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에 해당되는 글 322건

  1. 2012.11.30 :: 얼토당토와 얼찜포수
  2. 2012.11.30 ::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3. 2012.11.30 :: DNS 서버가 느리다면 방화벽을 의심하세요
  4. 2012.08.31 :: 타짜 개 패러디 (뽐뿌 게시판에서 캡처함)
  5. 2012.08.27 :: (체험단) 제누스(Zenus) 매스티지 레터링 다이어리 케이스 (갤럭시 S3용)
  6. 2012.05.02 :: MSDN 과 TechNet 은 완전 다른 것입니다
  7. 2012.04.25 :: 어느 회의주의자의 변절
  8. 2012.04.25 :: xps 파일을 pdf 파일로 왕창 변환하기
  9. 2012.02.23 :: KISA의 도메인 정보 싸그리 긁어오기
  10. 2012.01.31 :: vim 에서 HTML 태그 싹 지워버리기
  11. 2012.01.09 :: 우분투 11.10 에서 Unity 대신 옛날 Gnome 쓰기
  12. 2011.12.12 :: 인간 2.0 (1)
  13. 2011.11.29 :: 사람들은 왜 월가를 점령했나요?
  14. 2011.11.28 :: 우분투에서 특정 버전의 프로그램 설치하기
  15. 2011.11.25 :: 불여우 8.0에서 publishsync 강제로 설치하기
  16. 2011.10.27 :: 오픈 소스와 정부 2.0
  17. 2011.10.13 :: CentOS 에서 방화벽 관리하기
  18. 2011.10.12 :: 인터넷이 이룬 놀라운 발전을 실세계에 적용하면 안되나?
  19. 2011.10.10 :: 죽은 범생이의 사회
  20. 2011.09.27 :: 유전자, 인간, 우주 그리고 신
  21. 2011.09.27 :: 커스터마이제이션이라는 악마
  22. 2011.07.29 :: 인간 2.0 또는 stage real
  23. 2011.07.29 :: 기술 표준에 대한 몇 가지 기본 개념과 쟁점
  24. 2011.01.27 :: 미국을 통해 나를 돌아보다
  25. 2011.01.27 :: 그러니까 파병을 철회하란 말야
  26. 2011.01.27 :: 이라크 파병은 미친 짓 맞다
  27. 2011.01.27 :: 우리 이웃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나?
  28. 2011.01.27 :: 종교를 넘어서 삶을 향하여
  29. 2011.01.27 :: 아쉬운 그러나 귀한 책
  30. 2011.01.27 :: 기독교가 너를 속일지라도
잡스럽게 얘기한다 2012.11.30 13:19

방금 마눌님과 얘길 나누다 "얼토당토"라는 표현이 나와 이게 어원이 뭘까 궁금해 방에 슬그머니 들어와 웹질을 했다. 웹에서 가장 널리 퍼진 설은 "얼하지도 당하지도"의 줄임말이고 얼은 '어루'에서 온 것인데 '옳다(可)'와 같은 말이고 당은 '마땅하다(當)'에서 왔으니 한잣말로 가당치도 않다와 같은 말이라 한다. 즉 옳은 일도 당연한 일도 아니다라는 뜻이라는거다. 무척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내가?) 쓸 때는 훨씬 더 강한 부정 즉 '옳기는 커녕 비슷하지도 않다'는 뜻으로 쓰지 않던가?

그래서 나는 '얼'이 '얼찜포수'의 '얼'과 같은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얼찜포수는 경상도 토박이 말로서 목표물을 제대로 겨냥해서 쏠 줄도 모르는 어수룩한 포수라는 뜻으로서 '얼찜포수 꽁(꿩)잡았다'는 표현에 나타난다. 산탄총으로 대충 방향만 맞춰서 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만약 '얼'이 이런 뜻이라면 얼토당토는 '당연하기는 커녕 얼추 비슷하지도 않다'는 뜻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신묘군
잡스럽게 얘기한다 2012.11.30 13:18

여름 밤이면 밖에서 다섯개(다방구 또는 다망구를 우리 시골서는 다섯개라고 불렀다. 술래에게 잡혀온 아이들의 손을 쳐 주면서 다섯개라고 소리치면 다 달아나는 놀이)를 하면서 놀 수 있지만 겨울에는 밖에서 못 노니까 이거리 저거리를 하고 놀았다. 두 줄로 바라보고 앉아서 다리를 펴서 서로 낀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며 다리를 하나씩 짚어가다 맨 마지막에 짚인 다리는 접는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결국 한 사람만 다리를 접지 못하고 남는데 이 사람이 술래가 되어 다른 놀이 (예를 들어 봉사놀이) 를 했다. 이 때 쓰인 노래가사가 그 때도 무슨 뜻인지 몰랐고 지금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워낙 오래되어 기억도 희미하지만 어쨌든 생각나는대로...

이거리 저거리 박거리
정지 망구 또 망구
동태 바쿠 테 바쿠
스무리 바쿠 또 바쿠
(한 두 줄 더 있었는데 생각 안남)
갑을 머리 양주 걸판


posted by 신묘군
기술을 얘기한다 2012.11.30 13:15

DNS 조회가 가끔 실패하거나 답이 늦게 (4초 정도) 오는 경우가 있어서 한참을 뒤졌더니 윈도 서버에 탑재된 DNS 서버는 응답의 크기가 512 바이트가 넘을 때에도 UDP 로 보낸단다. 그런데 상당수의 방화벽에서는 이렇게 큰 DNS UDP 패킷을 허용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다. 방화벽에서 응답을 버리니 질의한 쪽에서는 당연히 타임아웃이 되고 재시도 하고 TCP 로 재시도 하고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실패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글을 뒤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 시간 정도). 그 이유는 구글에서 검색할 때 키워드로 DNS 조회가 "실패"(fail) 하거나 "느리다"(slow) 로 검색했지만 막상 MS 측의 해당 문서는 "성공적이지 못하다"(unsuccessful)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 뿐 아니라 심지어는 내용에서도 그렇게 쓰고 있다.)


그래 말이야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렇게 쓰면 안되는거라구.

어쨌든 문서에서는 DNS 서버의 옵션을 조정해서 큰 DNS UDP 패킷 를 날리지 않게 하거나 방화벽 설정을 바꿔서 큰 DNS UDP 패킷이 잘 통과하게 하면 된단다.

http://support.microsoft.com/kb/832223/en-us

posted by 신묘군
웃어보자꾸나 2012.08.31 12:22











posted by 신묘군
잡스럽게 얘기한다 2012.08.27 13:36

(필자 주: 아래의 글은 체험단 후기로 작성된 것입니다. 공짜로 케이스를 받았다고 안되는 것을 된다고, 나쁜 것을 좋다고 쓰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100% 객관적으로 썼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들머리: 휴대폰 케이스는 계륵이다

휴대폰 케이스는 액정보호필름과 마찬가지로 계륵이라고 생각한다. 액정보호필름은 이름 그대로 액정을 보호하기는 하지만 터치감이 나빠지고 화면도 덜 선명한 단점이 있다. 특히 최근의 화면은 감압식이 아니라 정전식이라 몰랑몰랑한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고 전면의 유리가 충분히 단단해서 예전처럼 쉽게 긁히지도 않는다. 

그럼 휴대폰 케이스는 어떤가?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화면을 보면서 터치하는 것이 사용 행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케이스는 이 장면에서 걸리적 거리는 존재가 되기 딱 쉽다. 게다가 케이스를 끼면 생폰에 비하여 그립감도 나빠질 수 밖에 없다. (이 두가지 단점을 생각하면 범퍼 케이스가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막상 휴대폰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 즉, 전면 유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또한 케이스는 생폰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려버린다는 것이다. 휴대폰 신제품이 나올 때 마다 온갖 루머가 나돌면서 디자인이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색이 이쁘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오가고 막상 폰을 살 때에도 신중하게 색을 골라서 사놓고 케이스를 씌워 버린다는 참으로 우스꽝스런 일이다. 하긴, 디자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애플의 아이폰도 수많은 사람들이 케이스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외에도 휴대폰 케이스의 단점을 들라면 더 들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케이스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장점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천편일률적인 디자인 대신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케이스라던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디자인 케이스"라고 검색하면 나옴), 어르신들을 위한 패션 케이스라던가...

반전: 휴대폰 케이스가 필요해!

갤럭시S3가 국내에서 발매되면서 회사에서 법인폰으로 지급을 받았다. 당연히 사용요금은 회사 부담. 최근 몇년간 쭉 스마트폰만 쓰면서 케이스나 액정보호필름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래서 지급받은 최신폰도 생폰으로 쓰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망가지면 내 돈으로 수리를 해야 되고 보험을 들려고 해도 요금이랑 통합고지가 될 텐데 비용 처리하기가 복잡할 것 같아 케이스를 하나 장만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미적미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눌님의 휴대폰을 새로 바꿔주게 되었는데 폰을 판 곳에서 케이스를 사은품을 줄테니 골라보라고 하여 몇 가지 후보를 골라 마눌님께 보여드리고 낙점 받은 제품은 S*P의 발렌**스라는 제품이었다. 배달되어 온 케이스를 폰에 껴보니 제법 그럴싸하게 뽀대가 난다. 역시 아줌마에겐 플라스틱 질감의 생폰보다는 가죽의 고급스런 질감이 더 어울린다고나 할까. 

게다가 케이스 안쪽으로 교통카드, 신용카드나 비상금 약간을 넣을 공간이 있어 간편하게 외출할 때에는 굳이 지갑을 들고다닐 필요가 없어서 좋아보였다.

좋아 나도 하나 사자. 결심을 하고 둘러보던 중 모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체험단에 당첨되어 제누스 매스티지 레터링 다이어리(휴~ 이름 한번 길다)이라는 제품을 받아 현재 사용중이다.

개봉: 케이스의 케이스도 이쁘다

회사로 택배로 배달온 것을 해외출장으로 며칠 뒤늦게 받아 개봉을 하게 되었다. 사진 촬영은 갤럭시S3로 하였고 배경은 회사 책상 그리고 찬조 출연은 왕 핑크 키보드(WANG이라는 아주 아주 오래된 회사의 터미널에 달려 있는 키보드를 일반 PC에 쓸 수 있도록 개조한 것으로 키 안쪽에 들어 있는 기둥이 분홍색이라고 하여 왕 핑크라고 부른다. 시중에서 구매할 수는 없는 제품이고 키보드 관련 동호회 사이트에서 중고로 가끔 거래가 된다.)가 수고해주었다.

로고가 이쁘게 인쇄된 택배박스

택배로 거래하는 물건의 경우 첫 인상은 당연히 택배 박스다. 십 여년 전에 아마존에서 책을 처음 샀을 때 배달 온 박스를 보면서 "야~ 역시 세계적인 기업은 다르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뭐 요즘은 국내 인터넷 서점도 절대 빠지지 않지만... 배달 박스에 선명하게 찍히 회사의 로고와 선전 문구를 보면서 고객들은 "음... 대충 대충 만드는 업체는 아닌가보네"하는 생각을 할 것 같다.

반품 & 교환 신청서 앞과 뒤

박스를 뜯어보니 제품 외에 반품 & 교환 신청서가 들어있고 조건이나 절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미국 인터넷 쇼핑계의 신데렐라인 재포스 닷 컴의 경우 1년 이내에는 무한, 무료 반품을 해주면서 일단 맘에 드는 것은 다 주문하고 원하는 것만 갖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는 전략을 써서 순식간에 엄청난 성공를 이뤘다. 인터넷 쇼핑의 가장 큰 문제는 실물을 보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므로 화면으로 본 것이랑 실물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사진빨!) 그래서 반품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반품은 문제 또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예 반품 & 교환 신청서를 껴주는 것은 대단히 훌륭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은 상당히 뽀대나는 투명 케이스에 들어있다.

제품은 이쁘게 생긴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데 (케이스를 싸고 있는 케이스라...) 디자인이나 글씨 인쇄 상태 등이 상당히 양호하다. 쉽게 말해서 장사 하루 이틀한 집이 아니라는 얘기.

간지가 좔좔 흐르는 첫 인상

제품의 첫 인상은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느낌. 그리고 싸구려 케이스에서 흔히 나는 독한 냄새도 전혀 없다. 혹시 못 느끼는 건가 싶어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아도 가죽 냄새외에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대만족이다. (예전에 갤럭시탭 케이스를 *마트에서 샀다가 냄새 때문에 못 쓰고 버린 기억이 난다. 그 케이스는 심지어 물에 넣고 비누칠까지 해줬는데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그 회사는 많은 케이스를 생산하고 있지만 절대로 그 회사 제품을 사지 않을거다. 흥.)

제품의 안쪽 모습

자석으로 된 단추를 끌러주면 안쪽을 볼 수 있는데 왼쪽으로는 플라스틱 카드와 얇은 종이(현금 ^^)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폰을 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바느질 상태는 훌륭한 편이다.

몇군데 눈에 거슬리는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바느질 상태도 무척 깔끔하다. (물론, 명품 백 수준의 바느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 앞판을 고정하는 것은 똑딱이 단추가 아니라 핸드백에 흔히 쓰는 자석 단추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똑딱이 단추의 경우 고정시키기 위해서 누를 때마다 액정에 압박을 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데 자석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승리의 V도 아니고 이게 뭐여?

한가지 맘에 걸리는 것은 단추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벌어진 형태가 된다는 점이다. 그 부분에 재봉선이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쪽을 그곳에서 마주 붙인 것이라 그런지 몰라도 양쪽이 벌어졌다. 하지만 손으로 적절히 눌러주니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제품 설계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포장을 열어서 장착하는 부분까지의 과정은 베트남에 있는 누군가가 무척 자세히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려두었다. 내가 해봤자 더 잘하기는 힘드니 그냥 링크. 게을러서 그런거 절대 아님.

써보니: 신용카드 석장은 무리

장착 이후의 사진은 갤럭시S3로 찍을 수가 없으니 올림푸스 E-P2를 사용하였다. 배경으로는 집의 식탁 그리고 찬조 출연은 대전의 이응로 미술관(여기 참 좋다. 강력 추천!)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 머그.

케이스에 장착한 후 윗쪽 모습

케이스에 폰을 장착한 후 윗쪽 모습이다. 오른쪽으로 이어폰 단자와 왼쪽의 DMB 안테나를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게 되어 있다. (너무 당연한가.)

케이스에 장착한 후 아랫쪽 모습

이번에는 아랫쪽 모습이다. 마이크로 USB 단자를 쓸 수 있도록 잘 뚫려 있다.

