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2 14:29

/* (저자 주) 신지식인이니 지식경영이니 하는 얘기가 한참 유행하던 1998년 여름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준비없이 그냥 말로만 지식경영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 글입니다. */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한 시기를 풍미하는 유행어(buzzword)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IMF가 그 위세에 힘입어 다른 유행어를 제치고 상당히 오랫동안 수위를 지키고 있다. 한편, 정보산업계에서는 한 때 수위를 지키던 인터넷, 웹, 인트라넷을 밀어내고 데이터웨어하우징, 데이터 마이닝, 지식관리시스템 ( KMS : Knowledge Management System ) 등 기존의 IT관련 투자를 통하여 축적한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하여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기술들이 수위를 다투고 있다. 과연 이러한 유행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

이 유행의 배경에는 이를 가능케하는 기술(enabler)로서 에이전트를 비롯한 지능형 자료 처리 기술의 발달과 이에 의존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경쟁의 상황이 방아쇠(trigger)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후기산업사회로의 전화에 따른 주력 상품의 성격 변화 그리고 테일러리즘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잘 계획된’ 방식에 의한 생산성과 품질 향상 체계의 한계 등을 극복하고 WTO를 중심으로 가속화하고 있는 전지구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 기존 지식 ( 또는 자료 ) 의 재가공에 의한 지적 자산의 극대화는 선진국 모든 첨단기업의 모토가 되었다.

따라서 지식경영은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 전사적 자원 계획 등에 이어 우리나라 기업에게도 IMF 한파를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행을 보면서 과연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해 낼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지식경영이나 데이터 마이닝 기술은 기존에 잘 축적된 자료 즉, 1차자료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물론이고 개별 기업들 조차도 이런 1차자료를 많이 축적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 1차자료가 부족한 이유로는 1) 기록문화의 부재 2) 정보유통을 금기시하는 경향 등을 들 수 있다. 이 장면에서 기록문화의 부재를 통렬히 비판한 도정일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갈등과 고뇌, 시련과 고통, 죽음과 배반의 시대는 있었으되 그 시대의 경험은 우리의 척박한 기억력, 그 심오한 망각의 늪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중략) 서사를 통해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지 않은 민족 치고 자랑할 만한 문화를 일군 민족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찌된 일인가. 우리는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역사를 기록해 온 민족이면서 기억과 반성의 능력은 천박하기 짝이 없고, 서사에서 역사를 증발시키고 기억을 잡아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논리에 휘둘리기까지 한다. 외솔 최현배가 <천박한 낙천성>이라고 부른 어떤 특성이 우리에게 있는 것인가. ( 도정일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

한편, 정보유통을 금기시하는 경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열린 공론의 공간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우물가나 빨래터에서 유통되는 유언비어나 요정에서 유통되는 비밀 첩보에 의존에 살아왔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강력한 내외의 통제를 받는 방송, 재벌언론사와 언론재벌사가 경쟁하는 언론, 컴퓨터 통신마저 검열하여 사람들을 구속하는 정보기관. 이것이 21세기를 불과 3년 앞둔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정보 마인드를 확산시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이 커서 사랑을 많이 베풀 수 있는 것 처럼 전국민이 정보화의 열매를 향유할 기회를 갖지 않고서는 국민들 스스로가 정보 공유의 가치를 깨닫고 스스로 정보를 기록, 정리, 배포하게 되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공공기관에서부터 자료를 정리하고 국민들에게 널리 공개하는 작업을 시작해야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사회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보취로사업’을 통한 공공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공의 자료를 기록, 정리, 공개하는 것을 일회성의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의 모든 종사자들이 자기의 의무로 인식케하고 꾸준히 정보 축적 작업을 계속하게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치있는 자료를 많이 보급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운영의 묘도 찾아야할 것이다.

한편, 기업의 경우는 어떠한가 ? 기업 내부에서 축적 활용할 수 있는 정보 ( 또는 지식 ) 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기업의 일상적인 활동을 위해 필요한 기초 자료 ( 직원 인사자료, 거래처 장부 등 ), 직원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 ( 영업 노하우 등 ), 기업의 전략을 결정하기 위한 전략자료 ( 외부 컨설팅 회사로 부터 받은 컨설팅 자료 등 ) 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첫번째와 세번째는 누구나 약간의 노력과 돈의 투자로 쉽사리 얻을 수 있는 반면 두번째 자료는 포착해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부분을 포착해내어서 기업의 자산으로 승화시키지 않는 한 다른 기업과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지식의 포착을 위해서는 전직원의 정보 마인드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각 기업에서도 직원들에게 더 많은 기업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직원들의 정보 마인드를 제고하고 이를 통하여 훈련된 직원들이 그들의 자료를 주변 직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야 ‘유행하는’ 신기술을 도입하여 진정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2 14:24

