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얘기한다 2007.02.01 12:53
/* (저자 주) 몇년 전에 개인 홈 페이지에 썼던 글을 다시 블로그로 옮깁니다 */

정치적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언론에 대한 도발적 문제제기

서시

      강한 자에겐 무릎 굽히고
      약한 자에겐 고개를 세우고
      그걸 공정하다고 하지
      어제는 악인을 만들고
      오늘은 영웅이라하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잘도 얘기를 하지
      모든 것을 비판해버리곤
      그걸 자유라 부르지
      녹슬어진 펜을 놓고서
      이젠 모든 말에 책임을 져
      방향잃고 헤매는 가엾은 무관의 제왕
      약속을 어긴 무책임뒤엔 차가운 비웃음 뿐

      - 015B [第四府]

기사 한편

그러나 그의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 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것인 듯하다. … 그는 모든 사람의 판단 기준을 이처럼 정의의 대국에 놓을 뿐 세세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 이처럼 밑을 거쳐간 부하장교는 그의 통솔 방법을 3분의 1만 흉내내면 모범적 지휘관이란 평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군내의 통설로 되어 있다.

( 1980년 8월 23일자 조선일보 3면 톱기사 )

강준만 - 람보

강준만 교수가 내놓은 다소 과격한 제목의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은 '김대중 죽이기'라는 현대 한국 정치 사의 줄기찬 흐름에 주역으로 등장한 언론과 지식인에 대하여 비판의 포화를 퍼붓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언론과 지식인 의 주장에 동감하며 정치적 혐오증을 방패로 삼고 있는 많은 시민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총알을 퍼붓는다. 그의 글을 매우 거 칠다. 비록 여러권의 책을 이미 출판한 바 있지만 전문 글쟁이가 아니니 거친 것은 참아야 한다. 참고 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람보가 거칠지 않으면 람보인가.

이런 시원스런 글을 대할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김지하의 [오적]이나 박노해의 [시사시]와 같은 문학성과 비판성을 겸비한 작가 나 글이 요즘에는 왜 없나 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얼음물 속에 있는 것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쌩 쌩 불던 겨울공화국의 한가운데에 지펴진 [오적]의 장작불을 기억하는가 ?

언론이 왜 문제인가 ?

저자는 언론이 '김대중을 먹고 자라났다'고 주장한다. 어떤 경우에는 수퍼연예인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혐 오의 대상으로 만들어서 독자들의 눈을 계속 자극하는 것이다. 김대중이 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을때 언론이 쏟아낸 그에 대한 찬사는 민망할 정도였다. 그 신문들이 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대통령병 환자'라고 하며 김대중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스워 죽을 지경이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 것에 신문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 독자들이 보기에 재미있어 하겠다 싶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보도한다. 그것도 사실만 보도하는 게 아니라 아예 소설을 쓴 다. 그래서 악순환이 빚어지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언론이 크게 보도해 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정치적 행동을 골라서 하게 된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염두에 둔 그런 정치적 행동이 바람직할 리 만무다. 언론은 스스로 그렇게 판을 벌여놓고 나서는 정치가 형 편없다고 개탄을 한다. 이만저만한 적반하장이 아니다.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한다고 해서 정치기사마저 외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치를 혐오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기사를 열심히 읽는다. 따라서 평소의 정치보도는 결코 선거와 무관하지 않다.
언론이 가지고 있는 기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한결 신랄하다. 언론재벌 - 재벌언론간에 벌어진 싸움에서도 드러났듯이 언론사들 은 우리 사회의 어느 집단보다 이기적인 성향이 강하고 그들의 힘도 [제4부]라는 애칭에 걸맞게 강하다. 그런데 이때까지 정부권 력은 언론사를 '채찍'과 '당근'으로 통제해왔다. 올해 초에 {서울신문}에 대한 세무조사로 항복을 받아내면서 모든 신문사에게 강한 경고를 던진 사례는 김영삼 정부의 언론통제 방식을 잘 드러내었다. 이런 관행은 물론 훨씬 이전 일제시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언론사는 기득권 세력과 정신적, 물질적으로 탄탄한 연대를 구축하면서 극우보수주의를 찬양하는 동시에 돈이 되는 기사를 만들어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대중의 공포감과 이기심을 자극하는 '극우'는 중도적 입장이나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입장마저도 붉은 색으로 슬쩍 덧칠시켜 시장에서 내쫓아버리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지금 {조선일보}가 하는 짓이 바로 그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특명을 받고 '신문혁명' 을 선언하념서 {조선일보}를 따라잡겠다고 나선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를 흉내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 자신 과 그들이 지지하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돈도 버니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 아닌가.
지식인은 왜 문제인가 ?