단추를 잠근 후 옆 모습 (카드를 넣지 않은 상태)

단추를 잠근 후의 모습이다. 위쪽 (사진에서는 오른쪽) 이 살짝 들리는 느낌이 있지만 이건 손으로 적당히 주물러 주면 해결되는 문제이다. 다만 타이트하게 잠기지 않고 앞판이 논다. 아마 안에 플라스틱 카드나 현금 등을 넣는 경우를 고려하여 여유있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볼륨 조절 버튼 주변 모습

단추를 다시 풀어서 옆구리의 볼륨 버튼 부분을 보면 이쁘게 뚫려있다. 사진에서는 버튼에 비하여 뚫린 곳이 넓은 것 처럼 보이지만 (즉, 괜히 많이 뚫은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써보면 저 정도는 뚫어야 버튼 누르는데 불편하지 않다. 휴대폰을 고정시키는 부분은 위쪽으로 두군데 그리고 양쪽으로 두 군데가 있는데 꾹 눌러주면 쏙 들어가 고정이 되고 그냥 폰을 잡아 빼면 쉽게 빠진다. 차량 네비 겸용으로 쓰고 있어서 운전 중에는 빼서 네비용 거치대에 껴야 하므로 쉽게 뺐다 꼈다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전원 버튼 부근 뚫린 모습

당연히 그 반대편의 전원 버튼 부분도 이쁘게 뚫려있다. (사진 오른쪽으로 DMB 안테나를 위하여 뚫린 부분도 볼 수 있다.) 

카드 석장과 현금 조금을 넣을 수 있다.

그럼 실제로 카드와 현금을 넣어보자. 카드 석장과 만원 짜리 한 장을 두번 접어서 넣어보았다. 그렇게 해서 다시 덮어서 단추를 잠그면...

카드 석장을 넣고 나면 앞판의 윗쪽이 제법 많이 뜬다. (옆에서 본 모습)

허걱... 그림과 같이 한쪽(위쪽)이 심하게 벌어진다. 벌어진 곳을 더 강조하여 보여주기 위해서 위쪽에서 찍어보면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상당히 많이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드 석장을 넣고 나면 앞판의 윗쪽이 제법 많이 뜬다. (윗쪽에서 본 모습)

이것은 아마 카드를 여러 장 꽂다보니 카드와 카드가 겹쳐지면서 그 부분이 두꺼워져서 생기는 현상인 듯 하다. 물론 석장이 아니라 두장, 한장을 꽂으면 덜 벌어지고 그까짓것 신경 안쓰면 그만이다. (나도 첨에는 맘에 걸렸는데 막상 이 후기를 쓰면서... 아 그런 문제가 있었구나... 하고 되새기게 되었다. 내가 무던한걸까?)

카드를 석장 넣어도 아랫쪽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그런 와중에도 반대편은 비교적 이쁘게 붙은 모습을 유지한다.

이번에는 단추를 닫을 때 얼마나 쉽게 닫아지는지 확인해보았다. 아래의 영상은 카드 석장을 넣은 상태로 여닫는 모습이다. (이 영상은 내가 찍었다. 조연으로 내 오른손 출연)

그리고 아래의 영상은 카드를 뺀 상태에서 여닫는 모습이다. 훨씬 쉽게 그리고 빨리 여닫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한손으로만 여닫는 실험을 한 것이기 때문에 100% 사용환경과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한 손으로 해본 실험에 하면 (영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카드를 채운 상태에서는 빡빡하게 케이스가 닫히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자석으로 된) 단추의 위치를 정확하게 맞춰 줘야 단추가 잠기고 카드를 다 빼고 해보면 (앞판이 여유가 있기 때문에) 대충 근처에만 가도 턱하니 잘 붙는다. 동영상으로 촬영하지는 않았지만 두 손으로 하더라도 카드가 들어 있을 때에는 척척 붙는 느낌은 들지 않고 약간이나마 신경을 써주어야 한다.

결론: 미완의 대기

장점을 열거해보자.

이쁘다. (몹시 주관적이지만 아저씨가 쓰기에는 괜찮다.)

정갈한 바느질

쉽게 끼고 뺄 수 있다.

냄새도 안나고 고급스런 느낌

똑딱이가 아니라 자석 단추

단점을 열거해보자.

카드를 넣으며 앞판이 위쪽으로 벌여져요.

앞판이 살짝 헐렁해서 노는 느낌

결론? 참 어렵다. 아주 싼 제품도 아니기 때문에 선뜻 샀다가 실망하면 곤란하다. 어쨌든 생폰 보다는 중년의 품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너무 까탈스러운 성격이 아니라면 시도해볼만한 제품이라는 건 분명하다. 게다가 시중의 다른 케이스 보다는 절대 못하지 않다. 이 제품의 경쟁자라면 다른 케이스가 아니라 생폰이다.

posted by 신묘군
기술을 얘기한다 2012.05.02 11:47

MSDN이나 TechNet 이나 모두 여러 마이크로소프트 제품과 정보를 개별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충분히 싼 가격에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래서 마구마구 헷갈리는데... 그래서 구글 검색 창에다가 

msdn subscription vs technet subscription

라고 입력하면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쏟아지는데 그 중 맨 위의 링크인 Comparing MSDN and TechNet Subscriptions 를 살펴보면 두 가지가 거의 상반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MSDN 은 개발자용이고 TechNet 은 운영자용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대부분의 환경에서 이들 둘은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ㅠㅠ) 그럼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거냐? 그래서 꼼꼼이 살펴보았더니 (아래의 그림을 보세요)

TechNet 을 소프트웨어 개발의 관련된 테스트 용으로는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TechNet 은 여러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설치해서 이렇게 저렇게 세팅해보고 우리가 원하는 기능이 잘 되나 안되나 보는 용도로 쓰는 것이지 그렇게 설치된 상태에서 자기 회사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올려서 테스트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12.04.25 11:14
세상은 항상 둘로 나눌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것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람을 나누는 방법도 가지가지지만 회의주의자와 낙관주의자로 나눠볼 수 있다.

회사에서 회의주의는 금기다. 그런 점에서 나같은 근본적 회의주의자는 회사 직원으로서는 빵점이다. 회사에서 회의에 들어가보면 늘 낙관주의자 넘쳐난다. 안되는게 어딨냐. 끝까지 되도록 만들어라. 그런데 막상 쫄다구끼리 모여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회의주의가 팽배하다.

심지어는 서점가도 한 때는 (지금도?) 낙관주의로 넘쳤다. 예컨대, 씨크릿 류의 주장이 여기에 속한다. 될 것이라는 굳게 믿으면 된단다. 아멘.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 하지만 이 말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예를 들어, "굳게 믿어도 안되는 일이 있다"고 굳게 믿으면 그건 이뤄지나 안 이뤄지나? 이뤄졌다는 것과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가능한가? 죽은 괴델을 살려내야 되는건가?

끝까지 노력해서 달성하는 것은 인생의 목표라던가 뭐 그런 것을 위해서라면 좋은 자세다. 그런 것이라면 나도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고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 일에서 낙관주의란 무엇인가? 잘못된 계획을 밀어붙이면 안 될일이 되나? 되긴 되겠지 언젠가. 하지만 차라리 물러서서 계획을 수정해서 다시 시작하거나 또는 안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Plan B를 준비한 것 보다 좋다고 할 수 있나? 하긴 그런 걸 생각하면 낙관주의자가 아니겠지.

그런데 재밌는 것은 회사에서는 직위가 위로 올라갈 수록 낙관주의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최소한 두 가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1. 적자생존. 낙관주의자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좋은 형질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낙관적으로 뚫고 나가기 때문에 더 잘 버틴다.

2. 롤플레이. 원래 아랫사람의 역할은 회의주의 윗사람의 역할은 낙관주의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자기도 근거는 없지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밀어부치기 마련이고 막상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안되었을 때의 부담을 생각해야 되니 최대한 회의주의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겠습니만..."

나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부서원들을 데리고 회의를 하다보면 제일 낙관적인 내가 상사와 얘기할 때는 거의 예외없이 회의주의로 빠진다. 

그런데 높은 분들은 전자의 해석을 지지한다. 그러니까 높은 분들의 눈에 들고 싶으면 나도 전자를 "믿도록" 노력해야겠다.
posted by 신묘군

윈도에서 화면에 보이는 내용을 그대로 PDF 파일로 만들 때는 여러 좋은 툴이 있다. 그런데... 무료 툴 중에서 기업에서 쓸 수 있으면서 윈도 7 64 비트를 지원하는 것은 아직은 없는 듯 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포스트스크립트 파일로 프린트하여 (하는 방법은 여기) GhostScript + GhostView 를 이용하여 변환하거나 또는 XPS 파일로 프린트 하여 GhostPDL 툴의 일종인 GhostXPS (명령어는 gxps)로 변환하는 것이다. 아래는 현재 디렉토리의 모든 XPS 파일을 PDF 파일로 변환하는 예시이다.

** for i in *xps; do gxps  -sDEVICE=pdfwrite -dNOPAUSE -sOutputFile=${i%.*}.pdf $i; done


posted by 신묘군
2012.02.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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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소스에서 태그는 싹 지우고 텍스트만 남기고 싶을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 먼저 쉬운 것.
:1,$s/<[^>]*>//g
왼쪽 각괄호에서 오른쪽 곽괄호가 아닌 글자를 쭉 매칭하다가 오른쪽 곽괄호가 나오면 매칭을 끝내고 이걸 NULL로 바꿔치기 하는 거다. 이 방법의 단점은 태그가 여러 줄에 걸쳐 있으면 안된다. 그런 경우까지 되는 좀 어려운 것.
:1,$s/<\_.\{-1,}>//g
\_ 는 new line을 포함한 임의의 글자라는 의미. \{-1,}는 at least one 매칭을 하는데 단 non greedy match를 하라는거다. 

posted by 신묘군
Unity 에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 사람을 위하여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놓았다.

http://askubuntu.com/questions/58172/how-to-revert-to-gnome-classic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12.12 15:05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 강연을 할 때면 자주 인용하는 글이 있다. 케인즈가 쓴  “우리 후손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1930년에 씌어졌다. 1930년이라고 하면 수많은 소설,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그 악명 높은 대공황이 있었던 시기다. 미국 사람들은 전례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런 시기에 케인즈는 이때까지의 상황과 지식에 견주어 볼 때 100년 이내에 4~8배 또는 그 이상의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대담하고도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하지만 이는 글의 요지가 아니다. 곧바로 케인즈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게 득이 되나? 삶의 가치에 대하여 믿기라도 한다면 어쩌면 득이 될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Will this be a benefit? If one believes at all in the real values of life, the prospect at least opens up the possibility of benefit.)

지금보면 어쩌면 시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업자들이 길거리를 메우고 있던 시절에 경제성장이 이뤄진 이후에 벌어질 비참상에 대하여 예견한 그의 통찰은 놀랍다. 어쩌면 우리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나 "월가를 점령하라"는 얘기까지 터져나오는 현재의 상황을 보지 않았다면 케인즈의 통찰을 어떤 늙은이의 망상이라 느끼고 있지 않을까?

잠시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보자. 시장을 중심으로한 교환이 일반화되기 이전의 경제에서는 분배는 무척 노골적인 문제였다. 가끔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지금도 원시사회 풍속을 유지하고 있는 오지의 사람들을 보면 사냥에서 잡은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는 행위가 무척 중요한 사회적 행위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분배가 늘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법. 특히 공동체가 커지면 커질 수록 불만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분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계급이 사용되고 하층 계급이 분배에 갖게 될 불만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지배층은 종교를 이용했다.

백성의 들끓는 거대한 욕망 그걸 만나면 공포에 질리게 된다. 왜? 그 욕망들이 모두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왜? 그 욕망들이 모두 한꺼번에 풀어지면 세상은 지옥이 될 테니까. 그것을 제대로 만난 것은 바로 진시황. 그는 강력한 법률로 천하를 다스리려 했다. 하지만 그걸로 되지 않아. 해서 공자와 맹자가 필요한 것이고 또 주자가 나온 것이다. 그 무섭고도 거대한 백성의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 서역 대진국이 기리사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도 삼한과 고려가 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것도 모두 그 욕망 때문이었어. 불교도 유학도 서역의 기리사독교도 모두 이름만 달리 했을 뿐 욕망 통제 체계에 다름이 아니었다.
 --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중 정기준의 대사 

하지만 꾸준한 생산성의 향상으로 우리는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부자가 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돈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돈을 좇아 뭔가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 즉, “직업"을 “호구지책"이라 부르며 자신의 일을 비하하곤했다. 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한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은 키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과 모 카드회사의 광고에 김정은이 나와서 포근한 눈이 내리는 속에 서서 “부자 되세요~”라고 외친 것이다.

경제의 성장은 끝이 없고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시절 심지어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하여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에 후쿠야마는 성급하게도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교회에서 헌금 액수가 믿음의 척도로 일반화 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런...데... 

우리는 부자가 되었나? 꼭 부자는 아니라도 먹고 살게는 되었으니 행복해졌는가?

어제는 주말이라 짬을 내어 차를 정비하러 갔다가 중고차 매매 일을 하는 아는 동생을 만났다. 겨울은 비수기라 좀 한가하단다.

나: 그래? 그럼 봄 되서 날 풀리면 매기가 살아나는가?
아는 동생: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래도 예전 만 못해요. 신학기가 되면 대학생들이 차를 사러 와서 경차는 시세도 50만원 쯤 오르고 차 세워 두기가 무섭게 빠졌는데 2~3년 전부터는 그게 없어졌어요.

등록금 천만원 시대. 그렇게 비싼 돈 내고 공부해봤자 졸업해서 88만원 세대가 되는 요즘 세대의 아픔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그것 뿐인가? 전세계를 휩쓸고 간 99%의 저항은 또 어떤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케인즈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가치. 인간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종말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 즉, 역사 2.0이 시작된 것이다. (강증산이 얘기한 후천개벽이 이런 건가?)

역사 2.0은 그 이전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재발견 즉 르네상스가 일어나야 한다. 지난 시기 역사의 정점을 이룬 체계는 시장이다. 시장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 하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만나 평형을 이루는 체계다. 산업혁명 이래 우리는 세상이 영원히 진보할 것이며 개발이 곧 발전이라는 자유주의에 심취하였다. 어떤 이는 인민을 어떤 이는 민족을 또 어떤 이는 부르주아를 그 개혁의 주동세력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 20세기의 중심에 있었던 사회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는 본질적으로 같은 기제였다고 일찌기 월러스틴은 "자유주의 이후"에서 정리한 바 있다. 역사 2.0은 이러한 이전 시대가 갖고 있었던 전망 자체를 뛰어 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치혁명 또는 경제혁명이나 제도혁명 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 구조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 "강의" 중에서 인용

결국 케인즈와 같은 얘기다. 단지, 그냥 인간이 아니라 신영복은 인간의 "관계"에 좀 더 무게를 주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질문이 인류 역사에서 지금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노자 또는 수많은 인류의 스승들이 준 가르침에서 시대의 한계 때문에 오해된 측면을 배제해나가다 보면 이러한 일체의 "색"의 세계가 무의미해진 시점에서 우리를 끌고 가는 방향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생각이 "교회나 절간이나 소규모 공동체 안에 갇혀있을 것이 아니라" 현실의 중심적인 원리로 도입되고 이것이 인류의 탄생 이래 지속되어온 무척 오랜 체제을 넘어서는 최초의 진정한 체제가 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더 늦출 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기심과 이기심이 벌거벗고 충돌하는 사회에 백년 넘게 노출된 인류에게는 그 외의 생각을 생활의 원리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주위을 잘 둘러보면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다. 단지 눈여겨 보지 않았을 뿐.