/* (저자 주) 1997년말 모든 사람들의 입에 IMF가 오르내리던 그 시절에 열받아서 쓴 글 2탄입니다 */

1. WTO 체제와 경쟁력 그리고 지방자치

1-1. WTO 체제와 다국적 자본

흔히들 우리의 산업을 '고비용 경제구조'라고 얘기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엄청난 정치 관련 비용이나 사교육비에서도 이 '고비용'이라는 말은 등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고비용 구조는 전체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용을 증대시킴으로써 이윤의 폭을 줄이는 역할을 하므로 백해무익하다는 것은 뻔한 이치다. 물론 자본가들은 고비용의 구조 안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부풀림으로써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억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고비용을 속을 들여다보면 노동자의 임금외에 다른 부분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들어, 수송비용 ( 흔히 '물류비용'이라는 일본식 한자말로 얘기하는 것 ) 만 보더라도 교통 기반이 잘 구축된 나라에 비하여 수십배에 이른다는 통계는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개별 기업이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즉, 교통 기반에 대한 투자는 어차피 국가차원의 투자이므로 결국 중앙정부의 무능을 탓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고비용 구조는 '기나 고동이나 돈만 되면 뛰어드는' 한국 자본의 졸속 투자에서 비롯된다. 투자하려는 분야에 대한 기술도 없으면서 '돈만 때려부어서' 공장을 짓고 없는 기술은 외국에서 들여오고 규모의 경제로 밀어붙이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그나마 그 분야에서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씨를 말려서 기술 자립의 기반을 와해시키는 동시에 해외로의 과다한 로열티 송금이라는 고비용으로 연결된다.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사업영역 구분이 그 이후 급속히 무너지면서 국내의 자립기반은 말살되고 아무리 생산해봐야 이익율이 3%를 넘지못하는 생산에 매달리는 현재의 구조로 바뀌게 된 것이다.

어쨌든 자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 따위의 '고비용 구조'는 '내 알 바' 아니다. 왜냐하면 WTO 체제의 출범으로 자본의 국가간 이동은 거의 자유화 되었다. 따라서, 자본은 자기의 덩치와 고도화 수준에 맞는 국가를 찾아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으면 실리콘 밸리를 가면되고 봉제인형을 만들고 싶으면 중국으로 가면된다.

하지만, 노동자는 어떤가 ? 노동자의 국가간 이동은 제도나 관습이라는 측면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프로그래머들은 모두 실리콘 밸리로 가고 인형만들던 사람들은 모두 중국으로 가고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스코틀랜드로 가란 말인가 ? 살던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이웃을 사귀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 한때 우리나라에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몰려온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현상일 뿐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이동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은 겨우 우리 나라 안에서 지역을 옮기는 수준일 것이다.

즉, 자기가 보유한 기술에 걸맞는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 현재 노동자들의 선택의 한계일 것이다. 따라서 한 국가내에서 각 지역자치체들은 자신의 특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면 각 지역자치체들이 고유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

1-2.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운영논리는 외줄 타기와 같다. 외줄을 타는 사람은 중심을 잡기 위해서 긴 장대를 들고 있는데 이 긴 장대의 오른쪽 끝에는 '자유'라는 말이 왼쪽 끝에는 '평등'이라는 말이 씌어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어느 한쪽으로 넘어지게 되고 그러면 나라 꼴이 말이 아닌 상황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번 것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한편 '평등'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불평등'으로 인하여 '자유'가 특정집단만의 '자유'가 되는 것을 막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교통에 비유하면 이렇다. 도로에서 신호등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자동차는 무한정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빨간 불이 없으니 목적지까지 한번도 서지 않고 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자유 이데올로기'는 '효율성'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길을 건너갈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동차보다 덜 단단하기 때문이다. ( 태생적 한계 ! ) 그래서 신호등이라는 것이 있어서 언제는 자동차만 그 외는 사람만 그 위를 지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즉, '평등 이데올로기'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자들이 가진 다양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다. 물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자동차나 사람이나 길위에서 뒤섞여서 애초 도로를 놓고 자동차를 만든 '효용성'이 없어지게된다.

국가의 운영도 마찬가지이다.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그 수단을 활용하여 돈을 버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렇게해서 축적된 부가 세습되거나 - 그럼으로써 가난도 세습되게 만들거나 -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할만큼 압도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따라서, 많이 번 만큼 '세금'을 내게 하여 그 돈으로 부를 갖지 못한 사람들도 살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이 구조를 들여다 보면 '자유'를 지향하는 것은 '분산적'인 반면에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집중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산과 집중의 조화'가 곧 20세기말을 규정하는 세계질서인 것이다. (맨 아래의 주1 참고)

이런 틀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보자. 우리나라도 지방자치를 하긴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굴리는 원료에 해당하는 돈 즉, 세수는 국세에 치중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지방자치체는 중앙정부가 나눠주는 돈만 쳐다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앙정부가 아무리 비대해져도 이를 통제해줄 상대역이 없다. 정부는 '평등'의 논리를 내세우며 지방에는 돈을 쥐꼬리 만큼만 준다. 그러니 지자체들은 돈이 없어서 지역사회를 경영해나가기는 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하다. 물론 중앙에서 나눠주는 돈에 덜 의존해도 되는 부자 동네들은 좀 낫지만. 오죽하면 강남구나 서초구에서 보도 블럭을 교체할 때면 관악구나 구로구의 공무원들이 트럭대놓고 밤새 기다렸다가 실어간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 어떤 사람이 이게 사실이라고 했지만 나는 절대로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 )

어쨌든 우리가 어떤 지역에 살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큰 차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너무나도 평등하지 않은가 ? 그런데 왜 하나도 행복하지 않지 ? 왜 행복하지 않은지를 학교교육을 비유로 생각해보면 이렇다.

