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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1 :: 비오는 날 아침에
잡스럽게 얘기한다 2008.07.21 17:02
자전거 동호회에 올린 글을 옮겨 싣습니다. 자전거 동호회에서는 다들 아는 용어인데 일반인들은 생소할 수도 있으므로 필자주를 추가합니다.

지지지직

아스콘 바닥 틈새 사이사이로 스민 물방울이 타이어를 타고 튄다. 보슬 보슬 내리는 비지만 천변의 아스콘 바닥은 교묘하게 물을 머금고 있다가는 지나가는 자전거 타이어에 실어 날린다. 엉덩이가 젖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패드 반바지에 안에 빤스까지 입었건만... 축축히 젖어가는 *꼬는 물이 상당히 많이 엉덩이로 튀고 있다는 증거다.

미친 짓이야. 비오는 날 내가 왜 이러지?

그러니까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지난 금요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그 눈이 큰 아이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이러고 있지 않을 텐데.

지난 금요일 저녁. 이런 저런 딴 짓 하다가 괜히 퇴근 시간만 늦었다. 집에 들러서 저녁 챙겨 먹고 체육관 나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오늘은 좀 쎄게 밟아줘야 할 듯. 그런데 바람이 좀 빠져 보이는 뒷바퀴가 불안하다. 지난번에도 별 이유없이 펑크가 나서 집에서 어렵사리 떼워줘야 했는데. 오늘은 별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갑천변으로 내려서지 않고 대전 엠비시 앞 까지는 도로로 질주한 뒤 유등천변으로 내려섰다. 저녁 시간의 유등천변은 이어폰 끼고 아무 생각없이 걷기 운동을 하는 지뢰들과 떼를 지어 카미카제 공습을 감행하는 잠자리들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숨쉬기가 좀 불편하긴 하지만 버프로 입과 코를 가려준다. 2x6단(필자주 -- 앞쪽 변속기는 2번째 톱니 뒤쪽 변속기는 6번째 톱니에 체인이 걸린 상태. 앞 뒤 모두 1x1인 경우가 제일 페달질이 쉽고 속도는 느리고 3x7(또는 3x8 나 3x9)가 가장 페달질이 어렵고 속도는 빠르다. 대개는 엉덩이를 덜썩이지 않고 70~80 알피엠 정도의 속도로 페달질을 할 수 있는 기어비가 제일 적절하다고 본다)으로 놓고 80알피엠(필자주 -- 분당 회전수. 1분에 왼발 오른발 번갈아 페달질을 한 것을 한번으로 쳐서 몇번이나 밝아주는 지 세면 된다)으로 줄창 밟아준다. 부담스럽다. 2x5로 내려본다. 좀 참을만 하다. 자주 안 탔더니 많이 체력이 고갈되었군.

갑자기 페달질이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어째 엉덩이로 땅의 굴곡이 더 잘 느껴진다. 허걱. 잽싸게 뛰어내려 뒷바퀴를 보니 절반이나 바람이 빠졌다. 펑크다.

마눌님께 차갖고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하니 받지 않는다. 점심 먹으러가서 식당에 놓고 왔으니 연락이 안될 거라고 엠에센으로 알려준게 생각이 난다. 젠장. 희한하게 꼬이는군. 어쩔 수 없다. 근처 아파트 단지까지 끌고가서 주민인 척하고 자전거 거치대에 묶어두고 집으로 택시타고 왔다.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래 이건 자출사에서 소개 받은 *****을 들러보라는 지름신님의 계시다. 실은 며칠전 "허접한 자전거 수리하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려서 샵(필자주 -- 가게를 일컫는 말. 하지만 동네 자전거 가게는 자전거포라고 부르고 좀 비싼 자전거를 파는 가게만을 샵이라고 흔히 부른다. 언어속의 식민주의 근성 ^^)을 소개받은 터라 한번쯤은 용기를 내서 비싼 자전거 타는 가게를 들러 볼 심산이었다.

토요일 아침 마눌님을 자동차로 출근시켜드리고 바로 자전거를 세워둔 아파트 단지를 갔다. 허접하고 녹슨 자건거들 사이에 내 애마가 있다. 내 손 때가 묻은 자전거라 그런지 제일 멋져 보인다. 뒷바퀴 바람 없는거만 빼고.