미안하지만 여러 경제학자분들께서는 실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금속 공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고, 고베 철강에서 지난 30년간 일한 덕에 철강 제조에 대해 제법 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저도 회사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회사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반 정도 이해하면 다행입니다. 회계나 마케팅 분야 출신의 다른 임원들은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이사회에서는 직원들이 올린 사업 계획을 대부분 받아들입니다.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가정하고 직원들의 동기를 사사건건 의심하기만 한다면 회사는 마비되고 말 겁니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업계획을 검토하려고 애만 쓰다가 말 테니까요. 고베 철강이든 정부든 간에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다고 전제하면 대규모 관료 기구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이미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본성에 숨어있는 정직, 이타심 또는 관용 덕분에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우리는 이기심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뿐이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좁은 이기심을 넘어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넓은 이기심(= 정직, 이타심, 관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틀 그리고 그러한 상호 협력을 통해 내가 보상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다.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로 리눅스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는 대략 하드웨어 + 운영체제 + 앱으로 구성되며 운영체제는 하드웨어에서 앱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기반이 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현재 시중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중에서 애플에서 나온 아이폰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안드로이드 폰인데 이것도 모두 리눅스를 운영체제로 사용한다. 리눅스는 놀랍게도 공짜이며 처음 만든 리누스 토르발즈와 전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자원봉사 개발자의 합작품이며 현재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서로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돈도 받지 않고 운영체계 개발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은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는 실로 놀라운 사건이었고 에릭 레이먼드는 왜 이런 일이 가능한지 분석하여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이라는 에세이를 썼다. 레이먼드는 이러한 아름다운 협력이 가능한 몇 가지 원리를 그 에세이에서 제시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자기 만족을 얻으리라는 전망에 자극 받았고, 그들이 하는 일이 계속해서 (어떤 때는 날마다)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보답이 되었다.

이타심 또는 관용은 자신의 생존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유전자 깊숙히 새겨져 있는 것이지만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주어지지 않는 한 발휘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인류는 참으로 복이 많다. 왜냐하면 인터넷이 있으니까. 컴퓨터가 있으니까. 인터넷이나 컴퓨터는 관용을 쉽게 발휘할 수 있게 사람과 사람을 매개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동을 전 지구적으로 조직할 수 있게 하고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분야에서 가장 주목 받는 젊은 학자인 클레이 셔키(라고 쓸까 아니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머리 학자 클레이 셔키”라고 쓸까 고민을 한참 했다.)는 전세계 사람들을 24시간 연결해주는 정보기술이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재미난 사진이 하나 올라오면 이를 이용한 합성 사진이 수천 수만장 쏟아지는 현상이 인지 잉여가 발휘되는 가장 간단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누리꾼은 이런 현상을 흔히 “잉여력" 또는 그냥 “잉여"라고 쓰기도 하는데 가끔은 경멸적 의미로 쓰기도 하므로 정확히 같은 의미는 아니다. "짜식 잉여력 쩐다"라고 하면 "와 대단한데"라는 의미와 "몹시 할 일이 없구나"라는 의미가 동시에 있다.)

클레이 셔키는 인지 잉여가 관용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공동의 가치(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득을 보는 것)는 물론이고 사회적 가치(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 외의 모든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예로 들었던 것은 유샤히디라는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는 케냐의 2007년 대통령 선거 후 발생한 인종간 갈등으로 수많은 폭력 사태가 벌어지자 이런 상황을 정리해서 지도에 보여주는 간단한 서비스로 두 프로그래머가 만든 것이다. 이후 이를 이용해서 멕시코에서는 부정 선거를 고발하고 워싱턴 DC에서는 제설 상황을 공유하고 아이티에서는 지진에 따른 피해를 집계하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각 지역에서 자기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그 사이트에 올리는 것은 무척 간단한 일이지만 이것을 누군가 중앙에 앉아서 사람들을 풀어서 그런 정보를 모으려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인지 잉여와 그런 잉여가 발휘될 수 있는 간단한 도구가 결합함으로써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또 어떤가?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누가 앉아서 일일이 편집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몇년 만에 “저절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더 자료도 많고 더 정확한 백과 사전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위의 사례는 누군가의 잉여력으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것이지만 스스로에게도 큰 혜택이 돌아오게 만든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가장 멋진 프로젝트는 듀오링고(Duolingo)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연구진들이 만들어낸 이 멋진 프로젝트는 “세상에 좋은 컨텐트가 많은데 다른 언어로 다 번역하려면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라는 문제와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라는 사실을 결합해서 컨텐트를 번역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런 식이다. 영어를 배우려는 한국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영어로된 위키피디아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다고 하자. 그럼 우선 컴퓨터가 제대로 된 번역을 알고 있는 문장 하나와 모르는 문장 하나를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번역을 해보라고 한다. 만약, 사용자가 컴퓨터가 답을 아는 문장을 정확하게 번역했다면 나머지 한 문장도 정확한 번역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를 충분히 많은 수의 사람에게 같은 문제를 풀게 하면 정확한 번역이 무엇인지 몰랐던 문장의 번역을 (충분히 높은 확률로) 컴퓨터가 알 수 있게 된다. 그럼 문장 하나가 번역된 셈이고 컴퓨터 입장에서는 문제를 낼 때 써먹을 수 있는 “답을 아는" 문장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반복을 하다 보면 어느덧 엄청난 양의 문서를 번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참여한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는 일석이조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황당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충분히" 많고 그들을 잘 연결할 수 있는 정보 기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이롭고 스스로에게 혜택이 돌아올 뿐 만 아니라 돈까지 생긴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누군가 자가용 자동차의 하루를 살펴본다면 무척 심심할 것이다. 거의 항상 주차되어 있으니까. 만약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공유한다면 자동차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인 “집카"는 충분히 많은 (하지만 회원 수 보다는 훨씬 적은) 자동차를 도시 전역에 깔아놓고 인터넷을 통해 예약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차의 위치를 알려주고 차를 이용한 뒤 주차를 하면 다시 인터넷에 주차된 위치가 등록되는 식으로 상당히 편리하게 차를 빌려 탈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하여 이 서비스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자가용을 보유하는 것 보다 훨씬 싸게 먹히니 서로 이득이다. 더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차를 이용하는 행태를 돌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냥 차가 있으니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빌려서 쓰다 보니 사용을 더 계획적으로 하게 되고 걷는 비율이 늘어나는 등 생활 양태까지 바꾸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집에 있는 빈 방을 활용하여 수입을 올리고 싶은 사람과 방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100개가 넘는 나라에 1만개가 넘은 방이 등록되어 있으며 많은 거래가 이뤄졌지만 도둑질은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으며 예약 해놓고 안 온다거나 방이 깨끗하지 않은 등의 문제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회원들 사이에 평판이 나빠지면 다음 거래에는 불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사례는 어떤가? 좋아 보여서 샀지만 더 이상 필요 없는 물품은 다들 있기 마련이다. 그냥 버리긴 아까운데 필요로 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고 더구나 가격을 매기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과 바꾸면 어떨까? “스와프트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사이트이다. 워낙 많은 회원들이 있다보니 전혀 거래될 수 없을 것 같은 것도 결국은 짝을 찾아 거래되곤 한다.

이와 같이 서로 협력하여 소비함으로써 덜 생산하고도 원하는 것을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협동 소비" 트렌드를 많은 사례와 함께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책 “위 제너러이션"의 저자인 레이첼 보츠먼은 사람들이 원래 선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실천을 마찰이 없고 재밌게(frictionless and funny)만 만들어 주면 된다고 한 바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변혁한다는 것은 생명을 걸어야 하는 비장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에서 지적하였듯이 이런 새로운 생활 양태를 정보기술과 결합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재미있게 꾸민 다음 이것이 "더 쿨하고 더 편하고 더 유리한지 마케팅"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뭐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비장함까진 필요하지 않으니 다행 아닌가?

이전에 유토피아 공동체를 시작했던 사람들은 오래된 공동체를 떠나서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하는게 최선이라고 주장했고 그래서 자주 실패했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건 공동 라이프스타일을 반문화가 아니라 문화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 레이첸 보츠먼과 루 로저스 "위 제너레이션"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11.11.29 10:24
지난 주말 밥상머리에서 수능을 마치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던 딸이 던진 질문이다. 실은 나도 생각 안 해봤다. 으음... 월가의 금융자본가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버니까 그런가? 그냥 샘나서? 남이야 돈을 벌든 말든 웬 난데없는 열폭?

대략 5초간 대답을 못하고 버벅대다가 역시나 마르크스를 끌어들여 설명을 해줬다. 역시 마르크스의 설명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어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딱 떨어진다는 점은 맘에 든다.

옛날에 어떤 농부가 쌀 농사를 지었어. 자기 논에서 나온 쌀 열 가마니는 모두 그 농부의 소유가 되는거지. 그럼 그 쌀은 어디서 온 건가? 그 농부의 노동에서 온 거야. 물론, 따사로운 햇볕이나 달콤한 비나 비옥한 땅 따윈 그냥 공짜로 주어진거라고 보자구. 생태근본주의로 빠지면 설명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자 이번엔 그 논이 농부의 것이 아니라 땅 주인의 것이라고 해보자고. 그럼 쌀의 일부를 소작료로 걷어가지. 그냥 1할을 가져간다고 하자고. 한 가마니는 땅 주인 주고 아홉 가마니는 농부가 갖는거야. 지주가 단지 땅을 빌려준 것만 가지고 일할 씩이나 가져 가는 것이 도덕적이냐 뭐 그런 질문은 하지마. 그게 핵심이 아니니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분배의 비율과는 무관하게 생산된 쌀은 여전히 열 가마니 즉, 그 농부가 생산할 수 있는 총량 그대로라는 점이야.

갑자기 현대 사회로 와 보자고. 다양한 산업에서 다양한 재화를 만들어 내지만 그 본질은 똑같아. 노동자들의 총 생산량을 이렇게 저렇게 나누는거라고. 예를 들어, 직접세니 간접세니 부자감세니 징벌적 세금이니 하는 다양한 세금 정책이나 주식이니 선물이니 파생상품이니 하는 다양한 금융 노름은 이 총 생산과는 무관해. 단지 이 총 생산을 어떻게 사회가 나눠 먹느냐 하는 방법의 다양한 형태일 뿐이야.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경제의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이 뭐지? 금융이야. 금융은 본질적으로 실체를 다루는 것이 아냐. 온라인 송금을 보라구. 수천 수억을 클릭 몇 번으로 간단히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돈이 "실제로" 이동하지는 않기 때문이야. 게다가 머리 좋은 금융인들이...

"응 맞어. 아빠가 대학원을 들어갈 때쯤 머리 좋은 애들은 다 금융공학이란 걸 했어. 돈 놀이를 아주 아주 치밀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건가봐. 아빠도 그 이상은 몰라."

"아빠는 왜 그거 안했어?"

"응 그거? 수학 잘해야돼."

"아 그렇구나." (아 바로 설득이 되었단 말인가 ㅠㅠ)

다시... 금융인들이 여러가지 재밌는 기법을 찾아 냈어. 예를 들어, 내가 1억원의 종잣돈을 갖고 은행을 세웠다고 하자고. 아니면 예금으로 1억이 들어왔다고 해도 되고. 그럼 나는 이 돈을 굴려서 이익을 만들어야 되잖아. 그래서 대출을 해주고 대출 이자와 예금 이자의 차익을 먹는건 알지?

그래서 1억을 대출을 해줬어. 그럼 은행에는 뭐가 있지? 1억원의 예금이 있으니 돈을 내줘야 한다는 의무(즉, 채무)를 기록한 종이 한 장과 1억을 대출 해줬으니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권리(즉, 채권)를 기록한 종이 한 장이 있는거지. 그래서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받아 예금 이자 내 주고 차액을 먹고 살았어.

그런데 아 이게 너무 심심한거야. 그래서 "깡"을 하기 시작한거야. 그러니까 채권을 기록한 종이 즉, 돈을 받을 권리를 딴 사람에게 파는거야. 예를 들어, 좀 싸게 (혹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만큼 깎아주는거지) 9천만원에 팔아. 그럼 다시 은행에 현금 9천만원이 생기니까 9천만원을 대출해줄 수 있고 이걸 계속 뺑뺑이를 돌면 원래 은행이 가진 돈의 수십배를 대출할 수 있게 되는거야.

뭐 이런 것 말고도 선물이라고 해서 미래의 물건을 미리 땡겨 와서 사고 팔기도 하고 별 희한한 것을 다 거래 가능한 금융 상품으로 만들어서 사고 판다고 하더군.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환율의 빈틈을 노려서 전세계를 뱅뱅 돌아다니며 외환 거래를 하기도 하고 별 짓을 다 해. 하루에 이런 식으로 금융 거래를 통해 전세계를 도는 돈이 1년간 생산하는 총 재화보다 많다던가 뭐 어쨌든 엄청 크다더라.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는 모르고 오늘 얘기에서는 몰라도 되니까 일단 넘어가.

여기서 핵심은 금융은 실제로 재료를 집어 넣어서 사람이 노동을 해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의 가상 거래를 통해서 엄청나게 거래량을 늘릴 수 있고 그 결과 전체 산업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되었어. 그런데 각 산업이 비슷한 수익을 낸다고 생각해보자고. 그럼 금융의 비중이 거졌으니 금융쪽으로 수익이 몰려가게 되는거지.

그   런   데

맨 처음에 살펴 보았듯이 재화는 실제 노동을 통해서만 생산이 되고 그 나머지는 다 이걸 분배하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라구. 그러니 금융산업이 늘어나서 골드만삭스니 씨티그룹이니 하는 회사의 CEO가 엄청난 월급을 받아갈 때 그 돈은 실은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기 보다는 총 생산된 재화의 분배 과정에서 자기들 몫을 더 키운 거라고. 즉, 규모가 커지 금융 덕분에 쌀을 스무 가마니 생산하게 되어 골드만삭스가 열가마니 열다섯가마니를 가져 가는게 아니고 열 가마니 중에서 아홉가마를 가져가는거라고. 그럼 농부는 겨우 한 가마니를 가져 가는거야.

