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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7 ::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은 잔인하다 (2)
분류없음 2008.05.07 13:28
소 애기는 좀 그만하고... 딴 얘기도 좀 해보자.

요즘 사직구장이 연일 만원이랜다. 당연하다. 늘 꼴찌에 머무르던 홈 팀 롯데가 승승 장구 하고 있는데다 짜릿한 역전 승부를 만원 관중 앞에서 보여주니 좋아할 수 밖에. 야구, 거 참 재밌는 운동이다. 특히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 라는 말이 보여주듯 시간 제한이 있는 대다수의 종목들과는 달리 아웃만 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공격을 이어가며 역전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종목이 야구다. 서브권이 있던 시대에는 배구도 이런 묘미가 있었건만 텔레비전 중계의 편의를 위하여 랠리 포인트 제도로 바뀐 이후로는 그런 묘미가 많이 없어졌다. 하긴 배드민턴도 랠리 포인트로 바뀌었다. 다들 재미없게 만드는게 추세인 듯.

사람들이 역전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삶의 비루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역전보다는 안정이 더 중요할 것이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는 한판의 인생 역전을 기대하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꼭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역전을 보게 된다. 늘 짤짤이 하다가 걸려서 혼나던 친구가 번듯하게 대학까지 나와서 괜찮은 직장을 다닌다는 소식을 듣게 될 때 또는 춤에 빠져 늘 도끼빗을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던 친구가 고3때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를 가서 지금은 잘 나가는 의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한편으로는 배가 아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 그래서 아직도 세상에는 노력해야할 그 무엇이 남아 있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아이가 중2가 되면서부터 듣기 시작한 소리들은 이런 거다.

그냥 4년제 대학이 아니라 서울권의 명문 대학을 나와야 겨우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있다네

그런 대학을 가려면 최소한 과학고, 특목고, 자사고를 가야한다네

그런 고등학교를 가려면 기본으로 중학교 내신은 5% 안에 들어야 한다네

중학교 내신을 잡으려면 초등학교에서는 어디까지 떼고 올라가야 한다네

그 와중에 학교에서는 0 교시를 한다네 12시까지 야자를 한다네

부잣집에서는 전과목 따로 따로 해서 11명의 과외 선생을 붙인다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역전을 원천 봉쇄하는 사회가 주는 질식의 냄새를 맡는다.

끊임없이 경쟁 속으로 아이들을 몰아부칠 때 그리고 그 경쟁이 실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대를 잇는 세습을 통한 애초에 불공정한 경쟁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한번 밀리면 그냥 장외로 밀려나서 다시는 경쟁 대열에 낄 수 조차 없다고 느낄 때. 아이들을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아이들이 사회로 진출하여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게 될 때 우리 사회는 과연 여전히 살만 할까?

신자유주의가 전파하는 논리에 눈이 팔려 효율과 실용을 좇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미래인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

내 고향 플린트 시에서 뷔엘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집세를 못내 쫓겨난 엄마와 삼촌 집에 얹혀 살던 어느 날 삼촌 총을 들고 와 같은 반 여자 애 케일라를 쐈다. 여자 앤 바닥에 쓰러져 선생이 구조대를 부르는 동안 서서히 숨을 거두었다.

왜 쐈는진 알 수 없다. 지난 20년 간 겪은 비극도 모자라 미시건은 미 역사상 최연소 살인자의 탄생이라는 오명을 추가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30분도 안돼서 뉴스 헬기와 방송 차량들이 도착했다.

(중략)

이전에 언론사들은 뷔엘 초등학교나 플린트시 변두리에 눈길 한번 안 줬었고 이렇게 와 있는 동안에도 둘러볼 생각조차 안했다. 학교에서 조금만 걸어가 보면 소녀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비극을 볼 수 있을 텐데.

GM이란 대기업이 탄생한 도시에서 이 빈민가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87%의 학생이 극빈곤층 자녀인 뷔엘, 플린트는 전국적인 뉴스거리로 적합하지 못했다. 이것이 부강한 미국의 진정한 모습이다. 플린트시 청소년의 주 사망 원인은 살인이다. 플린트시 축구장은 장의사가 지어줬다

아이들은 주 대항 육상 우승자였지만 정작 홈경기는 못해봤다. 변변한 트랙 하나 없기 때문이다. 수 년 전 누군가 이 동네 거리에다 명문대 이름을 따다 붙였다. 더 나은 미래를 소망이라도 하듯.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컬럼바인> 자막에서 편집함

사상 초유의 대규모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이 집권 세력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대구에서 그리고 그 지역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에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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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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