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07.02.04 12:52

글자의 운명에 대한 따분한 고찰

고양우

2004년 4월 1일

에피소드 1 - 한자 혹은 타이포그라피

몇 년 전 글줄이나 쓴다는 사람들 사이에 중요한 화제거리 중의 하나가 한글 전용 논쟁이었다. 한겨레신문에서 시작된 언론의 한글 전용은 처음에는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시나브로 대세로 굳어졌다. 물론,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아직도 한자를 고수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진영은 여전히 완고하지만 도도히 흐르는 장강에 떠가는 나뭇잎 하나라고나 할까.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였을까?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타이핑''의 일상화라는 점이다.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보자. 아직도 대부분의 직장에서 문서는 손으로 직접 썼다. 그때 만들어진 문서를 보면 한자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서는 절대로 쓰지 않는 어거지로 만든 한자말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80년대 중반에 소위 사무자동화 (OA : office automation) 라고 하여 워드 프로세서 전용기기 또는 워드 프로세서로만 사용되는 컴퓨터가 사무실에 등장한다. 하지만, OA 는 여전히 서무 여직원들의 몫이거나 견습 직원들의 몫이었고, 그 때 만들어진 문서는 이전에 손으로 쓰던 문서를 인쇄기로 찍어낸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다가, 정보 기술이 점점 일상 업무 속으로 파고 들면서 일선 직원들은 물론이고 점점 간부직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를 직접 다루기 시작한다. 아무나 직접 타이핑 할 수 있는 것을 손으로 한번 쓰고 다시 다른 직원이 컴퓨터로 입력해서 인쇄하고 고치고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기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쓸데없는 비용의 지출이므로 점점 자기 문서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 일상화된다.

극적인 변화는 바로 이 시점에 나타난다. 손으로 쓸 때는 한글로 쓰나 한자로 쓰나 별 차이가 없지만 컴퓨터로 한자를 입력하는 것은 한글에 비하여 턱없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처음에는 몇 글자라도 한자로 바꾸려고 하다가 점점 그마저 시간에 쫓겨서 바꾸는 노력을 포기한다. 그러면서, 깨닫기 시작한다. ``어! 한자로 안써도 글이 되네?''

그렇다. 자기 손으로 타이핑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한자 투성이로 문서를 만들던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시간의 낭비에 지나지 않았던가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도 육체 노동이 주는 작은 가르침이런가?

그렇다고 한자가 그냥 사라질 것인가? 대체로 보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자는 다른 의미에서의 화려한 부활을 하고 있다. 메신저의 사용자라면 지금 당장 친구 목록을 보라. [謹弔國會] 가 보이는가? 그냥 ``근조국회''라고 써도 될 것을 굳이 한자로 표기하는 것은 좀 더 강한 표현을 하기 위한 방법이다. 말하자면 강조하기 위하여 글씨를 진하게 쓰거나 밑줄을 치는 것 처럼 타이포그라피의 한 방법인 것이다. 최소한 지금의 세대에게 한자는 타이포그라피일 뿐 일상적인 글쓰기의 도구가 아닌 것은 확실하고 한자가 글자로서의 원래 위치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몇년 전부터 초등학생들 사이에 한자능력자격시험이 유행하고 있다. 아이들을 모두 고전 전문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들을 그만 괴롭혀야 한다. 혹시,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이미 망한지 천년도 넘은 한나라 글자를 배우지 말고 중국 글을 배우라고 충고하고 싶다. (여기에 있는 한나라는 특정 정당과 관련없음.)

에피소드 2 - 글자, 이모티콘 그리고 패러디 사진

한 걸음 더 들어가보자.

글자란 뭘까? 사람들마다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겠지만 필자에게 글자란 말이나 소리를 부호 (영어로는 코드 code) 로 바꾼 것이다. 부호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쉽고 정확하게 기록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아날로그 세계에 머물러 있던 숫자를 0과 1이라는 부호로 바꿈으로써 기억, 처리 그리고 전송 능력을 급격히 개선한 정보 기술과 닮은 꼴이다.

하지만 글자라고 하는 부호화 방식은 별로 정교하지 않다. 예컨대, 억양, 말의 빠르기, 손짓이나 발짓, 표정 등 말에 따르는 다양한 요소를 글자는 담지 못한다.