그래서 중산층이 몰락한다는 얘기가 나오는거야. 틀림없이 이전 처럼 일하고 있는데 틀림없이 이전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아 졌는데도 중산층이 가져가는 몫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그건 근본적으로 터무니 없이 비대해진 금융산업 때문이라구. 그러니 99%의 사람들이 월가를 점령하고 그 난리를 친거야.

알겠지?
posted by 신묘군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항상 최신 버전을 깔아준다. 살다보면 최신 버전 말고 구 버전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firefox 8.0 에서는 오픈 뱅킹이 되지 않아 7.0 을 깔아야 했다. 그런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 sudo apt-get purge firefox
$ sudo apt-get install firefox=7.*

posted by 신묘군
무슨 이유인지 원리까지는 모르겠는데 최신 버전의 publish sync (페이스북에서 글을 쓰면 구글+와 트위터에 동시에 게시되게 하는 기능. 물론 구글+나 트위터에서 쓰면 다른 두 곳에 올라가는 것도 당연히 된다.) 를 불여우 8.0에 설치하면 안된다고 튕긴다. 이런 경우에는 억지로 8.0에 설치될 수 있도록 설치 정보를 조작해주면 된다.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publish sync를 다운로드 받는다. (보통은 그냥 클릭하면 웹 브라우저에 바로 설치가 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하여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다.)

2.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xpi 인데 이는 실은 zip 파일이다. 확장자를 zip 으로 변경하고 압축 푸는 프로그램으로 풀어준다.

3. 그럼 맨 위의 디렉토리에 install.rdf 라는 파일이 있다. 여기에

<em:maxVersion>???</em:maxVersion>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찾아서 ??? 부분을 8.0 으로 강제로 바꾸어준다.

4. 전체를 다시 zip 으로 묶고 확장자를 xpi 로 바꾼다.

5. 불여우의 확장기능 화면으로 들어가서 파일로부터 설치 기능으로 xpi 파일을 설치하면 끝.
posted by 신묘군
기술을 얘기한다 2011.10.27 11:30

(필자 주: 1년쯤 전에 책에 넣으려고 작성했던 초고를 재활용한 포스트. 티스토리의 MS Word API가 각주를 처리하지 않아서 각주를 할 수 없이 본문에 끼워 넣고 회색으로 칠했다. 그 바람에 읽기가 많이 불편해져 버렸다. ㅠㅠ)

이 장에서는 오픈 소스가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에 가져다 준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변화가 정부 2.0에 시사하는 바를 검토한다. 그리고 오픈 소스를 정부 2.0의 구현에 활용하는 방안과 그에 따른 이슈를 살펴보고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실에 비춰 정부 2.0에 거는 기대를 제시한다.

1. 원리로서의 오픈 소스와 정부 2.0에 주는 시사점

오픈 소스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공급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인터넷 시대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1990년대 초반 리눅스 운영체제의 등장은 기존의 개발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개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소수의 전문적인 프로그래머가 잘 정의된 설계에 따라 폐쇄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당연히 가장 효과적인 개발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리눅스 개발을 이끈 리누스 토발즈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수많은 사용자들을 공동 개발자로 활용하는 떠들썩하고 정신 사나운 방식으로 개발을 하면서도 운영체제와 같은 무척 규모가 크고 까다로운 소프트웨어를 성공적으로 개발해 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눅스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개선이 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 진 셈이다. 이렇게 사용자의 참여를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하는 소프트웨어를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라고 하며 이 개발 방식이 갖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개발: 개발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원시 코드를 공개하고 사용자들이 문제를 찾아내고 추가해야 할 기능을 (심지어는 추가에 필요한 프로그램 코드까지) 제안하도록 한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용 방법으로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검증하므로 당연히 문제점도 더 빨리 발견하고 더 쉽게 해결한다.
  2. 모두를 만족시키는 하나 대신 소수를 만족시키는 여럿: 오픈 소스 개발에서는 최초의 결과물을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내놓음으로써 그 아이디어에 관심 있는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고 사용자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나 추가 코드를 곧바로 반영하여 새 버전을 내놓음으로써 참여하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최신 버전은 기능이 많은 반면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 많은 기능을 원하는 사용자를 위한 최신 버전과 일반 사용자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물론 기능은 적은) 버전을 따로 둔다.
  3. 사용자가 만들어 가는 목표: 개발하려는 소프트웨어가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할 지 최종 목표 지점을 정해 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의견을 계속 수렴하여 개발 방향을 계속 수정한다.[각주: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중 하나인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의 주창자인 켄트 벡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운전에 비유한 바 있다. "운전은 차를 올바른 길로 가게 하는 게 아니야. 운전이란 계속 주의를 기울이면서 이쪽으로 조금 저쪽으로 조금 바로 잡아가는 거지" (참조: Beck, K. and Andres, C. 2004 Extreme Programming Explained: Embrace Change. Addison-Wesley Professional.)] 이러한 방식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참여의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변덕스런 사용자들의 요구 변화를 지속적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장점을 동시에 누리게 된다.

인터넷 또는 웹에서 누구나 정보를 똑같이 그리고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수의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그러한 참여 결과를 반영하는 원리를 오픈 소스 개발 방법론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개발자 집단이 발견해 낸 이러한 원리가 유용하다면 정부 또는 가버넌스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장에서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의 원리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에릭 레이먼드의 "성당과 시장"을 정부 2.0의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써 오픈 소스 라는 원리가 새로운 정부의 원리에 원용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다.[각주: 원문은 http://www.catb.org/~esr/writings/cathedral-bazaar/cathedral-bazaar/ 에서 볼 수 있으며 한국어 번역판은 http://wiki.kldp.org/wiki.php/DocbookSgml/Cathedral-Bazaar-TRANS 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의 본문에서 인용한 부분은 모두 한국어 번역판에서 가져왔다.] 이 절의 본문에서 인용된 글은 특별한 표시가 없는 한 "성당과 시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원리1: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라.

"모든 좋은 소프트웨어는 개발자 개인의 가려운 곳을 긁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중략) 개발자들은 너무나 자주, 단지 돈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리눅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 아마도 이것이 왜 리눅스 공동체에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의 평균적이 품질이 그렇게나 좋은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낸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정부가 그것을 하고 싶어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납세자에 대한 정부의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정말로 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정부의 역할을 바꿔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 스스로 정말로 필요로 한 것을 서비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 보다 당연히 더 좋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원리2: 결과로 평가하라.

"위대한 프로그래머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건설적인 게으름이다. 그들은 들인 노력으로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평가하면 겉만 번드레한 결과를 낳는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면서 왜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겉만 번드레한 경우가 반복되는가? 그건 과정과 결과에 대한 혼동에서 비롯된다. 도로를 뚫고 강을 정비하고 신청사를 건립하고 웹 포털을 운영하는 것은 정부가 서민에게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즉,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도구를 통하여 제대로 된 서비스가 제공되었을 때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결과적으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시장님이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서 몇 그루의 가로수를 심었느냐가 아니라 그 가로수가 그저 아스팔트에 세운 초록색 말뚝인지 아니면 도심의 숲과 숲을 연결하는 생태 통로의 역할을 하는 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관료제는 결과가 아니라 얼마나 그럴싸한 일을 많이 벌이는지 얼마나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지로 평가하곤 한다. 그래서는 가망이 없다.

원리3: 중복을 피하라.

"누군가의 거의 완성된 소스를 찾아보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 (인용자 주: 처음부터 개발하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너무 당연해서 굳이 원리라고 할 것도 없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중복이 너무나도 잦다.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거의 비슷한 일을 하므로 이를 소프트웨어로 개발하면 결국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똑같은 서비스를 제각기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이 전국의 모든 곳에서 반복되고 있으니 국가 전체로는 상당한 중복 투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중복의 문제는 단지 예산의 낭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자의 효용 자체를 위협하고 모든 투자의 결과물을 싸잡아 진부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 글의 맥락과는 약간 다른 예이긴 하지만 이를 제일 잘 보여 주는 것이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붕어빵 찍어 내듯 복제 해내는 각종 지역 축제다. 너무 많은 복제가 난립하다 보니 그 어느 것 하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이 다 똑 같은 난장판이 되고 있다. "자연은 반복하지 않는다".[각주: Elizabeth Cady Stanton, "The Solitude of Self", http://historymatters.gmu.edu/d/5315/] 그냥 자연스럽게 생겨난 지역 축제라면 이렇게 똑 같을 수는 없다. 너무 많은 복제가 존재함으로써 이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쉽게 식상하게 되고 이는 그나마 전통이 있고 제대로 준비하는 곳까지도 같이 오명을 뒤집어쓰게 만든다.

원리 4: 시민은 고객이 아니라 동료다.

"적절하게 유도해 준다면 사용자들은 공동개발자가 될 수도 있다. (중략) 사용자들을 공동개발자로 생각하면 코드가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빠른 속도로 개선되며 효율적으로 디버깅할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자원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한계는 뚜렷하다. 이런 한계를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확실히 넘어서는 방법은 시민들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시민들이 정부의 서비스에 참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소극적으로는 정부가 이미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적극적으로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안하고 심지어는 직접 실현하는 것까지 모두 가능하다. 어차피 한정된 자원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정부로서는 시민들의 손을 빌려 서비스를 개선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의 손을 빌린다는 것은 단지 정부 서비스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를 늘인다는 양적인 측면뿐 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의 변화(아래의 원리 6 참조)를 포함한다. 하지만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고 유지하는 것(아래의 원리 5 참조) 그리고 이를 위하여 정부가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특성(아래의 원리 8과 9 참조)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원리 5: 사람들의 참여를 지속시키는 비밀은 전망과 보답이다.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으리라는 전망에 자극 받았고, 그들이 하는 일이 계속해서 (어떤 때는 날마다)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보답이 되었다."

사람은 변덕스럽다. 정부 2.0의 비전이 아무리 거창하고 아무리 당위라고 하더라도 시민들이 자신의 밥 벌이가 아닌 일에 성의를 다하여 지속적으로 매달리게 하는 것은 그저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왜 오픈 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닿아 있다. 눈에서 멀어 지면 마음마저 멀어 진다고 하지 않는가? 공개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며 그것도 그냥 겉 껍데기가 아니라 고갱이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자기가 볼 수 있는 것이므로 관심이 생기고[각주: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을 탐한다. (We begin by coveting what we see every day.) 영화 "양들의 침묵" 중 한니발 렉터의 대사.] 잘 되길 바라게 되는 것이고 잘 될 것이라는 전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계속 수정된 내용이 공개됨으로써 관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내 의견이 (또는 나는 아니지만 나 같은 다른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시늉으로만 구색으로만 공개하고 공개된 데이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정부 2.0은 전자정부의 성과와 한계를 답습하게 될 것이다.

원리 6: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다.[각주: 윤구병의 책 제목에서 무단으로 베낌]

"모든 문제는 누군가에게는 간단할 것이다"

다양성의 중요성은 많은 분야에서 무척 다양한 의미로 제기되지만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다양성이 특히 문제(즉, 버그)의 발견과 해결에 큰 도움을 준다. 개발자가 아무리 잘 설계해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생각지 못했던 측면은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생각지 않은 곳에서 생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각주: 아무리 완벽한 프로그램에도 버그는 있는 법. (Even a perfect program still has bugs.) (출처: 프로그래밍의 도(The Tao of Programming), http://www.canonical.org/~kragen/tao-of-programming.html ) ] 하지만, 개발자가 테스트하는 환경에서 개발자가 생각해 낸 방식으로만 테스트를 하여서는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용자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목적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쓰는 것 자체가 개발자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 테스트를 해주는 것이다. 또한, 문제를 어떻게든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의 해결책을 개발자가 찾아내지 못했을 때 다수의 사용자 중 누군가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용자들 중에는 개발자 보다 더 뛰어난 개발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았을 때 의외로 쉽게 문제가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원리 7: 서비스의 핵심은 데이터다.

"자료구조를 훌륭하게 만들고 코드를 멍청하게 만드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잘 작동한다."

아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컴퓨터란 주어진 데이터를 계산한 뒤 결과 데이터를 내놓는 물건이다. 결국 데이터는 컴퓨터 바깥(즉, 사람)과 컴퓨터 안(즉, 프로그램)을 매개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 컴퓨터를 쓰는 것이다. 그 데이터를 얻는 방법이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편리한지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각주: 여기서 부수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안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도구의 효율 문제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좋은 서비스란 제공할 데이터를 잘 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서비스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틀만 만들어 놓고 막상 데이터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각주: 관리가 전혀 안 되는 수많은 게시판을 보라. 몇 년 째 새 데이터가 올라오지 않는 (또는 심지어는 텅텅 비어있는) 자료실은 여러 사이트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는가?] 정부가 하는 일이 정리된 데이터로서 투명하게 우리의 전자정부를 통해서 공개된다면 전자정부 지수 세계 1위인 동시에 부패지수 세계 39위인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 김유승, "시민과 쌍방향 소통 '전자정부 2.0'은 필수과목", http://www.hani.co.kr/arti/SERIES/255/435362.html ]

데이터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것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그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을 미리 제약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같은 데이터도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로 활용될 수 있다.[각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했는지 아닌지 알아내는 간단한 방법은? 펜타곤으로 배달되는 피자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이 임박하면 국방성 직원들은 생각지 않게 자리를 지키고 야근을 해야 하니 자연스레 피자를 많이 배달시킬 것이다. (이 일화는 브루스 슈나이어의 "디지털 보안의 비밀과 거짓말"에서 인용하였음.) ] 거꾸로 그 데이터를 이용해서 어떤 서비스를 어떤 식으로 구현하겠다는 것을 먼저 정해 버리면 그 데이터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사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원리 8: 마음부터 열어라.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사용자들이 알려준 좋은 아이디어를 깨닫는 것이다. 때로는 이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원시 코드이건 데이터건 서비스건 뭔가를 연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확실히 열어야 하는 것은 여는 사람의 마음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열어 놓음으로써 발생하는 이득은 외부의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것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들의 얘기로부터 뭔가 얻어내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열어 놓은 것은 아무 소득이 없을 뿐만 오히려 도와 주려고 온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꼴이 된다.

이렇게 간단한 원리가 왜 실현하기는 어려울까? 그것은 여는 사람이 갖고 있는 우월감 때문이다. "이건 내가 만들었으니까 또는 이건 내 일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아"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의 원리 6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양한 대중이 갖는 힘이라는 것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설령 우월감을 극복한다고 해도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외부 참여자들은 대개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온 종일 이 일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의견은 대개 전문가가 이해하기 힘든 논리에 모호한 언사로 제시된다. 이런 의견 더미 속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은 열린 마음에 민감성이 결합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원리 9: 최고의 기술은 소통이다.

