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9 13:09

/* (저자 주) 학교 주차장을 교수 / 직원 / 학생들이 어떻게 나눠서 써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학교 게시판에 오가는 것을 보고 쓴 글입니다. */

주차장의 구획 문제를 둘러싸고 이런 저런 의견이 올라온 것을 보니 새삼 대학교가 뭐하는 곳인가 또는 뭐하는 곳이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의 석궁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미 대학교는 스스로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나태해졌습니다. 이 마당에 대학에 대한 사람들의 세가지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해봅니다.

(사족: 이 글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솔직하게 정리한 것일 뿐 누군가를 폄하하거나 비난할 의도로 씌어진 것이 아닙니다. 저의 소망은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 실제로는 하나로 융합되기 어려운 무척 서로 다른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사소한 일에 대하여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그래서 서로 서운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1) 백화점 가설

대학을 학위를 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백화점이라고 보는 가설입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국공립대학교의 법인화 또는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는 급속한 상업 서비스화는 이 가설의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 가설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시장 논리에 따른 대학의 적응과 도태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장점이 있는 반면에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그렇다면 점원과 고객의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답이 옹색해 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백화점 가설에 따른다면 주차장은 고객(학생)들에게만 주어져야하며 교직원들은 어딘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주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것입니다.

(2) 기원설

대학교의 발생 기원은 도시에서 자취하면서 공부를 하던 학생들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이 공동체에서 공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선생님들을 초빙하여 형성한 것이 초창기 대학교의 모습입니다.

이 가설의 장점은 학생들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스승에 대한 존중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이런 고리타분한 방식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질서에 발 맞추어 산업의 역군을 생산해야 한다는 현재의 교육 이데올로그들의 주장에 배치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기원설에 따른다면 주차장은 학생들의 자율적인 합의에 의하여 스승들에게 적절한 공간을 할당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3) 기구설

어떤 조직이건 어떤 기구이건 일단 생성되면 그 생성의 원리와는 무관하게 스스로의 생명을 지탱하고 외연을 확장하려는 속성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태스크포스가 일이 끝났음에도 해체되지 않고 새로운 일꺼리를 끊임없이 창출하여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이 가설의 증거입니다. 이 가설의 가장 큰 특징은 기구를 끌어가는 힘이 그 기구의 "존재 근거" 에서가 아니라 그 기구를 "존재시켜야 한다는 이유"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기구설은 앞의 기원설에서 파생된 가설로서 학생의 공동체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하여 직원들을 두게 되는데 이 직원들이 스스로의 공간을 확보하고 외연을 확장해나감으로써 현재 우리가 보는 형태의 대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의 강점은 사실상 학교가 운영되는데 필요한 주요한 업무를 도맡아서 하고 있는 직원들의 역할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으로는 학교가 왜 애초에 만들어졌는가 하는 질문에 회의적인 답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차장 문제를 이 가설에 따라 설명한다면 학교의 행정적인 업무는 직원들의 역할이므로 이들의 선량한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