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10.15 :: 선교는 위헌이다
  2. 2007.08.01 :: 기독교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7)
  3. 2007.05.11 :: 신천지 교회 -- 사이비 혹은 사이동 (20)
세상을 얘기한다 2007.10.15 11:22
선교 관련 이야기 하나

아프간에서 개신교의 위험한 선교가 재개되었다고 한다. 이미 한 차례 큰 홍역을 "거국적"으로 치뤘고 아프간 내에 선교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인질이 석방된 마당에 어쩌자고 이러는건지 모르겠다. 또 아프간에서 인질 사태가 났을 때 발생할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걱정된다. 유아적 배금주의적 기복적 개신교에 대하여 개인적으로는 혐오를 금할 길이 없지만 그렇다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혐오가 일상화되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선교 관련 이야기 둘

얼마전 강의석군 사건의 재판에서 우리의 법원은 "선교를 이유로 학생들이 평등하고 공정하고 누려야 할 교육권 내지는 학습권을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즉, 아무리 학교가 종교 사학이고 그 건학 이념이 선교에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로서의 본분을 침해할 수는 없다는 애기다.

선교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가 아니다

무례한 선교 행태에 대하여 개신교인들을 꾸짖으면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며 항변한다. 그렇다. 우리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하지만 그건 종교의 자유일 뿐 선교의 자유는 아니다. 종교란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의 능력을 믿고 숭배하여 삶의 평안을 추구하는 정신 문화의 한 갈래"라고 야후 사전에 나온다. 즉, 내 삶의 평안을 위한 정신 활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선교란 무엇인가? 일요일날 아파트 앞에 와서 시끄런 노래와 촌스런 율동으로 내 삶을 전혀 평안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들이다. 즉, 선교는 근본적으로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다.

모태 신앙이라는 인격 모독에 대하여

남의 문화가 가진 고유성을 철저하게 그리고 폭압적으로 무시하는 이방 선교의 행태는 일찌기 권정생 선생님께서도 질타하신 바 있다.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이면 어느 집이나 어느 마을이나 우리들의 전통문화가 파괴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마을 밖 서낭당의 돌무더기도 없어지고, 정월 대보름날 동신제에도 기독교인은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 집집마다 가지고 있던 성주단지나 용단지도 깨뜨리고 부숴버린다. 조상들의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논밭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도 안한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런 건 모두가 미신이고 우상이라 매도하고 철저히 파괴했던 것이다. 이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본래 가지고 있던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나 명절도 멀리하고, 생일날짜도 분명치 않은 크리스마스만 최고의 명절로 삼고 있다. 산타클로스에, 루돌프 사슴에, 성탄나무에, 아기천사에, 성탄카드에 넋을 잃게 된 것이다.

선교를 한답시고 온 세계에 떠들고 다니며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는가? 온갖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도 하나의 공해물로 인식된다면 빛과 소금은커녕 쓰레기만 배출해내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한번 반성할 틈도 없이 그냥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앞으로 앞으로 가고만 있다. (바람소리님의 블로그에서 재인용)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선교보다 더 몰지각하고 모독적인 행위는 부모가 자식의 종교를 결정하는 모태 신앙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신념을 가꿔갈 능력과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아이의 종교를 결정한다면 이는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 할 것이다. 물론, 어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종교라는 틀 (즉, 착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혼이 난다는 식의 교훈이나 내가 힘든 일이 있어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다거나 하는 위안)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어린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그것 조차 특정 종교의 신도로서 강요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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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7.08.01 17:37

1. 종교에 대한 혐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베스트셀러의 작가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며 저명한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만든 "모든 악의 근원"(The Root of all evil)이라는 다큐멘터리다. 도킨스는 비슷한 내용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도 출간한 바 있다. 도킨스도 그의 책 서문에서 지적한 바대로 종교(특히, 같은 뿌리를 가진 세 일신교 즉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벌이지고 있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아프간에 억류되어 허망히 목숨을 하나씩 거두고 있는 인질극도 그 중의 하나이다. 원래 인터넷에는 "개빠"(개신교의 열렬한 지지자)를 멸시하거나 적대시하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지만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를 두고는 더욱 격렬해진 듯 하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는 지속적인 생산성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 늘어나고 있고 각종 분규로 인하여 생명을 보장 받지 못하는 사태의 이유에 종교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까짓거 종교를 없앤다면 어떨까? 만약 정말로 종교가 "주체"로서 이러한 비극을 빚어내는 것이라면 종교를 없앰으로써 이러한 비극을 끝낼 수 있을것이다.