우리나라처럼 평등교육이 잘 실현된 나라도 없다. 전국 어딜가도 똑같은 국정 교과서로 별반 차이도 없는 수준의 시설에서 도토리 키 만큼도 교육에 대한 열의나 실력이 차이가 나지 않는 교사들이 가르치는 나라니까 말이다. ( 일부 열의가 넘치는 존경스런 선생님들께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그런 분들이 무시할 만큼 소수라는 것도 사실이다. ) 오죽하면 어떤 사람은 현재의 평준화 정책을 '평둔화' 정책이라고 비꼬았을까 ?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래서 평등해졌는가 하는 것이다. 결코 아니다. 잘사는 집 애들은 공교육비의 수천 수만배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지불함으로써 진학 - 즉, 부의 세습을 용이하게 하는 인증서의 확보 행위 - 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아닌가 ? 교육에서의 평등은 결국 사적 영역의 개입을 통하여 '신분 세습의 자유'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약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서울에 있는 학생들이 시골에 사는 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 서울이 물이 좋아서 그런가 ? 시골 애들은 농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또는 다방 레지가 적성에 맞기 때문인가 ?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무엇인가 ? 사교육비를 포함하여 교육에 투자되는 교육재정의 분산과 집중이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돈 많은 사람은 학교에 돈을 더 내고라도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고 그렇게 해서 거둬들인 돈의 일부를 가난한 이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닌가 ? 국가가 만약 사적영역에서 돌아다니는 검은 돈을 수거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존립의 가치를 따로 찾을 것인가 ?

이상에서 우리는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중앙으로 집중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도 평등도' 모두 구현하고 있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다. 중앙정부를 과감히 개혁하여 축소하고 지방정부에게 재량을 이양하고 그들 지방정부간의 조절역할만을 중앙정부가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농민도 별로 없는 서울에 있는 농촌지도소도 없어질 것이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 성과'라는 대전엑스포 운영재단도 없어질 것 아닌가.

2. 외국자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 ?

2-1. 왜 갑자기 외국자본을 들먹이나 ?

최근 몇 달간 우리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해외의 자본을 한국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우리 기업에 대한 주식의 보유 상한선을 높인다던지 인수와 합병을 쉽게 해 준다던지 부동산의 소유에 대한 규제를 풀어준다던지 하여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에 많이 유입됨으로써 국가의 외환보유고를 확대하고 산업분야에 유통되는 자본의 양을 증대시키는데 주력하였다. 그 결과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가 어느정도 안정세를 찾고 있으며 주식시장은 연일 상종가를 이어나갔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TV에 나와서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자본의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낮은 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해외자본의 유입에 긍정적인 언급을 하였다.

이렇게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은 단지 우리의 외환보유고를 늘이는데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자본의 국내 유입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이다. 당선자 측이 노동자측을 향하여 던지는 메세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 여러분 그동안 우리나라의 자본에게 얼마나 당하셨읍니까 ? 게다가 최근에는 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도산할 위기라고 내세움으로써 일자리를 잃게 되어 얼마나 괴로우셨읍니까 ? 그러나 이제 걱정이 없습니다. '정리해고제'만 도입되면 외국자본의 마구 마구 유입되어서 많은 회사가 생길 것이니 여러분은 그때가서 '외국인 회사'에서 일하시면서 더 많은 월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측이 '정리해고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외국자본이 유입되지 않고 그러면 국내자본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는 새로운 국가장벽을 활용하여 국내에서 마음껏 활동하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그나마 모두 해외로 도망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선택의 폭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2-2. 신식민지 또는 새로운 국제분업질서

아들아 내가 어렸을 적에 비누공장의 여공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서 일본 놈 좋은 일만 시켰줬다.

우리네 손으로 만든 물건이 바다 건너 일본 놈 것이었단다.