"프로젝트를 조정하거나 이끄는 사람은 사람들과 잘 의사 소통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열린 마음은 소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하지만 소통이 마음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당연히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과 도구만으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통은 "사회적 행동이라 그런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문제의식의 사회적 공유를 전제"로 한다.[각주: 백승종, "소통의 의미", http://www.hani.co.kr/arti/SERIES/202/395531.html ] 개발을 이끌고 나가는 자와 옆에서 참여하는 자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는 그들이 서 있는 토대가 다르므로 의식의 공유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지 않는 한 (또는 최소한 참여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계속 갖도록 할 수 없다면) 소통은 한계를 겪을 수 밖에 없다.

2. 정부 2.0을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정부 2.0을 구현하는데 사용하는 도구로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보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정부 2.0을 지탱하는 뼈대다. 정부 2.0은 웹 2.0을 구현의 기반으로 삼고 있고 웹과 웹을 떠받치고 있는 인터넷의 근간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자리잡고 있음을 고려할 때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정부 2.0을 지탱하는 뼈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가 "모질라 파이어폭스" 웹 브라우저의 주소 창에 어떤 블로그의 주소를 입력하면 이 주소가 실제 인터넷 주소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메인 이름 서버인 "BIND"에게 물어 봐서 알아내고 그 인터넷 주소에 접속을 하면 "리눅스" 운영체제를 탑재한 "아파치" 웹 서버가 접속을 받아서 블로그용 콘텐트 관리 시스템인 "워드프레스"를 이용해서 블로그 페이지를 보여 준다. 이 문장에서 겹 따옴표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이다. 즉, 이미 우리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웹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정확한 것은 더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분야보다 유달리 인터넷 또는 웹 분야에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많이 이용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아마도 인터넷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도구를 큰 비용 없이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했으므로 인터넷 관련 도구는 오픈 소스 정책을 쓰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자체가 인터넷이라는 강력하고 전 지구적인 의사 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므로 결국 인터넷 또는 웹과 관련한 개발자들이 곧 (초창기)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상당 부분 겹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라이선스 비용이 없으므로 정부 2.0을 구축하는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공짜라는 것이 엄청난 비용의 절감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라이선스 비용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비용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적절한 개발 전략을 정하는 것, 스태프에 필요한 기술을 갖춘 사람들이 있도록 만드는 것, 만든 시스템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구현할까'에 제일 큰 노력이 든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독점적 솔루션에 비하여 60~80% 정도의 비용이 절감된다고 본다." [각주: Bryan Sivak 의 인터뷰 비디오, "Cost is only part of the Gov 2.0 open source story - O'Reilly Radar", http://radar.oreilly.com/2010/08/cost-savings-is-only-part-of-t.html ]

여기서 제일 중요한 점은 인력과 관련된 비용이다. 인력과 관련된 비용은 최소한 두 가지 형태를 가지는데 하나는 개발 과정에 투입되는 인력의 비용이고[각주: 총 개발 비용 (TCD, total cost of development) ] 또 하나는 개발된 결과물을 운용하고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다.[각주: 총 소유 비용 (TCO, total cost of ownership) ] 예를 들어, 어떤 도구가 오픈 소스라서 공짜라고 하더라도 그 도구를 사용해서 개발하거나 그 도구를 유지 보수하는 인력이 귀해서 인건비가 많이 든다면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인력 수급의 문제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므로 일반화하여 얘기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정보 통신 인력이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익숙하므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총 소유 비용에서는 더 비쌀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각주: (인용자 주: 고성능 클러스터 컴퓨터를 구성하는데 있어) "오픈 소스의 리눅스에 고성능 컴퓨터 솔루션을 탑재하고 관련 인건비를 합한 것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솔루션에 관련 인건비를 합한 것을 비교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저렴하게 나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페이스 북을 통한 코멘트 중에서 이보성의 의견) ]

정부 2.0을 구현하는데 사용한 코드를 오픈 소스의 형태로 공개를 한다면 한 지방 정부에서 개발한 것을 다른 지방 정부에서 재사용하게 되어 중복 투자를 방지하게 된다.

"어차피 각 지방자치단체는 같은 기능을 하므로 이들 같은 기능을 지원하는 정보 기술 솔루션을 중복되어 개발될 수 밖에 없다. 그 중에는 아주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한 곳에서 개발한 것을 다른 모든 곳에서 재사용 (물론 필요한 만큼 수정한 다음) 한다면 엄청난 비용 절감이 될 것이다."[각주: Bryan Sivak 의 인터뷰 비디오, "Cost is only part of the Gov 2.0 open source story - O'Reilly Radar", http://radar.oreilly.com/2010/08/cost-savings-is-only-part-of-t.html ]

여기서 코드 재사용의 효과는 단지 중복 투자를 막음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지방 정부가 같은 원시 코드를 공유한다고 하면 그 중 어는 한 곳에서 원시 코드를 개선하였을 때 또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였을 때 다른 모든 곳에서도 그 혜택을 입게 된다. 게다가 하나의 서비스에 사용자가 더 많은 셈이 되므로 더 다양한 측면에서 그 서비스를 평가하고 활용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공개된 코드는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점은 굳이 반복할 필요 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적용하는데 있어서 일선 담당자들이 두려워하는 점 중의 하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지고 도와 줄 곳이 없다는 점이다. 독점적인 솔루션의 경우 그 솔루션을 공급한 곳에 문의를 하면 되겠지만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문의를 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없고 설령 관련된 메일링 리스트에 문의를 올린다고 해도 대답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은 없다.[각주: "회사에 와 보니 거의 오픈 소스는 사용을 안하더라구요. (중략) 이유는, 첫째 서포트가 없다는 거지요. 돈 주고 사는 소프트웨어는 문제가 생기면 전화 걸 곳이 있는데 오픈 소스는 그게 잘 없지요. 가끔 돈 받고 서포트를 제공해주는 회사들도 있기는 한데 많은 경우 구멍가게 수준이라 영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상용 소프트웨어는 어떤 때는 엔지니어가 출장 나와서 고쳐놓고 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페이스 북을 통한 코멘트 중에서 이승의 의견)] 따라서, 실패를 하면 곤란한 정부 시스템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활용하기 위해 개발하는 오픈 소스 솔루션을 책임질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3. 한국의 오픈 소스 개발자

사실 여부를 놓고는 냉소적인 평가도 많지만 (최소한 광대역 접속망에 관한 한)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오픈 소스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오픈 소스 중에서 그나마 한국 개발자들이 공헌을 할 수 있었던 분야는 소프트웨어가 한글을 지원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부분인데 이마저도 소프트웨어의 국제화[각주: 어떤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습을 지원하도록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일은 크게 둘로 나뉜다. 어떤 소프트웨어가 다양한 언어를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흔히 줄여서 i18n이라고 쓴다)라고 하고 특정 언어와 관습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은 지역화(localization, 흔히 줄여서 l10n이라고 쓴다)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소프트웨어가 임의의 글자를 다 표현할 수 있도록 수정하는 작업은 국제화이고 그렇게 국제화된 소프트웨어에 한국어로 된 메시지를 넣고 한글 기준으로 정렬이 되고 돈 표시가 \ 표시로 나오게 하는 것은 지역화에 해당한다.] 가 급속히 진행되어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메시지(예를 들어, 메뉴, 도움말 등)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 이외에는 추가의 노력이 들지 않게 된 상황이라 오픈 소스의 열기가 한국에서 크게 일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소프트웨어는 좋은데 한글이 제대로 안되어 답답하면 고쳐서 쓰려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지만 대부분 소프트웨어가 한글을 잘 지원하는 요즘에는 참여해야 할 동기가 발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선 회사에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실은 (정확히 밝혀 낼 수는 없겠지만) 회사들이 독점적인 솔루션인 것처럼 판매하는 것 중에도 실은 "오픈 소스를 참조한 다음 덮어 둔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각주: 페이스 북의 코멘트 중에서 이경운의 의견] 제법 기술력이 있는 중소 벤처라고 해도 겨우 한 두 개의 자체 개발 솔루션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솔루션의 "코드 공개가 회사 자산 전부의 유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각주: 서광열, "달콤하고도 쓴 과일: 오픈 소스", http://skyul.egloos.com/2191344 ] 상황이 되므로 개발의 결과물을 공개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나만 자체 솔루션이 없는 회사들은 (최근에는 많이 바뀌었지만) 오픈 소스를 가져다가 포장만 해서 제품으로 팔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픈 소스의 이용을 공표하는 것은 실상은 그 업체가 자체적인 기술력이 없음을 보여 주는 커밍아웃에 가깝기 때문"[각주: 서광열, "달콤하고도 쓴 과일: 오픈 소스", http://skyul.egloos.com/2191344 ] 에 우리나라의 정보 통신 기업은 자기가 만든 것을 오픈 소스로 내놓을 수도 없고 남의 오픈 소스를 가져와서 개선하였다고 하더라도 공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솔루션을 납품하는 과정에서 라이선스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솔루션 개발 단계에서부터 오픈 소스와의 라이선스 관계를 고려[각주: "2~3 년전에 회사에 있을 때, 개발자들이 GPL, LGPL 등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라이센스 사항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알게 모르게 제품 소스에 사용하고 있었죠. 현재는 블랙덕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오픈소스 사용 여부를 체크하고 있습니다." (페이스 북을 통한 코멘트 중에서 박찬진의 의견) ] 하는 정도의 변화가 발전이라면 발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들이 오픈 소스 개발자들을 보유하고 육성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 있다면 무척 바람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픈 소스 개발자는 특정 분야에 있어 첨단의 결과물을 다루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가 오픈 소스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을 회사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적이긴 하지만 그런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늘어나길 기대한다.

"그는 사내 제품에 탑재된 오픈 소스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품질을 높이는 일과 더불어 오픈 소스 개발을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내 개발자를 교육 시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사내 개발 프로젝트에도 오픈 소스에서 사용되는 방법론을 채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였다."[각주: 윤석찬, "오픈 소스 개발자, 그들을 주목하라", http://channy.creation.net/blog/272 ]

만약에 회사 차원에서 오픈 소스에 참여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면 개인 차원에서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픈 소스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성취감을 줄 뿐만 아니라 그 프로젝트 다루고 있는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한 회사 안에서 일할 때는 배울 수 없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과 의사 소통 기법을 배우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회사 일 이외의 시간에 참여하는 것도 한국의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세계 최장의 노동 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특별히 더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편이라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가 시간에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는 해외의 개발자들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갖고 있는 소양의 문제도 한 몫을 한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서 대부분의 의사 소통이 영어로 이루어지므로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것만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개발자들이 의사 소통 능력이 떨어져서 협력해서 개발하려 하지 않고 혼자 풀어 가려는 성향도 있고[각주: "대부분의 개발자가 다른 개발자와의 의사소통을 힘들어한다. 어렵게 시작한 국내 오픈 소스 프로젝트도 다른 개발자의 도움을 받는 일이란 극히 드물다. 개발자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기존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쪽을 선호한다." 서광열, "달콤하고도 쓴 과일: 오픈 소스", http://skyul.egloos.com/2191344 ] 다른 개발자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독려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각주: "실제 개발에 도움되는 패치 한 줄이라도 보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기껏 가뭄에 콩 나듯이 버그 리포팅이랍시고 하는데 그게 다 불평이에요. 같은 말이라도 좀 이쁘게 하면 참 좋을텐데... 꼭 왜 프로그램을 그 따위로 만들어놨냐 하는 식이죠." KLDPWiki, "한국에서 오픈소스 하기", http://wiki.kldp.org/wiki.php ] 고 한다.[각주: 정말로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유독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지는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방적이고 주입식인 교육, 협력보다는 경쟁을 가르치는 교육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4. 한국에서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실과 정부 2.0에 거는 기대

소프트웨어 개발은 서로 상충하는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내는 예술이다. 여기서 상충하는 목표는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각주: Ronald E Jeffries, "The Four Variables", http://xprogramming.com/Practices/PracFourVariables.html ]

  • 범위 –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 즉, 구현할 기능의 범위
  • 품질 – 얼마나 정확하게 그리고 그 외 바람직한 특성[각주: 예컨대, 같은 기능을 구현했다고 하더라도 훨씬 효율이 높게 동작한다거나 원시 프로그램이 깔끔하여 나중에 수정하기 쉽다거나 하는 등의 특성] 을 갖게 개발할 것인가
  • 자원 – 투입되는 인력이나 장비 등은 얼마나 되는가
  • 기간 – 프로젝트의 총 기간은 얼마인가

이들 네 목표는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 다른 목표를 건드리지 않고 한 목표만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구현할 기능을 추가하려면(범위의 변화) 사람을 더 투입하던지 기한을 늦추던지 아니면 다른 기능을 대충 만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더 많은 기능을 더 좋은 품질로 돈은 덜 들이고 더 빨리 얻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고객에게 잘 보이는 목표는 상향 조정하고 대신 보이지 않는 목표는 하향 조정하게 된다.[각주: 겉만 번지르르 하고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이용자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서비스는 대개 이런 식 개발의 결과물이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여기에 최소한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 즉,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혹독한 하청 체계노가다식 비용 산정 방식이 추가된다.

한국에서의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는 다른 산업 분야에서의 하청 관행이 그대로 적용되며 하청 시스템이 갖고 있는 온갖 문제점이 정확하게 재연된다. 흔히 '을'이라고 부르는 원청업체가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므로 '병' 또는 '정'이라고 불리는 하청업체는 늘 턱없이 적은 비용으로 개발을 하게 되며 따라서 대개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투입되고 그 결과 엄청난 초과 근무로 이어진다. 심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연간 근로시간이 1768시간인데, 단 5개월 만에 나는 2000시간 이상을 일했다"라는 주장이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각주: 이대희, "사람 잡는 야근… 폐 잘라낸 SI개발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00817171744] 게다가 '을'의 낙점을 받지 않는 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는 '병'이나 '정'은 '을'의 무리한 요구도 거절 할 수 없게 된다. 한국에서의 소프트웨어 개발의 실태는 다음의 인용문이 잘 보여 준다.