물론, 굳이 그러한 요소를 담지 않음으로써 글을 읽는 사람의 자유로운 해석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예전에,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영화화 되었을 때 여주인공 엄지의 목소리가 원판 만화와 다르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적이 있다. 만화 속의 목소리라... 누가 들어 보기나 했나?)

글자가 갖는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는 무척 오래되었다. 서예라는 것도 목적은 다르지만 글자의 한계를 확장하려는 것이고 인쇄물의 경우에는 고딕체나 이탤릭체로 쓴다는지 글자의 크기를 다르게 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시도를 볼 수 있으며 이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에서 가장 활발히 시도된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글자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글자로 표현하려고 이모티콘 (emoticon : 감정 emotion 과 표상 icon 을 합쳐서 만든 단어) 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영어권에서 먼저 시작된 여러가지 얼굴 표정 - 예를 들어, ;-) - 으로부터 한글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여러 이모티콘 - 예를 들어, 우는 얼굴을 ㅠ.ㅠ 로 표시하는 것 - 이 나타났다.

이러한 시도가 여전히 글자라는 전통의 도구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면 몇년 전부터 전혀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디지털 캠코더의 보급으로 영상 저널리즘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곧이어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합성 사진 (또는 패러디 사진) 의 전성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딴지일보 (http://ddanzi.com/) 에서 유행시키기 시작한 패러디 사진은 디씨인사이드 (http://dcinside.com/) 의 사용자 갤러리나 미디어 몹 (http://www.mediamob.co.kr/), 라이브이즈 (http://liveis.com/) 등을 통하여 전성 시대를 맞이하고 최근에는 정부의 선거관리위원회 조차도 공명선거 홍보를 위하여 패러디 작품을 공모할 정도이다.

그림이 글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동안 널리 써먹지 못한 것은, 그림을 만들어내거나 이를 전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억하는가? 필자가 ``국민''학생이었던 시절에 어린이회관이라는 데를 가면 그 입구에는 인자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앉아있는 당시 대통령의 ``살아있는'' 부인의 석고상이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 들어가서 살펴본 우리의 미래상 중에는 화상 전화기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화상 전화는 실용화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그림을 다루는 것은 어려운 기술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정교한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의사 전달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고 있다.

그 다음은?

비디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컴퓨터의 처리 기술, 자료의 저장 기술 그리고 네트워크를 통한 전송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비디오 자료는 저장, 편집 또는 전송하기에는 ``조금'' 크다. 하지만, 10 년 안에 한 개인이 평생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성냥곽만한 장치에 다 담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네트웍을 통하여 이때까지 출판된 모든 책을 1초이내에 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문서 편집기를 써서 간단히 문서를 만들어 내듯이 비디오를 맘대로 편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비디오를 편집한다는 것은 웨딩 포토 아저씨들 처럼 쭉 찍은 것을 보기 좋게 잘라서 편집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글을 쓰듯이 화면에 들어가는 내용을 맘대로 바꾸고 (예를 들어, 장금이 얼굴을 모두 내 얼굴로 바꾸기) 나오는 대사도 다른 목소리에 다른 내용으로 얼마든지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간단한 편집기로 편지 한통을 쓰듯이 간단히 비디오 편지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글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소한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지금의 한자처럼 좀 폼나게 뭔가를 표현하기 위하여 또는 고풍스런 느낌을 주기 위하여 글자를 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서예는 인간문화재 정도가 되어야 다룰 수 있는 특이한 기술이 될 것이다.

에필로그 - 아듀 앙시앙 레짐

우리 말글 생활에 이런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 난가? 아니다. 당신인가? 아니다. 나도 아니고 당신도 아니고 나 때문이고 당신 때문이다. 이렇듯,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제 갈길로 묵묵히 가고 있다.

필자가 난데 없이 글자의 운명에 대한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모 야당의 대표께서 연설 도중에 아버님이 생각나서 눈물을 흘리시었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서 한자를 써야 유식한 줄 알고 진정한 ``선비''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양반''들처럼 세상사에 초연한 척 뒷짐지고 헛기침이나 하고 폼 잡으면 그래도 기득권이 유지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많은 퇴행증 환자들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나 어쩌랴, 해는 이미 저문지 오래고 그들의 시대는 지나가 버린 것을... 새벽의 미명이 새 날을 이미 예고하고 있음을 왜 모르는가? 밤새 위력을 떨치고 까불던 도깨비들도 첫 닭의 홰치는 소리 한번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임을.

posted by 신묘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