세 일신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인 "무신학의 탄생"에서는 기독교가 (문맥상 여기서는 가톨릭을 의미함) 서방의 종교로 성립되는 초기부터 (즉, 로마에서 인정되었을 때 부터) 한번도 권좌에서 내려온 적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중세의 유럽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주장은 쉽게 수긍이 간다.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명박씨가 서울 시장 시절에 서울시를 그의 신에게 봉헌했던 것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권력과 종교의 유착은 너무나도 쉽게 발견된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성시화 라고 할 수 있다.

2. 종교의 기원

이렇게 살펴보면 종교를 없앰으로써 종교로부터 비롯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된다. 하지만 문제를 뒤집어보면 그런 종교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사람이고 종교의 그러한 문제점도 결국 사람 또는 사람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문제점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일신교 신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태초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고 종교는 그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것이니까. 하지만, "사람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명언에서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이 안되는 사후 세계에 대한 "사람의" 두려움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은 자연스런 주장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연발생한 종교는 그 특성상 (특히 세 일신교는) "먼저 믿을 것"을 요구한다. 이러 저러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러 저러한 것이다. 이러한 맹목은 같이 믿는 사람들끼리의 결속으로 연결되고 결속은 사회적 권력으로 발전한다. 어떤 시기에는 정치적 권력이 필요에 의하여 종교를 이용하고 어떤 시기에는 종교의 필요에 의하여 세속의 권력을 조종한다. 이들은 다들 대다수 사람들을 맹종의 틀 속에 가둠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누릴 수 있다는 공통점에 따라 짝짜꿍이 맞아 돌아가게 되어 있다.

3. 종교의 끈질긴 생명력

하지만 사람들이라고 마냥 세속의 권력이나 종교의 압박에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들 속에 내재된 욕망을 재발견하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간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부르주아 혁명 등이 그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정치와 종교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은 다시 "만인의 만인을 향하 투쟁의 자유"를 의미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전의 권력보다 더 고약한 "자본"이라는 권력을 초빙하기에 이른다. ("자유"의 역사에 대하연 필자의 예전 글을 참조.) 그리고 이번에도 예외없이 새로운 권력은 종교와의 짬짜미를 이뤄낸다. 시중의 잘 나간다는 교회를 들러서 설교를 들어보라. 돈-권력-믿음의 삼위일체가 넘쳐난다. 돈 가진 놈이 잘 믿는 놈이고 그리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왜 갑자기 조갑제 옹이 생각이 나는거지 ^^)

그렇다. 종교라는 놈 끈질기다. 새로운 권력이 출현할 때마다 잘도 붙는다? 이는 종교가 잘나서가 아니다. 앞에 설명한대로 권력은 항상 우매한 대중의 동원을 필요로 하고 이에 가장 능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를 활용하여 사람들을 엮어내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4. 제정일치의 사회를 끝내기 위하여

역사책에서 배웠듯이 고조선은 제정일치의 사회란다. 왕이 무당인 시대. 세속의 권력과 천상의 권력이 하나로 융합된 시대. 그리고 또 배웠다. 그 이후로는 제정일치가 아니라고. 그런가? 형식적으로 물리적으로는 그들이 분리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웅동체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다르게 표현하자면 현재는 "후기" 제정일치 사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언젠가 우스개 소리처럼 들은 얘긴데 인도에서는 탤런트/배우들이 국회의원으로 많이 당선된단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매한 유권자들이 많아서란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은 "하느님의 계시로" 아프간과 이라크에 쳐들어간다. 어떤 나라의 목사들은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든다. 언제까지 이런 청동기시대적 코미디를 계속하려고 하는건가?