평일 근무: 가능하면 경조사가 아니면 식사 후 오후 10:00까지 근무 부탁 드립니다.
주말 근무: 토요일은 가능하면 경조사가 아니면 오전 10:00 ~ 오후 6:00까지 근무 부탁 드립니다. 일요일은 고객과 함께하는 특별한 Task를 제외하고는 휴식이 좋겠지요. 허나, 시간이 없네요. 미진한 파트나 개발자는 어쩔 수 없이 잔여 Task 마무리를 위해 근무 부탁 드립니다.[각주: 클리앙의 게시물 중에서, "SI개발자인데 오늘 '을'한테 받은 메일 내용 중 일부 발췌", http://clien.career.co.kr/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746174]

이렇게 초과 근무를 요청하는 것이 당연시 될 뿐만 아니라 비용에 대하여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반적인 시스템 통합 견적은 '개발비 + 장비 가격'으로 되어 있고, 각각에 대해서 세부 내역을 제출하게 됩니다. 즉, 어떤 것을 공급 하느냐 하는 점도 기술 점수에 반영됩니다.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 아직 쉽지 않은 상황이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저가 입찰에 성공하더라도 협상 과정에서 그 품목만 바꿔 달라는 (인용자 주: 유료 제품으로 바꿔 달라는 뜻) 경우도 있죠. 금액은 변동 없이" [각주: 페이스 북을 통한 코멘트 중에서 우항준의 의견]

이러한 하청, 재하청에 의한 개발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의 도입을 통한 비용 절감을 불가능하게 한다. "갑 – 을 – 병 – 정 – …"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은 각 단계마다 수익이 발생해야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 비용은 인건비와 개발에 활용되는 솔루션 비용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인건비는 투입되는 인력만큼 받는 것이므로 큰 수익이 발생하기 어렵고 결국 솔루션 비용에서 수익을 발생시켜야 한다. 따라서, 솔루션을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쓰게 되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생기겠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쪽에서는 스스로 수익을 갉아먹는 꼴이 되므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적용하기가 더욱 어려워 진다.[각주: 페이스 북의 코멘트 중에서 이경운과 박충규의 의견]

혹독한 하청체계에 의한 수탈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촌스런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의 산정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은 철저하게 (투입되는 사람의 수 x 투입되는 기간 x 단가)로 결정된다.

공공 기관, 대기업을 막론하고 소프트웨어 단가는 모두 예전에 만들어 놓은, 소위 '과기부, 정통부 단가'에 따라 비용을 산정한다. 설상가상인 것은 용역 프로젝트라며 지적 재산권까지 내놓으라고 한다.[각주: 김홍선, "소프트웨어 개발 단가 산정이 한심한 이유", http://ceo.ahnlab.com/84]

이렇게 투입되는 사람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계산 방식에서는 실력이 없는 사람(즉, 월급을 덜 줘도 되는 사람)을 투입하면 할수록 수익은 커진다. 물론 전혀 실력이 없는 사람(속칭 '허수아비')으로만 개발 팀을 구성하게 되면 결과물을 내놓을 수가 없으므로 실제로 개발을 담당하게 되는 실력 있는 몇 사람을 포함시키고 개발 부담은 거의 이들에게 집중된다.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 (또는 시스템 개발) 그 중에서도 특히 설계와 관리를 담당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링은 인간, 경제, 기술의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종합 예술로서 선진국에서는 최고의 직업으로 손꼽힌다.[각주: Focus Editor, "The Best Jobs In America", http://www.focus.com/fyi/human-resources/best-jobs/] 하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자리만 채우는 사람이나 다 똑같이 평가되는 체계에서 창의성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일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4. 정부 2.0은 새로운 기회일까?

이상으로 정부 2.0이 갖고 있는 비전과 오픈 소스가 우리에게 준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한국의 현실이 이러한 비전이나 가능성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살펴보았다.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정부 2.0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 2.0이 가져올 기회와 위험성을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정부 2.0이 기존의 소프트웨어 개발 관행을 바꿔 놓고 그래서 창의적인 개발자들을 끌어들이게 될 것인가?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정부는 그저 데이터를 제공하고 다양한 서비스가 공존할 수 있는 플랫폼만을 제공하고 시민들이, 개발자들이 스스로 서비스를 개발하는 구조는 정부가 개발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이를 큰 회사들이 수주하여 하청, 재하청하는 현재의 구조와는 전적으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아이디어를 내고 바로 개발에 착수할 수 있는 개인 개발자, 초소규모 회사들이 더 유리할 것이다. (고등학생이 만들었다는 아이폰 용 버스 시간 안내 프로그램 "서울버스"가 전형적인 예) 또한 개발 과정에서 정부가 오픈 소스를 장려한다면 (예를 들어, 정부에서 돈을 받아 개발한 결과물은 원칙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런 오픈 소스를 잘 이해하고 빨리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개발자들이 대우받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희망 섞인 기대는 오픈 플랫폼 위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졌을 때만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정부 2.0이라는 플랫폼은 단지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플랫폼이 아니라 정해 진 규칙에 따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게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포함하는 개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 2.0이 성공적으로 실현된다면 수요와 공급이 시장의 원리에 따라 조화를 이루어서 좋은 서비스가 많이 생겨나고 시민들은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그리고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심한 서비스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그렇지 않다. 정부 2.0은 "국가중심의 거버넌스와 시장적 거버넌스를 극복하는 시민사회적 거버넌스 또는 참여적 거버넌스"를[각주: 김유승, "시민과 쌍방향 소통 '전자정부 2.0'은 필수과목", http://www.hani.co.kr/arti/SERIES/255/435362.html] 추구하는 것인데 자칫 플랫폼으로서의 정부까지만 얘기하고 그 플랫폼을 시장의 논리에 맡겨 두기만 한다면 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상대적인 약자들(예를 들어, 활용할 수 있는 기기를 구매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 외국인 등)을 서비스로부터 배제될 수 밖에 없다.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람은 자기 서비스를 가장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서비스를 많이 활용하는 사람", "(유료 서비스라면 특히) 서비스로부터 많은 이득을 얻는 사람"에게 맞춰서 개발을 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한편으로는 서비스의 획일화를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격차를 더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게다가, 노약자나 장애자의 경우 서비스의 사각 지대에 놓일 수 있다.[각주: 현재의 스마트 폰 응용 프로그램 시장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정보 통신 기기를 잘 다룰 수 있고 그러한 기기를 통하여 얻은 정보를 자신의 업무에 활용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접근성, 보편성의 문제로 풀어 나가는 장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신묘군
오랜만에 손수 리눅스 서버를 관리하려니 생소하다. 예전에는 서버 방화벽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iptables 명령을 직접 썼는데 이제는 뭐 그럴 필요가 없다.

$ sudo system-config-firewall-tui

이렇게 해주면 멋진 텍스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관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ptables 명령을 직접 쓰는 것도 여전히 가능하며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ㅠㅠ) /etc/systconfig/iptables 파일을 수정하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11.10.12 17:06
-- 사랑하고 존경하는 논객 진중권의 평론 절필 선언에 부쳐 --


1. 문제 풀이 이론으로 생각해보는 실세계

곽교육감의 구속을 둘러싸고 진보 논객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패싸움이 도를 넘었다. 무척 언짢게도 이런 식의 분열상은 전혀 낯설지 않다. 문성근이 백만민란을 들고 나왔을 때도 더 거슬러가서는 민노당에서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올 때도 좀 더 가면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그랬다. 아마 더 거슬러 가겠지.

거 참 머리에 든게 많아서들 그런지 말도 많고 들어보면 이쪽 얘기도 맞고 저쪽 얘기도 맞다. 그래서 사지선다형 교육을 통해 정답은 하나 뿐이라고 배운 무식한 공돌이는 정신이 사납고 친한 벗들이 서로 다른 진영에 있으니 맘이 아프다.

작년에 크게 유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서 뭘 느꼈는가? 올바르다는거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다. 예컨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고장난 버스를 세우기 위해 육교 난간에 기댄 (척 보기에도 어차피 몇년 내로 성인병으로 죽을 것 같은) 뚱땡이를 밀어 떨어뜨려야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식의 질문 말이다.

문제 풀이 이론을 빌려서 생각해보면, 공간에 온갖 답이 둥둥 떠 있을 때 정답과 오답을 하나의 선(또는 평면)으로 구분할 수 있을 때 선형적으로 구분된다고(linearly separable) 부르는데 이런 건 무척 쉬운 문제에 해당한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도구를 사용해서도 쉽게 풀 수 있다. 그런데 세상사에 그런 문제는 거의 없다. 어딘가 선을 그으면 그 선 안쪽에도 오답은 있고 (즉, 내 논리에도 허점은 반드시 있다 -- 거짓 주장의 오류라고 부르자. 귀무가설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통계학의 2종 오류와 비슷하다) 선 너머에도 정답은 있기 (즉, 상대의 논리가 다 틀린 건 아니다 -- 거짓 무시의 오류라고 부르자. 귀무가설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통계학의 1종 오류와 비슷하다) 마련이다.

거짓 주장의 오류를 줄이기 위하여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는 선을 자꾸 당기다 보면 내 주장의 상당 부분도 선 너머 오답의 영역으로 가게 되어 (속으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부정해야 하는 자기 부정의 사태에 빠지게 된다. 지나친 독선으로 흐르다 종국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단순화 하자면 왕년의 PD파 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거짓 무시의 오류를 줄이기 위하여 선을 자꾸 밀다 보면 (속으로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원칙이 무너져서 "뭐 좋은게 좋은거지" "생각은 틀렸지만 도움이 되는 면이 있으니 껴안고 가자"는 식이 되어 버린다. 결국 피아 구분은 없어지고 "친하면 우리 편 안 친하면 나쁜 편" 또는 "품성이 좋으면 우리 편 포악하면 나쁜 편"으로 구분하는 유아적 세계관에 빠진다. (왕년의 주사파에 대한 내 기억은 딱 이런 사람들이다)

2. 인터넷의 성공에서 뭘 배울 것인가?

2.1 개미 허리와 미인 대회

이때까지 발명된 모든 네트워크 기술을 다 제압하고 인터넷이 당당히 최강의 전지구 네트워크가 된 것에는 아주 분명하고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인터넷 구조에서 가장 결정적인 원리는 "모든 것은 IP를 통해서" ("Everything over IP, and IP over everything")라는 말로 요약된다. 

즉, IP계층 보다 높은 모든 계층은 통신을 위해서 IP 만을 이용하고 IP 계층은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모든 매체를 일관성 있게 지원한다. 따라서, 다양한 응용 프로토콜이 IP 계층 위에서 공존할 수 있고 다양한 매체(광 케이블, 구리 케이블, 위성 통신 등)를 뒤섞어서 쓸 수 있다. 그래서, 위와 아래로는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한 가운데는 단 하나의 프로토콜만 허용하는 구조 즉, 모래시계 구조가 된다. (서양 사람들 눈에는 모래시계가 좋은 비유인지 몰라도 나는 개미 허리라고 부르는게 입에 더 착착 붙는다.)

모래시계 구조는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이 온갖 응용 서비스가 경쟁하며 생로병사의 생태계를 이어가게 만드는 원리가 된다. 새로운 응용 서비스를 인터넷에 추가할 때 그것이 IP를 사용하는 한 그 어느 누구의 승인도 받을 필요가 없이 바로 동작한다. 물론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되겠지만. 그래서 비슷한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면서 미인대회를 거쳐서 한 두 서비스가 결국 엄청난 신데렐라가 된다. 즉, 거의 완벽한 시장 경쟁을 허용하는 시스템이다.

2.2 꽃이 피게 하라

하지만 이것만으로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인터넷의 힘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위의 원리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다양한 응용 서비스일 뿐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이들 서비스가 따로 노는 것 보다 멋지게 결합될 수 있다면 단순히 각각의 서비스를 합친 것 보다 더 멋진 서비스로 변신할 수 있다. 이를 소프트웨어 공학을 하는 사람들은 소프트웨어 지향 구조(SOA, Software Oriented Architecture)라고 부르고 웹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매시업(mashup)이라고 부르고 사업체들은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라고 부른다.

구글 맵을 이용하여 맛집 소개한 블로그 글이 트랙백이 되고 트위터로 전송되고 클릭하면 글과 연결된 지도를 열어볼 수 있는 뭐 그런 것 말이다. 요즘 어지간히 잘 나가는 서비스는 솔직히 서로 너무 나도 쉽게 넘나들 수 있다. 개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자기 서비스를 외부로 개방하여 다양한 서비스가 더 연결될 수 있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힘 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없는 팜빌 또는 팜빌 없는 페이스북을 상상해보라. (관련하여 읽을 만한 제 글 -> 꽃이 피게 하라 - '서울버스' 앱 사태를 회고한다)

2.3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은 전화기가 널리 보급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벨은 아마 기존의 전보보다 좀 더 좋은 통신 수단으로 전화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줌마들이 전화기를 통해 수다를 떨기 시작하자 전화기는 문명화된 세상의 지표가 되었다. 사람 그리고 수다 혹은 펌질이 인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적이다. 날이면 날마다 빨래터에서 교환되는 수다가 아니라면 그 팍팍한 농경 사회를 우리 선조들이 버텨낼 수 있었을까?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획득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을 향해 정보를 전송한다. 획득에 사용한 응용 서비스와 전송에 사용한 응용 서비스가 같을 필요는 없다. "내가 디씨가서 (또는 뽐뿌가서) 본 건데 말야..." 라는 트윗은 다들 익숙하지 않은가? 사회망을 통한 정보의 재전송은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지는데 그 이유는...

사회에서의 신원은 다차원적인 특성이 있다 즉, 개인은 각기 다른 사회적 맥락에 걸쳐 있으니 사회적 거리에서는 삼각부등식이 깨지는 것이다.

Social identity, therefore, exhibits a multidimensioned nature - individuals spanning different social contexts - that explains the violation of the triangular inequality in social distance.

Duncan Watts <Six Degrees: The Science of a Connected Age> pp. 151

삼각부등식이 깨지기 때문이다. 삼각부등식이란 한 변이 나머지 두 변의 길이를 합친 것 보다 더 길 수는 없다는 수학의 원리이다. 서울 - 부산의 직선 거리는 서울 - 대전의 직선 거리 더하기 대전 - 부산의 직선 거리보다 더 길 수는 없다는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런 수학과는 달리 사회에서는 나하고 을순이의 사회적 거리가 나하고 갑돌이와 사회적 거리 더하기 갑돌이와 을순이의 사회적 거리보다 더 멀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나하고 을순이는 쌩판 모르는 사람인데 나와 갑돌이도 친구고 갑돌이와 을순이도 친구다. 따라서, 내가 날린 트윗이 쌩판 모르는 사람에게 한두 다리 건너서 전달이 되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실제 사회 (우물가, 빨래터, 목욕탕, 공동화장실, 회사 사무실 등) 를 통해 매개되었지만 인터넷 위의 멋진 응용 서비스 덕분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수다를 떨 수 있게 됨으로써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진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3. 그래서 어쩌라구
 
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논쟁보다 더 살벌한 것이 인터넷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사업체들 간의 응용 서비스 전쟁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응용 서비스는 "자기가 옳고 다른 서비스는 틀렸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미인 컨테스트를 펼치며 공존한다. 선택은 소비자가 한다. 논쟁도 마찬가지다. 일차적으로 논쟁은 논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지만 결국 그것이 사회적 함의를 갖는 것은 그 논쟁을 소비한 사람들의 태도에 달렸다. 상대방을 100% 설득할 수도 없고 모든 소비자를 다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없는데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설득될 때까지 밀어부치는 저돌성은 피곤하다.

