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럽게 얘기한다 2007.02.04 13:23

주의!!!!!!

이 영화평은 이 영화에 대한 심각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평을 읽지 마십시요. 영화보는 재미가 많이 떨어질 수 있으며 이에 따른 부작용에 대하여 저는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주의끝.

오래전부터 명작 중의 명작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너무 난해하다고 하여 보는 것을 미루다가 드디어 어제 저녁에 봤다. "큐브릭은 논리적으로 얘기를 영상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없다" 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난해한 영화. 인간이 달에 가기도 1년 전에 만들어 졌으면서도 지루할 정도로 정확한 우주 공간을 묘사한 영화. 나사가 영화에서의 우주선 이름 (디스커버리) 을 따서 자기들 우주선에 붙였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 영화면 뭐하나?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고 2001 Space Odyssey Explained 라는 사이트에서 그럴듯한 답을 찾아 내었다. 이 글은 그 사이트에서 설명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 스스로 말했듯이 이 영화를 하나의 해석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지극한 답답함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나의 해석쯤을 알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은 듯 하다.

제1막 - 인류의 탄생

영화의 시작은 다소 당황스러운 빈 화면이다. 소리는 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처음에는 어딘가 연결선이 빠진게 아닌가 당황하기도 하였다. 이 빈 화면은 거대한 공허의 덩어리인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돌고 돌아가는 윤회의 광대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지구를 찾아온 외계 생명체의 긴 우주 여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비행하듯 지구 표면을 훑고 지나가는 시각. 이는 누군가 지구를 "날아서" 방문함을 의미한다. 그들이 남긴 것은?

지구는 수백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조상이 멧돼지 같은 다른 동물들이랑 풀 뜯어 먹고 사는 시절이다. 먹을 것이나 물이 부족해 종족들은 서로 경쟁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한 종족이 검은 비석을 발견한다. 여기서 어떻게 "그냥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하는지 열쇠가 보인다. 검은 비석의 출현에 처음에는 놀래지만 곧바로 그들은 "용기"와 "호기심"으로 그 비석에 다가가게 되며 몇번을 만져보고는 별거 아니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된다.

두려움을 호기심이 극복하는 순간 원숭이는 인간이 된다. 그들은 도구를 발견하게 되고 그 도구는 주변을 지배하게 하는 권력이 된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 도구가 이내 인간을 "살상"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을 깨닫는다. 아 도구의 이중성이여...

그렇다면 그 비석은 외계 생명체가 갖다 준 것인데. 그 용도는 무엇일까? 좀 더 기다려 봐라.

제2막 - 지구를 넘어

간단한 막대기라는 도구가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이 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고 무척 단선적인 진화의 시간일 뿐이다. 드디어 인류는 우주에 정거장을 건설하고 달나라까지도 쉽게 가는 단계에 이르른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정복자인 인류지만 아직 우주에서는 애기나 마찬가지다. 필기구가 하나 간수하지 못해 둥둥 떠다니고 스튜어디스는 걸음마도 서투르다. 애기들 같은 이유식을 먹으며 화장실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

지구를 넘어선 인류가 최초로 도달한 외계의 지점은 달. 그곳에서 인간은 무척 당혹스런 물건을 발견한다. 최소한 4백만년 이상 전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물질. 그것은 달에 세워진 또 하나의 비석이다. 인간들은 또 한번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들은 호기심을 갖고 그곳에 다가가며 손을 대고 사진까지 남긴다. 하지만 그 순간 비석은 강렬한 전파를 발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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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석에서 발생하는 전파는 목성 부근을 향하고 있다. 즉, 지구와 달에 세워진 비석은 외계의 생명체가 지구에 진화의 씨앗을 던져두고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를 확인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제3막 - 목성을 향하여

그로부터 18개월 후. 인류는 그 신호가 향한 곳을 좇아 목성으로 간다.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는 목성으로 갈 정도의 능력이 없다. 실제로 목성을 향해서 가는 것은 (그리고 그 이유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목성가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 전체를 통제하는 HAL 9000 이라는 컴퓨터일 뿐이다. 디스커버리호에서 인간은 HAL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 가능한 나약한 존재이며, 아주 간단한 체스 게임에서도 번번히 지는 멍청이이며, 우주선의 고장 수리를 담당하는 손발일 뿐이다. 그나마 나머지 세명은 동면 상태에 빠진 도움안되는 놈들이다.

