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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10 :: 손 끝이 가는 대로 써본 영화와 음악 이야기
잡스럽게 얘기한다 2013.04.10 16:46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 타이틀을 오랫동안 유지했던 영화 “친구”는 감독 곽경택의 개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너거 아부지 머하시노?”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건달인데예”로 대답한 조폭 아들 준석과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의 인생을 범생이 상택의 시선으로 담고 있다.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축이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라 나중에 DVD로 봤는데 두어가지가 맘에 걸렸다. 우선 난무하는 경상도 사투리. 나야 경상도 토박이라 편했지만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자꾸 물어보는 가족들 때문에 차라리 자막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친구"에서 밴드 레인보우가 "연극이 끝나고 한 후"를 부르는 장면

또 하나 맘에 걸린 것은 영화에 삽입된 노래 “연극이 끝나고 난 후”다. 고등학생이 된 준석, 동수, 상택 등은 이웃 여고의 축제를 보러 가서 그룹사운드 “레인보우”의 공연을 보고 모두들 리드 보컬 진숙에게 홀딱 빠진다. 이 장면을 보면서 “시대적 배경은 80년대 초반인데 저 노래는 훨씬 뒤에 나온 노래 아닌가?”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웹질을 해보니 90년대 중반쯤에 나왔을 것이라고 지레 생각하고 있던 이 노래는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곡이었다. 헉 이렇게 세련된 노래가 1980년도에 나오다니! 오파츠다.[각주:1] 

이렇게 시대를 뛰어 넘는 명곡이 겨우 은상이라면 대상, 금상은 도대체 어떤 노래란 말인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조하문이 엄청난 가창력을 보여준 마그마의 “해야”도 은상. 대상은 “꿈의 대화”를 부른 이범용과 한명훈이 받았다. (금상은 의외로 아는 사람이 드문 뚜라미의 “해안선”이라는 곡이다.) 같은 해 TBC가 개최한 젊은이의 가요제에는 건아들의 “젊은 미소”가 겨우 장려상으로 턱걸이를 하고 해바라기의 이주호가 만든 곡 “님에게”를 들고 나간 징검대리가 동상에 그쳤으며 홍서범의 쨍한 보컬이 돋보인 옥슨80의 “불놀이야”가 금상을 받았다. 대상은? 많은 가수들이 다시 불러 거듭 인기를 얻은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이 대상을 차지했다.

이 시기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가요제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 초반 한창 끓어오르던 포크 문화의 위험성을 감지한 박정희 정권이 1975년 대마초 파동을 일으키며 대다수의 가수들을 활동 금지시킴에 따라 트롯트 외에는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색다른 노래를 들고 나오는 대학생들이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재미난 사건이 터진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한 심수봉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치며 예의 간드러진 창법으로 자작곡인 “그때 그 사람”을 부른 것이다. 완벽한 곡, 완벽한 목소리, 멋진 반주 하지만 트롯트라니… 노래만 놓고 본다면 대상을 줘도 시원찮을 터였지만 논란 끝에 입선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대중의 귀는 정직한 법. 그녀의 인기는 날로 높아만 하고 이듬해 KBS 올해의 신인가수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논란의 여지없이 쓸어버린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촉망 받는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던 그 시기. 막상 본인은 오랜 세월 그녀의 삶을 결정하게 된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의 현장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녀의 자서전 제목은 자신의 인기 곡 제목이기도 한 “사랑밖에 난 몰라”인데 엉뚱한 일에 휩쓸려 버린 인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제목에 묻어나는 듯하다.

심수봉의 명곡 “사랑밖에 난 몰라”가 엔딩으로 쓰인 영화가 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음악 밴드를 소재로 한 영화이니만큼 70~80년대 추억의 명곡들이 많이 나온다. 설 무대 조차 잃어가는 나이트클럽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리더 성우의 고향 수안보로 내려온다. 여기서 고교시절 밴드 하던 친구들을 만나 친구들의 강권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 곡은 송골매의 “세상만사”. 고교 밴드시절 공연 장면으로 플래시백 되면서 같은 노래를 이어 부른다. 성우의 밴드가 무대를 내려오자 다음 순서로 여고생 밴드가 올라 조운 제트 앤 블랙 하츠의  “I love Rock ‘n’ Roll”를 부른다.[각주:2] 리드 보컬 인희에 홀딱 빠진 성우는 같이 옥슨80의 공연을 보러 가자고 대시하지만 실패. 