근대는 이성의 시대였다. 실로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며 우리는 우리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런 이성의 발전은 대다수 사람들에 의하여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고 그저 어려운 과학 얘기로만 머물렀고 그들은 여전히 마음의 공허를 메우지 못해 교회로 몰려들었다. 탈근대의 시대인 오늘은 그런 점에서 영성의 시대여야 한다. 하지만 그 영성은 "믿기 때문에"의 영성이 아니라 "믿기 위한" 영성이어야 한다. 세상과 과학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삶이 우리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하여 마음의 심연 깊은 곳에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유인으로 태어나고 가짜 자유주의 체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올 봄에 EBS에서 방영한 '과학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취재진이 외계 생명체를 찾는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

"외계 지적 생명체를 만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물어보고 싶으세요?"

각기 다른 장소와 시간에 던진 이 질문에 대해 과학자들의 답은 한결 같았다.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는 높은 기술문명을 가지고도 어떻게 평화를 유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나?"

그렇다. 우리가 과학을 연구하는 것도 사회를 연구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그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다큐멘터리는 도킨스의 다음과 같은 대사로 끝이 난다. (제대로 알아 들은 건지...)

The number of people that could be here in my place outnumber the sand grains of Sahara. If you think about all the different ways in which genes could be permuted, you and I are quite grotesquely lucky to be here. The number of events that had to happen in order for you to exist and in order for me to exist. We are priviledged to be alive. We should make the most of our time on this world. (왕 조잡 날 번역 // 바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수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유전자가 조합될 수 있는 그 많은 가짓수를 생각해본다면 바로 당신이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기괴할 정도로 운이 좋은 것입니다. 당신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일어나야 할 일의 수를 따져보십시요.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특권이며 그래서 바로 이 세상에서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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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07.05.11 11:49

과격한 한줄 요약 "나는 기성 교회와 신천지 교회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며칠전 방영된 PD수첩을 보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비록 출석 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종교의 이름으로 가족이 찢겨나가는 현실을 보면서 종교라는게 뭔지 교회라는게 뭔지 구원이라는게 뭔지 하는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최대로 손꼽히는 교회를 여럿 가지고 있어 명실 상부한 기독교의 메카라할 만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희한한 현상들은 도데체 뭐란 말인가?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건가? (내 탓이요?)

내가 무슨 종교학자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니니 (심지어 교양으로 종교학이나 사회학 조차 들은 적 없는 공돌이니) 학술적으로 그 원인을 따질 수는 없지만 세상 살아온 경험에 비춰 나름대로 원인을 뒤져보고자 한다. 특히, 신천지 교회가 "기성 교회를 다니는 젊은이를" 주요 전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보자.

모두가 지적하듯이 한국에서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 의 급속한 성장은 70년대를 전후로 한 급속한 산업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도시로 밀려든 젊은이들은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는" 각박한 도시 환경에서 적잖이 당황하였을 것이다. 피곤한 몸 편히 뉘어 쉴 곳도 마땅찮고 가까운 일가 친척도 없고 이웃 사촌의 정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는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런 경험은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한국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이 그들의 종교와 무관하게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나 재외 한국인들이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꾸려나간다는 얘기는 아주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의 교회는 교리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줄 수 있는 공동체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방 전후로 집중적으로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은 교리 문제에 있어 다양성과 깊이를 추구하기 보다는 "일단 믿으라니깐요 --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라는 식의 퇴행을 가져왔다. 그 결과로서 우리 교회들은 과도한 기복주의 경항을 띠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을 보고 있으면 교회가 점집이나 당산나무 또는 삼신각과 뭐가 다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분들에게 교회가 뭔가 믿고 빌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고 그래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그 무엇이 된다고 하면 그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한" 믿음을 좋아하며 평생 그렇게 살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믿음을 유지하기에는 잡생각이 너무 많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 교회가 무엇을 해줘야 하는가에 대하여도 할 말이 많지만 초점을 흐리므로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하고 다시 순수한 사람들로 돌아가보자.)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야 말로 교회의 보배같은 존재이며 많은 교인들에게 감화와 감동을 준다. 그들은 믿음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이유없이 믿고 있으며 그렇게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음의 근본에 대하여 질문을 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거부해버린다. 믿음에 대하여 어떤 감성적 논리적 설명도 거부한다. 다른 종교에 대한 글을 읽거나 절에가서 금으로 코팅한 아저씨를 보거나 조상의 이름을 적은 종이에 절하는 것이 그들의 믿음을 감염시킨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멸균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나 할까...