( 구전가요의 가사에서 일부 수정 )

생각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회사가 '외국 회사'라고 생각해보자. 과연 득과 실은 무엇인가 ? 현재의 관행에 의하면 과실의 국가간 송금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즉, 이들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하여 돈을 벌면 그 돈은 전액 '본국'의 자본가에게 세금 한 푼 안내고 날아가게 된다. 물론, 그 회사에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영업활동과 관련한 세금을 거둬들이긴 하지만. 과연 식민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 이런 노동을 조장하는 정부가 우리 정부라는 것, 이렇게 해서 생산된 물건을 소비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는 것 외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

뿔을 고치다가 소를 죽여 외세의 먹이로 내준다면, 저는 단연 뿔보다 소를 지키는 '애국'을 택하겠습니다.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여야 고용이 늘고 우리 경제가 산다는 훈시는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기업을 내주는 외국인 투자는 임금만 얻어먹고 알맹이는 빼앗기는 장사일 뿐입니다. 제조 원가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안되므로, 100원짜리 물건을 만들면 20원만 우리 몫이 되는 셈입니다. 툭하면 쳐드는 멕시코 경제의 회생이 이렇고, 개발 독재 시절의 저임금 수출이 이랬습니다. ( 정운영 1998.1.14 정운영 에세이 / 한겨레 신문 )

정운영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 나머지 80원을 가져가는 사람이 우리나라 자본가이든 미국의 자본가이든 그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 우리나라 자본가들이 가져간 돈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 20%를 가져간 사람들이 내놓는 금덩이의 양이 80%를 가져간 사람들보다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그 누구의 집에는 정말 황금송아지 한마리 밖에 없었단 말인가 ? 기업가들이 전직 대통령들에게 쥐어준 쌈짓돈이 검찰에 들킨 것만 수천억을 넘는데 집에는 현금이 없고 주식으로만 갖고 있다는 말을 믿으란 말인가 ? 우리 외환시장을 어지럽혔던 '해외 헷지 펀드'에 우리 자본가들의 뒷돈은 과연 한푼도 없었단 말인가 ? 그런 상황에서 감히 '애국'을 들먹이는 것은 옳은 논리인가 ?

어차피 이 땅에 발붙여 먹고 살아가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소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밥상의 밥을 달라는게 아니다. 그저 벗은 몸을 가리고 주리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빵한조각을 얻기 위하여 배급소에서 긴긴 겨울날 줄서지 않게 해달라는 것 뿐이다. 80%를 가져가는 자들이 사회에 제대로 세금을 내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여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정작 논의해야할 것은 외국자본의 유입이나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아니라 경제 운영의 투명성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성경 마가복음 7:27~28 )


(주1)

'분산과 집중의 조화'가 일국의 경제원리가 아니고 '세계질서'라고 표현한 것은 개개인으로부터 세계전체에 이르기까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문명의 향유에 이르기까지 현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이 미디어의 발전을 통하여 거대한 상호 조응의 체계로 편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의 이해를 돕기위하여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보자. 예전에는 세계를 얘기할 때 하나의 지구에 2백여개의 국가가 있고 그 국가안에는 다시 수십수백개의 지방이 있고 그 지방안에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살고 이런 식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 미디어의 발달을 통하여 이제는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나이키'를 신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며 TV를 통하여 '펩시맨'의 활약을 본다. 인터넷에 연결된 수백만의 직장인들이 매일 아침 '딜버트'와 직장의 애환을 나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제'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 보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상황이 한국의 주가를 더 심하게 흔든다. 이렇듯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그들의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하나의 체계속으로 통합되고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전세계차원의 '집중'은 필연적으로 개별 국가의 위상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 전형적인 사례로 몇년전 미국이 일본에 대하여 무역불균형의 해소를 요구하며 일본제품에 대한 장벽을 높이자 오히려 이를 원자재로하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가격에 상승요인을 가져오게 되어 결국은 그 조치자체를 취소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중간 단계의 단위들은 무너지고 이제 세계질서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상대역은 국가가 아닌 지역사회가 되는 것이다. ( 이 부분의 설명은 약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이 '분산과 집중의 조화'에 대한 설명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더욱 정교한 설명은 별도의 글로 넘겨야 겠다. )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2 14:19

/* (저자 주) 1997년말 모든 사람들의 입에 IMF라는 말이 오르던 그 시점에 열받아서 쓴 글 */

글을 시작하며

세상 어딜가도 IMF 얘기 뿐이다. IMF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과연 IMF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 우선 신문이나 방송에서 얘기하고 있는 IMF에 대해 알아보자.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현 상황은 다음과 같이 요악할 수 있을 것이다.

현정부가 경제분야에 무지하여 몇몇 부도 기업을 잘못 처리하여 국가의 신용도를 떨어뜨리고 그 와중에 외환관리까지 잘못하여 국고에 달러가 소진되는 사태를 맞이하였다. 이에 채무불이행을 피하기 위하여 IMF에 긴급히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IMF는 돈을 대주는 대신 가혹한 경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요청하였다. 다급해진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조정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것은 차기 정부를 맡을 김대중 당선자의 몫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최근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이유와 해결책을 이끌어 내는 데는 부족하다. 즉, 언젠가 터져야할 상처가 1997년 말에 터진 이유를 설명할 뿐 이러한 상처가 왜 계속 깊어가고 있으며 치유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설명하는데는 부족하다. 위의 사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IMF란 그저 우리는 대량의 실업사태와 오랜동안 저소득층의 희생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과연 그런가 ?

