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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15 :: 나는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왜 울었나?
세상을 얘기한다 2007.02.1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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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청취율에 목숨 거는데? 한물간 라디오 틀고 있다가는 당신, 당신, 당신들처럼 될까봐."

강피디가 던진 이 한 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내 어깨는 심하게 덜덜거리고 눈을 깜빡이지 않아도 눈물이 볼 위로 줄줄 흘러 내렸다.

80년대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어느 반지하 자취방에서 또는 짭새가 왼갖 물건들을 쓸어가버린 써클 룸에서 또는 곰팡이 냄새로 찌든 지하 주점에서 우린 이런 의문을 나누곤 했다.

"기성세대가 된다는 건 뭘까? 왜 기성세대들은 저렇게 한심할까?"

그 질문은 우리가 아직 젊다는 증거이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바꿔놓을 에너지원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87년 이후로 소위 386 세대는 청년성과 진보성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지금의" 기성 세대와 같은 기성 세대가 되길 거부했고 언제까지나 초년생으로 남아 다른 모든 이들의 앞장에 기꺼이 서고자 했다.

그런데 이게 뭐냔 말이다. 386 세대가 헌신하고 건전한 시민사회가 일궈낸 민주화가 결국 고작 이런 나라를 만들자는 거였냔 말이다. 한 쪽에서는 좌익 386 들 때문에 국가가 무슨 사회주의 정책이라도 펴는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좌익 386 이 집권한다는 이 나라는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다. 더욱 노골화하고 천박해지는 자본, 그 자본에 대놓고 아부하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 노인들부터 초딩들까지 태극기와 배달 겨레의 깃발에 줄을 서는 국수주의의 횡포, 민중의 삶을 뿌리째 뒤흔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대자본과 제국의 개들이 우굴우굴거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자고 힘들게 군부독재를 타도했던거냐고. 이런 사회를 만들자고 그 난리를 친거냐고. 왜 우리가 양쪽에서 욕을 먹어야 되냐고.

나는 욕 먹고 싶지 않았다. 나는 늘 신선하게 다가올 미래를 위해 새벽을 여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기성 세대가 되었고 내 속에 있는 젊은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너 왜 그러고 사니?"

아니다 그렇지 않다

김광규

굳어 버린 껍질을 뚫고
따끔따끔 나뭇잎들 돋아나고
진달래꽃 피어나는 아픔
성난 함성이 되어
땅을 흔들던 날
앞장서서 달려가던
그는 적선동에서 쓰러졌다
도시락과 사전이 불룩한
책가방을 옆에 낀 채
그 환한 웃음과
싱그러운 몸짓 빼앗기고
아스팔트에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
그는 헛되이 사라지고 말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물러가라 외치던 그날부터
그는 영원히 젊은 사자가 되어
본관 앞 잔디밭에서
사납게 울부짖고
분수가 되어 하늘높이 솟아오른다
살아남은 동기생들이 멋쩍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 와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어느새
중년의 월급장이가 된 오늘도
그는 늙지 않는 대학
초년생으로 남아
부지런히 강의를 듣고
진지한 토론에 열중하고
날렵하게 볼을 쫓는다
굽힘 없이 진리를 따르는
자랑스런 후배
온몸으로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아들이 되어
우리의 잃어버린 이상을
새롭게 가꿔 가는
그의 힘찬 모습을 보라
그렇다
적선동에서 쓰러진 그날부터
그는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
우리의 앞장을 서서
달려가고 있다

차라리 젊은 날에 죽어버린 그래서 욕먹을 일도 없이 그냥 푸른 청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그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부럽다. 하지만 어쩌랴... 길은 나섰고 휘적휘적 내 심지를 지키며 살아가는 수 밖에. 어쨌든 나는 억울하다. 그래서 난 이 영화를 보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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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