저자의 지식인 비판은 한결 통렬하다. 그의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번째 로 기존의 정치평론들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또는 혐오를 부추키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파괴'라는 손쉬운 정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자기의 무소신이나 무책임을 손쉽게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진보적인 지식인들 마저도 손쉬운 양비론이나 지나친 현실론을 얽매여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 중에서도 호남차별의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진보지식인의 편견이 언론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지식인의 사고방식이 진보운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세번째 비판은 지식인들이 '낭만적 지도자론'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현실 정치의 역학관계를 무시하고 인물과 민중이라는 막연한 도식을 상정하고 지도자와 민중과의 올바른 관계를 포착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같은 지 도자는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2선에 앉아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같은 고상한 얘기나 해야 하는 걸로 만들고 있다. 즉, 어떤 개인을 그의 실제 모습과는 무관한 상징적인 위인으로 간주하다가 그가 정치판에 뛰어들려고 하면 곧바 로 '인물혐오증'이 발동하여 그를 질시하고 배척하려고 하는 것이다. 혼자 짝사랑하던 사람이 결혼했다고 배신당했다고 대성통곡 하고 다니는 꼴이다. 그러니 똑똑한 사람들은 그저 민중의 지도자로만 남아있고 정치는 머리를 남에게 빌리는 그래서 지식인들이 자기들 맘드로 떠들 수 있고 재수좋으면 기득권의 핵심부에 접근할 수도 있는 그런 정치인들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양심의 마스터베이션'이란 무엇인가 ? 그건 양심의 실천을 무책임하거나 미련하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민중을 아끼고 사랑 하는 양심은 있는데, 그걸 더러운 세상 현실에 접목시켜 실천하기엔 어려움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그 어려움에 대 해선 전혀 고민하지 않고 그저 현실은 무시한 채 양심만을 떠들어댄다.
하지만 이런 류의 비판은 현실론자와 이상론자를 양비론으로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는 위험성이 있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전혀 근거없는 전라도 혐오증에 빠져 있거나 또는 꼭 혐오증은 아니더라도 전라도의 문제 - 지역감정의 문제 - 를 터 놓고로 말할 수 없는 비겁함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저자의 비판은 거의 비난의 수준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 총리 김상협은 참회록을 써도 모자랄 판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전두환은 "권력의 공백기에 핀치 히터로 등장, 위기 관리와 경제 재도약으로 멋진 안타를 때린 훌륭한 대통령"이라는 궤변이나 늘어놓고 다니질 않나. 그건 마치 강간을 당해서 애기를 낳았는데 그 애기가 참 똑똑하더라면서, 강간을 한 놈이 문제는 있었지만 종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 과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 정치적 허무주의를 극복할 것인가 ?

저자는 글을 맺으며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에게 더이상 정치의 해설은 집어치우고 정치의 심판관이 되어달라 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추악한 모습과 논리를 바로 보고 그걸 바로 잡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고 주장하고 있 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들에게는 정치가 '김대중이 복귀할 것인가 ?' 따위의 가십거리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정치평론의 쓰레기더미 에서 탈출하여 올바로 정치를 볼 수 있는 가치관을 회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는 심심풀이 땅콩이 이라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주사위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생활의 주변을 돌아보면 시민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더구나 지방자치 의 시대에는 지역주민의 정치참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각 지역의 이슈는 다른 지역과는 각기 다른 고유의 특성을 갖게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에 대한 나름의 비판의식을 가질 수 있는 참여하는 시민들의 역할은 더욱 크다.

하지만 감히 시민들에게 참여를 요구하는 소리는 높지 않다. 그 이유 중에는 사회발전의 목표 부재와 정치혐오도 큰 부분을 차 지할 것이다. 목표의 부재라는 문제에서도 현재까지의 정치행태, 정치비평의 행태에 큰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저자도 지적하듯이 그런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버릴 건 버리고 재활용할 건 재활용하고 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가는 것도 시민의 과제가 아니 던가 ?

/* 덧붙이는 글 */
몇 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발전이 없는 것 같은 이 갑갑함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신묘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