다시 현재로 돌아와보면 고교 밴드 친구들은 정치권에 줄대려 애쓰는 약사, 지역 난개발을 막으려는 환경운동가와 그를 설득해야 할 처지의 말단 건축과 공무원이 되어 있다. 락의 여제 같았던 인희는 남편과 사별하고 식재료를 트럭으로 배달하는 아줌마가 되어있다. 돈 없고 빽 없고 재수도 없고 친구의 환경운동도 막지 못한 공무원은 “시범 케이스”로 해고되어 성우를 찾아와 묻는다.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하면서 사니까 행복하냐고?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워하던 친구는 이내 극단의 선택을 하고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성우는 손님들이 아가씨들과 홀딱 벗고 노는 룸 싸롱에서 오부리를[각주:3]  하고 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성우가 윤수일의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

손님의 요구로 성우도 홀딱 벗은 채 기타만 달랑 매고 연주하는데 그 곡은 윤수일의 “아파트”.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중략)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윤수일 “아파트” (부분)

꿈도 떠나고 연인도 떠나고 친구도 떠나고 삶의 터전 마저 흔들리며 허물어지며 떠내려간다. 다 알고 있지만 떠내려 감을 아무도 굳이 말하려 하지 않을 뿐.

비에 젖은 이 거리 위에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랴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정태춘 “92년 장마 종로에서” (부분)

밴드 멤버가 하나씩 떠나 하는 수 없이 성우에게 음악을 가르쳤던 늙은 악사를 모셔서 밴드에 합류시켰지만 그 역시 살아온 세월만큼 더 깊어진 한을 간직하고 있다.

진남포항에서[각주:4]  오마니하고 고모하고 피난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날씨는 춥지 오기로 한 배는 안 오지. 아 근데 오마니가 갑자기 집에 가서 물독을 채워놓고 와야겠대는게야. 후... 오마니가 떠나고 나서 갑자기 배가 도착해개지구 글루 끝이야. 흐… 같이 내려온 고모랑도 헤어져 갖고. 나 참 고생 많이 했어. 내가 죽을 때가 다 됐나. 널 앉혀 놓고 무슨 씨알 데 없는 소릴 하고 있는게야 지금.

엄마는 왜 뒤돌아갔을까? 뒤돌아 감 또는 뒤돌아 봄은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는 자기의 위치를 그리고 자기의 선택을 100% 믿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죽은 아내를 데리러 저승까지 건너간 오르페우스는 천신만고 끝에 아내를 데리고 돌아오지만 이승에 다다르기 직전에 아내 얼굴을 확인하려 돌아보다가 아내를 다시 잃고 만다. 

로댕의 조각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끝까지 눈을 가리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서로 잡지 못한 손이 애처롭다.

롯의 처도 괜히 뒤돌아 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시인은 뒤돌아 보는 것이 곧 죽음이라고 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결점 투성이 의심 투성이의 인간이 뒤돌아보지 않고 일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뒤돌아 보지 말라는 금기는 모든 인간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가혹한 운명의 계교다. 그래서 성우의 늙은 스승은 뒤돌아볼 시간도 없이 죽어버린 동갑쟁이 기타리스트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성우가 스승의 허름한 방에 들렀을 때 스승이 듣고 있던 노래는 요절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바람이 메리에게 울부짖네 (The Wind Cries Mary)” 였다.


잭도 모두 박스에 들어가고 After all the jacks are in their boxes,
조커도 자러 가고 나면 and the clowns have all gone to bed,
행복이 휘청이는 소릴 듣겠지 you can hear happiness staggering on down the street,
빨간 발자국을 남기며 footprints dress in red.
바람이 메리에게 속삭여 And the wind whispers Mary.

빗자루가 따분하게 A broom is drearily sweeping
어제의 편린들을 쓸어내고 있어 up the broken pieces of yesterday's life.
어디선가 퀸이 울고 있어 Somewhere a Queen is weeping,
또 어디선가 왕은 왕비를 잃었어 somewhere a King has no wife.
바람이 메리에게 울부짖네 And the wind, it cries Mary.