문제는 그들의 믿음이 너무나도 순수하기 때문에 - 하지만 그 믿음은 멸균 환경에서만 지킬 수 있기 때문에 - 조금만 방향을 틀어주면 전혀 다른 것도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믿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자리에 뭔가 다른 것을 끼워넣는데만 성공하면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완벽한 사이비교 광신도가 된다. 그 다른 것은 어떤 교주일 수도 있고 피라미드 마케팅일 수도 있고 돈이나 출세일 수도 있다. (좀 다른 얘기가 되기도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 자리에 "꾸란(코란)의 절대성"을 끼워넣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하여는 아담 커티스가 제작하고 BBC에서 방영한 "악몽의 힘(The Power of Nightmares)"을 추천하고 싶다. 관련 자료는 --> http://en.wikipedia.org/wiki/The_Power_of_Nightmares)

이상으로서 너무나도 순수한 사람들이 곧 가장 과격한 사이비교 광신도가 될 소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은 설명이 되는데 무엇이 변하게 하는 힘이 되는가 라는 점은 아직 설명되지 않는다. 이번 PD수첩은 그 부분을 아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 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한국 최고의 범죄 영화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범죄의 재구성"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절대로 속을 수 없을 것 같은 얘기에 사람들은 홀딱 넘어간다. 왜? "욕망"과 "두려움"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권세를 누리고 싶은 욕망이 머리를 지배하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이 설 자리는 좁아지고 사기에 넘어가게 된다.

이번에 방영된 PD 수첩에서 한 신천지 신도인 젊은이가 한 얘기가 맘을 후벼판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내가 제사장이 되어 우리 집을 크게 일으키게 되면 부모님도 나를 이해하실 것이다." (기억에 의존한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음.) 그렇다. 알고보면 그 젊은이는 대단한 효자다. 부모가 아무리 말리더라도 집에 아무리 가고 싶더라도 참고 전도해서 14만 4천명의 신도가 모이는 날을 앞당겨서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은 것이다. 소박하게는 출세욕이라고도 할 수 있고 다르게 말하자면 효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 한마디가 내 맘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것이 방영된 날이 깜빡잊고 어머니한테 전화도 못드린 어버이 날이었고 늘 멀리 있어 뭔가 해드리지 못하는 불효자라는 자책을 더욱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더 내 맘을 무겁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것이 사실이건 꿈이건 젊은이들에게는 추구하고 달성해야 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날로 늘어가는 청년 실업에 무고용 성장과 과도한 비정규직의 양산 여기에 양극화의 심화를 보태고 나면 젊은이들이 꿈을 갖는다는게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꿈을 잃었던 한 청년이 신천지 교회에서 집안을 다시 일으킬 기회를 발견하게 되어 심취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짧은 글을 선호하는 세태를 생각해서 여기서 일단 마무리를 짓자. (할 얘기가 다 떨어져서 마무리 하는 것 절대로 아니다. ^^) 제목을 다시 생각한다. 사이비 -- 비슷하나 다르다. 사이비 종교는 기성 종교와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기성 교회와 신천지 교회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공동체를 잃고 꿈을 잃고 힘들어 하는 젊은이들의 때묻지 않은 영혼을 교묘히 부추겨서 끌어들여 광신도로 탈바꿈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최소한 어떤 차이점도 찾을 수 없다. (교리 관점에서도 나는 큰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신천지 교리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내가 갖고 있지도 않고 그걸 비교해야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맞나...) 현실에서 기독교계는 (특히 개신교는) 그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느끼면서 자기 교회의 가장 모범적인 신도가 곧 끊임없이 생겨나는 사이비 광신교 집단의 원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제발 순수한 믿음의 신화에서 벗어나길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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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