우리는 과연 외채를 갚을 수 있는가 ?

IMF가 우리에게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이유는 미국의 납세자들에게서 거두어들인 돈을 한국에 빌어주면서 떼이지 않기 위하여 한국의 경제 자체를 흑자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사실 한국은 해방이후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적이 거의 없다. 3저호황으로 거의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돈을 많이 벌었던 80년대말을 제외하고는 매년 적자의 폭이 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제 시스템도 계속 적자를 보면서 굴러갈 수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지탱되어 온 것은 계속 무역량을 늘여가면서 작년에 빚진 것을 올해에 갚기 위하여 더 많이 빚지고 올해 빚진 것을 갚기위하여 내년에는 더욱 많이 빚지는 '아랫돌 빼다가 위에 박는 식'으로 경제를 운용해 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돈'들은 높은 이자를 빼먹기위하여 계속 공급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채무불이행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빚을 궁극적으로는 못갚을 것이 뻔한데 IMF는 어떻게 돈을 대줄 수 있는가 ? IMF의 관계자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첫째로, 원화가 급격히 평가절하됨으로써 한국에 투입된 미국의 금융자본이 회수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위해서 원화를 적정선으로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이해와 일치한다. 둘째로, 원화의 평가절하는 한국이 생산하는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이를 통하여 수출을 증가시킨다면 원금 상환이 가능해 질 것이다.

과연 그럴까 ?

이를 판단하기에 앞서 20세기말의 세계 경제 질서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거대한 분업체계를 살펴보자. 미국을 중심으로한 선진국은 실물의 생산보다는 기호의 생산에 치중하고 후진국은 실물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당장 하루의 일용할 양식이 될 쌀은 태국에서 생산되고 있고 전세계인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동남아나 남미, 동구권에서 생산된다. 반면에 미국에 최대의 부를 가져다 주는 상품들은 영화, 음악, 소프트웨어,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이다. 미국이 생산하고 있는 이들 상품의 특징을 살펴보면 개발비는 높은 편이지만 거의 0에 가까운 생산비를 요하는 상품들이다. 원본과 복제본의 구별이 없어지는 디지털 시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다 준 것이다.

선진국 상품과 후진국 상품의 차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후진국이 생산하는 제품은 사람의 수에 의하여 시장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는 것 들이다. 아무리 쌀 값이 떨어지더라도 전세계 사람들이 밥을 한 끼에 두그릇씩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선진국의 상품은 아직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성장성이 높고 설령 전세계인이 공통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버전이나 개선을 통하여 기존의 상품을 싸그리 갈아치울 수 있도록 시장을 계속 바꾸어 나가고 있다. 즉,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사더라도 계속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나오기 때문에 새롭고 뚱뚱한 소프트웨어를 처리해 줄 새 컴퓨터의 필요성은 필수불가결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기존의 제품이 더 이상 지원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전혀 새로운 제품을 다시 구매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본다면 한국이 외환위기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무역에서 흑자를 이루어 빚을 갚아나가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위기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대응은 적절한가 ?

현 위기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대응은 애초 이 글의 처음에서 제시한 이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없다. 즉, 현재의 상황을 참고 버티면 되는 일시적인 위기로 보고 대충 개기고 있는 것이다. 통지표만 부모님께 보이지 않으면 며칠은 버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나쁜 성적이 좋아지지는 않는 것과 같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선, 재계는 IMF가 제시한 재벌의 해체와 내부거래의 관행을 깨기위한 연결재무제표의 의무화, 주력기업을 제외한 한계기업의 정리, 미국식 회계 시스템의 도입, 외부 감사제의 도입, 과도한 차입경영의 중지, 재무 시스템의 투명성 제고를 통한 재벌 소유주의 재벌 사금고화 방지 등은 애써 외면한 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현란한 이름의 해고 프로그램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나마도 미국식의 해고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실업자들의 생활과 재교육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기금을 세금의 형태로 납부하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무시한채.

노동자들이 해고를 수긍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업도 충분히 허리띠를 졸라매었고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 이런 증거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금융실명제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돈이 어디서 새나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어떤 노동자도 자신의 해고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 이런 시스템의 구축은 누구의 책임인가 ? 결국 화살은 정치권으로 돌아온다. 오히려 강화해야할 금융실명제를 후퇴시키면서 정치권이 내걸고 있는 명분은 금융실명제의 후퇴를 통하여 지하자금을 지상으로 꺼내어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지하의 자금이 지상으로 나오기 위하여 발행하는 무기명 장기채권은 지하의 자금을 더욱 깊이 숨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정치 자금이 이런 지하 자금과 일란성 쌍둥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노동자들이 졸라맨 허리띠에 의해 확보된 부가가치를 이용하여 정경유착을 키워나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편, IMF에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금융감독기구의 독립성은 엉뚱하게도 금융감독 기능을 한국은행으로부터 빼앗아 재경원 ( 또는 총리실 ? ) 으로 옮김으로써 독립성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제사회로부터 한마디로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결과를 향해 달리고 있다.

