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얘기한다 2007.02.04 12:53

꼬리표를 달아라?

고양우

2004년 7월 15일

장면1

최근에 정보 통신 분야 토론 게시판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일본의 어느 지자체가 실시하기로 했다고 하는 어린이 위치 추적 시스템이다. 아이들의 명찰이나 옷, 가방 따위에 스마트 태그 (RFID) 를 붙이고 길거리에 있는 가게에 태그를 인식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미 덴마크에서도 청소년들의 비행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유사한 서비스가 도입된 바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동통신사나 경비용역업체에서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우리에게도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장면이라고나 할까?

장면2

며칠 전 신문 보도에 따르면 삼성 SDI 의 직원들 몇 명을 누군가가 친구 찾기 서비스에 몰래 가입시켜 위치를 추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수사를 통하여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밝혀지겠지만 친구 찾기 서비스가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도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미국에서도 한 회사가 뉴욕시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누군가 자기를 찾지 말았으면 할 때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였다고 한다. (이를 그 회사 관계자는 "옛 여자 친구 버그" 라고 표현했다.)

장면3

서울시는 얼마전 어떤 의미애서건 획기적이라 할 만한 대중 교통 개편을 단행하였다. "홍보 부족 + 준비 부족 + 생각 부족" 으로 인하여 시민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럭 저럭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너) 그럼 이제 다 된거요? 이제 사람들이 새 체제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되는거요?

나) 그럴리가. 진짜 얘기는 이제 시작이에요.

너) 윽. 그게 뭔데?

나) 아직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지만 이번 개편으로 새로운 교통 카드가 도입된다고 하네요.

너) 아... 그거? 나도 들었소. 그거 쓰면 사용 실적에 따라 할인도 해주고 그런 답디다. 나도 그래서 그거 나오면 열심히 쓸 참이요.

나)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이 할인해주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너) 그야 뭐든지 많이 사면 할인해 주는 거 아니요? 단체 할인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

나) 그럼 왜 선불카드도 대량으로 미리 사는 건데 선불카드보다 교통 카드에 더 할인을 해주는지 논리가 안 맞는데요?

너) 그럼 뭐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불 카드가 아닌 새로 도입되는 교통 카드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누가 언제 어디서 타서 어디에서 내리는지 정보를 축적하고 이 정보를 이용하여 임의의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그 사업권자에게 주어 진다고 한다.

이야기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뒤를 밟으려는 시스템이 여기 저기서 도입되고 있다. 얼마전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위치 기반 서비스 (LBS) 의 법제화를 이번 17대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협의하였다. 그 외에도 교육부가 밀어부친 NEIS, 박정희 군사 쿠데타 이후 시작된 주민등록제도와 전국민 지문 날인 제도, 범죄 예방을 구실로 동네 어귀마다 설치되는 CCTV 카메라, 일부 구청에서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도입하여 이미 사용하고 있는 지문 인식기 등 일일이 늘어 놓자면 정작 내가 할 얘기를 시작도 못할 판이다.

왜 그럴까? 왜 내 뒤를 밟는 걸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고객들의 뒤를 쫓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언제 어떻게 사서 어떻게 소비하는지 알 수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하여 이때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정교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 결국, 머지 않은 장래에 물건을 파는 행위는 이러한 정교한 고객 정보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나 지자체는 나에게 뭘 팔려는 걸까? 뭘까? 뭘까? 뭘까?

그건 "두려움"이다.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두려움을 심음으로써 우리가 스스로를 제약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와 사회 체제에 의하여 강요되는 두려움에 대하여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걸작 다큐멘터리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 잘 다루고 있다.)

내가 이런 식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통한 의식과 생각의 통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면 흔히들 이렇게 반문한다.

"내가 떳떳하다면 뭐가 문제야?"

이 얘기를 뒤집어 보자. 이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떳떳하게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법이나 제도, 상식, 문화가 끊임 없이 바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누구도 떳떳함의 정확한 경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더욱 사람들을 옥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그 경계까지는 갈 엄두도 못 내고 최대한 안전지대의 가운데 쪽에만 있으려고 한다.

"혹시 이런 얘기했다가 욕이나 먹지 않을까?"

"혹시 나만 이런 생각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 한 번도 한 적이 없는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들 마음 속이 숨어 있는 자율(?) 억압 엔진이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엔진은 우리의 동의도 받은 적 없이 국가가 우리들 가슴 속에 이식 수술하였으며 주민등록증을 통하여, NEIS 를 통하여, 복도마다 골목마다 설치된 카메라의 시선을 통하여, 신용카드를 통하여, 핸드폰을 통하여 연료를 공급받아 끊임없이 돌아가며 그 힘을 증폭 시키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서구 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은 다시는 이런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고 그런 엄청난 희생을 목격한 국민들이 어떤 명분에서건 새로운 전쟁을 지지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큰 세계 대전에 휘말린다.

무엇이 국민들로 하여금 미치광이의 전쟁 도발을 지지하게 하였던가? 혹시, 그 마음 속에 들어 있는 "두려움"이라는 엔진 때문이 아닌가? 서구 사회에 나치 추종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경제 성장의 둔화로 실업이 증가하는 것과 연관이 된다고 한다. 내가 밀려날지 모르니까 먼저 저 놈들을 치자. 이런 생각은 교실에서도 이어진다. 왕따라는 것이 결국 다수 대 1 의 싸움이고 혹시 내가 그 "1"에 속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다수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이상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도록 하는 것이 진짜로 간첩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고만 생각하는가?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신설된 국토안보국이 전례 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을 교묘히 이용하고 강화하는 절차가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옛날 이야기 중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하면서 접근 해서는 결국 할머니를 야금 야금 먹어 치운 호랑이가 나온다. (결국 할머니를 먹어 치웠다는 점에 주목할 것!!!)

시간은 흘러흘런 21세기. 신사복을 차려입고 깔끔하게 머리까지 다듬은 호랑이가 당신에게 묻는다.

"꼬리표 달고 다니면 안 잡아머어어억지"

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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