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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1 :: 기독교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7)
세상을 얘기한다 2007.08.01 17:37

1. 종교에 대한 혐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베스트셀러의 작가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며 저명한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만든 "모든 악의 근원"(The Root of all evil)이라는 다큐멘터리다. 도킨스는 비슷한 내용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도 출간한 바 있다. 도킨스도 그의 책 서문에서 지적한 바대로 종교(특히, 같은 뿌리를 가진 세 일신교 즉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벌이지고 있는 많은 끔찍한 일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아프간에 억류되어 허망히 목숨을 하나씩 거두고 있는 인질극도 그 중의 하나이다. 원래 인터넷에는 "개빠"(개신교의 열렬한 지지자)를 멸시하거나 적대시하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지만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를 두고는 더욱 격렬해진 듯 하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는 지속적인 생산성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 늘어나고 있고 각종 분규로 인하여 생명을 보장 받지 못하는 사태의 이유에 종교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까짓거 종교를 없앤다면 어떨까? 만약 정말로 종교가 "주체"로서 이러한 비극을 빚어내는 것이라면 종교를 없앰으로써 이러한 비극을 끝낼 수 있을것이다.

세 일신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인 "무신학의 탄생"에서는 기독교가 (문맥상 여기서는 가톨릭을 의미함) 서방의 종교로 성립되는 초기부터 (즉, 로마에서 인정되었을 때 부터) 한번도 권좌에서 내려온 적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중세의 유럽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주장은 쉽게 수긍이 간다.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명박씨가 서울 시장 시절에 서울시를 그의 신에게 봉헌했던 것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권력과 종교의 유착은 너무나도 쉽게 발견된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성시화 라고 할 수 있다.

2. 종교의 기원

이렇게 살펴보면 종교를 없앰으로써 종교로부터 비롯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된다. 하지만 문제를 뒤집어보면 그런 종교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사람이고 종교의 그러한 문제점도 결국 사람 또는 사람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문제점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일신교 신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태초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고 종교는 그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것이니까. 하지만, "사람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명언에서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이 안되는 사후 세계에 대한 "사람의" 두려움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은 자연스런 주장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연발생한 종교는 그 특성상 (특히 세 일신교는) "먼저 믿을 것"을 요구한다. 이러 저러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러 저러한 것이다. 이러한 맹목은 같이 믿는 사람들끼리의 결속으로 연결되고 결속은 사회적 권력으로 발전한다. 어떤 시기에는 정치적 권력이 필요에 의하여 종교를 이용하고 어떤 시기에는 종교의 필요에 의하여 세속의 권력을 조종한다. 이들은 다들 대다수 사람들을 맹종의 틀 속에 가둠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누릴 수 있다는 공통점에 따라 짝짜꿍이 맞아 돌아가게 되어 있다.

3. 종교의 끈질긴 생명력

하지만 사람들이라고 마냥 세속의 권력이나 종교의 압박에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들 속에 내재된 욕망을 재발견하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간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부르주아 혁명 등이 그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정치와 종교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은 다시 "만인의 만인을 향하 투쟁의 자유"를 의미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전의 권력보다 더 고약한 "자본"이라는 권력을 초빙하기에 이른다. ("자유"의 역사에 대하연 필자의 예전 글을 참조.) 그리고 이번에도 예외없이 새로운 권력은 종교와의 짬짜미를 이뤄낸다. 시중의 잘 나간다는 교회를 들러서 설교를 들어보라. 돈-권력-믿음의 삼위일체가 넘쳐난다. 돈 가진 놈이 잘 믿는 놈이고 그리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왜 갑자기 조갑제 옹이 생각이 나는거지 ^^)

그렇다. 종교라는 놈 끈질기다. 새로운 권력이 출현할 때마다 잘도 붙는다? 이는 종교가 잘나서가 아니다. 앞에 설명한대로 권력은 항상 우매한 대중의 동원을 필요로 하고 이에 가장 능한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를 활용하여 사람들을 엮어내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4. 제정일치의 사회를 끝내기 위하여

역사책에서 배웠듯이 고조선은 제정일치의 사회란다. 왕이 무당인 시대. 세속의 권력과 천상의 권력이 하나로 융합된 시대. 그리고 또 배웠다. 그 이후로는 제정일치가 아니라고. 그런가? 형식적으로 물리적으로는 그들이 분리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웅동체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다르게 표현하자면 현재는 "후기" 제정일치 사회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언젠가 우스개 소리처럼 들은 얘긴데 인도에서는 탤런트/배우들이 국회의원으로 많이 당선된단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기도 하지만 드라마에서의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매한 유권자들이 많아서란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은 "하느님의 계시로" 아프간과 이라크에 쳐들어간다. 어떤 나라의 목사들은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든다. 언제까지 이런 청동기시대적 코미디를 계속하려고 하는건가?

근대는 이성의 시대였다. 실로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며 우리는 우리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런 이성의 발전은 대다수 사람들에 의하여 충분히 소화되지 못하고 그저 어려운 과학 얘기로만 머물렀고 그들은 여전히 마음의 공허를 메우지 못해 교회로 몰려들었다. 탈근대의 시대인 오늘은 그런 점에서 영성의 시대여야 한다. 하지만 그 영성은 "믿기 때문에"의 영성이 아니라 "믿기 위한" 영성이어야 한다. 세상과 과학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삶이 우리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하여 마음의 심연 깊은 곳에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유인으로 태어나고 가짜 자유주의 체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올 봄에 EBS에서 방영한 '과학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취재진이 외계 생명체를 찾는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

"외계 지적 생명체를 만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물어보고 싶으세요?"

각기 다른 장소와 시간에 던진 이 질문에 대해 과학자들의 답은 한결 같았다.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는 높은 기술문명을 가지고도 어떻게 평화를 유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나?"

그렇다. 우리가 과학을 연구하는 것도 사회를 연구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그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다큐멘터리는 도킨스의 다음과 같은 대사로 끝이 난다. (제대로 알아 들은 건지...)

The number of people that could be here in my place outnumber the sand grains of Sahara. If you think about all the different ways in which genes could be permuted, you and I are quite grotesquely lucky to be here. The number of events that had to happen in order for you to exist and in order for me to exist. We are priviledged to be alive. We should make the most of our time on this world. (왕 조잡 날 번역 // 바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수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유전자가 조합될 수 있는 그 많은 가짓수를 생각해본다면 바로 당신이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기괴할 정도로 운이 좋은 것입니다. 당신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일어나야 할 일의 수를 따져보십시요.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특권이며 그래서 바로 이 세상에서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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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