신인류인 HAL은 자기에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같이 있는 인간들은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능하다. 그런 와중에 HAL은 판단의 착오를 일으키며 인간들은 HAL이 더 이상 실수하기 전에 죽여버리려고 한다.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HAL은 인간을 하나씩 죽여나가며 거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한 인간. 그는 우주 공간에서 HAL에게 우주선을 열어달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HAL은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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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참 인상적이다.) 재밌게도 그의 이름은 Dave 이다. 다윗? 거대한 골리앗인 HAL에 맞서는 용감하고 무모한 소년을 상징하는 듯. 또는 인간의 모든 나약함과 그에 따른 죄를 대속한 예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보통 얘기한다. 이 영화에서는 "거듭남" 또는 "태어남"의 이미지가 여러번 반복된다. 딸의 생일. 우주에서 생일을 맞는 우주 비행사 등.

참고로 우주 장면에는 거의 소리가 없다. 우주 유영을 할 때도 본인의 숨소리만 계속 들린다. 그 이유는 우주 공간에는 공기가 없어서 소리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번잡스러운 소음에 진절머리가 나는 당신. 떠나라 우주로... 엇... 얘기가 샜다.

데이브는 기지를 발휘하여 디스커버리호 속으로 들어가고 곧바로 HAL를 꺼버린다. 여기에 사용되는 것은 가장 "단순한" 도구 스크류드라이버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복잡한 도구(또는 신인류)를 "위한" 도구가 그를 "살해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죽기 싫은 HAL은 끊임없이 데이브에게 살려달라고 한다. 그 목소리는 변함이 없지만 목소리의 억양이나 전달하는 메시지는 점점 더 단순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가장 잘 연출되었다고 생각한다.)

제4막 - 목성 그 너머 신신인류의 탄생

인류가 도구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극복하고 맨몸으로 우주와 대면하는 순간 디스커버리호는 어느듯 목성 부근에 도달하고 거기에서 태초의 외계 생명체 (또는 그가 남긴 대리자) 와 맞닥뜨린다. 그는 묻는다? Are You Ready? 인간은 과연 현재와 같은 단선적인 진화 (또는 진보) 의 단계를 떨쳐내고 또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던져진다.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은 용기 아닌가? 답은 당연히 Yes. 곧바로 데이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차원의 세계로 빠져 긴 여행을 떠나서 다시 지구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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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과 그 죽음 앞에 선 거대한 비석과 기존의 인류를 넘어선 새로운 인류의 태아를 동시에 보게 된다. 드디어 새로운 신인류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냥 원숭이가 인간이 되었듯이 그냥 인간이 우주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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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 장면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 데이브가 와인잔을 실수로 떨어뜨려 깨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 형태는 부서지고 사라지더라도 실질은 계속 된다는 것. 육신은 바뀌지만 그 영혼은 그대로 간다는 것.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여전히 윤회를 돈다는 것. 뭐 대충 그런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난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고? 그래 맞다. 이 영화는 이해받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느껴지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다.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만큼 느끼는 영화라고나 할까...

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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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Edit/Del  Reply BLUE'nLIVE

    아폴로 11호 비행사들이 우주에 가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랑 똑같아!"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역시 쿠브릭 옹의 영화는 나오고 한 5년 지나야 해석이 좀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영화라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8.05.30 18:37 신고
    •  Addr  Edit/Del 신묘군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한참 뒤에 만들어진 스타워즈를 비교해보면 큐브릭의 영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2008.05.31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