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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0 :: 가을 그리고 편지
잡스럽게 얘기한다 2008.10.10 12:00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계절별로 유행하는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 엄혹한 겨울을 이겨낸 봄이 되면 이영도 작시/노찾사 노래의 <진달래>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게 되고 작렬하는 태양이 아스팔트를 달굴 때면 (내 생각으로) 단군이래 가장 신나는 "건전" 가요인 <꿍따리 샤바라>를 들으며 비치 룩을 입고 딸딸이 끌고 해변으로 가고 싶고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 오면 "손이 시려워 꽁~"으로 시작하는 <겨울바람>을 으례 떠올리게 된다. 그럼 가을에는?

가을은 아무래도 낙엽으로 대변되는 사색의 계절 이별의 계절 살아 있던 것들이 다 죽으로 치닫는 전환의 계절이다 보니 애절한 노래가 많다. 그 중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가을편지 / 시 고은 / 작곡 김민기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김민기의 최고 히트곡 (어쩌면 한국 가요 사상 최고의 명곡) 인 <아침 이슬>을 포함하여 김민기의 노래는 방송 금지를 많이 당해서 방송으로 널리 전파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화를 피할 수 있었던 노래로 <가을 편지>가 있다. 고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인데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명곡이라 아니할 수 없다. 워낙 명곡이라 여러 가수가 불렀다.

노래의 흐름은 시간의 흐름 즉, 낙엽이 쌓이고 흩어지고 그리고 사라지는 초 가을부터 늦 가을까지를 잡아내고 있으며 외롭고 헤메이고 모르는 여자가 나오는데 서로 상관없는 여러 여자일 수도 있고 어쩌면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 나와 헤어져서 외로와지고 그 외로움에 헤메이다가 결국 잊힌 여자. 하지만 잊었다는 것은 그저 명목일 뿐 내 맘 속에는 "잊어야 할 여자"로 남아있는 지난 사랑에 대한 감회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잊어야 할 떠난 연인과 편지를 주고 받는 다는 모티프를 가진 다른 명곡으로는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인 <편지>가 있다. 안치환이 불러서 녹음한 버전이 있다. (방송에서는 한번도 나오는 것을 들은 적은 없다.)

편지 / 시 윤동주 / 작곡 고승하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그리움과 절제를 이렇게 애절하게 짧은 글에 담을 수 있는 시인은 진정으로 축복과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 한편, 동물원과 김광석은 아예 더 노골적으로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버린다. 동물원의 2집 앨범 타이틀 곡은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이다. 이 노래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김광석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노래의 말미에 나오는 그 소름 끼치도록 완벽한 백 코러스는 김광석의 진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작사 작곡 김창기

바람이 불면 음~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바람이 불면 음~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동물원의 리더 였던 김창기가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80년대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던 (어쩌면 역사이래로 청년들이 모두 겪었던 하지만 한국의 80년대에는 좀 더 극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자아 내부의 갈등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잘 잡아내고 있다.

이 노래에 가장 강렬하게 반응했던 세대가 바로 소위 "386 세대"인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나? 꿈을 다 잊은 건 아니겠지? (하긴 잊어 버릴 뻔 했던 추억들을 되새길 수 밖에 없게 하는 리-만 브라더가 있잖아...)

가을 우체국 앞에서 / 작사 김현성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멀리 가는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아래 모든 것이 저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날 저물도록 몰랐네

대중 가요판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능있는 작곡가 겸 가수인 김현성의 곡으로 그의 1집 앨범 (맞나... 하도 오래전에 받은 그의 작품집 테이프(!)에 있는 곡이라 확실치 않음) 에 실렸으나 그의 앨범과 같은 운명에 처하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윤도현의 1집 앨범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대중적으로 더욱 유명한 김현성의 곡으로는 전인권, 윤도현, 김광석 등이 녹음한 바 있는 <이등병의 편지>가 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소재가 편지네...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멜로디는 이제는 너무나도 식상해져버린 파헬벨의 캐논을 재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식상한게 아니었음^^) 그대를 기다리는데 왜 딴 데가 아니라 하필이면 우체국 앞인지 그리고 그 우체국이 가을 우체국이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가을 - 편지라는 모티프를 많은 작가들이 은연중에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름에 그 무성하던 나무들이 훌훌 잎사귀를 떨구는 것을 보고 엄혹한 이 세상을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지 하는 괜한(^^) 걱정을 담고 있다. 다들 잘 버텼잖아. IMF도 이겨냈고 민주화도 이뤘고. 요즘 쬐끔 이상하긴 하지만 뭐...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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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