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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05 :: 녹슨 그네 -- ICU 사태에 부쳐
잡스럽게 얘기한다 2007.10.05 12:58
들어가며

길 가다 이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어린이 놀이터를 본 적이 있는가? 요즘은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그 놀이터에는 으례 줄 끊어진 그네 하나와 녹슬어서 잘못 타다가는 떨어질 것 같은 그네가 걸려있다. 녹슬고 낡은 그네는 아이들을 유혹하지 못하고 아이들이 놀지 않는 놀이터에 세금을 쓸 지자체는 없다.

무엇이 이 악순환을 만드는건가?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자신의 치적을 담은 홍보물을 돌린다. 읽다보면 "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새로 만들어졌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우리는 새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없던 시설이 생기고 없던 길이 뚫리고... 뭐 그것까지는 좋다고 하자. 그럼 그런 시설들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가? 그 어느 홍보물에서도 "나는 새로운 시설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유지보수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왜? 폼이 안나니까. 돈이 더 들더라도 (내 돈 쓰는 것도 아닌데) 있는 시설 고친 얘기보다는 없는 시설 만든 얘기가 더 폼이 나니까. 그러니 아무도 있는 것을 가꾸고 발전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그저 있는 것들은 재개발의 대상이 되고 나는 새 것을 짓는다. 아... 건설족의 폐해는 대단위 건설에만 있는게 아니라 오늘 하루에도 전국 방방 곡곡에 지어지는 놀이터와 오늘도 새로 만들어지는 사후 대책없는 수많은 정책 속에도 숨어있다.

몸통

서론이 길다. 본론으로 가자.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ICU, 한국정보통신대학교)가 시끄럽다. 학부생들은 상당수 자퇴까지 결의한 상태다. 문제가 뭔가? 한 줄로 요약이 된다.

"ICU는 정보통신부가 예산을 지원해주는 사립대학이다."

정부가 돈 대는 사립대학. 이 얼마나 웃기는 형용모순인가? 뭐, 사립학교라고 해서 정부가 지원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ICU의 경우 엄청난 돈을 부어서 학교를 만들고 유지해왔고 정보통신부 장관이 당연직으로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관례이긴 하지만) 직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총장으로 부임하는 사실상의 정보통신부의 학교인 셈이다.

그런데 애초에 태생적으로 모순된 정체성을 갖고 태어난 학교는 계속적으로 정체성을 놓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는 내년에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좋은 학교라고 해서 입학한 학생들이 충격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

뭐가 잘못된 건가? 어디서 잘못된 건가? 아흔아홉가지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세우기만 좋아하는 성과주의"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를 제쳐두고 정보통신부가 학교를 세우는 과정은 모르긴 몰라도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려움을 헤치고도 학교를 세운 것은 그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삼을 수 있는 공직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에게 이것이 업적이 되지 않는다면 과연 다른 부처와의 알력까지 견디면서 학교를 세웠을까? 허구한날 예산 갖고 공격 받으면서 학교를 유지하려고 했을까?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학교를 세운 것은 업적이어도 학교를 유지하는 것은 업적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정보통신부는 혹이 되어버린 학교를 털고 싶다. 주민들은 이주시키고 헌 건물은 헐고 새 아파트를 지어야 된다. (어 이게 아닌데.... 무슨 얘기여...) 그래서 나온 대안이 KAIST와 통합을 한다는 것인데 그것마저 이런 저런 반대가 있다고 열심히 추진을 안한다. (공직자라는 사람들은 공부만 열심히 한 양반들이라 자기 손에 피묻힐 일은 조직의 사활이나 대단한 업적이 걸리지 않는 한 절대 복지부동이다.) 그러다보니 학교는 날이갈 수록 시들시들해지고 참다못한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다.

나오며

정치인들 공직자들의 공과 싸움에 엉뚱하게도 어린 학생들의 미래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새로운 업적은 되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저지른 일을 마무리는 할 줄 하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서 현 사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길 기원해본다.

뱀발

이번 대선을 관전하며 후보들 간의 선을 어디에 그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간단하다. 과시적 성과와 단기적인 효율을 얘기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뒤쳐진 약자를 등에 업고 같이 가자는 사람인가 라는 점을 놓고 선을 그으려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100위에도 끼지 못하던 시절의 삽질하고 사람 쥐어 짜서 효율을 올리는 것 가지고는 이미 중국하고 게임이 안된다는거 다 안다. 설령 그렇게 해서 1인당 국민소득인 몇 달러 더 오른들 무엇하랴? 내 주머니는 점점 비어가는걸. 불도저로 밀어버리면 깨끗해 보이긴 하겠지만 그리고 새 놀이터를 지으면 성과로 남기는 하겠지만 그 과정에 수많은 여린 것들이 파묻힌다는 걸 윗사람들은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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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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