신호등은 내일이면 켜져 The traffic lights they turn blue tomorrow
내 침대에 공허함을 비춰주네 And shine their emptiness down on my bed,
작은 섬은 허물어져 떠내려가 The tiny island sags downstream
살아버린 삶은 죽은 거니까 'Cos the life that lived is dead.
바람이 메리에게 비명을 질러 And the wind screams Mary.

바람이 기억이나 해줄까? Will the wind ever remember
옛날에 날려버린 그 이름들과 The names it has blown in the past,
목발을 짚은 연륜과 지혜를 말야 And with this crutch, its old age and its wisdom
속삭이네 “아니. 이게 마지막이다” It whispers, "No, this will be the last."
라고 바람이 메리에게 울부짖네 And the wind cries Mary.

원곡: 지미 헨드릭스 / 대충 번역: 고양우

살아가면서 가장 큰 슬픔은 모든 것을 바쳐 무언가를 좇아가는 또는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 또는 그런 순수한 정열의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져 가는 것 아닐까?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눈 내리는 날 개처럼 좋아하며 눈 밭을 뛰어 다니는 장면에서 나오던 그 경쾌하고 멋진 음악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올리버와 제니퍼는 모든 어려움을 사랑으로 극복했지만 죽음을 넘어서진 못했다. 제니퍼를 떠나 보낸 후 옛 사랑의 그늘을 지낸 채 살아가던 올리버는 새로운 여자를 사귀게 되는데…

코트를 두르고 Bundled in her coat, 
머리는 헝클어진 채 her hair all tousled, 
그녀는 내 옆에 앉아 she sat next to me 
속삭였다 and whispered 
(비록 인근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though there wasn't anyone for miles).
‘기분이 어때?’ 'How do you feel?'
‘괜찮아’라고 대답하며 'Okay,' I answered, 
그녀의 손을 잡았다. reaching for her hand. 
그러나 내 눈과 목소리가 But knowing also that 
슬픔의 흔적을 드러내고 my eyes and voice 
있음을 감출 순 없었다. revealed a trace of sadness.

‘혹시 맘이 … 불편해? 올리버?’ 'Do you feel . . . uneasy, Oliver?'
그런 편이라고 나는 끄덕였다. I nodded that I sort of did.
‘생각이 나기 때문이지? … 제니퍼가?’ "Because you thought of . . . Jenny?'
‘아니’ 난 대답하며 'No,' I said, and looked out 
호수를 바라 보았다. toward the lake. 
‘생각이 나지 않아서야’ 'Because I didn't.'
그리고, 대화 따윈 그만두고 Then, forsaking verbal conversation, 
우리는 일어나 we stood up and walked 
푸짐한 아침을 먹으러 back down to Howard Johnson's 
되돌아 갔다. for a massive breakfast.

“올리버 이야기” (한국 제목 “러브 스토리2”) 대충 번역: 고양우







  1. OOPArt, out-of-place artifact. 그 시대 그 장소에 걸맞지 않는 생뚱맞은 물건을 말하는 것으로 (초)고대문명 또는 외계문명설의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 청소년 과학 잡지에 단골로 나왔던) 바그다드 배터리는 이라크에서 발견된 천 년도 넘은 항아리인데 과일즙이 담겨 있어서 (대개는) 술 단지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그 주장이 옳다면 볼타가 전지를 만든 것 보다 천 년 이상 앞선 것이고 역사적으로 전후 좌우 어디를 살펴도 전기에 대한 그 정도의 지식이 당시에는 없었으므로 오파츠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2. Joan Jett & The Blackhearts. 조운 제트는 이 밴드와 활동하며 석장의 골드, 플래티넘 앨범을 내놓아 락의 여제로 불렸다. [본문으로]
  3. 악보 없이 반주를 즉석에서 하는 일 또는 유흥주점 반주나 혼례식 음악 연주를 일컫는 말. 이탈리아말 ‘오블리가토’(obbligato)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뜻이 딱 맞지는 않아 확실치는 않다. [본문으로]
  4.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상으로는 남포시이지만 해방전까지는 진남포라고 불렸으며 대동강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북한의 주요 수산기지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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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