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07. 2. 2. 14:29

/* (저자 주) 신지식인이니 지식경영이니 하는 얘기가 한참 유행하던 1998년 여름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준비없이 그냥 말로만 지식경영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 글입니다. */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한 시기를 풍미하는 유행어(buzzword)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IMF가 그 위세에 힘입어 다른 유행어를 제치고 상당히 오랫동안 수위를 지키고 있다. 한편, 정보산업계에서는 한 때 수위를 지키던 인터넷, 웹, 인트라넷을 밀어내고 데이터웨어하우징, 데이터 마이닝, 지식관리시스템 ( KMS : Knowledge Management System ) 등 기존의 IT관련 투자를 통하여 축적한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하여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기술들이 수위를 다투고 있다. 과연 이러한 유행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이 유행의 배경에는 이를 가능케하는 기술(enabler)로서 에이전트를 비롯한 지능형 자료 처리 기술의 발달과 이에 의존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경쟁의 상황이 방아쇠(trigger)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후기산업사회로의 전화에 따른 주력 상품의 성격 변화 그리고 테일러리즘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잘 계획된’ 방식에 의한 생산성과 품질 향상 체계의 한계 등을 극복하고 WTO를 중심으로 가속화하고 있는 전지구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 기존 지식 ( 또는 자료 ) 의 재가공에 의한 지적 자산의 극대화는 선진국 모든 첨단기업의 모토가 되었다.

따라서 지식경영은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 전사적 자원 계획 등에 이어 우리나라 기업에게도 IMF 한파를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행을 보면서 과연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해 낼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지식경영이나 데이터 마이닝 기술은 기존에 잘 축적된 자료 즉, 1차자료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물론이고 개별 기업들 조차도 이런 1차자료를 많이 축적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 1차자료가 부족한 이유로는 1) 기록문화의 부재 2) 정보유통을 금기시하는 경향 등을 들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기록문화의 부재를 통렬히 비판한 도정일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갈등과 고뇌, 시련과 고통, 죽음과 배반의 시대는 있었으되 그 시대의 경험은 우리의 척박한 기억력, 그 심오한 망각의 늪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중략) 서사를 통해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지 않은 민족 치고 자랑할 만한 문화를 일군 민족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된 일인가. 우리는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역사를 기록해 온 민족이면서 기억과 반성의 능력은 천박하기 짝이 없고, 서사에서 역사를 증발시키고 기억을 잡아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논리에 휘둘리기까지 한다. 외솔 최현배가 <천박한 낙천성>이라고 부른 어떤 특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인가. ( 도정일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

한편, 정보유통을 금기시하는 경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열린 공론의 공간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우물가나 빨래터에서 유통되는 유언비어나 요정에서 유통되는 비밀 첩보에 의존에 살아왔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강력한 내외의 통제를 받는 방송, 재벌언론사와 언론재벌사가 경쟁하는 언론, 컴퓨터 통신마저 검열하여 사람들을 구속하는 정보기관. 이것이 21세기를 불과 3년 앞둔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정보 마인드를 확산시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사랑을 많이 베풀 수 있는 것 처럼 전국민이 정보화의 열매를 향유할 기회를 갖지 않고서는 국민들 스스로가 정보 공유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정보를 기록, 정리, 배포하게 되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부터 자료를 정리하고 국민들에게 널리 공개하는 작업을 시작해야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사회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보취로사업’을 통한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공의 자료를 기록, 정리, 공개하는 것을 일회성의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의 모든 종사자들이 자기의 의무로 인식케하고 꾸준히 정보 축적 작업을 계속하게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치있는 자료를 많이 보급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운영의 묘도 찾아야할 것이다.

한편, 기업의 경우는 어떠한가 ? 기업 내부에서 축적 활용할 수 있는 정보 ( 또는 지식 ) 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기업의 일상적인 활동을 위해 필요한 기초 자료 ( 직원 인사자료, 거래처 장부 등 ), 직원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 ( 영업 노하우 등 ), 기업의 전략을 결정하기 위한 전략자료 ( 외부 컨설팅 회사로 부터 받은 컨설팅 자료 등 ) 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첫번째와 세번째는 누구나 약간의 노력과 돈의 투자로 쉽사리 얻을 수 있는 반면 두번째 자료는 포착해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부분을 포착해내어서 기업의 자산으로 승화시키지 않는 한 다른 기업과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지식의 포착을 위해서는 전직원의 정보 마인드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각 기업에서도 직원들에게 더 많은 기업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직원들의 정보 마인드를 제고하고 이를 통하여 훈련된 직원들이 그들의 자료를 주변 직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야 ‘유행하는’ 신기술을 도입하여 진정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신묘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