IMF를 제대로 이겨내는 길은 무엇인가 ?

어쨌든 외채는 있는 것이고 이를 차근차근히 우리 경제의 재건을 통해 갚아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 이 장면에서 조크 한다디.

김영상 정부는 이제까지 그 어떤 정부도 이뤄내지 못한 두가지 충격적인 진보를 이루어내었다. 첫째는 재벌의 해체고 둘째는 군비축소다.

그렇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 80년대 후반 3저호황에 이은 우리 경제의 성장과 과실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공짜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가 흥청망청 즐긴 것은 빚잔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그동안 고도성장이라는 허울로 굴러가는 한국을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 정의'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 금융실명제를 강화하여 돈의 흐름을 유리처럼 투명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지하자금이 방해가 된다면 화폐개혁도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일단,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한 다음 돈이 정상적으로 분배되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제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며 세제개혁의 기본 축은 현재 뒤집혀있는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을 정상적인 방향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시행해야 한다.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잘 교육된 사람들을 지역내에 유치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전반적인 개혁과 복지 시스템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 참고로, 김영삼 정부는 교육개혁을 주요한 공약으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해 놓은 것이 없다. ) 미국이 현재의 부를 축적하는데는 미국에 유학온 외국인들과 이민이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성실하고 능력있는 국민들을 계속 선진국에 뺏기는 상태에서는 지역사회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근본으로 돌아가자

이상은 우리사회 내부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을 때의 대응책이고 이를 전세계의 지평으로 확대해보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자. 이 모든 사태의 근본에는 과연 무었이 있을까 ? 브레튼우즈 협약이 맺어지고 세계 은행, IMF 등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 이는 생산과 자본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두 단계의 괴리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선진국은 이미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노동력과 그로부터 창출되는 부 ( 즉, 자본 ) 의 심각한 괴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많은 자본을 축적 ( 세계적 금융자본의 시원적 축적 ? ) 하였고 이들 자본은 WTO 체제를 맞아 - 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 국경을 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덩치를 불려왔다. 금융자본이 그 자체로서 가장 많은 차익을 내는 방법은 투기이며 이의 가장 강력한 수단은 환투기였다. 환투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외환보유고가 작은 나라를 상대로 장난을 치게된다. 환투기 장난은 흡사 실력이 비슷한 사람이 포커를 치는 것과 비슷해서 뒷돈이 많은 놈이 이기게 마련이다. 현재 세계전체로 보아 헤지 펀드의 규모는 미국은 물론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일본도 농락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금융자본은 그 누구도 통제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IMF가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방어력은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우리는 이 장면에서 미국의 원주민들이 이룩한 놀라운 통찰력에 기대어 볼 수 있다. 미국 인디언들에게는 '포틀랏치'라는 풍습이 있었다. 각 부족이 특정한 기간을 정하여 자신이 축적한 잉여생산물을 싸그리 불 태우는 것이다. 누가 더 크게 더 오래 태우는가가 그 부족의 위세를 상징하는 것이 된다. 물론, 위세를 통하여 우위를 점한다고 하더라도 축적된 잉여생산물이 없기 때문에 다른 부족을 쉽사리 넘볼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따라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풍습은 축적된 잉여생산물이 다른 부족을 공격할 수 있는 무력으로 전화하며 이는 부족들 모두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라는 역사적인 교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전 지구적 차원에서 금융자본의 포틀랏치를 행할 것인가 ?

매우 위험한 발상이긴 하지만 외채를 갖고 있는 모든 국가가 채무의 탕감을 요청하여 이때까지의 채무를 모두 없애는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얘기하는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물론,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발은 돈 장난을 즐기는 돈 장사 몇명일 뿐이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가난한 민중 전체이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2 14:15

