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07.02.04 12:51

네가 나를 아느냐?

고양우

2004년 2월 16일

꼭 알아야 겠느냐?

문득 한 때 유행하던 타타타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이 난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산다는 건 그런거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당신과 매일 부대끼는 그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저 사람 글은 읽을 만하지''라고 했을 때 내가 이때까지 읽어 왔던 그 글들을 쓴 사람과 저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사실 이 질문은 잘못 되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그것을 100% 확신할 방법이 꼭 있어야 하는가?

맥락은 더디게 진화한다

우리는 매우 정교한 맥락 속에서 살아간다. ``거시기럴 거시기해부러'' 라고 얘기해도 맥락 덕분에 뭘 어떡하라는 것인지 안다. 엄마를 잡아 먹은 호랑이가 아무리 옷을 바꿔입고 손에 밀가루 칠을 하고 목소리를 바꿔도 오누이는 엄마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맥락은 기억과 경험을 적절히 쌓아감으로써 서로 편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과 경험할 수 있는 세계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그가 갖는 맥락도 한계를 갖는다. 또한, 우리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대화를 나누더라도 우리의 목소리가 무한정 크지 않기 때문에 한정된 범위안의 사람들에게만 (기껏해야 옆자리에서 술먹던 사람들에게만) 얘기가 전달된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내가 아는''이라고 일컫는 세계를 구축하며 그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 세계 안에는 우스개 소리 잘하는 놈, 성질 더러운 놈, 아는 거 많은 놈 등등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던지 간에 이때까지 알고 있는 그들에 대한 나의 이해를 바닥에 깔고 받아들인다. 원래 거짓말을 잘 하는 놈이 얘기하면 일단 절반 쯤은 접어 놓고 듣는 식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기술은 이러한 제한을 무너뜨려 버렸다. 어느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기록은 기억은 지배한다''. 우리는 잊고 싶어하건 하지않건 더 이상 잊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잘 한 일이건 못 한 일이건 그것은 완벽하게 기록되며 인터넷을 통하여 어디에서든지 다시 꺼내볼 수 있다. 더 이상 우리의 경험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나의 기억은 두개골 안의 단백질 덩이의 능력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으며 반대로 우리의 목소리는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어디에까지든지 전파된다.

하지만, 이렇게 확장된 능력에 걸맞는 맥락을 쌓아가도록 인간이 진화하기에는 인터넷의 역사가 아직 너무 짧다. 따라서, 오늘 현재의 사람들은 받아들이거나 내보낼 수 있는 정보의 양과 그가 관리할 수 있는 맥락의 부조화에 의한 혼란에 빠져있다. 물론, 이는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도 있었다. 대중매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어제 그거 테레비에 나왔어'')가 전형적인 예다. 인터넷에서는 기존의 대중매체와는 달리 그 매체 자체를 장악하고 있지 않더라도 아주 널리 정보를 소통시킬 수 있으로 당연히 유통되는 정보는 그 양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질도 극도로 다양하다.

법으로 정리를 해보자구요?

정보 홍수의 시대에 엉뚱한 정보에 휘둘려서 속고 살지 않으려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잘 정리해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보를 정리하거나 걸러주는 것을 컴퓨터가 대신해 줄 수는 없을까? 물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우매한 백성들이 엉뚱한 정보에 휘둘려 엉뚱한 사람을 찍을까봐 국회의원들께서 직접 나서셨다. 국회 정개특위는 지난 2월 9일에 상위 50위 인터넷언론사의 게시판, 대화방 등에 의견게시자가 선거와 관련한 의견을 올릴때에는 반드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의 일치여부를 확인한 후 일치하는 경우에 한하여 의견게시를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인터넷실명인증제 도입을 표결처리했다. 고맙기도 하셔라. 자상하신 국회의원들 만세!

어떤 제도도 긍정적인 효과만을 갖지는 않는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악용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역효과만 잔뜩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어떨까? 이 제도의 목적은 아마도 선거 관련 정보의 유통을 잘 걸러서 제대로 된 정보를 유통시키고 악의적인 정보에 대하여는 처벌을 하자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걸러내지? 이 제도를 들여보면 글쓴이 확인과 글의 내용 분류 이 두 가지를 이용하여 글을 걸러보려고 한다. 물론, 이 제도의 핵심 사안은 본인 확인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글의 분류 부분부터 보자. 선거와 관련된 의견이라... 생각을 쉽게 하기 위하여 딴 얘기로 돌아가보자. 인터넷을 많이 쓰는 사람들의 큰 골치거리 중의 하나가 스팸이다. 아침마다 쌓여있는 수백통의 메일 중에서 스팸을 골라내서 (더 정확히는 스팸이 아닌 몇 통만 빼고 몽땅) 지운다는 것이 여간 성가시지 않다. 왜 그런가? 스팸을 자동으로 골라서 지우면 될 것 아닌가? 문제는 스팸과 햄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상당수의 메일은 매우 명백하게 스팸이지만 어떤 메일은 - 예를 들어, 동창회장의 안부 메일 - 애매하다. 심지어 어떤 메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스팸이지만 나에게 유용한 경우도 있다. 흡사 민족주의자들마저 좌익으로 보이는 잣대가 있는 것 처럼, 스팸의 경계는 모호하다. 그렇다면, ``선거와 관련된'' 기사는 뚜렷하게 구분되는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을 읽고 감명받은 독자가 이라크 파병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면? 그 글은 선거와 관련된 것인가? 바람이 불면 통 장수가 돈을 번다고 하는 속담 처럼 세상에 모든 것을 굳이 연결하자면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도대체 선거와 관련된 의견이라는 두리뭉수리한 대상을 가지고 어떻게 걸러내겠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국가보안법도 그렇지만 적용 대상이 모호해지만 꼭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하게 되어있다.

글의 분류 부분도 문제지만, 본인 확인 부분은 더 심각하다. 술집에서 술먹으면서 정치현실을 토로할 때 민증 까놓고 하는 거 봤냐? 길에서 집회하는데 가슴에 명찰달고 집회하냐? 원래 발언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굳이 밝히지 않고도 발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은 열사들이나 해낼 수 있는 장한 일이지 대다수 민중들의 몫은 아니다. 우리는 거저 겁주면 무서워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굳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도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많은 사람들에게 발언의 공간으로서 또한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민중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서로의 연대를 확인하고 기존의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 하는 자 누구인가? 자기들은 면책특권이다 석방동의안이다 하면서 방패뒤에 숨어서 맘대로 떠들면서 인터넷을 통한 의사 소통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꼭 알 필요는 없다

물론, 무제한으로 익명이 허용된다면 발언에 책임이 없어서 근거없는 비방, 비난 등이 난무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얘기한대로 기억과 경험의 확장에 걸맞지 않는 맥락의 제한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며 앞으로 점점 개선될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개선의 사례도 보인다. 예를 들어, 실명은 아니지만 같은 별명을 계속 쓰도록 하는 블로그 사이트에서는 같은 사람이 항상 같은 별명을 쓰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사람과 근거없는 비난이나 광고성 글을 쓰는 사람이 쉽게 구분되고 인기있는 사람, 인기없는 사람도 나타난다. 이렇듯 인터넷을 통한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새로운 단계를 향하여 진화를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실명제는 이러한 자율적인 진화를 무시하고 매우 편의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정리하려든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제도의 도입은 진화의 자연스런 방향을 왜곡하여 매우 부자연스럽고 매우 부자유스런 미래로 우리를 끌고 갈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이번 실명제를 반대하는 이유이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산다는 건 그런거야
다 안다면 재미없지
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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