실은 더 문제는 논쟁 소비자들이다. 인터넷에서는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자유로이 결합해서 쓸 수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아마존의 킨들앱을 깔아 책을 읽고 팟스캐트 서비스를 받지 않는가? 각 서비스 제공자는 다 잘하는 분야도 있고 못하는 분야도 있다. 그냥 그 순간 가장 맘에 드는 것을 골라서 섞어서 잘 쓰면 된다. 그런 것을 한 제공자가 주는 서비스만 소비하면서 "왜 안드로이드폰에서는 팟캐스트가 안돼?"라는 식의 미련한 불평을 하면 자기만 고달프다. 마찬가지다. 어떤 논객이 어떤 이슈에서는 좋은 얘기를 했지만 딴 이슈에서는 바보가 될 수 있다. 그런 걸 가지고 엉터리 얘기까지 수용할 필요도 좋은 얘기까지 버릴 필요도 없다. 그냥 각 논객들이 가진 좋은 주장을 걸러서 들으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라는 건 물론 아니다. 소비자의 올바른 잣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논쟁이 논객들의 자기만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논쟁은 시중의 갑남 을녀를 통해서 흘러가면서 사람들을 바꾸고 사람들을 결집시킨다. 그러한 변화와 결집은 개개인의 논객이 출발점은 될 수 있어도 끌고 나갈 수는 없다. 월가를 점령하자고 나선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예견했을까? 또는 그 사람들이 정말 정확한 노선을 제시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되었을까? 절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멍청해 보이지만 인류 전체로는 실로 찬란한 문명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다. 사람을 믿어라. 그리고 그저 사람들의 수다가 흐르게 하라. 논쟁은 거들 뿐.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11.10.10 14:35
내일 죽는다면 지금 하는 일을 하겠는가?

-- 스티브 잡스

멋진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요즘 유행하는 자기 계발 서적도 결국 던지는 메시지는 비슷하다. 한 마디로 "네 꼴리는 대로 해라"가 이 시대의 좌우명이 되었다.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다 잊어 버리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네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네 방식대로 해나가라는 얘기가 왜 21세기 초반의 좌우명이 된 것일까?

88만원 세대 또는 99% 라고 불리는 좌절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로부터 제2의 마크 주커버그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르기까지 같은 얘기가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0년 우리 사회를 보자. 대학 공부하는 오빠를 위해 허리도 펼 수 없는 먼지 구덩이에서 미싱을 밟던 그 시대 말이다. 우리에겐 뚜렷한 성공 방정식이 있었다. 공부 공부 공부.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집안에 한 사람만 나도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 김남주의 <편지> 

글줄께나 읽으면 면서기라도 할 수 있고 그러면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시절. 공부를 좀 더 잘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도 있었던 시절. 돈 없어서 대학갈 형편이 못되어도 상고 나와서 은행 다니며 잘 살 수 있던 시절. 그런 시절에는 공부 잘 하는 자식 하나를 위해 온 가족이 올인하는 것은 가장 적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람의 생명을 이어주는 한끼 식사보다 디저트로 먹는 캬라멜 마키아토가 단지 뽀대나는 매장에서 판다는 이유로 더 비싸고 기능과 재료만 본다면 "나이롱 망태기"에 지나지 않는 가방이 단지 프라다라는 이유로 엄청난 가격에 팔리는 시대 즉, "기호를 소비하는" 시대 아닌가?

우산 가게를 가보면 30년전 우산보다 더 잘 부서지는 허접한 우산 밖에 살 수 없다. 이전보다 기술이 퇴보했을리도 없고 우리의 구매력이 더 좋은 우산을 살 수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분명한데 좋은 우산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우산을 만드는 회사들이 의도적으로 허접한 우산만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건 범생이의 눈으로 보기에는 확실히 이상한 세상이다. 아담스미스가 국가 부의 원천을 고민하고 리카아도가 최적의 교역 조건을 연구하고 마르크스가 잉여가치의 원천을 추적하던 시대의 눈으로 보기엔 확실히 뭔가 잘못되어 있다. 바야흐로 세상은 경제적이어야 할 이유를 상실한 경제학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 얘기는 개 뻥이지만 한 사람의 천재가 만명의 연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건 사실이다. 전통적인 재화의 생산에서 이렇게 극적인 생산성의 차이가 생기긴 어렵지만 (만 배로 많은 젖을 짜는 소 또는 만 배로 많은 알곡이 달리는 벼) 기호의 소비 시장에서는 만배 이상 차이나는 것이 너무 나도 쉽다. (페이스북이나 트위자의 가입자 수는 유사한 비인기 서비스에 비하여 월등히 많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에 의하여 그 수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가치의 차이는 훨씬 더 크다.)

만배 억배의 돈을 버는 천재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남들이 얘기하는 길을 좇아 가서는 절대 될 수 없다. 더 정확히는 그런 일을 안다면 자기가 가지 왜 가르쳐 주겠는가? 대략의 원칙, 대략의 방향성은 얘기할 수 있어도 그 누구도 21세기의 성공 방정식은 모른다.

로또를 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번호를 자기가 지정해도 되고 랜덤으로 뽑아도 된다. (통계학과 졸업자로서 힌트를 주자면 그 둘 사이에는 당선 확률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네가 가고 싶은 길 그 어디로 가도 성공에 이른다고도 이르지 않는다고도 아무도 얘기할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에 꼰대들이 후배에게 들려 줄 얘기가 뭐겠는가? (나도 성공하는 길은 전혀 몰라서 하는 얘긴데 내가 아는 건 그 누구도 정답은 몰라 그러니) 네 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라 (라고 얘기하면 최소한 틀린 방향을 가르쳐 줬다고 욕먹지는 않겠지 그리고 폼도 나잖아)

그런데 이렇게 다들 랜덤으로 찔러 대니 결국 성공에 이른 사람도 랜덤으로 나온다. 마크 주커버그가 천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만큼 뛰어난 천재라고 해서 모두 그런 성공에 이르진 않는다. 더 정확히는 그런 천재들 중 극히 일부만이 우연히 성공에 도달한다.

주커버그 만큼 똘똘한 사람들 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 중에서 성공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꼰대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아예 천재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꼰대는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몇 년간 안개속을 해매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허비해버린 세월에 한탄과 눈물을 쥐어 짤 때 꼰대들은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나도 솔직히 성공 방정식은 몰라. 그러니 네가 잘 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잘 하려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했잖아. 남들이 시킨 거 했다가 실패했어봐 (나를 욕하고 너도) 더 힘들거잖아. 그냥 해보고 싶은 걸 해봤다는 걸 위안 삼고 눈물 뚝.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 타고르

당신이 1%를 향한 도전을 두려워 않는 이건 99%에 속한 것으로 이미 판명난 이건 상관 없다. 누구도 내일은 모른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말라(는 내 말만 들어라). 세상은 랜덤이다. 너의 실패는 너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네 맘을 좇아가지 않고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죠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posted by 신묘군
잡스럽게 얘기한다 2011.09.27 15:41
(글쓴이 주 -- 페이스북에서 주고 받은 대화에서 내가 발언한 부분만 발췌하여 편집함. 글에 포함된 각종 과학적 진술의 정확성은 전혀 보장되지 않으니 너무 시리어스하게 읽지 말 것.)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을 최대한 분산 복제하는 것이 가장 유용한 생존전략이므로 (토렌트로 정보를 뿌려서 미 정보당국의 침탈을 피한 위키리크스와 같은 전략) 생물을 조종하여 후손을 많이 생산하도록하는 동시에 자의식(특히 자기애)를 주입하여 생물이 후손을 퍼뜨리기 전에 자살하는 것을 막는다.
 
우리의 자의식은 이런 유전자의 전략이 빚은 허상일뿐 애초에 너와 나, 여기와 저기,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없고 전우주는 하나의 유기체로 다차원의 공간에 "흐르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끔 느끼는 공허함은 유전자가 심어준 자의식(즉 매트릭스)의 버그와 인간이 달성한 높은 관찰력을 달성 덕분에 힐끗 관찰한 우리의 실체다.

사람들은 정신 또는 의식에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만 의식은 육체와 분리된 현상이 아니다. 의식이란 단백질로 구성된 회로가 빚는 전기현상일 뿐이고 그 단백질은 유전자가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의식이라는게 무척 신기해서 그저 단백질의 농간이라고 하면 믿기 어렵지만 예컨대 인공생명(artificial life) 연구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식이라는게 없는 가짜 생명체도 흡사 생명체처럼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근본을 돌아가서 그러한 단백질이 있게 한 우주 그 자체는 의식을 갖고 있는가? 또는 좀 더 환원해서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원리(예를 들어, 물리학에서는 세상에 네 가지 힘 인력/전자기력/강력/약력이 있다고 하는데 애시당초 왜 그런 힘이 그렇게 동작하는가?)는 무엇이고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는가? 등의 질문은 중요한 질문이긴 한데 그 질문에 답하기엔 아직 인류의 과학 발달이 충분하지 않다. 
 
‎1년여 전에 호킹의 주장이 세상을 떠들썩하게한 적이 있는데 호킹의 주장은 신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신의 역할(세상을 창조하고 온갖 동식물을 빚는 것)을 누군가 하긴 해야 하지만 그게 신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비가 내리는데 신이 위에서 물조리로 뿌려도 되지만 그냥 구름 속 물덩어리가 뭉쳐져서 떨어져도 되는 것이다. 즉, 비를 내리기 위해 신을 발명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만 가지고 신의 역할은 다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기본 법칙은 왜 그러한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그 기본 법칙이 곧 신이다 라거나 그 기본 법칙을 신이 만든거다 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고 끝내 관찰할 수 없는 진실이 있는게 아닌가 라는 질문과 같다. 아마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의 끝 같은 것 말이다. 우리 우주는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서로 멀어지고 있다. (풍선에 파리 두 마리가 앉아 있는데 풍선을 불면 서로 멀어지는것과 같다.) 멀어지는 속도는 서로 멀수록 더 빠르다. 그러므로 충분히 먼 두 별은 서로 멀어지는 속도가 빛의 속도 만큼 빨라진다. 그래서 서로 볼 수가 없게된다. 인력도 빛의 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에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끌어당기는 힘도 미치지 않는다. (하나의 우주 안에서는) 어떤 정보도 빛 보다 빨리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우주 즉 multi-verse 에서는 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겠지만) 그 별의 존재를 인지할 방법이 없다. 볼 수도 없고 어떤 식으로도 인지할 수 없는 그 별은 있는건가 없는건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다르게 보자면 있으면 어쩔건데? 어차피 서로 상관할 수 없는데? 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다. 우리의 관찰 영역 외에 신의 섭리가 있을 수 있지만 없다시피한 그 별들처럼 우리랑 상관 없는게 아닐까.
posted by 신묘군
기술을 얘기한다 2011.09.27 15:26

지인에게 들은 일화. 한 때 우리나라 미들웨어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T* 라는 회사. (특정 회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회사가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해낸 독보적인 역할에 경의를 표하는 편입니다. 다만 제가 들었던 일화가 그 회사에 대한 것이었을 뿐) 나름 괜찮은 제품인데 미국가서는 별로 재미를 못 봤단다. 그 이유는 그 회사가 내세운 장점이 "뭐든지 필요한 기능이 있으면 맞춰드립니다"였는데 막상 미국의 갑들은 그런 식의 제안에 익숙지 않았던 것. 즉, 한국의 소프트웨어 영업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고객 맞춤 서비스는 미국 시장에서는 별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

 

왜 그럴까?

 

(내가 미국 안 살아봐서 잘 모르지만) 미국 시장에서 사이트마다 쫓아다니며 커스터마이징 하다가는 교통비 때문에 프로젝트비가 치솟을 것이고 그래가지고는 회사가 유지가 안될 터이니 아마 전화로 응대하면서 "다음 버전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도가 최대의 고객 맞춤 서비스가 될 것이다. 만약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하는 고객이 있어도 무시해도 된다. 왜냐하면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 고객에 팔면 되니까. (시장이 크다는 것이 미국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내수 시장이 작다보니 어디 한 사이트도 무시할 수 없다. 다행히(ㅠㅠ) 모든 갑들이 어차피 서울에 다 몰려 있으니 (뭐 지방에 있다고 해도 승용차로 쎄려 밟으면 두세시간 안에 다 갈 수 있으니) 커스터마이징의 부담이 작은데다 커스터마이징이라는 명목으로 개발자 파견해서 그 몫으로 몇 푼이라도 더 받아야 회사가 유지되니 (원래 패키지 소프트웨어는 거의 모두 불법으로 거의 공짜로 써왔다는 역사적 배경을 기억하라) 공급자들도 커스터마이징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직원들 기술도 업그레이드 하고 심지어는 패키지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이트 요구에 맞춰 턱 좀 깎아주고 눈썹 밀고 문신하고 복부 지방 좀 뽑고 다리뼈 늘리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 소스는 걸레가 되어 있고 수많은 소스 브랜치는 통제 불능에 빠진다. 엄청나게 탁월한 아키텍트가 있어 전체 아키텍쳐를 흔들리지 않게 끌고 가면서 모든 브랜치를 다음 버전에서 이쁘게 메인 트렁크로 끌어올 수 있다면 다행인데 그런 아키텍트는 흔하지 않고 결국 회사는 "기능이 들어가면 갈 수록 프로그램 크기는 점점 무거워지고 버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소프트웨어를 갖게 되고 문을 닫을 수 밖에.

 

한국적 토양이 낳은 비극이랄까.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11.07.29 13:25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사회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재편과정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정치혁명 또는 경제혁명이나 제도혁명 같은 단기적이고 선형적인 방법론을 반성하고 불가역적 구조변혁의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의 「강의」중에서

이 구절에 대하여 후배가 던진 질문에 답한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우리를 옥죄는 굴레를 벗어나 풍요를 누리고자 끊임없이 투쟁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불을 사용하고 농사를 발명하고 사회제도를 만들고 증기기관을 발명하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그러한 노력을 이끌어내는 주도 집단의 이름은 족장, 왕, 귀족, 영주, 토호, 자본가 등으로 바뀌었지만 이 구도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늘 그 시대를 풍미하는 레짐(정)과 그에 대항하는 레짐(반)은 새로운 레짐(합)을 낳았지만 그 어느 레짐이건 풍요를 최대화 한다는 목표는 달라진 적이 없고 단지 그 풍요가 누구의 풍요인가와 풍요를 강요하는 메커니즘의 정당성이 어디서 (하늘, 신, 다수결 등) 오는가가 바뀌었을 뿐이다. 월러스틴이 지적하듯 심지어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것도 시장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라는 것과 이러한 점에서는 전혀 다를바가 없다.

