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07.02.02 13:20

/* (저자 주) 1995년 2월에 모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요즘 UCC가 유행어라고 한다면 그때는 아마 멀티미디어가 유행어 였던 모양입니다. 진짜 멀티미디어의 홍수시대가 10여년 뒤에 오리라고 그때는 상상을 했을까요? */

온통 세상이 멀티미디어로 가고 있다. 신문, 방송, 컴퓨터, 교육, 의료, 오락산업, 사무실 등 온 세상의 모든 곳에 멀티미디어 의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들뜬 목소리로 멀티미디어를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 이번 달에는 멀티미 디어에 대하여 기대나 우려를 보내는 다양한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멀티미디어 기술은 첨단 기술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디오 씨디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술우위를 보이던 필립스가 며칠 전 갑 자기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 규격의 표준화 문제에서 뒤진 기술을 가진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게임기 회사였던 닌텐 도가 어느새 명함조차 내밀기 곤란할 정도로 뒤떨어지고 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이류로 떨어지고 한번 떨어지면 따라잡기가 벅 찰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렇게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것은 표준화를 매우 어렵게 한다. 애써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합의 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국제적인 표준을 만들더라도 그 사이에 그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좋은 기술과 제품이 시장에 나온다면 누가 표준을 따르겠는가 ? 따라서 이런 첨단 분야에서는 국제적인 표준보다는 업계 표준 ( de facto standard ) 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문제는 업계 표준은 거의 항상 두개의 서로 대립하는 컨소시엄간의 싸움의 결과로 결정이 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업 체로서는 어느 컨소시엄에 붙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안정감 있는 투자와 기술의 진보보다는 어느 쪽에 붙느냐하는 도박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기업은 어차피 자체적인 기술이 없기 때문에 대외의존을 할 수밖에 없는데 어느 쪽에 붙어야할지를 고민하느라고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 다. 또 표준이 없어나 나타나는 한가지 문제점은 기술개발비나 소비자의 낭비를 들 수 있다. 애써 개발한 기술이나 제품이 쓸모 없는 쓰레기가 된다면 그 개발비는 누가 보상하며 그런 제품을 산 소비자의 쓰린 가슴은 누가 달랠 것이며 쓰레기 종량제까지 실 시되어 버리기도 쉽지 않게 되었으니...

멀티미디어가 갖고 있는 두 번째 문제점은 정보소통량의 폭증 문제다. 멀티미디어 자료 중 동영상 ( 영화, 만화 등 ) 이나 소리 는 매우 자료의 양이 크다. 따라서 디스크에 저장하거나 통신을 통하여 전송하려고 할 때 매우 큰 부담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앞 으로 정보통신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얼마나 크게 증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 전세계는 정보사회를 이행하기 위 하여 어떻게 정보통신 기반시설 ( 흔히 '정보 인프라' 라고 일본식 표현을 아무 생각없이 쓴다 ) 을 구축할 것인 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가정보기반 ( NII : National Information Infrastructure ), 정보초고속도로 ( information superhighway ) 라는 표현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이 모두가 한 국가를 몽땅 연결하는 통신망을 구축하자는 얘기인데 이게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요즘 들어 갑자기 지하철 4호선이 붐비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예전에는 사당까지만 다니 던 것이 안산까지 다니게 되니까 사당에서 안산 사이에 살던 사람들은 전에는 지하철을 안 탔지만 이제는 타게 되는 것이다. 즉, 지하철을 더 많이 건설하면 할수록 지하철은 더 붐비게 된다. 으악 미치겠다. 지금도 복잡한데. 이 얘기를 정보통신망에 적용하 면 더 많은 통신망을 설치하면 할수록 소통시켜야할 자료의 양을 늘어난다. 안 그래도 늘어나는데 문자자료가 아닌 멀티미디어 자료까지 소통시키라고 하면 통신망이 어떻게 되겠는가 ? 아마 설날 호남선 고속도로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선배 한 분은 이런 상황을 놓고 버스전용차선처럼 문자전용 통신대역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 가 그러면 멀티미디어 자료를 문자자료 형태로 위장해서 보내면 어쩔 거냐 하니까 그래서 기본적으로 통신량에 대하여 요금을 할 증식으로 매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얘기를 하다보니 이와 비슷한 일이 생각이 나서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우리 나라에서는 공장폐수를 규제할 때 농도를 기준 으로 한다. 즉, 아주 독한 물을 내려보내는 업체는 제재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업체에서는 폐수정화처리를 하는 대 신 수돗물을 폐수에 섞어서 농도를 기준치 이하로 만들어서 내보내기도 한다. 수돗물 값이 잡혀서 내는 벌금보다 싸니까 나타나 는 현상 일게다.

멀티미디어에 대한 또 한가지 고민은 멀티미디어정보와 문자정보의 표현력에 관한 문제이다. 즉, 멀티미디어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다. '사과'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말로 '크기는 대략 주먹만하고 모양은 둥그스름하며 표면은 윤택이 나고 붉은 색이다'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떡하니 한번 보여주면 끝이라는 것이다. 즉,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 말씀에 근 거하고 있는 사상이다. 그렇다면 항상 멀티미디어정보가 진짜로 문자정보에 비하여 표현력이 더 강한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우선, 추상적인 개념을 멀티미디어정보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말로 '사랑'이라고 하면 모두가 어떤 느낌을 받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멀티미디어정보로는 표현하기가 어렵다.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과 사랑을 표현한 음악을 들려준다고 말로 '사랑' 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정확한 의미전달이 가능할까 ? 따라서 어떤 대상의 표현에 있어서 문자정보와 멀티미디어정보는 어느게 낫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서로 보충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상매체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문명의 진보라는 측면에서 우려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기본적으로 영상매체는 즉흥적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민감한 변화를 일으킨다. 그림의 시대를 지나 사진이 나오고 영화까지 나왔지만 예 술로서 그림의 가치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처럼 아무리 영상물이 판쳐도 책의 의미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소설을 소재로 만 든 영화 중에 원작 소설보다 더 나은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점차 영상물에 탐닉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posted by 신묘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