁/논의가 오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과학 그것도 줄기세포 그것도 난자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몰빵을 하는게 좋은 전략이냐를 놓고 많은 불만이 있었다. 정말로 잘 되어서 황박사의 연구가 우리에게 (여기서 우리는 누구?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지...)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 정책을 놓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실은 과학이라는 것이 그 근저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과학을 특히 기초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탁상 공론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링크"라는 책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이라는 물리학 현상과 당나귀와 같은 피투피 파일 공유 또는 싸이 홈피가 같은 이론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과학의 상호 연관성은 한 분야에 몰빵한다고 생기는게 아니다. 과학의 진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하여는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너저분할 정도로 길게 설명했으므로 여기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쿤이 과학의 발전이 몰빵을 통해서 이뤄진게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얘기한 것 같다.

(뭔 얘기를 하다가 쿤 까지 갔냐.... 원래대로 돌아가자.)

요약하자면 세상에는 중요하고 올바른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것들 중 몇 개만 열심히 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럼 그걸 어떻게 다 조사해서 챙기냐? 뭐,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이 세상에는 또 그 만큼 많은 연구자들이 있어서 세상의 여러 현상을 공부하고 대안을 내놓고 있다. 이들에 대하여 적절한 비율로 지원을 해주면 될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적절한" 비율을 알기 어렵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라면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의를 고찰하는 사업과 해송의 서식지 변화를 관찰 하는 사업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할 것인가? 알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원래 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정치다. 모든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더 섹시하게 보이기 위하여 노력한다. 더 유명하고 더 인기 있는 연구가 더 내실있는 연구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연구자들은 연구에 더 많은 노력을 들이기 보다는 그 연구의 인기를 높이는데 시간을 더 많이 들인다. 그 결과로 정책결정자가 이해하기 쉬운 연구가 더 중요한 연구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비유로 얘기하는 것은 그만하고 정책 얘기로 돌아가자.

주어진 권한과 예산을 가지고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좋은 일 중 어떤 것은 포기하거나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일과 북한에 대한 상생 정책은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동시에 추진될 수 없다. 대학에 선발의 자유권을 주면서 아이들을 학원 지옥에서 구하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누군가 어떤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 일이 좋냐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고 (왜? 세상의 모든 정책은 옳다고 했잖어) 그 일을 "함으로써 하지 않게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한다. 문제는 하는 일은 명문화 됨으로써 실행되지만 하지 않는 일은 명문화 되지 않음으로써 실행된다는데 있다. 즉, 씌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또는 지워진 것이 무엇인지를 얘기하지 않는 정책 토론은 모두 허망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재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을 놓고 옳네 그르네, 실효성이 있네 없네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이데롤로기적 공세 (다르게 얘기하자면 명빠 vs. 명까의 쓸데 없는 입씨름) 에 불과하다. 정책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그 정책의 그늘에 누가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지 후라시 켜서 비춰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가 원래 하려던 얘기다. 으.... 무쟈게 돌아왔네. 무자년이라 그런가... 으... 썰렁 개그)

(1) 그늘을 살펴보는 것은 어렵다. 어둡기도 하거니와 이런 것은 연구 펀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식품회사들은 천문학적 돈을 들여 식품이 가진 영양과 효능을 증명하는 연구에 투자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연구에는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는다. 부작용 관련 연구하는 학교와는 아예 모든 연구 펀드를 끊기도 한다.

(2) 그늘에 가린 사람들은 말이 없다. 정치인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정책 중의 하나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이다. 이들은 아무리 도와줘봤자 인기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그들은 너무 쇠약해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거나 돈 몇 푼에 표를 파는 사람들이거나 설령 누구를 지지한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선전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정책을 그 정책 자체로만 평가하게 되고 이는 항상 무의미한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끝나고 만다.

(사족) 지난 연말에 대전 지역에서 빈민 구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송년회에 참석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들은 얘긴데, 이명박 당선자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복지 단체들이 많단다. 참여 정부의 복지 정책은 자활형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고 길을 터주는 사업이다. 하지만, 그 이전의 모든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시혜형 복지를 얘기한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복지 단체들 입장에서 보면 시혜형 복지를 하게 되면 결국 자기들이 정부 예산으로 시혜를 베푸는 입장이 되므로 지역 사회 내에서 힘이 커지고 폼도 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일 뿐이다.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은 낚시를 가르치는 것 보다 돈도 덜들고 폼도 난다. (악화는 항상 양화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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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