생산성이 인류를 몇 번 씩 먹여 살리고도 남게 된 시점. 현재의 생산 방식으로는 모두가 아주 빠른 시일 이내에 공멸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시점. 즉, 더 이상 풍요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 된 시대에 우리의 삶을 관통해야 할 원동력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이 인류 역사에서 지금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노자 또는 많은 스승의 생각에서 시대의 한계 때문에 오해된 측면을 배제해나가다 보면 (예컨대, *복음교회에서 얘기하는 3박자 구원론을 보라. 하늘을 찌르는 고딕풍 교회나 거대한 불상을 보라.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를 종교라 부르는 사악한 독사들 말이다.) 이러한 일체의 "색"의 세계가 무의미해진 시점에서 우리를 끌고 가는 방향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이상적인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또한 국지적으로 이러한 이상을 지상에 실천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작은 규모의 종교 공동체)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생각이 현실의 중심적인 원리로 도입되고 이것이 인류의 탄생 이래 지속되어온 무척 오랜 레짐을 넘어서는 최초의 진정한 레짐이 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더 늦출 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질문은 결국 이 질문의 답은 인간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공자의 통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제목에 있는 stage real은 영화 "아발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posted by 신묘군
세상을 얘기한다 2011.07.29 13:18

(최근 휴대폰 자판의 표준화를 놓고 벌어진 논의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1. 표준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여러 체계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약속이 필요하다. 이러한 약속은 대부분 사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그 중에넌 약속에 참여하는 체계가 너무 거대해지고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의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져서 약속을 좀 단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때 그러한 약속을 표준이라 한다.

2. 실질적 표준과 사실상 표준

실 질적 표준은 국가/국제 표준 기구에서 만들어서 강제하는 표준이고 사실상 표준은 널리 쓰여 따르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표준이다. 예를 들어, 전화 교환 시스템은 국제 표준이며 따라서 전세계 어느 곳에서건 같은 전화 교환기와 전화기로 서로 연결하여 통화할 수 있게 된다. 한편, MS 워드 포맷은 국가/국제 표준은 아니지만 워낙 쓰는 사람이 많아서 다른 워드 프로세서에서도 지원한다.

3. 표준과 기술 발전

표준은 기술 발전을 견인하기도 하고 저해하기도 한다. 개발하기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기술이 있다고 할 때 설령 그걸 개발하더라도 널리 써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국제 표준 기술이라면 그것을 개발하였을 때 써먹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우리나라 표준 무선 통신 기술은 CDMA다 라고 못 박아버리니 아무리 돈이 많이 들더라도 CDMA 기술은 개발할 수 밖에 없고 너도 나도 개발하니 기술이 풍성해져서 발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CDMA 정책이 옳았느냐 아니냐는 얘기는 논점을 벗어나므로 생략)

반대로 어떤 기술이 표준 기술이 되어 버리면 그 와 다른 모든 기술은 비 표준 기술이 되거 설령 더 좋은 점이 있더라도 시장에서 사장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을 견제하기 위하여 다른 기술을 갖고 있는 쪽이 연합하여 표준을 선점해버리고 상대를 말려 죽이는 전략을 쓸 수 있다. (VHS에 밀려난 베타 기술이 이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4. 표준의 준수 수준

대 개의 사람들은 표준의 준수가 0/1의 문제 즉, 준수하거나 준수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표준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인터넷 표준을 다루는 IETF의 표준 문서에서는 규정을 표현할 때 MUST, SHOULD, MAY 를 엄격히 구분하여 사용한다. MUST는 꼭 따라야 하는 규정이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표준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SHOULD 는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따르지 않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고 따르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이다. MAY 는 따르는 것이 바람직한 규정이다. 어떤 표준을 정하거나 검토할 때 이것을 0/1의 관점으로 보지않고 다양한 준수 수준을 고려하여 보면 훨씬 유연하게 표준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5. 사례 분석

자판의 사례를 통하여 표준이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고 어떤 경우에는 필요하지 않은지 살펴보자.

5.1 타자기 또는 컴퓨터 자판의 경우

처 음 타자기가 만들어지던 시대로 되돌아 가보자. 두 집단이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타자기 생산자들은 어떤 자판 배열로 만들어야 잘 팔릴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한편, 타이피스트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어느 회사 자판을 배워두면 앞으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해결책은? 표준 자판 배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 타자기 생산자들은 자판 배열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고 더 성능 좋은 타자기만 만들면 되고 타이피스트들은 한번 배운 타이핑 기술을 평생 쓸 수 있으니 맘놓고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세 월이 흘러 기술도 발전하고 타자기(또는 컴퓨터 자판)의 활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지고서야 애초의 자판이 최적의 배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는 물리적으로 축을 밀어서 글자를 찍어야 하던 타자기와 전기적 신호로 눌림을 감지하기만 해도 되는 시대에는 최적의 배열을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시프트 키를 누르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지만 예전의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시프트 키를 누르는 것은 상당한 노동이다.) 그래서 더 좋은 자판 배열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영문 자판의 경우 기존의 쿼티 자판 대신 드보락 자판이 등장한 것이다.)

드보락 자판이 좋다는 건 알지만 기존의 쿼티 자판에 이미 익숙한 사람들은 쉽게 옮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드보락이 보급 되던 시절의 운영체제에서는 드보락 자판을 지원하지 않아 별도의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고 (그랬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음) 대다수의 자판에는 이미 쿼티로 글자가 새겨져 있으므로 드보락 자판에 도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던 것이다. (키 캡을 옮겨 꽂을 수 있는 키보드도 있고 요즘 운영체제에서는 기본적으로 드보락 자판을 선택할 수 있지만 여전히 쿼티가 주류로 남았다.)

5.2 휴대폰 자판의 경우

휴 대폰 자판의 경우 한글 자판 표준은 그동안 없었다. (최근에 정했다고 뉴스를 본 듯)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 일 것이다. 우선, 각 휴대폰 제조사가 나름의 자판 배열에 대하여 특허를 갖고 있었으므로 남의 자판 배열이 더 좋다고 해도 가져다 쓸 수 없어서 사실상의 표준도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컴퓨터 자판과는 달리 남의 휴대폰에서 고속으로 문자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차피 나는 내 휴대폰을 거의 항상 쓰므로 거기에 익숙해지면 남들이 자기들 폰에서 어떤 자판을 쓰건 나랑 상관이 없다. (한편, 동네 피씨 방에 갔는데 당신이 모르는 배열의 자판이 놓여 있다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거다.) 따라서, 휴대폰에서의 자판 표준은 애초에 태어날 필요가 없고 약간의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가끔은 남의 폰을 쓰거나 또는 내가 새로운 폰을 샀는데 자판 배열이 다를 수 있으므로) 그리 절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스마트 폰 시대에 와서는 좀 더 뚜렷해졌다. 즉, 자판 자체를 내려받아서 설치할 수 있으므로 시중에 있는 수많은 다양한 자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자판을 그냥 쓰면 되는 것이지 굳이 표준을 만들고 모두가 그걸 배워야 할 필요는 없어진 셈이다.

게 다가 대다수의 스마트 폰은 터치 뿐만 아니라 끌기(드래그)를 지원하므로 이를 결합하면 아주 다양한 입력 방식이 앞으로 나올 수 있다. (스와이프 자판이나 팜 파일럿 시절부터 살아 남은 그래피티 자판이 그 사례) 또한 앞으로 멀티 모달 입력이 가능해지면 훨씬 더 다양한 글자 입력 기술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어설프게 지금 뭔가를 "국가 표준"으로 만들고 강제한다면 이 모든 가능성을 짓밟게 되는 것이다.(라기 보다는 표준이 있어봤자 어차피 스마트 폰 시절에는 아무도 신경도 안 쓰고 자기 편한 것을 받아서 쓸 것이라는 것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01.27 18:15
(주: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기록했던 내용을 옮겼습니다.)

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별로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험한 꼴을 자주 보게 될 줄이야. 왜 이럴까? 왜 우리는 원하지도 않는 나라에 젊은이들을 보내고 그 대가로 엉뚱한 죽음을 자초하는 걸까? 역시 이건 우리의 삶을 옥죄는 모순들 때문이겠지. 초국적 자본, 분단, 미국...
 
<멍청한 백인들>을 쓴 마이클 무어는 <컬럼바인을 위한 볼링>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영화감독이다. 물론, 이번에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화씨9/11>도 기다려지는 그의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하여 마이클 무어는 미국사회의 주류 즉, 백인들의 위선과 거짓 그리고 그를 통하여 조장되고 있는 전세계를 향한 숱한 폭력들 즉, 전쟁, 희생을 강요하는 일방적 무역 관행, 공교육의 파괴, 환경 파괴,
약소국에 대한 간섭 등을 고발한다. 물론, 작가의 관심은 미국민들을 일깨워 바보 같은 정치인들에게 더이상 표를 주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이지만 미국의 일방적 폭력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또는 미국이 잘 산다고 잘못 알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강력히 추천한다.
 
그런데,
 
이렇게 멍청하고 무지막지한 백인놈들에게 애완견 노릇이나 하고 있는 우리는 뭐지?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01.27 18:14
(주: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기록했던 내용을 옮겼습니다.)

전쟁중독 - 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
조엘 안드레아스 지음, 평화네트워크 엮음 / 창해

이라크 파병 철회를 위한 노력이 꾸준히 계속되는 와중에 전쟁에 대한 책을 살펴본다. 우선, "전쟁 중독"이라는 만화 책이다.
 
우선 만화책이라 읽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쉽다고 한 것은 이 책에서 한 컷 한 컷이 많은 정보와 시사점을 담고 있다보니 보통 만화책을 읽을 때 처럼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수뇌부에 있는 인간들이 대대로 얼마나 전쟁에 광분해 왔는지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무고한 목숨이 한줌밖에 안되는 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희생되었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준다.
 
따로 그런 쪽으로 공부하거나 찾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없었던 근현대사의 비극을 미국의 개입이라는 측면에 서 잘 추적하고 있다. 더구나,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글은 작가의 말이 아니라 실제 미국 관료들 정치가들 군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이라크에 파병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01.27 18:12
(주: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기록했던 내용을 옮겼습니다.)

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 지음 / 이미지프레임(길찾기)

부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이 전쟁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십자군 전쟁이라... 십자군 전쟁이 뭐지? 세계사 시간에 배우기는 배웠는데 그게 뭐였지?
 
김 태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는 이런 질문에 답을 준다. 십자군 전쟁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서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재미있는 그림과 적절한 지도까지 곁들여 가면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기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전달한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끊임없이 이 전쟁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는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의 설명을 따라 가다보면, 부시가 정말로 미치광이 전쟁 중독자이거나 아니면 십자군 전쟁이 뭔지 들어본 적이 없는 바보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점을 (어쩌면 둘다?) 선명히 알게 된다.
 
이 작품은 시중의 서점에서 책으로 구할 수도 있고 작가의 인터넷 사이트 (http://www.kimtae.com/) 에서도 볼 수 있다. 인터넷 판에서는 다루지 않은 추가 정보도 책에는 들어 있다.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01.27 18:10
(주: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기록했던 내용을 옮겼습니다.)

세계 종교 둘러보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한국의 이라크 파병, 이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 또 그에 이은 애꿎은 젊은이의 희생...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번 전쟁의 본질이나 성격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된다. (부시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이 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전쟁으로 본다. 최근 한 외신에서는 한국의 기독교 선교자들이 이라크에서 과도한 선교 활동을 함으로써 현지인들의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얘기도 들려온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라... 이건 본질적인 문제일까?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슬람의 과격성은 어디까지 진실인가? 더 본질의 문제로 가보자면 종교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좇다보니 내가 종교에 대하여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어 "세계 종교 둘러보기"라는 책을 추천 받아 읽었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세계의 다양한 종교를 "말 달리며 산 쳐다보기" 식으로 둘러보는 것이라 각 종교의 심오한 가르침을 담는 것은 애초에 시도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각 종교의 역사적인 배경과 기본적인 교리, 현대사에서 그 종교의 의미나 현실 그리고 다른 종교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선언 이후로 세계화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물론, 세계화에 반대하는 전 지구적인 운동이 일어난 것도 현재 진행형인 세계화가 갖는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인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세계화를 얘기 하기에 앞서서 우리와 다른 문명권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정신 세계 속에서 살아왔는지 최소한의 상식은 갖춰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온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다종 다양한 인간들의 정신 세계의 한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01.27 18:08
(주: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기록했던 내용을 옮겼습니다.)

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나는 베스트셀러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좋아 보이는 책이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리면 좀처럼 읽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책이지만 나의 성은을 입지 못하는 책들이 종종 있을 터이다.
 
만행도 그런 책이었다. 엄청나게 팔렸다지만, 종교에 대한 좋은 자극을 주는 책이라지만 어쩐지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맘에 걸려서 볼 수 없었다.
 
우연한 계기로 추천을 받아 읽게된 만행의 가장 큰 장점은 간결한 문체라 할 것이다. 현각 스님의 얘기를 한국 분이 받아 적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적은 분의 글솜씨가 대단하다. 너무 깔끔한 문체라 현학적인 문체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밋밋하다는 느낌을 준다.
 
종교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한 스님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감동적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에게는 비추
좀 더 이성적인 종교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강추
심심풀이로 시간떼우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강추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01.27 18:06
(주: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기록했던 내용을 옮겼습니다.)

김남주 평전 
강대석 지음 / 한얼미디어

김남주 만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작가가 아니 전사가 있었던가? 그의 삶은 너무 치열해서 그가 헤쳐나가야
했던 삶의 무게에 대하여 안타까움이나 분노보다는 어떤 다른 종류의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김남주 평전의 1부는 그의 삶을 기준으로 2부는 그의 작품 세계를 기준으로 여러 꼭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1부에 비하여 2부는 좀 늘어진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가끔보이는 오타도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김남주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하여 이 정도로 정
리한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김남주를 사랑하는 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김남주라는 사람을 잘 모르시는 모든 분들께는 강추.
어떻게 살 것인가 방황하시는 분들께 강추.
유물론, 정치경제학, 김남주의 시 등에 익숙한 분들께는 비추.
posted by 신묘군
책을 얘기한다 2011.01.27 18:04
(주: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기록했던 내용을 옮겼습니다.)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내가 왜 기독교인일 수는 있어도 교회에는 나갈 수 없었고 세례도 받을 수 없었는지 설명해주는 책. 물론, 내용 때문에 한국내 기성교단의 목사 몇 분이 반박 서적을 몇 권을 출판 하게 만든 책. 폴 틸리히 / 유영모 / 노자 / 장자를 꼭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 중언부언이 많아서 좀 거슬리기도 하는 책. 하지만, 비교적 쉽게 쓰려한 흔적이 뚜렷한 책.

자신의 믿음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고 자부하는 임의의 모든 종교의 신도들에게는 비추.

종교를 하나 쯤 믿는 것은 좋겠는데 어느 종교가 좋을 지 또는 기존의 종교/교단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는 강추.

기독교 교리가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추.
posted by 신묘군