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07.02.02 13:29

/* (저자 주) 1995년 4월에 모 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군요. */


봄이 돌아왔다. 그렇게도 비가 없던 겨울이 지나가고 그래도 봄은 오고 북한산의 개나리에는 물이 오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린 독가스 사건이 떠들썩하고 지하철에 전경들이 방독면을 쓰고 나타나더니만 어느새 기억도 희미해져가고 지방선거정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해방 50 주년에 되는 올해의 봄은 이렇게 소란스럽게 시작하고 있다.

한편 개인용 컴퓨터계에서 올 봄의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윈도우즈용 워드프로세서의 한판 승부와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마이크로소프트, 아이비엠, 애플의 차세대 운영체제의 싸움일 것이다.

얼마 전 한글과 컴퓨터에서 아래아한글 3.0 윈도우즈용을 내놓음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 워드 6.0, 에이아이티 코리아의 워드퍼펙, 삼성전자의 훈민정음 4.0 과의 워드 프로세서 전쟁에 뛰어 들었다. 한글 워드는 미국에서도 가장 잘나간다는 엠에스워드를 고친 것이니 기능이나 개발의 완성도, 인지도의 측면에서 기반이 워낙 단단하다. 워드퍼펙은 도스용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는 감히 당할자가 없던 강자였기 때문에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훈민정음은 제일 먼저 윈도우즈용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내놓은 곳으로서 연륜으로 보나 대기업의 제품이라는 점에서 보나 쉽게 밀릴 상대는 아니다. 아래아한글은 우리나라 개인용 컴퓨터의 90%에서 깔려있다는 추측이 나올 정도로 가장 널리 쓰이는 워드프로세서이다. 따라서 이 싸움은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몇 달은 더 지나봐야 어느 정도나마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측은 시장 자체를 예측하는 것이고 사용자가 워드프로세서를 선택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이다. 남들이 아무도 안 써도 자기가 쓰기 편하고 다른 사람과 파일을 호환하는데 문제만 없다면 굳이 가장 많이 팔리는 워드프로세서를 꼭 사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워드프로세서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사람의 조언을 듣고 요즈음 잡지에 나오고 있는 비교기사를 참조한 후 직접 써보고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진 않았지만 윈도우즈 3.1의 다음은 무엇이 될 것인가를 놓고 주도권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95, 윈도우즈 엔티 등의 제품을 내놓으면서 윈도우즈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 한편, 윈도우즈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많은 작업을 해놓고도 막상 제품으로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아이비엠은 오에스2 2.0 워프 라는 제품을 내놓 으면서 역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 제품은 특히 속도가 느린 윈도우즈 엔티나 인스톨하는 동안 사람의 혼을 빼놓는 윈도우즈 95에 실망한 사용자를 흡수하면서 미국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의 비디오 폰 윈도우즈가 자기의 기술을 훔쳐서 만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멀티미디어 분야의 선두주자임을 선언하고 있는 애플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특히 애플의 퀵 타임 기술은 멀티디미어 분야에서만큼은 표준으로 정착할 가능성도 있다.

또 한가지 지금 컴퓨터 시장에서는 사용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펜티엄 피씨인가 486 피씨인가 하는 문제 이다. 문제의 발단은 펜티엄의 오류에 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 분야에서는 모토롤라와 함께 가장 앞서가는 회사인 인텔의 최신 상품인 펜티엄의 연산기능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묘하게도 386 피씨 시장은 매우 짧게 6개월정도로 마감이 되고 바로 486 피씨 시장으로 넘어간 적이 있다. 따라서, 고집스럽게 386 피씨를 팔던 몇몇 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 회사들은 잽싸게 펜티엄 피씨로 주종을 바꾸었고 나머지 회사들은 펜티엄은 오류가 있으니 잘 안 팔릴 것이라는 예측으로 계속 486 피씨를 고집하였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펜티엄이 오류로 인한 사용자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세승을 거두고 있다.

그런데 또 한가지 사용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건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인텔의 신제품 펜티엄 칩이 기존의 칩과는 핀의 형태가 달라서 업그레이드가 안되는 것이다. 즉, 예전에 펜티엄 피씨를 구입한 사용자는 새로 나온 빠른 펜티엄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억울함은 누구한테 호소할까 ? 인텔은 새로운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니까. 그런 와중에도 인텔은 펜티엄 다음의 마이크로 프로세서인 P6를 내놓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펜티엄 피씨를 살까 P6 피씨를 살까 고민해야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항상 그랬지만 컴퓨터를 산다는 것은 늘 피곤한 일이다.

한편, 작년부터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터넷의 인기는 드디어 많은 서비스 회사의 등장을 불러왔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와 같은 기존의 컴퓨터 통신 사업자는 물론이고 새로운 중소기업들도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렇게 컴퓨터 통신 서비스 제공회사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컴퓨터 통신 서비스의 질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지금 컴퓨터 통신은 짜증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느린 반응 속도, 제한된 정보 등으로 인해 고급 사용자로부터 외면을 당 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나 전문 연구소와 같이 많은 정보를 안정적으로 송수신하고자 하는 곳은 모두 따로 망을 구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망을 따로 따로 구성해가지고는 컴퓨터 통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누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컴퓨터 통신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일어나서 우리나라도 컴퓨터 망을 둘러싸고 새로운 사회의 재편성이 일어나야만 세계적인 정보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이번 봄은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솟아나는 선의의 경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이 가을에 가서는 편리한 정보사 회라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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