/* (저자 주) 1997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

늦가을에 내린 비가 마지막 저항을 하는 낙엽들을 땅에 떨구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한결 추워지면서 본격적인 초겨울 날씨로 접어들 것이다. 올해는 엘니뇨 덕분에 덜 추우면서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삼한사온이 깨진 지도 오래 되었지만 이제는 겨울 마저 춥지 않다니 제 이름값을 하는 것이 점점 사라지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올해는 경제가 전체적으로 매우 심각한 불황기에 빠졌다. 많은 중견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환율이나 증권시장도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수치로 대변하고 있다. 이런 불황은 많은 기업들로 하여금 외연적 성장보다는 내포적 효율에 관심을 두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투자심리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와중에 대선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그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버린 민생현안은 다가올 겨울을 유난히 길고 춥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월드컵 예선에 환호하고 박찬호에 열광하는 것은 스포츠 외에는 볼 것이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황은 인터넷에도 몰아쳐서 작년에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인터넷 관련 산업이 올해에는 일년내내 그 거품이 가라앉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현대정보기술이 기존의 아미넷 사업을 신비로라는 이름으로 일신하면서 재탄생한 것이나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것 그리고 여러 백화점이 인터넷에 쇼핑몰을 개설한 것 등은 인터넷이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터넷 문화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뭔가 허전함을 느낌을 갖게된다. 외래의 사상이나 문물을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퇴계의 시대로 끝나고 그 이후 조선의 이념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천주학부터 체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실학을 거쳐 최근의 인터넷까지는 전후좌우 맥락이 생략된 채 도입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대화의 기능 ( CMC : 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 ) 과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는 기능 ( Virtual Community ) 은 생략된 채 오직 웹 서핑으로만 이해되는 것도 이와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웹 서핑이 위주가 되다보니 '볼 게 없더라' 라는 불만이 생겨나는 것이고, 자연히 볼 것이 많은 해외로 트래픽이 몰리게 되고 이는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막대한 통신료 부담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해외로의 비용지출이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고 할 지라도 그것을 적용하려는 토양에 따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를들어, '얼굴이 검은 사람은 대개 간이 나쁘다' 라고 하는 지극히 흔한 상식도 간이 튼튼한 흑인들 앞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고 외국의 소프트웨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도 워드 프로세서 시장만은 내주지 않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문자생활이라는 지극히 난해한 문제와 얽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야후 코리아의 대약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식간에 우리시장을 장악할 능력을 갖춘 외국의 컨텐츠 전문업체들을 보면서 우리의 얼이 담긴 우리의 컨텐츠를 만드는 것도 결국 외국업체에 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그들이 만들게 될 한국 컨텐츠는 과연 '나비부인'에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 ?

잠시 해외로 눈을 돌려 인터넷과 관련하여 올해에 일어난 사건 중 흥미로운 것을 두개 만 골라 본다면 헤일 봅 혜성과 관련된 종말론적 사이비 종교집단의 홈 페이지 였던 헤븐즈 게이트와 최근에 미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내려진 1일 1백만달러짜리 벌금에 대한 것이다.

참으로 운이 좋았던 천문학자인 헬리 ( 헬리 혜성을 두 번 볼 만큼 오래 살았고 충분히 어렸을 때 처음으로 혜성을 보았던 사람 ) 가 헬리 혜성의 주기성을 밝혀냄으로써 인류는 혜성이 인류에게 던져진 신의 계시가 아니라 그저 하늘에서 벌어지는 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최첨단이 판치는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미국에서 그런 혜성을 둘러싸고 집단 자살을 불사하는 광신도 집단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희극적인 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미국도 어쩔 수 없는 그렇고 그런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 반독점금지법을 걸어서 벌금형을 내리는 것을 보고 역시 선진국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사건의 발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브라우저의 기능을 점점 운영체제와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도스에서 윈도우즈로 그리고 윈95, 윈98로 이어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해 독점되는 상황에서 인터넷 브라우저 기능을 운영체제와 통합시킨다면 결국 사용자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이것은 한 분야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활용하여 다른 분야에서 불공정 경쟁을 하는 것이므로 법에 위반이 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들어준 회사, 미국의 부와 힘을 상징하는 회사, 그런 회사의 정책을 정부가 감히 제동걸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전후좌우의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 사회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

차근차근히 전후좌우의 맥락을 살피며 살아가는 것은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인가 ?

역시 역사에는 비약이 없는 법인가 보다.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7.02.02 14:03

/* (저자 주) 1996년 6월 모잡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때도 세상이 빨리 돌아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더 빠르지요. */

겨울이 지나고 이제 좀 더워지나 싶더니 이번 주부터 장마라니. 정말 세월은 유수처럼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비 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미친 듯이 내린다는 느낌이 든다. 이 비가 사시 사철 골고루 내리면 써먹기 좋으련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유주현과 같은 섬세한 사람이야 이렇게 쏟아지는 비를 "하도 장하게 내리시는 비"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저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고 벽에서 스며드는 곰팡내에 질겁하는 나 같은 범인이야 그런 비를 즐길 여유가 있으랴.