차에 자전거를 싣고 *****로 갔다. 가게 앞에 차를 세워놓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가게의 동정을 살핀다. 가게문은 열려 있으나 인기척은 없다. 30초쯤 기다렸다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차문을 열고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가게로 갔다.

작달막하고 스포티하게 차려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눈이 커 보이는 멋쟁이 스타일이다.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인 모양이다. 뒷바퀴가 펑크 났고 앞 드레일러(필자주 -- 변속을 위하여 체인을 다른 톱니로 옮겨주는 부품) 케이블도 갈았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뒷바퀴를 보더니 타이어가 낡아서 펑크가 잘 날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타이어도 같이 갈아야 한댄다. 하긴 중고로 몇년 전에 업어온 이후로 타이어도 한번 안 갈았으니 갈아주는 것이 애마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타이어도 갈아 달라고 하고는 내 연락처를 남기고 나왔다.

나오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타이어를 갈려면 타이어를 골라야 하는게 아닌가? 혹시 내 자전거가 싸구려라 그냥 아무거나 싼 걸로 껴주려고 묻지도 않는건가? 괜히 섭섭한 느낌으로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예의 청년이 헐레벌떡 와서는 타이어를 가실려면 골라주고 가셔야지요 한다. 그럼 그렇지.

타이어를 이것 저것 보여주는데 대뜸... 산에는 안가시죠 하고 묻는다. 당연하지 이 사람아... 유사 산악(필자주 -- 산악 자전거와 같은 형태로 생겼으나 프레임의 강도가 충분하지 않아 산에서 타기에는 무리인 보통 동네 가게에서 파는 자전거)가지고 싱글(필자주 -- 한 사람이 지나다니는 수준의 등산로길을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일컫는 말. 임도 다음의 난이도를 가진 길)에서 점프할 만큼 무모한 인간은 아니라네. 그럼 차라리 도로용 타이어로 하세요 하면서 깍뚜기(필자주 -- 타이어 겉면에 붙어 있는 돌기가 깍두기 모양으로 불쑥 불쑥 솟아 있는 것.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덜 미끄러지는 효과가 있다)는 하나도 없는 타이어를 보여준다. 예 그러지요.

토요일 저녁 자전거를 찾으러 다시 샵에 갔더니 눈이 큰 청년은 없고 좀 더 기술자스럽게 생긴 청년이 아직도 내 자전거를 붙들고 작업중이다. 다 되어 가는지 물었더니 대답 대신 혹시 자전거에 손 대셨어요 하고 묻는다. 그래서 여기저기 이렇게 저렇게 손 댄 적이 있다고 하니 정확하게 모르고 이것 저것 손대는 바람에 나사가 망가진게 있어서 고생하고 있단다. 뭐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어쨌든 잠시 후 자전거는 완전히 수리가 끝나고 탱탱하고 미끈한 타이어는 숨막힐 듯 공기를 잔뜩 머금었다. 돈을 계산하고 동네 한바퀴를 돌아보니... 변속도 잘되고 타이어도 잘 나가고 아싸...

종일 비가 내렸다. 그 놈의 일요일은 자전거 한번 못 타보고 방바닥에 엑스레이를 찍으며 보냈다. 마눌님이 닭죽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역사상 가장 심심한 일요일이 될 뻔했다. 월요일 오후부터는 날이 갠단다. 그럼 아침에 비만 오지 않으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리라 맘을 먹는다.

월요일 아침. 하늘은 우중충하지만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있지 않다. 음... 드디어 새 타이어의 위력을 보여줄 때가 왔도다. 음하하하. 자전거를 끌고 출근길에 나서는데 채 200미터도 못가 비가 부슬부슬 시작한다. 얼른 내려 배낭에 방수 커버 씌우고 유등천으로 접어든다.

밤새 내린 비 탓인지 유등천변의 아스콘 길은 물기를 먹고 있어 물이 많이 튄다. 평소 2x6을 놓으면 약간 부담스럽던 길인데 3x5를 놓고도 달릴만 하다. 새 타이어 덕분인지 기분 때문인지 어제 하루 쉬어서 그런건지 닭죽 때문인지 비맞아서 오히려 더 매끄러워진 기어 때문인지 선선한 날씨덕분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평속(필자주 -- 평균 속도)을 바짝 끌어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역시 맨질맨질한 타이어가 최고여... 하지만 축축해오는 *꼬는 어쩌지?

한줄요약: 새 타이어 달았다고 비오는날 자전거 끌고 나왔다가 빤쓰까지 다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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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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