비 얘기는 집어 치고 컴퓨터쪽 사람들은 어떻게들 사나 눈을 한번 돌려보자. 요 몇 년 사이에 모든 사람들이 입에 주문이라도 들린 듯 외고 다니던 그룹웨어, 인터넷과 같은 말들이 채 시장을 제대로 형성하기도 전에 인트라넷이니 데이터 웨어하우징이니 하는 새로운 개념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애플 뉴턴의 실패 이후로 당분간은 잠잠해 질 듯 했던 PDA ( Personal Digital Assistant : 전자 수첩처럼 작고 정해 진 기능을 쓰지만 통신 기능이 있어서 개인용 컴퓨터와 자료 호환이 되는 장치 ) 시장도 광범위하게 일상화되고 있는 개인휴대통신 ( PCS ), 무선 데이터 통신, 위성 통신 등에 힘입어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다. 한편 더 싸고 더 쓰기 쉬운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네트웍 컴퓨터 ( NC : Network Computer : 미국 오라클사의 엘리슨 회장이 주창한 개념. 40만원 대의 컴퓨터로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웍에서 가져다 쓴다. ) 와 SIPC ( Simply Interactive Personal Computer : 미국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이 주창한 개념. 역시 싼 가격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별도의 부팅 과정 없이 켜서 곧바로 쓸 수 있게 한 것이 기존의 PC와 다르다. ) 라는 괴상한 상품으로 올 연말이나 내년 쯤 찾아올 듯 하다. 이런 새로운 시스템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바 ( Java ) 라는 새로운 컴퓨터 언어 ( 또는 운영환경 ) 를 채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느 기업 연구소에서건 "자바 잡아라" 하고 쫓아다니느라 난리들을 치고 있다. 바야흐로, C & C ( Computer and Communication ) 의 시대에서 M & M ( Mobile & Multimedia ) 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광속의 상거래라는 말의 약칭으로 통하고 있는 칼스 ( CALS : Commerce At Light Speed ) 나 동시공학 ( CE : Concurrent Engineering ) 이라는 말도 많은 회사들 ( 특히 제조업 ) 을 중심으로 새로운 목표로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앨빈 토플러가 프로슈머 ( prosumer = producer + consumer 즉,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인 사람 또는 개체 ) 라는 메타포어로 표현했던 "소비자에 의해 생산이 주도되는 시대" 또는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이 무한히 좁혀 지거나 거의 없어지는 시대"를 향한 광속의 질주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시간과 싸우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사례를 한번 인용해 보자.

    최근에 나는 일본 최고의 환 딜러들 중 한 사람과 담소를 나누면서 그가 환을 매도할 때와 매수할 때 고려하는 요인들을 지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요. 때로는 매우 단기적인 요인도 있고, 일부는 중기적인 요인들도 있고, 또 일부는 장기적인 요인들도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장기적인 요인들도 고려한다고 말한 데 대해 매우 흥미를 느껴 장기적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시간대를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마 10분 정도 될 겁니다" 라고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날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교텐 도우와 폴 볼커의 "변화하는 부" 중에서

한편,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조지 소트크 2세와 토마스 하우트는 <시간과의 경쟁 : 세계시장의 재형성>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대부분의 제품과 서비스는 실제로 그들 회사의 가치전달 시스템 내에 있는 시간에 대하여 단지 0.05 - 5% 만의 가치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평균적으로 95 - 99.95%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예전에는 별반 심각하게 여기지 않던 모든 생산 과정에 대하여 드디어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또 어떤가 ?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라면 1987년을 기점으로 수많은 사무전문직 노조가 만들어 진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1987년에 있었던 6.10 민주시민항쟁과 그 무렵에 등장했던 명동성당 주변의 소위 "넥타이 부대"에 힘입은 바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무전문직 노동의 노동생산성이 생산직의 노동생산성보다 회사의 수익에 차지하는 비중이 1985년경을 기점으로 더 커지기 시작했고 따라서 사무전문직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이 시기에 가동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노조가 만들어 지게 되었다는 사회과학자들의 지적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블루 칼라의 시대에서 화이트 칼라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얘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또 새로운 시대가 오기 시작하였다. 골드 칼라의 시대가 그것이다. 기술자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엔지니어 ( engineer ) 다. 그것은 아마도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 즉,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사람의 힘보다 훨씬 강하고 지속적인 힘을 내는 엔진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기술자들을 엔지니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골드 칼라의 중심에는 똑같은 것을 조금도 지겨워 하지 않고 무한히 복제해내는 '엔진' 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라도 똑같은 것을 만들어 내지 않으려는 상상력 ( imagination ) 이 있는 것 이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이매지니어 ( imagineer ) 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면 왜들 이 난리인가 ? 전부 광기가 들어서 그런가 ? 그렇지 않다. 작년에 우리 수출 경제의 견인차는 역시 반도체였다. 올해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개당 50불씩 하던 16메가디램이 12달러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수많은 반도체 메이커들이 수익의 목표를 대폭 줄이고 있으며 어떤 회사는 어떻게든 적자만 면해보자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다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기술선진국들은 대만에다가 기술이전을 함으로써 더 싼 단가로 메모리를 생산하려고 한다.

    바다가 잔잔했을 때에는

    모든 배들이

    잘도 떠다녔더라.

셰익스피어

경기가 좋을 때 돈 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경기라고 하는 것은 좋았다, 나빴다 사이클을 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점점 그 사이클의 폭은 좁아지고 깊이는 깊어지고 있다. 그러니 한번 깊은 골에 빠지면 다음 번 경기 좋을 때까지 버티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버티면 더 큰 피해만 입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광기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잡으려고 안간힘이다.

당신은, 당신의 회사는 이 광기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

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